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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좌파당 승리가 보여준 것 | 극우를 저지할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베를린 좌파당 승리가 보여준 것 | 극우를 저지할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청년·여성·이주민의 지지와 주거 문제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 대안이 어떻게 극우에 맞서는 힘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2026년 10월 15일

“처음에 우리는 맨해튼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는 베를린을 차지할 것이다(First we take Manhattan, then we take Berlin).”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노래 ‘First We Take Manhattan’에 나오는 가사가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뉴욕에 이어 베를린에서도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급진좌파 정치세력이 시장이 될 기회를 맞았다. 미국과 유럽, 세계의 중심지에서 급진좌파가 주도적인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1981년생 변호사 출신 여성 엘리프 에랄프(Elif Eralp)가 시장 후보로 나선 좌파당(Die Linke)은 이번 선거에서 25.7% 득표해 전체 153석 가운데 45석을 차지했다. 2023년 선거의 12.2%에서 지지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며 처음으로 베를린 제1당이 됐다.

튀르키예 이민자 2세 여성 베를린 시장

선거가 끝나고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서는 좌파당의 승리를 축하하는 레이브 파티가 열렸다. 크로이츠베르크는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문화적 다양성으로 유명한 이른바 힙스터 지역으로, 오랫동안 녹색당의 지지 기반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이 압승했다. 이 파티에서는 쿠르드족 출신 DJ가 튀르키예 팝음악을 일렉트로 비트로 변주해 틀고 엘리프 에랄프는 동료들과 함께 쿠르드 지역에서도 널리 추는 원형 춤 할라이(Halay)를 췄다. 넥타이를 맨 백인 중년 남성들이 연설하는 풍경이 아니라, 이민자, 퀴어 등 소수자들의 다양성이 어우러진 이 파티는 지금 베를린에서 좌파당이 보여주려는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독일 좌파당 시장후보 엘리프 에랄프
독일 좌파당 시장후보 엘리프 에랄프

뉴욕의 맘다니와 마찬가지로, 에랄프 역시 이민자 배경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녀의 부모는 튀르키예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1980년 군사쿠데타 이후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독일로 이주했다. 특히 터키에서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군부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에랄프를 임신한 상태로 만삭이어서 석방될 수 있었다. 독일에서 튀르키예계는 가장 규모가 큰 이주 배경 집단 가운데 하나이며,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되너 케밥 역시 튀르키예 이민자들이 베를린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베를린 주민 중 약 42퍼센트가 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인구비중에 비해, 그들의 목소리는 독일 주류 사회에서 대변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이민자 2세대 출신이면서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다양성을 지지하는 시장 후보의 출마는 튀르키예 출신뿐만 아니라 베를린 이민자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특히 무슬림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로 나타나, 한 출구조사에서는 베를린의 무슬림 투표자들 중 무려 51%가 좌파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노이쾰른 제2 선거구 지역에서 좌파당은 53%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한(AfD)의 거센 반이민·인종주의 선동이 독일 전역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이민자 무슬림 유권자 상당수가 좌파당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틱톡여왕’

그 외에도 좌파당은 다양한 그룹에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특히 청년들의 지지가 두드러진다. 이번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16세-24세 투표자의 43퍼센트가 좌파당에 투표했다. 이는 다른 당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지지율이다. 베를린은 이번 선거부터 선거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췄는데, 그 최대 수혜자는 좌파당이었다. 2021년 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베를린 U18 모의선거에서는 녹색당이 25.1%로 1위를 차지하고 좌파당은 11.8%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처음 실제 투표권을 행사한 16·17세를 포함한 16~24세 투표자 가운데 43%가 좌파당을 선택했고, 녹색당 지지는 11%에 머물렀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선호가 불과 몇 년 사이 크게 이동한 것이다.

좌파당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현재 약 73만명에 달한다. 독일 정당들 중 압도적 1위다. 이는 지금 좌파당이 청년세대 사이에서 얻고 있는 인기를 증명한다. 이러한 인기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는 1988년생 연방의원 하이디 라이히넥(Heidi Reichinnek)을 꼽을 수 있다. ‘틱톡 여왕(TikTok Queen)’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그녀는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라이히넥의 왼팔에는 그의 정치적 이력과 신념을 담은 타투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그는 이 팔을 스스로 ‘정치적 팔(politischer Arm)’이라고 부른다. 상완에는 고대 이집트의 왕비 네페르티티가 방독면을 쓴 모습이 새겨져 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카이로에 머물며 아랍의 봄 초기 봉기를 직접 경험했던 라이히넥에게 이 문양은 권리를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상징한다.

'틱톡 여왕'으로 불리는 좌파당의 하이디 라이히넥
'틱톡 여왕'으로 불리는 좌파당의 하이디 라이히넥

아래팔에는 그의 정치적 롤모델인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Ich war, ich bin, ich werde sein”, 즉 “나는 있었고, 나는 있으며, 나는 다시 존재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1919년 룩셈부르크가 마지막으로 쓴 글에 등장하는 “혁명은 ‘나는 있었고, 나는 있으며, 나는 다시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라이히넥은 룩셈부르크가 정치는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 인물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롤모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몸에 새긴 채 의회에서 거침없이 연설하는 라이히넥의 모습은 기존 독일 정치인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의회에서 젠더, 기후, 주거비 고통, 물가 상승 등을 주제로 날카롭고 열정적으로 연설했으며, 특히 AfD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며 비타협적 반파시즘의 선두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라이히넥의 틱톡 팔로워는 75만 명이 넘고, 게시된 영상은 평균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일부 영상은 600만~700만 회 이상 조회되기도 했다.

실제 투표에서도 좌파당의 지지는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번 선거에서 25세 이하 여성 중 51%가 좌파당에 투표했다. 물론 25세 이하 남성 중에서도 좌파당이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하긴 했지만, 그 수치는 34% 정도다. 젊은 여성들의 폭발적 지지는 좌파당이 젠더, 기후 등의 의제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였음을 증명한다.

또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은 기존 비투표층을 유입하는 데 성공했다. 직전 선거인 2023년 선거와 비교해, 기존에 투표하지 않았던 유권자들 중 무려 7만 5천 명이 이번 선거에서는 좌파당에 투표했다. 정당들 중 좌파당에 표를 가장 많이 뺏긴 곳은 녹색당으로, 녹색당 유권자 중에서는 5만 7천 명이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을 지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기성 정치에 불만을 품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수의 시민들이 좌파당을 대안으로 생각하게 되어 투표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좌파당은 점차 AfD 지지로 돌아서고 있었던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과 빈민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자신의 재정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한 유권자들 중 가장 많은 수치인 32%가 좌파당에 투표했다.

노동자 계급에서 AfD가 30%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좌파당도 26% 안팎을 얻어 크게 뒤지지 않았다. 노동자들 중 AfD의 지지율이 더 높았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그들의 환멸감을 반영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AfD에 투표한 유권자들 중 42%는 그들이 기존의 정치구도에 실망해서 AfD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반면 좌파당은 희망을 반영했다. 좌파당에 투표한 유권자들 중 69%가 좌파당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투표했다고 밝혔다. 기성 정치에 실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좌파당에 투표했다고 밝힌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AfD는 절망과 환멸을, 좌파당은 희망과 확신을 반영했다. 이것은 대중이 느끼는 소외감과 절망을 희망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 급진좌파 정치세력의 과제임을 보여준다.

주택 사회화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의 가장 대표적인 공약은 주거 문제 해결이었다. 좌파당은 베를린에서 3,000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대형 민간 부동산 기업의 주택보유분 약 22만 채를 사회화해, 공공적·비영리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9월 실시된 베를린 주민투표 결과를 즉각 이행하겠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이 주민투표에서 투표자의 57.6%가 대형 민간 주택 기업을 사회화 하는 방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SPD-이하 사민당)의 베를린 시장 후보였던 프란치스카 기파이는 주택기업 사회화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선거 뒤 사민당이 이끄는 주정부는 주민투표 결과를 곧바로 법제화하지 않고 전문가위원회 검토로 넘겼으며, 결국 주택 사회화는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연과 미이행에 대한 불만도 이번 선거에서 사민당이 지지를 잃은 배경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좌파당은 주민투표 결과의 즉각적인 이행을 가장 강하게 요구해 온 정당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이 주거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높은 주거비로 인해 고통받던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 유권자의 37%가 ‘어느 정당이 지불 가능한 주거(bezahlbarer Wohnraum)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좌파당을 꼽아 다른 정당을 크게 앞섰다.

현재 기독민주연합(CDU-이하 기민련)이 이끄는 메르츠 총리의 연방 정부는 사유재산에 대한 사회화, 국유화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막을 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기민련과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올여름, 이미 다가올 미래를 예상하고 부동산 기업 사회화를 막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러한 연방 정부와 주류 정치세력의 압박 속에서도 과연 좌파당이 주택 기업 사회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택 사회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2021년에 주민투표를 관철시켰던 힘, 즉 아래로부터의 지지와 동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9월 주택 국유화 정책을 둘러싼 주민 총투표 직전 열린 주택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 2만 명이 베를린 시내에서 행진했다.
2021년 9월 주택 국유화 정책을 둘러싼 주민 총투표 직전 열린 주택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 2만 명이 베를린 시내에서 행진했다.

반유대주의

독일은 히틀러 파시즘과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 때문에 독일 정치에서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국가적 책임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고,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둘러싼 논쟁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민감하게 전개돼 왔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문화적, 정치적 분위기도 깊게 형성되어 있다. 이런 맥락으로 독일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의 구호와 표현을 둘러싼 법적 논쟁도 빈번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비판(예컨대 학살자, 흡혈귀, 살인마 등의 표현 등)은 일종의 혐오발언 금지법인 민중선동죄(Volksverhetzung)에 저촉되어 처벌받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급진좌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독일의 학생운동가들이 무지개 뱃지와 이스라엘 국기 뱃지를 나란히 달고 다니는 것은 흔하게 목격되는 풍경이다.

좌파당 역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있은 직후 SNS 게시물에 이스라엘 국기를 달고 ‘이스라엘과 연대합니다”(Stand with Israel)라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이 지속되면서 좌파당 내에서는 격렬한 노선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좌파당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결단을 실행에 옮긴다. 2026년 6월 포츠담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좌파당은 독일 주요 정당 중 역사상 최초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군사 행동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독일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다.

이것이 지금까지 좌파당을 ‘반유대주의’ 세력으로 공격하는 독일 주류 사회의 근거가 되고 있다. 독일 유대인 중앙위원회 역시 좌파당을 ‘유대인들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정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선거 직후에는 좌파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유대주의적 선을 넘었다고 주장하며, 사민당과 녹색당에 좌파당과의 연정을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선거 이후 좌파당은 녹색당과 사민당에 이른바 적-적-녹(Linke-SPD-Grüne) 연정을 제안했고, 세 당은 현재 실제 정부 구성을 위한 탐색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반유대주의 문제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좌파당에 이스라엘의 존재권 인정, 반유대주의 대응, BDS 운동에 대한 거리두기 등을 포함한 공동 합의를 요구했고, 좌파당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10월 중순 좌파당 원내교섭단체가 별도의 반유대주의 대응 문서를 채택하고,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으로 논란이 된 바네사 엠데 의원을 원내교섭단체에 받아들이면서 사민당과 녹색당이 합의 이행 여부에 문제를 제기해 탐색협상을 한때 중단했다. 좌파당은 기존의 공동 합의를 여전히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세 당은 다시 협의를 거쳐 공동 합의문을 향후 연정협약에 그대로 포함하기로 하면서 10월 15일부터 협상을 재개했다.

이 과정은 좌파당이 정부 참여를 위해 반유대주의 문제에서 사민당·녹색당과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지, 동시에 팔레스타인 연대와 이스라엘 비판을 둘러싼 당내 다양한 입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둘러싼 긴장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민련의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연방 정부 역시 매일 같이 좌파당의 반유대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좌파당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면서, 연방 정부의 연정 파트너이기도 한 사민당에게 좌파당과의 연정을 거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방 교육부 장관 카린 프리엔(기민련 소속)은 에랄프가 시장이 되면 “베를린의 유대인들이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좌파당이 AfD와 마찬가지로 과격한 정당이라면서 똑같이 위험한 당이라고도 말했다. 기민련과 동맹 관계인 기독사회연합(CSU)의 클라우스 홀레체크 원내대표는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혐오를 강령으로 가진 베를린 시정부가 출현할 경우, 다른 주에서 지급하는 재정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방 정부와 기민련의 공격은 물론 베를린에서 자신들이 시장직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를 깔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저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이 좌파당이 노이쾰른 등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기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기민련의 좌파당 공격은 좌파당이 대변하는 무슬림과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함께하는 좌파당, 사진: 좌파당 노이쾰른 지부(DIE LINKE Neukölln)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함께하는 좌파당, 사진: 좌파당 노이쾰른 지부(DIE LINKE Neukölln)

다행히도 유대인 사회에서도 좌파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거 후 150명의 베를린 유대인들이 ‘좌파당은 반유대주의 정당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적적녹 연정을 구성하라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들은 반유대주의는 오히려 극우세력에 의해 확산되고 있으며, 현재 좌파당이 반유대주의라고 공격받는 것은 이 용어를 정치적 반대파를 낙인찍기 위한 무기로 만드는 “냉소적인 정치적 도구화”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용기 있는 공개서한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의 뿌리 깊은 친이스라엘 정서 때문에 좌파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다.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비판이 결코 같지 않으며, 오히려 반유대주의와 같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는 극우와 우익 세력에 의해 강화되고 있음을 좌파당이 현명하게 증명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여전히 ‘강력한’ 극우

우리는 오늘날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권력을 양분했던 두 거대정당 – 기민련과 사민당 – 의 몰락을 보고 있다. 두 정당이 이번 베를린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합쳐서 약 31%에 그쳤다. (기민련 18.8%, 사민당 12.1%)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은 극우 AfD와 좌파당이다. 극우와 급진 좌파의 양 날개가 기성 좌우 세력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AfD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베를린 선거 직전에 선거가 있었던 작센-안할트 주와, 베를린과 같은 날 선거를 치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둘 모두 구동독 지역)에서는 모두 AfD가 원내 제1당을 차지했으며, 10월 여론조사에서도 전국적으로 AfD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작센-안할트 주의 경우 모든 당이 AfD와의 연정을 거부한 상태에서 AfD는 단독으로 소수 정부를 꾸리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자라 바겐크네히트 연합(BSW)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AfD는 선거 전부터 계속해서 BSW에게 연정을 권하는 추파를 던져 왔다. 그리고 BSW는 연정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10월 6일 AfD의 주정부 총리직 취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문제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원래 좌파당의 간판 정치인이자 원내대표를 지낸 인물이었다. 그런데 좌파당이 지지율 위기에 처하고, 바겐크네히트와 그녀의 동료들이 좌파당 지도부와 견해 차이를 보이면서 2023년 10월 탈당을 선언하고 2024년 1월 BSW를 공식 창당했다. 이들의 가장 큰 탈당 이유는 난민, 이주 문제였다. 바겐크네히트는 노동계급 유권자가 AfD를 지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좌파당 역시 난민과 이주민을 제한하라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으나, 좌파당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 그녀와 BSW 세력은 사실상 AfD와 같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BSW는 AfD의 주정부 구성에 찬성표를 던지며 극우와 일정부분 공감이 있다는 점을 표한 것이다. 좌파 세력이 극우의 집권을 묵인, 방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지지하는 역설적이고 수치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BSW가 좌파당에서 분당했을 때 BSW는 큰 파급력을 선보였다. 여러 선거에서 BSW가 급성장한 반면 좌파당은 기존 기반이었던 동독 지역에서도 대폭 몰락하면서 당의 존폐 위기로 내몰렸다. 그러면서도 좌파당은 BSW와 달리 난민과 이주, 기후 등의 문제에서 AfD와 완전히 대립하면서 원칙을 지키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이번 베를린 선거에서 보듯 주거, 물가, 교통 등 서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의제에 집중하면서 커다란 호응을 이끌어 냈다. 결국 좌파당은 다시 성장세를 탔고, BSW는 이번 베를린 선거에서 5% 문턱을 넘지 못해 주의회 진입에 실패했다. 이 같은 두 정당의 서로 다른 노선과 결과는, 극우의 성장을 저지하기 위해 극우적 의제들을 추수하는 것이 결코 좌파의 대안이 되지 못함을 증명한다. 그러한 전략은 실제로는 극우를 견제하기는커녕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는 길인 것이다.

급진좌파의 대항 헤게모니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일까? 한편에서는 작센-안할트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 극우 AfD가 제1당이 되고 전국적으로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를린에서 좌파당이 제1당이 되는 지금의 풍경은 – 마치 트럼프가 집권했지만 뉴욕에서 맘다니가 시장이 되는 미국과 유사하게 –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좌파당의 이번 성과는 좌파적 원칙을 선명하게 지키면서도 대중적 지지를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좌파당은 청년, 여성, 이주민, 무슬림 등 억압받는 소수 집단을 대변하고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면서 동시에 주택, 교통 등 실생활에 밀착된 급진적 공약들을 제시해 대안 세력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비타협적인 비판과 열정적 연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청량감을 주면서 좌파당은 기성질서와 기득권 정치세력에 환멸감을 느낀 사람들의 불만이 극우로 향하지 않고 급진좌파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결국 기득권화된 기성 진보 – 독일의 경우 사민당이 대표적이다 –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좌파의 역량과 대항 헤게모니가 구축될 때 비로소 극우화를 저지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잠재된 불만을 변화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년세대의 극우화가 현실의 문제로 떠오른 한국에서, 베를린 좌파당의 성과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한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