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아시아 빈민대회 | 강제퇴거와 배제에 맞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속에서 대만, 일본, 홍콩, 필리핀의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각자의 삶터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시혜와 자선을 넘어 존엄을 요구하고, 강제퇴거와 복지 축소에 맞서 저항해온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2026 아시아 빈민대회'로 모인다.
2026년 10월 04일옥스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억만장자의 총자산은 초당 12만 6천 달러씩 증가했다. 평균적으로 억만장자들은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배당금으로만 평범한 노동자가 1년 간 버는 돈보다 더 많이 번다고 한다. 2026년 전 세계 억만장자 5명 중 4명은 1년 전보다 더 부유해졌고,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1조 달러 부자에 등극했다.
반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기준으로 식료품 가격은 15%, 휘발유 가격은 14% 상승했다.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은 기아에 직면해 있고, 전 세계 인구의 48%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디든 비가 오면 물은 가장 낮은 곳부터 차오른다. 기후위기와 전쟁 등 재난의 일상화는 미약하게나마 있던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려는 각국의 시도로 이어져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부터 갉아먹는다.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에 맞서, 아시아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곧 서울에 모인다.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서로의 싸움을 공유하며 더 넓은 연대를 꿈꾸기 위함이다.
이 글은 2026 아시아 빈민대회의 예고편이다. 누가 참여하고 어떤 논의들이 오갈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해바라기 운동에서 홈리스 활동까지
2014년 3월 대만의 학생과 활동가 300여 명이 대만 입법원을 점거했다. 이들은 당시 국민당 정부가 중국과의 서비스 무역협정을 밀실 협상으로 강행하려 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바로 ‘해바라기 운동’이다. 대만-중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빈부 격차, 청년들의 저임금, 실업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던 이 운동에서는 한국의 광장도 그랬듯이 먹을 것을 가져와 서로 나눴다. 그런데 한 홈리스가 나누던 음식을 먹으려 하자 참가자들이 이를 제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장면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도시빈곤과 홈리스 문제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가 인생백미(人生百味)이다.

인생백미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는 ‘돌 수프’ 프로젝트가 있다. 배고프고 지친 여행객이 한 마을에 도착해 배를 채울 묘안을 생각해내는 그 ‘돌 수프’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학생 운동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왜 홈리스들과는 같은 ‘시민’이 되기를 거부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인생백미답게, 사람들로부터 필요 없는 식재료를 모으고, 홈리스 당사자들,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타이베이역 인근 홈리스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이다.
이외에도 홈리스 당사자가 직접 안내하는 도시 투어부터 주거급여 도입 요구, 사회복지법 개정운동까지 인생백미는 단순한 홈리스 지원이 아닌 빈곤을 둘러싼 낙인과 제도를 바꾸는 활동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혜와 자선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빈곤 당사자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AI 열풍 속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 기업이 있는 대만. 그 풍요 속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대만의 빈곤과, 빈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2026 아시아 빈민대회에서 소개한다. 10월 15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반빈곤 운동의 오늘’ 컨퍼런스 세션1 <아시아의 사회보장 현실과 나아갈 길>에서 인생백미 활동가 주아용(朱阿勇)이 <상처입은 섬과 낙인을 짊어진 사람들: 대만의 빈곤 경험 당사자들이 겪는 낙인, 행동 그리고 사회변화>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생활보호제도(生活保護制度)는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여러 면에서 닮아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공부조이다. 2012년 일본에서는 생활보호를 둘러싼 거센 ‘부정수급’ 비난과 생활보호 때리기가 이어졌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일본의 경제가 어려워지며 생활보호제도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급여보다 일자리”를 내세우며 생활보호 급여 수준을 10% 삭감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정권에 복귀한 아베 정부는 이듬해인 2013년부터 평균 6.5%, 가구에 따라 최대 10%에 이르는 생활보호 기준 인하를 세 차례에 걸쳐 시행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생활보호 기준 인하였다.
이러한 유례없는 공격에 맞서 전대미문의 반격으로 2013년, 생활보호제도 이용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전국 29개 도도부현에서 1,000명이 넘는 원고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싸워왔다. 생활보호제도는 그 자체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보장의 기반일 뿐 아니라, 생활보호 기준은 최저임금, 건강보험료 감면 기준, 공영주택 임대료 감면 기준 등 생활보호를 이용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관련된 여러 제도의 기준과도 연동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보호기준은 바로 ‘생명의 보루(いのちのとりで)’다. 생활보호 이용 당사자들의 싸움이 ‘생명의 보루’ 소송이라고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2015년 10월에는 생활보호 문제만을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집회인 「인간답게 살고 싶다 — 헌법 25조를 지키자, 10·28 생활보호 액션 in 히비야」가 개최되었다. 4,000명이 히비야 야외음악당에 모여 ‘생명의 보루’를 지키고 사회보장의 확충을 요구하자는 뜻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생명의 보루 소송 전국액션이 결성되어 각 지역 지원 단체들이 서로 활동 경험을 나누고, 전국적으로 함께 활동해왔다. 10년 넘게 싸운 결과 2025년 6월 27일, 최고재판소는 두 지역에서 진행된 소송에 대해 생활보호 기준 인하가 위법하며 이를 취소해야 한다는 획기적인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생명의 보루 소송 전국 액션’은 지금도 최고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는 정부에 항의하고, 전면적인 피해 회복과 온전한 보상을 요구하는 새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적인 싸움에 1,000명이 넘는 당사자들이 10년이 넘게 함께 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전 세계 곳곳에서도 위기를 핑계로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약탈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싸움에 주목해야 한다. 10월 15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반빈곤 운동의 오늘’ 컨퍼런스의 세션2는 ‘생명의 보루 소송으로 본 공공부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다룬다. 생활보호 업무 담당자인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생활보호를 진정한 권리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생명의 보루 소송 전국액션 사무국 차장인 타가와 히데노부가 ‘생명의 보루 소송 투쟁의 경과, 원고·당사자의 조직화, 그리고 남은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서 교토 지역의 소송 원고였던 모리 키누코가 생명의 보루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소회를 전한다.

최고재판소에서 승소한 지 4개월 뒤인 지난 2025년 10월, <4개월째 위법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가만있지 않겠다, 앞으로도 계속’ — 생명의 보루 재판 대결기 집회>가 있었다. 그곳에서의 모리 키누코의 발언 일부를 공유한다.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곧바로 비난과 공격을 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역풍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일어서고,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원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탱해온 변호사들과 지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에 응답하듯, 최고재판소는 올해 6월 27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생활보호 기준이 위법하게 인하된 지 이미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원고의 20% 이상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원고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보호 이용자에게 사과할 것.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피해를 보상할 것. 나아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을 실시할 것. 이를 위해서라도 후생노동대신은 우리와의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스카이라인 너머 가난한 사람들을 보라
홍콩의 집값은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홍콩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구당 평균소득의 7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홍콩의 이미지에는 이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야경과 네온사인, 홍콩과 구룡반도를 가르는 빅토리아 하버 뒤로 보이는 하늘 높은 스카이라인과 명품 거리에 홈리스는 없다. 홍콩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홍콩에도 쪽방이 있다. 하나의 집을 잘게 나눈 홍콩식 쪽방인 분할주택(劏房)부터 철제 케이지로 둘러싸인 침대에서 생활하는 철창집(籠屋, cage home) 그리고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공간의 관짝집까지(棺材房, Coffin Home)까지. 높은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찾는 가장 저렴한 주거다. 1평도 안 되는 공간에 이층으로 된 침대방이라 일어서거나 허리를 펴고 앉을 수도 없는데, 평균 월세 44만 원을 낸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을 없애면 주거 빈곤도 사라질까?


홍콩 정부는 최근 분할주택을 규제하는 간박방 조례(簡樸房條例, Basic Housing Units Ordinance)를 시행했다. 현재는 등록 기간으로, 2027년 3월 1일부터는 등록도 인증도 없는 분할주택을 임대하는 것 자체가 형사범죄가 된다. 무려 8만 개의 분할주택이 개조를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된다. 예상할 수 있듯, 간박방 조례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모는 조치로 작용했다. 내부 리모델링을 핑계로 한 퇴거와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분할주택 주민들은 간박방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철창집이나 관짝집, 혹은 거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지원은 부족한 채 집만 규제하는 정부. 서울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홍콩 정부가 거리 홈리스의 물품을 사전 통보 없이 폐기한 사건도 있었다. 영화 <탁수표류(濁水漂流 ,Drifting)>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홈리스의 소지품들이 행정기관에 의해 철거·폐기된 것이다. 소코(SoCO, Society for Community Organization)는 당사자들과 함께 세 차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소코는 주거빈곤과 홈리스 문제를 겪는 주민들을 조직하고 지원하며 함께 제도를 변화시켜온 단체다. 오랫동안 소코에서 홈리스 운동을 해온 주민조직가 응 와이 퉁과 여성 홈리스 당사자 안젤리나가 한국에 온다. 10월 15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반빈곤 운동의 오늘’ 컨퍼런스의 세션1 <아시아의 사회보장 현실과 나아갈 길>에서는 소코 주민 조직가 응 와이 퉁이 ‘홍콩의 빈곤 현실과 정책 변화를 위한 활동’에 대해 발표한다. 응 와이 퉁은 홍콩 현지 기사에서 ‘퉁차우가(通州街) 일대 홈리스들이 거의 모두 그를 알고 있으며, 복지신청·집 구하기·가전 마련 같은 사례지원부터 정책조사, 해외 홈리스 단체와의 교류, 정부 상대 소송까지’ 맡고 있다고 그를 소개하기도 할 만큼, 현장과 가까이 활동한다. 세션3 <아시아 현장의 목소리 – 투쟁은 나의 힘>에서는 여성 홈리스 당사자이자 소코에서 함께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안젤리나 선이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전한다.
도시, 내 삶의 터전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
필리핀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전체 인구의 55.2%, 약 6,200만 명이 도시에 살고 있고, 수많은 도시 빈민들은 사회보장에서 배제된 채 비공식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태풍과 홍수 등 잦아지는 기후재난은 불안정한 삶을 더욱 위협한다.
필리핀 헌법은 도시와 농촌의 빈곤층을 법에 따르지 않고 부당하게 퇴거시키거나 주거지를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2년 제정된 도시개발 및 주택법(Urban Development and Housing Act, UDHA) 역시 철거나 이주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은 주민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거정책과 개발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고, 스스로 조직하여 협동조합 방식의 주거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멀다. 메트로 마닐라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개발사업과 기반시설 건설, 재개발을 이유로 비공식 정착촌 주민들이 끊임없이 퇴거 압력을 받는다. 정부가 제공하는 이주지가 있더라도 일자리와 학교, 교통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곽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것은 그곳에서 만들어온 일자리와 이웃관계, 돌봄과 생계의 네트워크까지 함께 잃는 일이다.
도시 빈민들은 정부가 정한 외곽의 이주지를 받아들이는 대신 계속 살 권리와 도시 안에서의 재정착을 요구해왔다. 삶의 기반이 있는 도시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in-city housing’을 요구하며 ‘도시에서 살아갈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온 것이다. 주민이 정부가 만들어준 주택을 수동적으로 배정받는 대신, 직접 자신의 지역과 필요한 주택의 형태를 논의하고 계획하는 People’s Plan(주민 주도 주거계획) 역시 필리핀 도시빈민운동이 중요하게 만들어온 방식이다. 2026 아시아 빈민대회 참여를 위해 서울을 찾는 유피에이(UPA, Urban Poor Associates)와 씨오엠(COM, Community Organizers Multiversity) 퇴거 위기의 도시빈민을 조직하고, 주민들이 직접 재정착 계획을 만들고 정부와 협상하도록 지원한다.
한국의 재개발과 강제퇴거, 쪽방촌과 공공주택을 둘러싼 싸움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10월 15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반빈곤 운동의 오늘’ 컨퍼런스의 세션1 <아시아의 사회보장 현실과 나아갈 길>에서 유피에이 주민조직가 앤디가 ‘격차 좁히기: 필리핀의 빈곤과 불평등 현황’에 대해 발표한다. 세션3 <아시아 현장의 목소리 – 투쟁은 나의 힘>에서는 씨오엠 주민조직가 아이비가 주민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조직하고 정부와 협상하며 자신들의 주거권을 만들어왔는지 이야기한다.


🚩 2026 아시아빈민대회
🔗 일시 | 2026. 10. 16 ~ 17, SEOUL
🔗 참가 신청 및 후원 | https://forms.gle/3qkv9vSPYuipgvJc7
🔗 홈페이지 | http://bit.ly/2026APAP


글 : pigon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