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후원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는 회원들의 활동과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플랫폼C가 계속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활동회원 또는 후원회원으로 함께해 주세요!
국립국어원을 향해 함께 피켓 든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국립국어원을 향해 함께 피켓 든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2026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대회에 다녀와서

2026년 11월 04일

성소수자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존재와 관계를 부정당하고,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배제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코로나19 유행 당시 한 게이클럽에서의 집단 감염이 아웃팅과 전국적인 대규모 혐오와 차별로 불거진 바 있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안전을 걱정해야 하고, 차별을 겪더라도 원치 않는 커밍아웃을 피하기 위해 피해를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농인성소수자는 농인으로서의 혐오·차별과 성소수자로서의 혐오·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 둘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며, 언제나 교차되어 나타난다. 한국수어로 된 정보 접근의 장벽 속에서 농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습득하기 어렵고, 왜곡과 편견은 혐오와 차별로 이어진다. 농인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긍심을 갖기 어려워지고,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며 위축된다. 청인 성소수자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더라도 음성언어 중심의 문화 속에서 농인성소수자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게다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살아가는 농인성소수자는 또다시 교차하는 정체성 속의 소수자가 된다. 이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적 탄압과 법·제도적 차별까지 마주한다. 대만에서 게이 BDSM 바를 표적 삼아 경찰이 급습한 것이 고작 10월 초의 일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동성 간 성행위가 불법이다. 아시아에서 혼인평등이 실현된 국가는 대만·네팔·태국 세 곳뿐이다. 농인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의 교차에, 이들이 살아가는 지역의 정치적·사회적 조건까지 겹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간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데에 청인과 달리 특별히 고려할 부분이 있다. 바로 대면 소통의 중요성이다. 수어라는 시각언어의 특성상, 만나서 대화할 때 더 깊은 교류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농사회에는 ‘롱 굿바이(long goodbye)’라는 농문화가 있는데, 말 그대로 작별의 인사가 끝나지 않고 길어지는 바람에 실제로 헤어지기까지는 한참 걸린다는 뜻이다. 수어로 소통할 수 있는 농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반가움을 보여주는 한편, 그만큼 농문화에서 대면 소통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농인LGBT+를 갓 결성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다름 아닌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이었다. 전국적으로도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데에도 큰 제약이 뒤따랐다. 격년 주기로 열리던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대회도 2018년을 끝으로 더이상 열리지 못했고, 그 사이에도 온라인으로 여러 단체들과 소통을 이어왔지만, 깊은 교류를 나누기에는 어려웠다. 8년만에 태국에서 다시 열리는 2026 아시아·태평양 농인성소수자 대회가 농인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로서 중요했던 이유이다.

그렇게 한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태평양 8개국과 미국,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3개국까지. 총 42명의 농인성소수자가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태국 방콕에서 모였다. 한국을 대표해서는 애란·지양·해인 세 명의 한국농인LGBT+ 활동가가 참여하여 발표와 교류를 이어나갔다.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한국 | 국립국어원에 저항하는 언어투쟁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간 이야기는 국립국어원에 맞선 언어투쟁이었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사전』에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특정 성행위로 표현하는 혐오수어가 등재되어 있었다. 농인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려 해도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부터 마주해야 했다. 게다가 대명사와 친족어, 수어이름에는 성별이분법이 담겨 있고, 여성을 피해자로 고정하는 표현도 있다. 농인성소수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 안에서부터 혐오와 차별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농인성소수자 당사자가 참여하는 성소수자 대안수어를 개발해 왔다. 2021년에는 인권단체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농사회 구성원과 농인 수어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쳤다. 2023년 실태조사에서는 대안수어가 농인성소수자에게 자긍심과 안전, 존중을 느끼게 하고, 혐오에 대항할 언어가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자신을 긍정할 말이 생기고, 누군가 그 말을 사용할 때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이 왜 잘못되었는지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달랐다. 2022년 9월 혐오수어 삭제와 대안수어 등재를 요청했지만, 이듬해 4월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은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농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2025년 2월 새로 개통한 『한국수어누리사전』에는 성소수자 수어가 빠져 있었다. 이후 국립국어원은 2026년에 차별적 수어를 연구하고 자문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2027년에 성소수자 수어를 등재하겠다고 했지만, 약속한 해가 되어도 우리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우리는 대안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며 국립국어원에 답변을 요구했다. 2025년 성소수자 수어 챌린지에는 139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2026년에는 개인 1,073명과 단체 57곳의 연서명을 모아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피켓을 들고 국립국어원을 태그하는 챌린지도 이어갔다. 퀴어퍼레이드에서는 대안수어로 불리던 농인성소수자가 뉴스를 볼 때에는 다시 혐오수어를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사전과 언론, 수어통역 현장에서 당사자가 사용하는 표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요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발표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 해외의 대안수어 등재 사례도 소개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농인성소수자가 개발에 참여한 수어 16가지를 사전에 수록했다. 일본의 『표준수어 확정의 원칙』에는 성소수자 관련 용어처럼 특정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은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가능한 한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널리 쓰인다는 이유로 혐오수어를 유지하는 동안, 그 표현으로 비하당하는 사람들의 말은 왜 반영하지 않는가. 우리는 국립국어원이 외면해 온 당사자의 경험과 요구를 이야기했다.

발표 말미에는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퀴어·앨라이의 대안수어를 소개했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한 농인성소수자들과 다 같이 국립국어원에 대안수어 등재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 다른 수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농인성소수자들이 한국의 국가기관을 향해 같은 요구를 전한 것이다.

우리는 각국의 활동을 들으며, 그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수어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물었다.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수어는 없는지, 농인성소수자들은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 표현은 사전에도 실려 있는지. 각국 활동가들과 국제수화로 대화하며, 발표에서 들었던 공동체와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언어의 문제와 함께 살펴보았다.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말레이시아 | MADEO를 소개합니다

말레이시아의 MADEO는 농인성소수자 공동체를 만든 지 3년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발표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준비했지만, 행사 당일 경찰이 찾아와 참가자들을 연행해 간 경험을 전했다. 정부가 허가한 행사에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사회에서 농인성소수자들이 모임을 만들고 서로 만나는 일에는 이러한 탄압까지 뒤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활동가는 이번 대회에 오기 전까지 자국의 수어에 성소수자 혐오표현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호모’를 가리키는 수어에 항문성교의 의미가 담긴 것에도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농인성소수자들이 유사한 표현을 혐오수어로 지적하는 이야기를 접하며, 자신들이 사용해 온 수어 역시 성소수자의 존재를 특정 성행위로 축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수어에서 겪어 온 문제를 이야기하자, 다른 나라의 활동가도 자신에게 익숙했던 표현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필리핀 | 우리의 여정, 우리의 투쟁, 우리의 자긍심

필리핀의 피노이 데프 레인보우는 농인성소수자들이 의사소통의 장벽과 성소수자 차별을 겪으며 공동체를 만들어 온 이야기를 전했다. 성소수자 권리에 관한 정보는 수어로 접하기 어려웠고, 농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부족했다. 자신이 안전하게 속할 공동체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데프 핑크 클럽(Deaf Pink Club)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단체는 현재 전국 단위로 공동체 활동과 교육, 연대, 리더십 및 역량강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농인성소수자들이 모여 자신의 권리와 자긍심을 이야기하는 필리핀에서도, 자신을 가리키는 언어에 담긴 혐오를 마주하고 있었다. 활동가는 게이를 성행위로 표현하거나 여성적인 젠더 표현을 조롱하는 수어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바클라(bakla)’와 ‘게이’를 가리키는 수어를 알려주었다. 농인성소수자가 자신을 긍정하고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말을 사용할 것인지, 한국에서 이어온 고민과 닮아 있었다.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태국 | 평등권에서 접근권으로

혼인평등이 실현된 태국에서는 농인성소수자가 그 권리를 실제로 누리기 위한 접근권을 다뤘다. 발표자는 태국 국적의 트랜스젠더에게 호르몬 주사와 의료비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다만 지원을 받으려면 태국인이거나 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같은 사회에 살아가더라도 국적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지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발표에서는 성건강 관련 수어도 함께 다뤘다. 농인성소수자가 자신의 몸과 건강에 관해 설명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려면, 관련 정보와 대화가 수어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리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어 자체에도 차별이 남아 있었다. 활동가는 숫자 ‘2’를 사용하는 기존의 트랜스젠더 수어에 당사자를 ‘2등 시민’으로 보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대신하는 대안수어를 소개했다. 법과 제도에서 평등을 말하더라도, 트랜스젠더를 가리키는 수어가 여전히 ‘2등 시민’이라는 뜻이라면 당사자는 정보를 접하는 동안에도 비하를 겪게 된다. 태국의 농인성소수자들은 권리를 누리기 위한 접근권과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었다.

홍콩 | 게이·레즈비언 혐오수어와 대안수어

홍콩의 활동가도 게이와 레즈비언을 비하하는 수어와 이를 대신해 사용하는 대안수어를 차례로 소개했다. 한국에서 게이·레즈비언 혐오수어를 문제 삼고 대안수어를 사용해 온 것처럼, 홍콩에서도 대안수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수어를 쓰지만,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을 마주하고 이를 바꾸려는 농인성소수자들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떤 표현이 익숙하게 쓰인다고 해서 그 안의 혐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레이시아 활동가의 경험처럼,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접하고서야 익숙한 표현의 문제를 알아차리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 국제수화로 촬영한 인터뷰 영상은 내용을 정리해 곧 한국농인LGBT+ SNS에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의 농인성소수자들도 각국 활동가들이 직접 설명하는 혐오수어와 대안수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출처: 한국농인LGBT+ 인스타그램 계정 @deaflgbtkr

한국농인LGBT+가 이어갈 과제

한편 대회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참가 방식의 차이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활동가와 회원들이 함께 왔지만, 한국에서는 활동가 세 명이 참석했다. 다음 대회에 더 많은 한국의 농인성소수자가 함께하려면, 그때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서로 만나 어떤 모임을 하고 싶은지,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한국농인LGBT+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당사자 활동가들이 이끌어 온 운동을 더 많은 농인성소수자가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활동을 제안하는 자리로 넓혀가야 한다.

언어투쟁에서도 게이와 레즈비언의 혐오수어와 함께 살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대명사와 친족어, 수어이름에서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누는 방식은 논바이너리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성을 피해자로 고정하는 표현은 성별에 관한 편견을 되풀이한다. 결혼과 가족을 이성애 관계로만 표현할 때에는 그 밖의 관계들이 지워진다. 농인성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려면, 기존의 수어가 누구의 삶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이미 개발한 대안수어를 알리면서,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관계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말을 당사자들과 계속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농인성소수자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대안수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곧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사자가 정체성을 밝히기 전에도 존중하는 표현을 접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 현장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청인 성소수자 공동체에서도 통역을 마련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 통역이 어떤 표현으로 농인성소수자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수어로 정보를 접하면서도 혐오와 차별을 겪어야 한다면 농인성소수자는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국제교류도 대회가 끝난 뒤에 이어져야 한다. 이번에 만난 활동가들과 각국의 소식을 나누고, 혐오수어에 대응해 온 경험과 대안수어를 알리는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활동도 전하고, 다른 나라의 동료들이 연대를 요청할 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국어원에 같은 요구를 전하며 함께 피켓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후에도 서로의 투쟁에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대회는 2년 뒤인 2028년, 필리핀에서 개최된다. 그사이 더 많은 농인성소수자가 한국농인LGBT+를 통해 서로 만나고, 자신의 삶과 언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농인으로서도 성소수자로서도 뒷전으로 밀려났던 경험을 나누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함께 정하며, 다음에는 더 많은 이들이 그 이야기를 가지고 대회에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애란·지양·해인 (한국농인LGB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