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출신 작가 히가 스스무의 그래픽 노블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말 최대 격전지였던 오키나와가 전쟁으로 겪은 고통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오키나와인, 일본 본토인, 미국인 등 여러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 옴니버스 형식으로 1부 ‘모래의 검’에서는 전쟁 당시의 오키나와가, 2부 ‘마부이’에서는 전쟁 후 오키나와에 자리 잡은 미군기지를 둘러싼 이야기가 담겨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패배가 다가오던 상황에서, 오키나와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미군은 일본 본토에 진입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공격했다. 이에 맞선 일본의 목적은 승리라기보다는 미군의 병력을 최대한 소진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미군 54만 명에 맞서 일본군 11만 명이 동원되었으나 이 중에서는 정규 훈련을 받지 않은 현지 방위대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도대도 다수 포함되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받지 못한 채로 죽음으로 내몰렸다. 오키나와 전투는 궤멸적인 폭탄과 포격으로 인해 ‘철의 폭풍’으로도 불렸으며 섬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그려내다
1부의 제목이기도 한 ‘모래의 검’에서는 오키나와의 작은 섬 마에지마에 군부대가 주둔하게 되며 마을의 노인들까지 군에 징집 대상이 되는 장면을 그린다. ‘군인이 없는 편이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라는 대사가 군인의 진짜 역할은 주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오키나와인에게 군의 배치는 안보가 아닌 위협이었다. 이어 나오는 ‘모래의 석양’, ‘모래가 부르는 이야기’에서는 전쟁 패배 후, 일본군이 투항을 거부하며 민간인을 죽이고 볼모로 삼아 미군의 공격을 피하려 하기도 한다.

일본 본토인은 오키나와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지 않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오키나와인이 언제든 미군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오키나와인에게 ‘명예로운 자결’이라는 명목의 집단 자살 강요라는 참행을 벌이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는 피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서로의 피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확산하는 때가 있다. ‘어머니 이야기’는 작가 히가 스스무 모친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무덤으로 폭격을 피해 도망친 아이들과 어머니는 무덤의 주인에게 내쫓길 상황에 처한다. 처음에 무작정 화를 내던 무덤 주인은 이내 마음을 열며 자신의 아들이 만주사변에 참여한 군인으로, 전쟁 후 거칠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폭력 상황이 어떻게 연대를 가로막고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배척하고 반목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마음을 여는 장면에서는 화해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지하 서고의 고문서를 발굴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다룬 ‘학교’에서는 오키나와가 가진 평화의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도요토미 정권 시절, 우린 조선 출병을 거부했다. 여러 이웃 나라와 교역하며 공전, 공영, 우호를 다질 수 있음을 증명해 왔다. 이런 역사적 자부심이 무력 외교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쟁을 불러들이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전쟁의 폭풍은 우리의 삶을 뿌리째 파괴할 것이다 <‘학교’ 중에서>
오키나와에는 19세기까지 일본과는 독자적인 류큐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류큐 왕국은 비무장화 정책을 펼치며 무역과 외교로 세를 다져왔다. 1879년, 일본은 류큐를 강제 병합하고 동화정책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차별을 가해왔다. 류큐식 이름은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고 표준어의 사용이 강요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잠시 오키나와를 지배하다 일본에 반환하였지만, 오키나와인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스스로를 ‘오키나와인이자 일본인’인 별개의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현재 진행형의 역사, 오키나와 미군기지
2부 ‘마부이’에서는 현재에 이르러 미군기지를 둘러싼 소요들을 오키나와의 토속 신앙과 함께 그려낸다. ‘마부이’는 오키나와어로 영혼을 뜻한다. 크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으면 마부이가 몸에서 빠져 나간다고 한다. 책에서는 마부이(영혼)를 되돌려놓기 위해 우간(제사)을 지내는 유타(무속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쟁이 물리적인 파괴뿐만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들의 정신과 의식에도 깊은 피해를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오키나와에는 미 공군 최대 규모의 해외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영토의 0.6%의 면적을 가진 오키나와에는 재일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이는 오키나와 본섬 면적의 20%를 차지한다. 기지 인근에서는 군용 헬기와 훈련하는 전투기의 소음이 끊임없이 일상을 단절시킨다. 미군 헬기의 추락 및 불시착 사고는 여전히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귀향’에서는 군기지 유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갈등을 다룬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신세대와 건설에 반대하는 기성세대의 대립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뿌리를 파헤쳐보면 오키나와가 놓여있는 상황 자체가 불평등함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이어진 미국의 통치로 오키나와는 황폐해졌고, 산업의 기반은 파괴되었다. 일본 정부 역시 오키나와 ‘반환’ 이후 대부분의 자본을 해변가 리조트 단지 조성에만 투자하였다. 실제로 현재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내 경제 기여도는 5%에 지나지 않는다.
오키나와를 넘어서는 평화의 바람과 연대
책모임 참가자들은 『오키나와』 속 전쟁 피해의 장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또 다른 전쟁의 현장들을 떠올렸다. 작품 속 미군기지는 화성 매향리 사격장과 평택 험프리스 기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풍경을 불러내었다. 주민의 평화로운 삶터를 파괴하며 들어선 기지의 모습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숨어들면서도 끊임없이 ‘국민’임을 증명해 내야 했던 상황에서는 제주 4.3의 비극이 겹쳤다. 나아가 만화 속을 가득 채운 폭격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폭격이 쏟아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현실과 이어지며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전쟁은 한 지역에 국한된 역사가 아닌, 일상적인 삶을 희생시키는 현재진행형의 구조적 폭력이다.
과거 일본 파시즘이 자행한 국가적 폭력과, 침략 전쟁의 포화는 오늘날에도 이름만 바뀐 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전쟁으로 고통받아온 한국은 미국의 요청 아래 이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검토중이다. 히가 스스무의 『오키나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일상을 뒤흔드는 전쟁 앞에서 어떻게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불법 침략 전쟁의 대가는 누가 치루게 될까. 오키나와의 기억을 읽는 일은 그저 비극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 압도적인 폭력에 맞서는 연대이자 저항의 걸음이다.

글 : 마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