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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재개발,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 | 홍콩 세입자운동 ③

도시의 재개발,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 | 홍콩 세입자운동 ③

홍콩의 주거 위기는 단순한 노후 주택 정비의 문제가 아니라, 상업적 재개발로 인해 도심 내 저렴한 주거지가 소멸하고 가난한 이들이 삶터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배제 때문이다. 이윤 중심의 재개발 강행 속에서 시장 논리에 기댄 무리한 개발 모델의 한계와 파산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026년 10월 02일

여전히 홍콩의 주거 현실은 열악하고 주거권의 쟁취는 묘연하다. 2019년 이후 시민사회를 향한 엄혹한 탄압 국면에서 세입자, 주민들을 조직하고 정치적으로 의제를 공론화시키거나 투쟁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이 글을 마무리하는 데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촉발한 홍콩 사회의 심각한 모순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현실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의 압박이 불러낸 안개같은 무기력과 퇴보하는 주거정책 속에서 미약하지만 전해지는 목소리를 담았다. 여전히 홍콩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을지라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은 ‘도시 재개발에 맞선 홍콩 세입자들의 저항’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1편에서는 URA(도시재개발국)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었고, 2편에서는 순닝로드(Shun Ning Road, 順寧道) 투쟁을 통해 세입자 주거정의와 주민자주계획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글(3편)에서는 이후의 홍콩의 세입자 투쟁을 다루며 무엇을 남겼고, 지금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집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권리다

홍콩의 주거 위기는 종종 ‘열악한 주택 문제’로 설명된다. 낡고 위험한 분할 주택을 없애고, 더 안전하고 위생적인 공간을 마련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실제로 최근 홍콩 정부는 ‘간박방(簡樸房, Basic Housing Units)’ 조례를 도입하며, 최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주거를 단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국제적으로 논란이 큰 ‘분할 주택’을 주택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이다. 실제 이 제도를 추진하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저렴한 임대주택의 공급량이 급감하고 임대료만 폭등한다. 여기에 URA의 상업적 재개발이 겹치면서, 도심 내에서 가난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지가 완전히 절멸된다.

앞선 두 편의 글들에서 살펴보았듯, 홍콩의 주거 문제는 단순히 ‘집의 상태’ 자체에 있지 않다. 도시재개발국(市區重建局, URA)의 재개발 사업은 저렴한 주택을 줄이고, 가난한 세입자를 도시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순닝로드의 주민들이 요구했던 것도 ‘더 나은 집’이 아니라, 쫓겨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권리였다.

이러한 요구는 구룡성(九龍城, Kowloon City)에서 한층 더 분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곳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철거 여부를 넘어서, 기존 주민과 상인들이 그 지역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 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오랫동안 형성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문제로 전개되어 왔다.

구룡성은 홍콩 구룡반도 동쪽에 위치한 행정구로, 과거 구룡성채(九龍城寨, Kowloon Walled City)가 있던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초기 홍콩섬만 점령했던 영국군이 구룡반도와 신계 지역까지 통치권을 확장하면서, 구룡성채에서 청나라 관리를 축출한 이후 이곳은 ‘삼불관(三不管)’ 지역—영국은 관리하고 싶지 않아하고, 홍콩은 감히 관리할 수 없고, 중국은 관리할 능력이 없는—으로 불리게 되었다. 건축법이 적용되지 않아 불법 증축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으며 무법천지였다는 구룡성채에 대한 소문은 일본 서브컬쳐 등에서 여전히 열광받는 소재다.

1970년대 구룡성 일대는 근처에 있던 옛 카이탁 공항의 영향으로 물류와 항공, 이주민들의 유입이 많았다. 특히 구룡성에 먼저 터를 잡았던 차오저우(潮州) 출신 화인 네트워크와 태국 출신 화인 간의 연결망(차오저우-방콕 무역로를 통한 친인척 관계)이 기반이 됐다. 이후 1980년대 홍콩 남성과 태국 여성의 국제결혼,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유입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다문화 공존 생태계가 형성됐다.

1984년 중영 공동성명 체결과 함께 구룡성채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되었다. 홍콩 전체가 중국으로 반환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구룡성채를 철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구룡성채는 홍콩의 밀집되고 혼란스러운 도시 경관이 지닌 매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매우 열악한 주거 환경이었다.

배제의 재개발에 맞선 저항과 대안

구룡성채가 철거된 후의 구룡성은 ‘작은 태국’으로 불리었다. 많은 태국계 상점, 태국계 주민, 태국계 단체들이 구룡성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구룡성 카이탁로드(啟德道)와 사포로드(沙浦道) 일대 재개발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주민들은 ‘작은 태국’ 커뮤니티를 사실상 소멸시킬 것으로 보이는 이 프로젝트에 맞서기 시작했다. 태국 이주민 공동체로서의 저항이 아니었다. 구룡성 사포로드에서 50년 넘게 살아 온 한 중국계 주민 탕 씨는 한 독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기에 태국계 공동체가 구룡성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던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서로 벽을 쌓고 살지는 않았다.” 그는 수십 년간 지역에서 살며 태국 문화와 공동체 형성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태국계 주민들과 중국계 주민들은 오랜 기간 함께 살며 차별 없이 서로 돕는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탕 씨는 재개발이 공동체를 해체할 것이라며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든 문화이므로 사회와 도시재생청이 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구룡성에서 16년 이상 거주한 “구룡성 태국 생활권”의 일원인 태국계 주민 월화는 아들 등 네 명과 함께 한 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었다. 월화는 집 벽에 난 큰 균열을 가리킨 뒤, 나무판을 치워 이미 곰팡이가 피어 검게 변한 벽을 보여주었다. “최근 3년 동안 벽에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재개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자 집주인이 수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등 더 심각한 문제만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만약 수리를 하면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안 올렸으니, 나도 페인트칠이나 수리를 요구하며 불평하지 않는 거죠. 살 수 있으면 그냥 사는 거예요.”

URA 조례에는 URS(도시재개발전락)에 강령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역 특성을 보존해야 한다.’라던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주민의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모든 이윤을 위한 재개발 사례가 그랬듯, 구룡성의 재개발도 이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이에 구룡성 주민들과 리퉁 거리 주민 등 과거 재개발에 맞섰던 주민들, 그리고 주거권 활동가들은 구룡성 재개발 우려그룹(九龍城重建關注組, 이하 구룡성 우려그룹)을 결성했다. 2003년 리퉁 거리에서 강제퇴거를 겪었던 옛 주민 메이 씨도 구룡성 우려그룹의 URA 앞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지지하며, 구룡성 주민들이 과거 리퉁 거리에서 이루지 못했던 “원지역 재정착”을 이번에는 반드시 쟁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0년 9월, 구룡성 우려그룹은 팬데믹 상황 속에서 ‘구룡성에서 태국계 문화를 보존하자’라는 이름의 온라인 집회 및 포럼을 개최했다. 집회 당일에는 온라인 진행 외에도 재개발 지역 내 중국어 사용 주민을 위한 거리 부스를 설치해 생중계를 진행했고, 태국 노동조합에서도 태국어 사용 주민을 위한 생중계를 제공했다. 참여 인원은 160명에 달했다. 구룡성 우려그룹은 URA도 초청했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포럼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70%의 상가 세입자들은 구룡성에서 가게를 시작한 후 10년 이상을 원래 자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들의 70%는 구룡성에 거주하고 있는 주거 세입자이기도 했다. 구룡성에서 중국계와 태국계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송크란 축제에는 다양한 태국 상점과 단체가 참여한다. 그러나 URA의 계획대로 재개발 후 지하 쇼핑몰과 대형 브랜드 상점이 입점한다면 이런 지역 행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공동체 문화를 한순간에 파괴하려는 것이다.

재개발 과정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거주인 조사 명목의 인구 동결 등록은 부정확하고 자의적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초기 단계에서 URA 직원들은 이 지역에 태국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후 수정과 면담은 모두 거부되었다. 모든 문서와 인구 조사에는 번역이 제공되지 않아 일부 태국계 주민들은 내용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임대료 상승으로 태국 노동조합과 태국 이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할 것이다. 온라인 포럼 이후 이어진 집회에는 많은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이 참석하여 댓글로 다문화 공동체 보존, 원지역 재정착, 상가 세입자 수평이동을 요구했다. URA는 이주 대상 주민에게 현금 보상, 추가 금액을 더해 새 주택 구매, 공공주택 신청의 3가지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어느 것도 원래 지역에 머무는 방안은 아니다.

과거 리퉁 거리에서의 주거권 투쟁 당시 주민들과 주민들에 연대하는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덤벨 플랜(Dumbbell Plan, 啞鈴方案)’이라는 대안적 개발 모델을 공동으로 창안했었다. 이 계획은 거리 ‘양 끝에 고층 건물을 배치해 용적률과 개발 이익을 확보하되, 중앙부의 역사적 거리·커뮤니티 공간·기존 상가는 원형대로 보존해 주민과 상인이 원지역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안’이었다. 구룡성 우려그룹은 이때의 경험을 모델 삼아, 지역 주민 약 150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원지역 재정착 방안을 도출하기도 했다. 거리로 나와 부스를 설치하고, 직접 만든 도시 개발 방안을 주민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가 아니라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대안적 도시계획'을 직접 기획하고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구룡성 우려그룹의 저항 속에서도 재개발 프로젝트는 강행되었다. 2022년 URA는 인접한 아친와이로드(衙前圍道)-카펜터로드(賈炳達道) 일대를 포함하는 초대형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여 구룡성 일대를 통째로 갈아엎는 이른바 ‘룽싱 지구(Lung Shing Area 衙前圍道) 종합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4년 10월에는 구룡성 개발 계획의 입찰이 마감됐다. 하지만 지역 경제와 경제 상황이 침잠하는 가운데, 단 한 건의 입찰만 접수되었으며 그 입찰마저 회수되었다. URA는 '공동체와 역사 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포기하고 민간 개발업자의 이윤에 기댄 고비용 상업 개발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홍콩 부동산 시장 침체와 고금리 기조 속에서 개발업자들조차 개발을 외면하고 있다. 공동체를 부수고 얻으려 했던 시장 중심 재개발 모델 자체가 파산에 직면한 셈이다.

덤벨 플랜
덤벨 플랜

세분화된 배제의 기술

강행되는 재개발 프로젝트는 또다시 성원권을 둘러싼 정치적 의제를 불러왔다. 앞서 2009년 순닝로드의 재개발이 결정되자, 홍콩 정부는 해당 지역의 많은 인구를 한정적 공간에 재배치할 방안으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거나 창의적인 공간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대신, 홍콩거주권의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 법률 재해석을 요청하는 사건이 있었다 (2부 참고). 구룡성을 둘러싼 대규모 철거와 이주 문제가 다시 복잡해지면서, 이번에도 성원권을 둘러싼 세부화된 배제의 기술이 작동하는 듯하다.

카이탁북은 구룡채 내 대표적인 신이민* 밀집 지역이다. 2010년대 후반 여러 신축 주택단지가 완공되면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고, 당시 한 논평은 이 지역 주민의 약 80%를 신이민자로 추정했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일반선거에서 민주파가 홍콩 전역에서 크게 승리했음에도 카이탁북에서는 친정부진영의 후보가 승리했다. 이러한 결과는 곧바로 이 지역의 선거 결과를 신이민자의 정치적 성향과 연결하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 신이민(新移民) | 법적으로는 홍콩으로 이주한 만 7년이 지나지 않아 영구거주권을 얻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중국대륙에서 이주해 온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신이민자가 친정부 진영을 지지한 것도, 모든 비이민자 주민이 민주파를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선거 결과는 단편적으로 확대,재생산되면서 신이민자를 민주주의의 외부자이자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주민들의 다양한 배경을 포용하고 이주와 거주권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민주적 대화보다, 구룡성과 재개발을 둘러주민들 사이의 내부적 경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당시 논평이 지적하듯, “신이민자를 무서운 사람들로 낙인찍는 것은, 바로 친정부 진영이 신이민자들에게 선전하는 ‘홍콩인은 배타적이다’라는 주장이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도록 만드는 것”(위 논평)일 수 있다. 이 비판이 중요한 이유는 신이민자를 하나의 정치적 집단으로 간주하는 대신, 연대를 약화하는 구조적 이간질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자성적 목소리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개발을 둘러싼 민주주의의 문제는 누가 도시의 변화에 참여하고, 자신의 거주와 이주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협상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URA와 민간 개발자가 주도하는 도시의 시장 논리와 변화하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 세입자 운동의 의미는 특정한 재개발 프로젝트를 막아내는 것 이상이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공동의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반복되는 협상과 좌절 속에서도 도시의 미래를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는 주체됨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룡성채의 ‘유산’을 다시 생각해보자. 구룡성의 재개발이 홍콩 내외부에서 오랫동안 주목받은 이유는 구룡성채의 독특한 건축 구조뿐 아니라, 식민지라는 특수한 환경 속 형성된 다문화적이고 비공식적인 도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이후 낭만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4년 개봉한 정바오루이(鄭保瑞) 감독의 액션영화 <구룡성채>의 흥행은 이러한 공간에 대한 판타지와 기억이 ‘홍콩다움’을 상징하며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구룡성채의 유산을 과거에 대한 낭만화된 홍콩의 이미지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그 유산의 가치는 제도적 도시 계획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뤄 생활공간을 만들고 지키고 협상해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입자 운동은 이미 사라진 구룡성(채)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가능성을 현재진행형의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가며 또 다른 홍콩의 레거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끝으로

세 편의 글들을 통해 살펴본 바, 홍콩의 주거위기는 단순히 낡은 집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결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토지와 주택을 오직 투자의 대상과 자본의 증식 수단으로만 취급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와 공동체를 손쉽게 지워버리는 신자유주의적 도시 모델이 낳은 폭력이었다. URA의 상업적 재개발이 부동산 침체 속에서 마침내 유찰이라는 시장의 역풍을 맞닥뜨렸듯, 이윤에만 눈먼 도시 리모델링은 세입자뿐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2019년 이후 강화된 국가 안보 통제와 엄혹한 공안 정국 속에서, 홍콩의 세입자 시민들은 과거 리퉁 거리나 순닝로드처럼 대규모의 거리 투쟁을 펼치기 어려운 제약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다양한 실천을 통해 드러낸 구룡성의 목소리는 결코 헛되지 않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압박 속에서 이들의 저항은 비록 미약해 보일지라도, ‘사람이 집보다 먼저’라는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상과 삶터의 바닥에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글 : 이경희, 양정희,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