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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서평 | 커밍아웃,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를 넘어

『커밍아웃 스토리』 서평 | 커밍아웃,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를 넘어

커밍아웃은 당사자의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선언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 주변인들의 지지와 연대로 확장되면서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에 균열을 낸다.

2026년 09월 24일

이 글은 지난 2026년 5월 13일에 열린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 참가자의 서평이다. 플랫폼c는 책읽기모임, 페미니즘 공부모임, 동아시아 공부모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사회운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학습과 토론의 자리를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씨 회원인 인스타툰 작가 사탄쥐(@satan_ratt)의 그림 서평을 옮겼다.

나의 첫 커밍아웃 대상은 엄마였다.

차에서 갑자기 얘기해버렸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황당해하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넌 무슨 그런 얘기를 나 운전할 때 하니?...)

어쩌다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안 난다. 그저 더 이상 숨기는 걸 못해먹겠단 심정으로 툭 튀어나온 거 같다.

커밍아웃 직후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말했던 엄마는 이젠 내가 성별정정수술하고 싶다는 얘기도 들어주고 내 연애 근황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은 엄마도 몇년에 걸친 마음고생을 하면서 나를 천천히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커밍아웃'의 뜻을 대충 '밝히다'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만,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등을 밝히지 않는 것을 “벽장 속에 있다(in the closet)”고 표현한다. 성소수자들은 살기 위해 스스로를 벽장 속에 구겨넣는다. 고립과 외로움과 두려움을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관계를 찾기 전까지 나도 벽장 속에 나를 가뒀다. 어딜 가도 불편한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소수자들은 이런 불편함을 일상에서 숨쉬듯이 느낀다. 세상엔 남녀뿐이고 남녀의 결합만이 사랑이라는 성별고정관념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것을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 규범이라고 부른다.

성소수자들은 낙인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벽장 속에 들어가지만, 더 이상 스스로를 낮춰서 살고 싶지 않거나, 안전하다고 느낄 때 벽장에서 나와 성소수자임을 스스로 밝히는(중요!) '커밍아웃'을 한다.

커밍아웃이 중요한 이유는 편협한 성별규범 바깥의 존재를 드러내는 선언이면서, 상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는 걸 '아웃팅'이라고 한다. 그런 경우, 혐오발언이나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커밍아웃 스토리>는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자식에게서 커밍아웃을 처음 받았을 때,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부모부터, 쿨하게 넘기는 부모, 오히려 자식을 이해하게 된 부모까지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다.

물론 많은 부모들은 억장 와르르 단계를 거치지만 책에서는 공통된 한가지 결론을 말한다. 자식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더 넓어졌고, 더 깊이 애정하는 관계가 되어 자식에게 감사하다는 것이다.

자식의 고백을 들은 부모들은 고뇌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부정적 감정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성소수자 자식은 혼자서 이런 고통을 얼마나 오래 겪었을지 헤아리게 되면서 미안함에 눈물 흘린다.

"어느날 내 머리를 꽝 때리는 깨달음이 왔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때 내 아이는 몇년동안 이런 감정으로 지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에서 날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그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부당해고를 당했다. 억울하고 인간이 싫었다…아! 소외란 이런 것이구나. 혐오를 당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억울함보다도 먼저 내가 서 있을 자리조차 없게 만드는구나…내 딸이 엄마에게 설명하려 애썼던 것이 무엇인지 느껴졌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안내에 이끌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오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부모와, 또다른 성소수자 자식들을 만난다. 이들과 대화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자식을 이해하게 되고, 고립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연결감을 되찾는다.

"어떻게 커밍아웃을 받은지 사흘만에 이렇게 부모모임에 나왔냐며 격려까지 해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몇 년씩 인정하지 않았고, 어떤 분은 자녀와 함께 죽자고 했답니다. 장한 아빠라고 칭찬까지 받으니 왠지 모르게 으쓱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 저쪽에 아들이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밝게 웃으며 떠드는 아들의 모습은 십년만이었습니다. 눈물이 올라왔지만 참았습니다. 내 아들의 어둠이 걷히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 당사자에서 부모로 확장된다. 내 자식이 성소수자고, 나는 자식을 지지한다는 부모들의 선언은 성소수자를 둘러싼 낙인과 편견을 녹인다.

“제가 성소수자의 부모임을 커밍아웃하고,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알았습니다. 왜 우리 성소수자 자녀들이 그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하는지, 특히 자신의 부모와 가족에게 왜 그렇게 지지받고 싶어하는지 말이죠. 저의 이런 노력이 최소한 한 백명 정도에게는 성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는 게 뿌듯하고요.”

“딸 애가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커밍아웃은 다소 정치적이 되었다. 딸애는 자신에 대한 커밍아웃 결정권을 가족 개개인에게 넘겼고,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커밍아웃의 이유를 달자면 (...) 나와 내 딸을 통해 성소수자가 막연한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구체적 개인과 그의 삶이 드러나는 순간 강고한 편견의 얼음벽은 서서히 녹아내릴 것이라 믿는다.”

커밍아웃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커밍아웃은 "악마화"된 성소수자를 구체적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성소수자를 동료시민으로서 존중하는 태도와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드러내지 말고 숨어 살라"는 말은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핵심 장치다.

다양성을 상상하지 못하는 경직된 성별규범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한다. 그러나 성소수자 개인에게서 시작된 커밍아웃은, 주변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편협한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를 허물 것이다.

"모든 부모가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로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고통스럽지 않았고, 불행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딸애의 커밍아웃은 내 삶을 풍부한 경험으로 이끌었다. 성소수자는(...)우리의 다정한 이웃이며 동료 시민이기도 하다. 이런 구체적 사실 앞에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하다고 믿었던 생각은 바뀌어야하고 바뀔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커밍아웃하는 가장 큰 이유다."

책을 읽고 나도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너무 갑작스럽게 커밍아웃한 것 같아서 이 책을 엄마와 아빠에게 선물했다.

책에 나온 분들과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정말 큰 일을 해낸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밝히면 삶이 위험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지지받을 관계가 없어 떠도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그 눈물과 아픔을 품을 수 있길 바란다. 모두의 커밍아웃과 사랑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글·그림 : 사탄쥐 @satan_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