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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신장위구르자치구라는 별자리를 이해하는 방법

서평 | 신장위구르자치구라는 별자리를 이해하는 방법

호세이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 구마쿠라 준의 『신장위구르자치구』 서평

2026년 10월 05일

한족과 종교적‧문화적 전통이 다른 소수민족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현지 소수민족과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중국공산당의 갈등이 끊이질 않는 곳. 201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설치된 대규모 강제수용소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서로 인권 침해니, 내정 간섭이니 하며 논쟁을 벌이는 지역.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당국의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운동의 도화선이 된 우루무치 화재 사태가 발생한 지역. 신장위구르자치구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실들이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령 신장위구르자치구 소식을 접할 때면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중국에 공식적으로만 55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왜 유독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이렇게 심한 갈등이 벌어지는 걸까?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의 소수민족을 상대로 유화책을 쓰지 않는 걸까, 아니면 유화책이 효과가 없는 걸까?

이런 질문을 마음 한구석에 품었던 사람으로서 구마쿠라 준 호세이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의 『신장위구르자치구 - 중국공산당 지배 70년』는 반가운 책이다. 중국과 소련의 민족정책을 연구해온 저자는 중국공산당이 신장에 진입한 1949년 이후의 현대사를 개괄함으로써 독자들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진행 중인 갈등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국어판(좌)과 원서 《新疆ウイグル 自治区》(우)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국어판(좌)과 원서 《新疆ウイグル 自治区》(우)

‘신장의 중국화’로 귀결된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청나라 시대에 와서야 중국에 편입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위구르족, 카자흐족, 몽골인, 키르기스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해왔는데, 이들 중에는 소련을 지지하는 무슬림이 많았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이 지역에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체제를 세우려고 했기에, 중국공산당과 현지 소수민족 사이에는 분명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신장위구르자치구’라는 이름부터가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의 결과물이다. 새로운 강역을 뜻하는 ‘신장(新疆)’은 정복자인 청나라의 관점에서 새롭게 획득한 영토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기에 현지 무슬림들은 이 명칭을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장이라는 명칭에 소수민족을 모욕하는 의미는 없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면서 ‘신장’이라는 명칭이 들어갔다.

반면 ‘위구르(維吾爾)’란 민족명이 들어간 것은 위구르족으로 당시 신장성 인민정부 부주석이던 세이프딘(سەپىدىن ئەزىزى)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본래 새로운 자치구의 명칭으로 ‘신장자치구’를 고려했지만, 신장에서 자치의 주체가 되는 ‘주체민족’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는 세이프딘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자치구(自治區)’도 논란 끝에 결정된 이름인데,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신장분국 통일전선부장이었던 뤼젠런(吕剑人)에 따르면 현지에서는 신장위구르스탄공화국 혹은 위구르자치구공화국이란 이름을 제안했다. 소련의 연방제를 중국에 도입해 신장을 공화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 현지 무슬림들 사이에서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뤼젠런은 당시 소련 상황과 현재 중국 상황이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신장의 친소련적 성향의 사람들이 원했던 공화국화 안건은 폐기되었고, 자치구라고 하는 중국적 개념이 신장 지역을 뒤덮었던 것”(65쪽)이라고 설명한다.

논란 끝에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통치체제는 “중국 내지의 한인(汉人) 정권이 신장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그 대신에 한인의 세력을 팽창시켜서 신장의 중국화를 시작하는”(69쪽) 방향으로 구축됐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신장생산건설병단이다. 생산건설병단은 평상시에는 농업 생산에 종사하다가 전시에는 국토 방위를 맡는 일종의 둔전병인데, 신장에서는 한인 이민의 첨병으로 작용했다. 신장생산건설병단 등의 내지 이민에 힘입어 1949년에 대략 29만 명이었던 신장의 한족 인구가 1962년에는 약 208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는 신장 인구의 30% 정도에 해당했다. 이렇게 중국공산당은 ‘신장의 중국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세이프딘, 시중쉰(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부르한. 이 사진을 촬영한 1952년 당시 각각 신장성 인민정부 부주석,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서북국 제2서기, 신장성 인민정부 주석이었다. 세이프딘은 1972년~1977년 동안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위원회 제1서기를 지내기도 했다.
왼쪽부터 세이프딘, 시중쉰(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의 아버지), 부르한. 이 사진을 촬영한 1952년 당시 각각 신장성 인민정부 부주석,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서북국 제2서기, 신장성 인민정부 주석이었다. 세이프딘은 1972년~1977년 동안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신장위구르자치구 당위원회 제1서기를 지내기도 했다.

반테러리즘 vs 경제발전의 결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소련 해체 등의 격동 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은 시기마다 변화했지만, ‘신장의 중국화’라는 큰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항의하는 위구르족의 저항이 잇따랐고,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중국공산당은 이를 테러로 규정하며 탄압했다.

물론 중국공산당이 탄압만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경제발전을 통해 현지 소수민족의 빈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민심을 얻으려는 시도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경부터 신장을 비롯해 쓰촨, 윈난, 간쑤 등 중국의 서부 일대에서 펼친 서부대개발이다. 서부대개발의 결과 석유 산업, 천연가스 산업 등의 투자가 늘면서 수치상으로 경제가 성장했고, TV와 라디오가 보급되는 등 생활수준이 일정하게 향상됐다. 하지만 연해의 한족과 현지의 소수민족 간에 격차와 차별이 엄연히 존재했기에 경제발전을 통해 현지 민심을 얻는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연해 지역으로 이익이 빨려 들어가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신장과 연해 지역의 격차, 다음에는 민족 간의 격차가 확대되고 고정화된 것 같다는 인상이 확산되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이든, 당 조직이든 지도자는 주로 중국 내지, 특히 연해 지역으로부터 온 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지 무슬림 노동자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사회의 요소에 배치된 한인 간부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는 감정을 강하게 가졌다. 한어(중국어)의 구사가 자연스럽지 못한 현지 무슬림에게는 실제로 사회적 상승의 길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174쪽)

현지 소수민족들의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불만을 낳았다. 특히 무슬림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산아제한에 대한 분노가 컸는데, 이는 1990년 바렌향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바렌향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특히 무슬림의 관점에서 보면, 뱃속의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신의 의지를 배신하고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이교도인 한인으로부터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이교도를 토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경건한 무슬림과 중국공산당 정권의 사이에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인식의 엇갈림이 발생하고 있었다.” (138쪽)

‘반테러 인민전쟁’의 정점,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중국공산당은 경제발전보다는 반테러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201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취임한 시진핑(習近平)은 ‘반테러 인민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신장 지역의 ‘폭력테러활동’을 엄중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자치구 공안청의 발표에 따르면, 단속 캠페인이 시작된 지 1개월도 안 돼 32명의 ‘테러 그룹’이 적발되고 380명의 용의자가 체포됐으며, 6명의 경찰이 순직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러한 반테러 인민전쟁의 정점이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다. 이곳은 이름과 달리 중국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일반 시민을 수용해 사상 개조를 하는 공간이다. 충성심을 판단하는 기준은 지극히 자의적이며, 사소한 이유로도 이곳에 수용될 수 있다. ‘카라카쉬 리스트(카라카쉬현에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교육훈련’의 참가자 리스트)’를 보면 수용 이유는 ‘산아제한법 위반,’ ‘턱수염’, ‘예배 장소 제공’, ‘종교 관련 동영상 다운로드’, ‘중동 방면으로 이동’, ‘해외 여권 신청’ 등이었다. 과거 이 시설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한 사이라굴 사우드바이(Сайрагүл Сауытбай)의 증언에 따르면, 시설의 하루는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먼저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19회 당대회의 결의와 중국의 관습 수업이 진행된다. 다음으로 오전 11시까지 2시간 동안 학습 내용이 몸에 붙어 있는가에 대한 체크가 진행되고, 성적이 부여된다. 성적이 계속 내려가는 사람은 선별되어 탈락된다. 그 이후 1시간은 ‘중국인이라는 것은 나의 자랑이다!’, ‘나는 시진핑을 경애한다!’와 같은 말을 전원이 함께 외친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 오후 2시부터 4시는 국가제창 이후에 당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기억한다. 오후 4시부터 6시는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자기를 비판한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 오후 8시부터 10시는 감방에 들어가서 자기를 비판한다. 오후 10시부터 12시는 고백서를 작성한다. 이러한 것들을 규정대로 하지 못하는 수용자에게는 처벌이 부여되고, 고문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230~231쪽)

2018년경부터 이곳의 실상이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는 중국을 넘어 국제적 논란의 대상이 됐다. 중국은 노동자를 강제수용한 적이 없고 자의로 입소한 노동자들이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는 식으로 선전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 센터를 일종의 강제수용소로 규정하며 대규모 인권 침해의 현장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국립지리정보국과 호주 전략정책연구소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랜드연구소가 작성한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 위치를 표시한 지도
미국 국립지리정보국과 호주 전략정책연구소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랜드연구소가 작성한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 위치를 표시한 지도

신장 정책은 제노사이드인가?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을 제노사이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이를 제노사이드로 보는 데 회의적이다. 가령 현지 무슬림에 대한 산아제한이 UN의 「집단살해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제노사이드 조약)」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산아제한이 한인에게 더 엄격하게 실행됐음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한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이른바 한 자녀 정책이 채택되었던 것에 비해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은 복수의 자녀 출산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259쪽)는 점을 감안할 때, 한족을 대상으로 한 산아제한은 제노사이드라고 하지 않으면서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산아제한만 제노사이드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이 집단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은 ‘민족의 말살’보다는 ‘민족의 개조’를 목표로 하기에 제노사이드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이라는 민족 전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시진핑은 위구르족 등의 말살을 주장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현지 무슬림을 중화민족의 일부로 포용하기 위해 계속 당원과 간부로 등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제노사이드라는 과거의 개념이 담지 못하는 어떤 문제가 중국공산당의 신장 정책에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을 면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발하거나 항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독립을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오로지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서 조국 중국을 찬미하고, 한인과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2등 시민으로 취급을 받더라도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그저 감사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정권 측은 선별된 현지 무슬림에게는 사회적 상승의 길을 열어준다. 여기에 달려드는 사람도 나온다. 거역할 수 없는 동화의 흐름에 휩쓸리듯이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_266쪽

내 의견을 짧게 말하자면, 저자의 견해에도 설득력이 있지만 관점에 따라 중국의 신장 정책을 충분히 제노사이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구르족이나 카자흐족이 중화민족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면, 그들을 강제로 중화민족으로 만드는 일이 위구르족이나 카자흐족이라는 소수민족을 ‘말살’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학살’ 없이도 ‘민족의 말살’은 가능하다. 저자 스스로도 이야기하듯 제노사이드의 종류 중에는 민족 문화의 말살을 의미하는 ‘문화적 제노사이드’도 있으며, 실제로 신장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중국어 교육 보급,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의 주조, 이슬람의 중국화 등이 실시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신장 정책을 제노사이드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할 수 있다.

신장 문제의 좋은 입문서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궁금증이 쌓였던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느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입문서다. 신장 지역의 역사를 다룬 책 자체가 흔치 않거니와, 그나마도 상당수가 연구자를 위한 책이거나 실크로드 이야기같은 과거의 신장을 다루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은 일반인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입문서는 드물다.

제임스 A. 밀워드 조지타운대학교 교수가 쓴 『신장의 역사』가 이 분야에서 좋은 책으로 꼽히지만, 지금은 절판돼 구하기 어렵고 내용도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100쪽을 채 못 읽고 덮은 기억이 있다. 신장의 고대와 중세를 다룬 앞부분에는 이름조차 낯선 다양한 나라와 민족이 많이 등장하는데, 무수한 고유명사의 숲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반면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공산당 지배 이전의 2천 년을 20쪽 정도로 간결하게만 다뤄서 문턱이 훨씬 낮고, 서술방식 자체도 일반인이 읽기 쉽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대체로 술술 읽힌다.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나니 신장에 대한 이전의 단편적인 지식들이 연결돼 큰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 비유하자면 서로 연관성 없이 제각기 존재하던 별들이 이어져 하나의 별자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령 신장위구르자치구라는 이름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신장이 전통적인 중국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신장의 중국화’라는 중국공산당의 방침이 어떻게 관철됐는지를 배웠고, 서부대개발 사례를 통해 중국공산당이 신장에서 추진한 경제발전이 왜 실패했으며 결국 해당 공동체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나아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신장에서 벌어지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탄압과,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아시아 민중에게 신장은 여전히 낯설고 생소한 지역이다. 사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저자 역시 일본어로 된 책 중에 신장 지역의 통사를 다룬 책이 거의 없다며 이 책이 “일본어 문헌으로는 전례가 없는 도전”(270쪽)이라고 표현한다. 뉴스로 보도되는 단편적 사실들과 연구자 외에는 선뜻 손댈 엄두가 안 나는 전문서 사이에는 넓은 공백이 존재한다. 그게 동아시아 민중에게 신장이 여전히 낯선 이유 중 하나일 텐데,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지금 신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기원과 맥락을 짚되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서술로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 뒤늦게나마 동아시아 민중에게 도착한 『신장위구르자치구』가 반가운 이유다.

글 : 김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