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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프로젝트에 맞선 919기후정의행진, 새로운 싸움을 열다

메가프로젝트에 맞선 919기후정의행진, 새로운 싸움을 열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기후정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동시에 메가프로젝트라는 구체적인 정부 정책에 맞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6년 10월 19일

지난 9월 19일, 서울 시청역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곳곳에서도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은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라는 슬로건 아래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알리고, 다양한 구호와 퍼포먼스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렸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9월 기후정의행진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행사였다. 지난해보다 준비기간이 짧았고, 전국 각지에서 자체적인 기후정의행진이 확대되면서 서울 집중행진을 조직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올해 행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조를 내걸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메가프로젝트의 문제를 알리고, 이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올해 행진에는 지난해에 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행진도 활발하게 개최됐다. 더욱이 조직위원회 평가에 따르면, 단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인과 함께 또는 혼자 참여한 시민들의 비율도 지난해보다 높아졌다.

2019년 한국에서 시작된 대규모 기후행동은 2022년 ‘924기후정의행진’을 거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정부에 대응을 촉구하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낳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꾸고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는 ‘기후정의’가 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기후정의행진은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장애인, 이주민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운동이 함께하는 대중행동으로 성장해 왔다.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은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이라는 방향을 구체적인 사회적 요구와 투쟁으로 연결하려 했다. 지난해 ‘927기후정의행진’은 내란에 맞선 광장의 경험을 이어가며, 다양한 투쟁 현장을 연결하는 구심이자 가교 역할을 했다. 올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등장한 3대 메가프로젝트에 맞서는 싸움을 전면에 내걸었다.

물론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만으로 기후정의운동의 성장을 단정할 수는 없다. 행진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은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기후정의행진이 단순한 연례행사로 소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를 만나는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메가프로젝트

올해 919기후정의행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중단을 핵심 요구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6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재벌 대기업의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한국을 세계적인 AI·반도체 산업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전략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가 그 이익을 얻고 누가 대가를 치르게 될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확대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하다. 이를 공급하기 위한 발전소와 송전선로, 각종 기반시설의 건설도 뒤따른다. 그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위협받고, 농민들은 농지와 농업용수를 빼앗길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확대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첨단산업이라는 이름 뒤에는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가려져 있다.

919기후정의행진 사전행사 부스 모습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919기후정의행진 사전행사 부스 모습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줄여야 하는 시기에, 정부는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는 산업의 무한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이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성장전략인 것이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성장을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희생되고 어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919기후정의행진의 5대 요구는 메가프로젝트가 기후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노동권을 위협하며, 불평등을 강화하고, 농민의 생존권을 침해하며, AI 기반 군비경쟁까지 확대하는 문제를 함께 다뤘다. 동시에 공공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정의로운 전환,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기본권 보장, 사회공공성 강화, 농민의 권리와 먹거리 기본권 보장, 전쟁과 집단학살 종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단지 특정 산업정책에 반대한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정부가 성장과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그와는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지난 몇 년 동안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불평등과 노동, 농업, 주거, 공공성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올해 행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연결했다. 그동안 기후정의운동이 강조해 온 체제전환의 문제가 추상적인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와 자본의 성장전략에 맞서는 싸움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물론 올해 행진을 통해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확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의 계획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맞서 대중적인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올해 행진의 시도는 더욱 중요했다. 기후정의운동이 이미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문제에 뒤늦게 대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의 문제를 먼저 제기하고 이에 맞서는 싸움을 시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919기후정의행진 이후 양대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130개 운동단위가 참여하는 '메가특구법 저지 및 3대 메가프로젝트 규탄 공동행동'이 출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행진에서 제기한 문제를 여러 사회운동이 함께 대응하는 후속 투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919기후정의행진 사전행사에서 한 단체가 메가프로젝트 내용을 참가자가에게 설명하고 있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919기후정의행진 사전행사에서 한 단체가 메가프로젝트 내용을 참가자가에게 설명하고 있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과정

기후정의행진의 성과를 평가할 때 흔히 당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집회와 행진이 얼마나 잘 진행됐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행진을 준비하는 수개월의 과정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해 행진은 6월부터 준비모임을 시작해 7월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8월과 9월에 본격적인 조직화와 홍보활동을 진행했다. 이 기간동안 기후정의행진의 요구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할 주체를 넓히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진행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8월 26일 열린 '메가프로젝트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였다.

올해 행진이 3대 메가프로젝트 중단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사실 이 문제는 기후정의운동 내부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메가프로젝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데다, 정부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도 필요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현장과 온라인을 합쳐 150여 명이 참여했다. 노동, 농업, 지역, 디지털정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메가프로젝트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 토론했다. 메가프로젝트는 환경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투쟁, 농민의 농지와 용수 문제,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에 대한 통제, 군비경쟁과 전쟁의 문제까지 모두 연결돼 있다. 이 토론회는 이러한 문제를 각자의 영역에서 따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기후정의운동이 함께 맞서야 할 과제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언론 기획연재도 진행됐다. 한겨레신문에는 전력과 송전선로, 농업, 전쟁, 노동 등 메가프로젝트의 문제를 다룬 다섯 편의 글이 실렸고, 오마이뉴스에는 기후정치와 기후재난, 불평등, 교통, 온실가스 감축목표, 청소년 등 기후정의운동의 다양한 요구를 다룬 여섯 편의 글이 연재됐다. 아직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쟁되지 않은 메가프로젝트의 문제를 알리고, 기후정의의 요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한 활동이었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활동도 이어졌다. 8월 19일 선포식 이후 60여 명의 참가자들이 지하철 역사에 포스터 1천 장을 붙이는 공동행동을 진행했고, 광화문과 합정, 홍대입구에서 열린 세 차례의 거리 선전전에서는 3,700부의 리플릿을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약 70곳의 동네서점과 카페 등은 '우리동네 거점공간'으로 참여해 기후정의행진을 알렸다. 이러한 활동은 수만 명이 참여한 당일 행진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기후정의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 왜 행진에 참여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특히 청년학생참가단의 활동은 눈여겨볼 만하다. 청년학생참가단은 행진을 앞두고 아홉 차례의 집담회와 다섯 차례의 캠페인, 학내 홍보활동 등을 진행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당일 약 200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학교와 일상에서 기후위기와 기후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행동할 사람을 만나고, 행진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새로운 활동가와 참가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이었던 셈이다.

919기후정의행진 청년학생참가단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919기후정의행진 청년학생참가단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물론 이러한 사전 활동이 충분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조직위원회 참여단체들이 기조와 요구를 함께 토론할 기회가 부족했고, 각 단체가 자체적으로 선전전이나 토론회, 회원 조직화 활동을 충분히 펼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준비과정은 이후 기후정의운동에 함께할 힘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통로였다. 행진의 날짜를 알리고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뿐 아니라, 행진의 요구를 둘러싼 토론과 교육, 선전과 조직활동들 속에서 활동가들은 단련되고, 기후정의운동의 범위는 성장한다.

연결

919기후정의행진 당일에도 다양한 사회운동의 요구와 투쟁 현장이 함께했다. 집회에 앞서 32개 단체가 운영한 부스에서는 각자의 활동과 요구를 알렸고, 오픈마이크에서는 18개 단위가 발언과 공연을 통해 기후정의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본집회에서는 농민과 노동자, 홈리스, 이주노동자, 청소년, 탈핵운동과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반도체 후공정업체 노동자의 발언은 메가프로젝트가 약속하는 첨단산업의 성장 뒤에 어떤 현실이 있는지 보여줬다. 반도체 산업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는 동안에도 현장의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후재난의 고통을 겪는 농민들의 현실, 네팔의 기후재난을 이야기한 이주노동자의 목소리, 지역에서 핵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에 맞서 싸우는 주민들의 요구 역시 한자리에서 울려 퍼졌다.

지속 가능한 야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 오픈마이크 발언 모습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지속 가능한 야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 오픈마이크 발언 모습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몸짓과 발언을 함께 준비한 오픈마이크 참가단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몸짓과 발언을 함께 준비한 오픈마이크 참가단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기후위기가 추상적인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발언들이었다.

올해도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중요한 요구로 제기됐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검토에 맞선 반대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기후정의행진은 같은 날 집회를 준비하던 파병반대긴급행동과 일정을 조정하고 양쪽 집회에서 서로의 요구를 알렸다. 기후정의와 반전평화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군비경쟁과 전쟁은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국가 간 경쟁과 군사력 확대를 앞세우는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도 충돌한다. 기후위기와 전쟁, 불평등에 맞서는 운동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지난해 행진에서도 중요하게 제기됐다. 올해는 메가프로젝트와 군비경쟁, 파병 문제를 연결하며 기후정의와 반전평화의 요구를 함께 제기했다.

919기후정의행진에서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캠페인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활동가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919기후정의행진에서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캠페인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활동가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이어진 거리행진에서는 다섯 곳의 거점 행동이 진행됐다. 일곱 대의 행진 차량과 공연, 대형 조형물, 구호 이끄미들의 활약은 긴 행진에 활력을 더했다. 참가자들이 도로에 함께 누워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다이인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참가자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으로 거리행진을 꼽은 비율이 70.9%에 달했다. 무대의 발언을 듣는 것 뿐 아니라 함께 걷고 구호를 외치며 행동아는 경험이 참가자들에게 중요하게 다가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이인 퍼포먼스 중인 참가자 - 당일 기후정의동맹이 발행한 신문도 함께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다이인 퍼포먼스 중인 참가자 - 당일 기후정의동맹이 발행한 신문도 함께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다만 행진 속도가 빨라 참가자들이 힘들었다는 지적과, 거점 행동에 충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처음 참가한 사람들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기후정의행진은 다양한 사회운동의 요구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각자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이 왜 연결돼 있는지 서로 이해하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 올해 행진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이어졌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동료

올해 행진에서 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은 단체의 조직적인 참여와 별개로 행진을 찾은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직위원회의 참가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9%가 지인과 함께 또는 혼자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27%보다 높아진 수치다. 행진을 알게 된 경로에서도 SNS가 44.8%, 지인이 15.8%, 지하철이나 거리의 포스터가 13.9%를 차지했다. 물론 여러 경로가 중복될 수 있지만, 기존 단체의 회원이나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당히 반가운 결과다.

기후정의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미 환경단체나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 행동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 정부의 기후정책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 SNS에서 행진 소식을 접하고 처음으로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있다.

특히 올해처럼 메가프로젝트라는 다소 낯선 의제를 전면에 내건 행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가자 모두가 메가프로젝트의 내용을 충분히 알고 동의했기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체감하면서, 지금의 정부 정책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후정의행진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행동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과 어떻게 계속 관계를 맺고, 이후의 기후정의운동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동시에 기존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들의 조직적인 참여를 강화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올해 행진의 준비과정에서는 노동조합과 여러 사회운동단체들의 조직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전국 곳곳에서 자체적인 행진이 활발하게 열리면서 서울 집중행진의 조직 여건이 달라진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단체들이 조직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회원과 조합원들에게 행진의 의미를 알리고 함께 참여하도록 조직하는 활동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919기후정의행진에서 공공재생에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919기후정의행진에서 공공재생에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조직된 참가자와 개인 참가자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후정의운동이 성장하려면 두 가지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은 기후정의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동시에 노동조합과 농민단체, 사회운동단체들이 자신의 구성원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관심과 참여를 지속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지 조합원 몇 명을 집회에 보내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 안에서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론하고, 기업과 정부의 산업정책에 대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요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농민단체나 지역 주민들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기후정의운동의 공동 요구와 연결하고, 다른 지역과 부문의 투쟁에 관심을 갖고 연대할 때 운동의 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각 단체와 조직 안에서 기후정의운동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행진을 준비하면서 회원 간담회와 토론회, 교육과 선전활동을 열고, 행진에 함께 참여한 경험이 이후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지역의 활동이나 다양한 투쟁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올해 청년학생참가단의 경험이나 새로운 집행위원들이 행진 준비과정에 참여한 사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반도체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며 행진하는 참가자들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기후정의행진이 대중운동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지 행진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어난다는 뜻만은 아니다. 기후정의를 위해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일터와 학교, 지역과 단체에서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더 큰 운동

올해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전국 곳곳에서 기후정의행진이 더욱 활발하게 열렸다는 점이다. 서울뿐 아니라 파주, 강원, 경남, 경북,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제주, 충청권, 지리산 등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진행됐다. 지역 행진에는 약 4천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에서 기후정의행진이 확대되는 것은 서울에 집중되는 대규모 집회의 참가자가 분산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후정의운동 전체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기후위기는 전국 곳곳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발전소와 송전선로, 산업단지와 각종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도 지역마다 구체적인 현실과 요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기후정의운동이 자기 지역의 문제를 중심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의 대규모 행진에 참가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에서 기후정의의 요구를 외치고 함께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행진의 확대는 기후정의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애인 참여자의 인상적인 팻말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장애인 참여자의 인상적인 팻말 ©919기후정의행진조직위원회

다만 지역 행진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모든 지역 행진이 3대 메가프로젝트 반대를 전면에 내건 것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처한 현실과 운동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요구를 갖고 있더라도 공동의 과제를 찾고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메가프로젝트 역시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한 지역의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송전선로가 건설되고, 막대한 용수와 각종 기반시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삶과 생태계가 영향을 받게 된다. 앞으로 서울과 지역의 기후정의행진이 서로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전국적인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을 평가하면서 우리는 대규모 행진을 조직하는 것을 넘어, 정부와 기업을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기후정의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했다. 지난해에는 다양한 투쟁 현장을 연결하는 구심이자 가교로서 기후정의행진의 의미를 확인했다. 올해 919기후정의행진은 여전히 수많은 시민들이 기후정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동시에 메가프로젝트라는 구체적인 정부 정책에 맞서 기후정의운동이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올해 행진이 제기한 메가프로젝트의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다.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기반시설을 신속하게 건설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기후정의운동은 메가프로젝트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각자의 현장에서 이에 맞서는 다양한 투쟁을 만들어가야 한다.

기후정의행진이 이러한 싸움의 계기가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대규모 행진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함께 모여 노래하고 행진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즐거움도 중요하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전쟁과 생태파괴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험을 행진 당일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행진을 준비하면서 맺은 관계들이 이후에도 이어지고, 처음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노동조합과 사회운동단체들이 기후정의의 요구를 자신의 운동 속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올해 행진에서 만난 시민들, 토론회와 선전전에 참여한 사람들, 자신의 일터와 학교, 지역에서 참가자들을 조직한 사람들이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면, 기후정의행진은 해마다 기후정의운동의 힘을 키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919기후정의행진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다. 이제 올해 행진에서 확인한 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후정의를 위한 싸움을 확대해 나가자.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즐겁게 행진하는 어린이 참여자들 @경향신문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즐겁게 행진하는 어린이 참여자들 @경향신문

글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