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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만든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들 | 2026아시아빈민대회

빈곤을 만든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들 | 2026아시아빈민대회

취약함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세계,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자.

2026년 10월 22일

서점을 하는 자영업자가 좋아하는 계절, 10월이 오면 서점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 바람은 매번 무색해지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서점을 하는지 되묻게 된다. 그런 가을의 전주가 가뭄으로 산천이 마르더니 어느 날 폭우가 쏟아졌다. 이 비는 책방의 낡은 지붕을 뚫고 들어와 갓 들여놓은 책 위로 떨어져 여러 권의 신간이 젖어 상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면 폭풍우가 판자 지붕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삭아버린 판자 지붕과 우리의 작은 세계가 함께 무너지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럼에도 한 권도 팔리지 않는 날이면 책방지기들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펼친다. 책을 믿지 않는 시대가 올까. AI의 효능감이 활자의 진정성을 훼손할까. 우리 삶을 지탱해온 믿음들도 결국 벼랑 끝에 서게 될까. 이런 불안을 품은 채 이틀간 책방을 쉬고 서울로 올라갔다. 우리들의 벼랑 끝 선생님들을 만나러.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삶

10월 16~17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빈민대회’는 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에서 온 빈민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각 지역의 빈곤과 불평등, 사회보장의 현실을 살피고, 각각의 투쟁과 승리, 과제를 나누는 자리였다. 빈민 당사자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마지노선에서 살아가면서도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10월 16일 아시아 빈민대회 컨퍼런스
10월 16일 아시아 빈민대회 컨퍼런스

16일 열린 ‘아시아빈민대회’컨퍼런스는 <아시아의 사회 보장 현실과 나아갈 길>, <생명의 보루 소송으로 본 공공 부조의 역할과 책임>, <아시아 현장의 목소리> 세 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홍콩 여성 홈리스의 생존기, 도시 빈민 투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필리핀 홈리스, 동자동과 양동 쪽방촌 주민들의 사는 이야기, 강제 단속과 싸워온 한국 노점상의 역사와 운동, 시설에 갇혀 자기 결정권을 누릴 수 없었던 중증 장애인이 권리를 쟁취해 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 더는 추락하지 않도록 보루를 쌓고, 떨어지는 사람들을 받아내기 위해 거미줄을 엮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모든 세션이 좋았지만, 특히 세션2 일본 ‘생명의 보루’ 소송 원고인 모리 키누코(森絹子) 할머니가 들려준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소송 시작 당시) 생활보호급여를 받는 것이 ‘창피하다’,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해 원고가 되는 것에 대해 불안함이 있었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더 나은 세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을 만나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긍정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게 됐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무엇이 되거나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의 고백처럼 들렸다. 강해져야만 안전할 수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을 추구할수록 도움이 필요한 순간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사람은 아프고 늙고 약해지며 결국 혼자의 힘만으로는 삶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혼자서 잘 살아가는 능력을 대단히 여기는 사회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곧 무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요즘 넷플릭스에서『나 혼자만 레벨업』을 보고 있다. 주인공은 혼자 성장하고 강해진다.아직 결말은 모르지만, 약한 자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강해져야 하는 슬픈 이야기처럼 보인다. 지금 이 세상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때로는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판타지 같으니까.

곧 열 살이 되는 책방도 친구들의 돌봄이 없었다면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권하는 책들은 결국 서로 다른 조건과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만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런 책들을 친구들과 함께 읽으며 자립이 혼자 서는 일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힘임을 배워왔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실해지는 순간은 취약함을 드러낼 때다. 그러나 개인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돌보는 관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존의 조건이 여전히 개인과 가족의 능력에 맡겨진다면 취약함은 여전히 부끄러움이 된다.

빈곤은 구조적인 문제

출처 : 노들야학 가빈
출처 : 노들야학 가빈

도시가 화려해질수록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지면서 함께 살아가는 자들 사이에 금이 쳐진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영위할 수 없는 생의 언저리에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무력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삶의 가능성이 박탈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에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마저 잃은 듯 느낀다. 누가 사회의 자원을 소유하고, 누가 노동의 성과를 가져가며, 누가 삶의 조건을 결정할 힘을 빼앗고 있는가?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문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도시가 커지자 기업이 커지고 국가가 커지자 그 동안 그것들의 아래에 있던 몸들은 도시에 존재할 자격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자격미달, 함량미달, 시민이 될 모든 조건에서 멀어진 몸뚱이들은 사실 모든 화려한 것들을 떠받치고 있다. 도시는 노동과 돌봄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 성과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부여된다.

그렇지만 왜 취약한 사람들이 쉽게 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될까.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게시물에 프랑스 파리 시위에 대한 입장을 묻는 댓글이 달리고, 팔레스타인 청년의 결혼자금 모금에는 의혹이 붙는다. 한국에서 소란을 피운 관광객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에는 곧장 국적 혐오가 덧붙는다. 고통을 이해하기 전에 도움받을 자격을 검증하고, 한 사람의 행동을 집단 전체의 문제로 돌리는 태도. 구조를 향해야 할 질문은 개인의 자격과 도덕성을 향하고, 분노는 힘없는 이들에게 흘러간다. 사람들이 누가 더 가난하고 선량하며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동안 빈곤을 만든 구조와 권력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시아의 빈곤은 식민주의의 역사와 떼어놓기 어렵다. 그동안 힘과 폭거의 논리가 모든 작은 관계의 생태망을 어떤 방식으로 훼손시켜왔는가. 열강의 착취와 수탈이 원주민들을 밀어냈고 지금도 각국 곳곳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빈곤은 결코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역사와 경제, 정치와 권력의 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가부장 중심으로 굴러가던 가족의 정체성이 의심받기 시작하자 돌봄과 빈곤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성과 사랑의 순정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값싸게 부리던 여러 나라들은 뻔뻔하게도 그들을 위해 예산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제는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와도 맞물린다. 빈곤 당사자가 가족으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할 경우 국가는 당연히 돌봄의 의무를 다해야한다.

출처 : 노들야학 가빈
출처 : 노들야학 가빈

하지만 실상 국가가 보장해야 할 생존의 조건은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정부는 책임을 회피한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과 노인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져 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빈곤사회연대 등 장애운동과 빈민운동은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농성과 선전전 등을 통해 주거기준에서 부양의무제를 폐지시키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빈민대회 컨퍼런스에서 필리핀 아이비 주민조직가가 주장한 것처럼 노인과 빈민, 장애인이 그저 ‘취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의 투쟁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을 발견하고 현실화한 계기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존엄과 주체성을 훼손시킬 수 없다.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하고, 그 취약함 때문에 삶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제도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개인의 능력이나 가족의 책임에만 맡기지 않는 일. 각자도생이 생존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서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 이런 일들이 가능할 때때 비로소 전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홀로 강해져야만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해방은 사회적 해방의 결과로 찾아온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출처 : 노들야학 가빈
출처 : 노들야학 가빈

이튿날 빈곤철폐집회가 이어졌다. 동아시아 곳곳에서 모인 활동가와 빈민들, 한국의 많은 연대시민이 함께했다. 우리들은 서울의 한복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마천루 사이로 행진을 시작했다. 최현숙 선생이 카퍼레이드 위에서 탬버린을 흔들면서 노래를 부른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아, 좋다! 좋아! 호호호”

부와 성공,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빌딩 숲 아래에서 남루한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자신의 존재함을 외친다. 빈곤과 불평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매끈한 거리에서 초라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외친다.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하고 성장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누군가의 시혜의 대상이었던 몸뚱이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앞으로 생각해야 할 도시의 질문이자 관계의 가능성임을 증명하고 항변한다. 대도시가 만들어내는 위압감. 그 거대한 건물들이 상징하는 세계가 잠시 우리들로 인해서 흔들린다. 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에서 서로의 몸과 목소리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수평한 세계. 우리들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취약함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세계,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 내가 나이기 때문에 기쁨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웃으며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생존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에 다른 이야기가 피어난다. 이 도시의 삶이 허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진실이 드러났다.내가 감각할 수 있는 진실의 세계는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외치며 노래하고 웃는 사람들의 뜨거운 체온 속에 있었다.


글: 선경(책방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