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입은 증언
7월 21일, 부산 벡스코 역 앞 흰색 대자보를 전신에 두른 시민들이 거리를 걸었다. 종이에는 일본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름과 강제노동의 증언이 한글과 영어로 인쇄돼 있었다. 시민들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입은 채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건물 주변을 행진했다. 행진 후 증언 낭독과 피해자 구술 영상 재생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의 노래와 연주가 거리로 흘러나왔다.
이 날의 ‘몸자보 행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등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시민 긴급행동’이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지 약 2년. 올해는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유산위원회를 개최하여, 이 날 벡스코 안에서는 사도광산 등재 이후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조치를 얼마나 이행했는지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 회의장 밖에서 시민들이 피해자의 이름과 증언을 직접 몸에 입고 거리에 나온 것이다.
몸자보라는 형식은 무엇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리고 그날 시민들이 전달하려 한 기억은 어디까지 닿았을까.

‘전체 역사’라는 약속
일본 정부는 2024년 7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했다. 근거는 17세기 에도시대의 비기계식 금·은 채굴 및 제련 기술과 이를 뒷받침한 생산 체계였다.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을 산업의 기계화가 확산되던 시기에 수작업 채굴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사례로 평가해 인정하고 등재했다(2024년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
문제는 사도광산의 역사가 에도시대에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1,519명 이상의 조선인이 사도광산에 동원되어 일했다(출처). 이들의 노동과 피해는 일본 측이 핵심 가치로 내세운 채굴 기술과는 다른 역사적 층위를 이루기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경험을 어떻게 설명하고 밝힐 것인지가 등재를 둘러싼 핵심 쟁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관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다. 이코모스는 유네스코 내부의 부서가 아니라, 세계유산협약에서 정한 자문 역할을 맡는 별도의 국제 비정부기구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등재 신청을 평가하고 보존 상태를 검토하는 전문 평가를 담당하지만, 최종 등재 결정권은 세계유산위원회에 있다. 2024년 7월 평가에서 이코모스는 사도광산의 등재 신청을 일본에 돌려보내 보완하도록 권고했다. 경계 조정, 완충구역 확대, 상업채굴 재개 방지를 위한 명시적인 약속을 요구하고, 별도의 추가 권고에는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를 포괄하는 해석·전시 전략을 마련할 필요도 지적했다(기사). 한국 정부가 요구해 온 ‘강제동원 역사에 대한 현장 전시 반영’과 맞닿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코모스의 등재 보류 권고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2024년 사도광산을 등재했다. 대신 일본 대표가 전체 역사 설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점을 결정문에 언급하고, 일본이 후속 이행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전문 자문기구가 보완을 권고했음에도 최종 결정권을 가진 위원회는 등재를 결정했고, 사후 이행 여부를 재심의하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 같은 약속을 근거로 등재에 동의했다고 밝혔다(외교부).
등재 과정에서 한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1개 당사국 대표로 구성되고, 일반적으로 합의를 도출하려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는데, 규정상 출석·투표한 위원 중 3분의 2 다수결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반대했다면 표결이 진행될 수 있었지만, 한국의 반대로 등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세계유산위원회 의사규칙 제37조). 이번 몸자보 행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사도광산 등재를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 대일외교”가 낳은 결과로 규정했다.
한국 정부의 선택을 평가할 때, 동의의 옳고 그름만을 따져볼 것은 아니다. 당시 외교부가 일본 측으로부터 확보한 조치의 실효성과, 외교부가 그 실효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또, 당사국의 약속을 근거로 유산을 등재하는 현 제도에서, 약속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을 때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가도 논의해봐야 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세계유산위원회가 2026년 7월 부산에서 열린 것이다. 위원회는 일본이 보존 관리와 방문객 관리 등 여러 권고를 이행하면서 진전을 보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에 걸친 역사를 현장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해석·전시 전략’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제 일본은 2027년 12월 1일까지 후속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와 국제기구에 물어야 할 책임이 생긴다. 세계유산제도는 국가가 장소를 추천하고, 전문단이 그 가치를 평가하면, 국가 대표들이 최종적으로 등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 과정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의 범위와 핵심 서사가 만들어진다. 세계유산 등재가 관광과 지역 브랜드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제도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살펴볼 때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인데, 다만 사도광산 사례에서 직접 논의해야 할 것은 상업화 의도가 역사를 지웠다는 논점이 아니라, 에도시대의 기술을 중심으로 인정된 유산의 가치와 그 이후 시기의 노동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분리되어 다뤄졌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가 약속한 내용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그 약속을 근거로 등재를 결정한 제도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 2026년 위원회 결정문에서 확인되는 대응은 등재 취소나 별도의 제재가 아니라 추가 설명, 당사국 간 협의, 후속 보고의 요구 정도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이행을 점검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실제 전시와 역사 서술의 변화를 확실하게 이끌어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량은 별개 공백으로 남아있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공식 언어다. 위원회는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하긴 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 전체 역사라는 표현은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할 공식적 통로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피해 경험을 직접 지칭하지 않는 일반적 언어이기도 하다. 바로 이 일반적인 언어와 구체적인 역사 경험 사이를 메우기 위해, 시민들의 몸자보 행진은 피해자의 증언과 이름을 공공장소에서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우리에게 국제기구가 과거를 보존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그 과거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실제로 기억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프레임
왜 피켓이나 대자보를 들고 가는 대신 몸에 입는 방식을 택했을까. 몸자보라는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앞선 기억 실천과의 연결이 있었다.
기획에 참여한 김현지 씨는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희자 씨가 과거 일본에서 몸자보를 입고 강제동원과 야스쿠니 신사 무단합사 문제를 알렸던 활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희자 씨는 일본 학생에게 천 위에 자신의 말을 적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천을 몸에 걸친 채 일본 시민들에게 피해자의 경험을 알렸다. 이번 행동은 과거와 오늘의 기억 실천을 잇는 동시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행인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였다.
김현지 씨는 이번 행동이 유네스코 관계자나 세계유산위원회 참가자들에게 항의하는 데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빼앗을 수 있도록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더 폭넓게 일반 시민들에게 노출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설명은 몸자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몸자보는 피해자의 증언을 단순히 크게 인쇄해 가독성 좋게 전시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피해자들의 이름과 증언을 입고 이동했다. 장소에 고정되거나 보관된 전시물이 아닌 몸에 실려 공공장소를 통과하며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마다 읽힐 수 있는 형태가 됐다. 이를 필자는 강제노동의 육체성을 상징하는 메타포로 해석하였으나, 기획자의 설명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피해자의 말이 더 많은 사람과 마주칠 수 있도록 전달 방식을 바꾸려는 의도다. 이 점에서 몸자보는 세계유산 제도에 대한 항의 도구인 동시에 기억을 전달하는 하나의 매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자보에 새겨진 내용과 그 형식은 기억을 보존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기억을 누가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한편 이 행동을 전달한 언론의 언어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한국일보는 이를 피해자의 목소리를 세계유산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알리려는 “항의 집회”로 소개했고, 연합뉴스는 “대자보 시위”라는 표현으로 보도했다. 다른 매체 역시 “평화 시위” 등의 언어를 사용했다(한국일보, 연합뉴스, 경인글로벌뉴스 보도). 이 설명은 행동의 정치적 맥락을 보여주지만, 기획자가 강조한 또 하나의 목표, 즉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을 끌고 피해자의 증언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려는 시도까지 충분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공중이 있다. 하나는 일본 정부의 약속 이행을 점검하고 개선을 요구받는 국제기구와 관련 당사국들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마주칠 수도 있는 거리의 시민들이다. 몸자보 행동은 이 둘을 향한 목소리를 함께 품고 있었지만, 언론의 보도는 주로 전자를 향한 항의라는 측면을 부각한다.
이 차이를 생각하면서, 시민행동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실현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주최 측의 기록에는 유네스코 관계자와 행인들이 걸음을 멈췄고, 한 시민이 배포된 자료를 살펴보며 지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민문연). 이는 현장에서 실제 반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는 사실만으로 이 행동이 얼마나 넓은 공중에게 도달했는지, 혹은 사람들의 역사 인식에 실질적 자극을 주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몸자보 행동이 공식적인 국가/세계 유산 서사를 대체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한계를 언급하는 것은 시민행동의 의의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기억의 전달자로 전면 등장할 때, 기억 실천의 효과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성찰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행동이 무엇을 의도했고, 누구에게 닿았으며, 어떤 반응을 이끌어냈는지 물어야 한다. 행동의 정치적 의미와 그 효과를 평가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앞으로 무엇을 가능케 할까? 몸자보를 입은 시민들이 하루 동안 거리에서 증언을 전달하는 것으로 기억 실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증언이 다른 장소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어떤 질문을 낳는지, 이후의 기록과 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행사 당일의 사진과 영상, 참가자들의 경험, 행인들의 반응, 이후의 공유와 확산을 기록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러한 기록과 평가의 책임을 현장 참가자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시민단체와 매체, 기억을 다루는 단체들 역시 그 실천이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 추적해 기록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 제도에도 같은 질문을 돌려야 한다. 세계유산의 ‘전체 역사’는 추상적인 약속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그 약속은 어떤 구체적인 전시와 설명으로 실현되고 있는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세계유산위원회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당사국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인류의 유산이라는 말이 힘을 가지려면 그 장소를 구성한 사람들의 경험을 다각도로 설명하고, 폭력과 피해 경험을 주변화한 서술을 바로잡을 책임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가는 현재 공백으로 남아있다.
한국 정부 역시 등재에 동의할 당시 확보했다고 밝힌 조치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시민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몸에 입고 거리로 나선 일도 그 책임을 대신 완수한 사건이라기보다, 그 책임을 다시 묻는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
시민들의 기억 실천 역시 증언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기억이 누구에게 닿았으며 무엇을 가능하게 했는지 기록하고 이어갈 필요가 있다. 개인의 기억을 몸에 입는다는 것은 그 기억을 공적 언어로 옮기는 시작이다. 이후 그것이 누구에게 닿고, 그 접촉이 무엇을 바꾸며, 누가 그 변화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지 묻는 데에서 공적 기억의 형성이 시작될 것이다.

글 : 양정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