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이외의 방법,인터넷 이외의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려면
대담한 요구는 언제나 치열한 현장의 토양에서 싹튼다. 이러한 요구는 국가나 자본의 선처를 구하는 청원주의나 의회 중심의 정치공학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조직을 꾸리고 대중을 묶어세우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2026년 09월 01일일본의 신생 극우정당 참정당의 약진, 다카이치 정권의 출범과 높은 지지율, 뉴욕시장 선거에서 맘다니의 승리 — 일본 리버럴이나 좌파의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운동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을까. POSSE의 청년 활동가들이 나눈 아래 대화록은 일본 사회운동의 고민을 이해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다. 이를 번역해 소개한다.
뉴욕시장 선거의 여파 속에서 간과되었던 것
와타나베 | 2025년 7월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는 참정당과 일본유신회가 지지를 얻는 등, 배외주의적 주장을 내세우는 우파적 포퓰리즘이 세력을 확장했고, 10월에는 다카이치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한편, 11월 4일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가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정책을 내세워 당선되었습니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와 뉴욕 시장 선거에 대해 리버럴이나 좌파 진영에서도 다양한 논평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 와타나베 히로토(渡辺寛人): 1988년생. NPO 법인 POSSE 이사. 사회복지사, 호세이 대학 현대복지학부 전임강사. 주요 연구 분야는 빈곤 연구, 공적 부조론, 복지국가론 등이다.
오기타 | 맘다니의 당선을 두고, 맘다니와 그를 지지하는 DSA(미국 민주사회주의자,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SNS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도하는 일본 언론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선거 전까지 무명이었던 ‘다크호스’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요구를 내세우고, SNS 기법으로 승리했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제가 읽은 서구 언론 기사나 잡지 『POSSE』 이번 호에서 인터뷰한 낸시 프레이저가 강조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구체적인 운동입니다. 유권자의 집 문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설득해 나가는 풀뿌리 조직 활동이 있었기에 맘다니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점이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오기타 코타로(荻田航太郎): 1993년생. NPO 법인 POSSE 이사 겸 사무국장. 쓰쿠바 대학 대학원 박사후기과정. 2018년 POSSE에 노동 상담을 의뢰했던 전직 ‘블랙기업’ 정규직 노동자 출신으로, 문제를 해결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노동 상담, 단체교섭, 분쟁 해결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모토 | 맘다니가 당선된 후 웹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1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300만 곳 이상의 집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맘다니를 지지하는 NGO나 NPO 같은 단체도 100개 이상이나 되어, 거리에서 얼굴을 맞대며 꾸준히 설득하고 조직화한 결과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그 부분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 이와모토 나나(岩本菜々): 1999년생. NPO 법인 POSSE 대표이사. 히토츠바시 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석사과정. 학자금 대출 상환자 실태조사 및 정책 제언, 빈곤층 생활 지원 활동을 통해 노동·빈곤 문제 해결에 힘쓰고 있다.
오기타 |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눈 미국의 운동과, 일본 언론이 강조하는 ‘SNS를 통한 확산’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주: 후자에는) '설득'이라는 계기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활동가들은 슈퍼마켓에 가도 물가가 비싸서 물건을 살 수 없다거나 집세가 지나치게 높다는 등, 생활 현실에 뿌리를 둔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 적정한 가격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불 가능성)’에 대한 요구를 단순히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면을 통해 꾸준히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시기하라 | 일본의 일부 자유주의자나 좌파는 맘다니 역시 포퓰리즘이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논평했지만, 저는 그 비판이 빗나갔다고 보았습니다. 뉴욕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맘다니에게 표를 던져 모든 것을 ‘맡긴다’기보다, 선거가 끝난 후의 운동이야말로 중요하며 모두가 함께 대안 경제를 만들어 나가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맘다니가 내세우는 정책들은 실행하려면 거대한 사회운동의 기반이 필수적인 것들뿐입니다. 이를 단순히 ‘SNS를 활용한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냉소는, 오히려 일본 사회운동이 정체되어 있다는 현실을 투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 시기하라 코이치로(鴫原宏一朗): 1998년생. NPO 법인 POSSE 이사 겸 센다이 지부 대표. 도호쿠 대학 대학원 농학연구과 박사과정. 센다이를 거점으로 노동·빈곤·환경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관련 실천은 다큐멘터리 영화 『미치노쿠 전기』에 소개되었다.

참정당이 선전했던 미야기현 지사 선거는 뉴욕시장 선거와 공통점이 있을까?
시기하라 | 2025년 10월에 제가 살고 있는 미야기현에서 치러진 지사 선거는 뉴욕 시장 선거와는 퍽 대조적이었습니다. 이번으로 5선을 마치고 6선에 도전한 현직 무라이 요시히로는 이른바 보수 정치인입니다. 병원 통폐합, 상수도 민영화, 원전 재가동 등의 정책을 둘러싸고 항상 리버럴이나 좌파로부터 비판을 받아왔으며, 기존 미야기현 지사 선거의 구도는 무라이와 리버럴 성향 후보 간의 1대1 대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구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리버럴 계열 후보도 출마했지만, 무라이의 가장 위협적인 대항마는 무라이를 더 우파적인 입장에서 비판해 온 와다 마사무네와 그를 지지하는 참정당이었습니다. 결과는 와다와 불과 1만 6,000표 차이로 무라이가 신승했습니다.
문제는 리버럴이나 좌파가 이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다들 ‘와다와 참정당이 SNS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허위 정보를 효과적으로 유포했다’는 점만을 약진의 원인으로 분석합니다.
하지만 참정당이 사람들의 마음을 끈 배경은 SNS나 가짜 뉴스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맘다니가 내세웠던 ‘생계가 어려워지는 현실’과 같은 생활 체감에 기반한 주장을 펼친 측면이 있습니다. 미야기현 지사 선거에서 와다와 참정당의 핵심 공약은 급식비 무상화, 상수도 재공영화, 요양·돌봄 노동자 임금 인상, 메가솔라 건설 계획 중단 등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 저변에는 배외주의와 인종차별이 얽혀 있었기에, 리버럴과 좌파는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미야기현 주민들에게 리버럴이나 좌파의 메시지는 와다나 참정당의 직관적인 구호에 비해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와타나베 | 일본 좌파 운동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 기간 동안 정당과 당수가 X(구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 수와 추정 확산 횟수는 사민당이 모든 정당 중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지율이나 득표율 상승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들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메아리를 주고받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를 형성하고 만 셈입니다.
반면 맘다니를 지지하는 이들은 지역에서의 풀뿌리 조직화를 끈기 있게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맘다니와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겠지만, 참정당 역시 SNS뿐만 아니라 지역 현장에서 꾸준히 조직화 활동을 펼쳐온 측면이 있습니다.
‘리얼리즘’의 정치주의인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인가?
와타나베 | 일본의 리버럴이나 좌파가 뉴욕 시장 선거를 정책 내용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맘다니 같은 정책을 내세우면 지지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일본 진보 정당들은 정책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식의 비판입니다.
이와모토 | 그런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제게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좌파가 포퓰리즘적으로 지지를 넓힌다 한들 이른바 ‘자본 파업(Capital Strike)’에 의해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회의론이었습니다. 뉴욕 현지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기반이 탄탄히 존재함에도 이를 단순한 포퓰리즘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발로입니다.
패배주의적인 수용이 만연해 있습니다. 요컨대 ‘현실적인’ 정책을 내세워야 하며, 좌파가 좀 더 ‘우경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선거 승리만을 절대시하는 정치주의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논리로는 온전히 실현하기 어려운 대안 정책을 과감하게 모색하는 일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자본이나 시장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바로 그 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가나 지자체의 단순한 재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어소시에이션(자발적 결사체) 형태로 사회를 공동 운영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죠.
반면 일본의 좌파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갇혀 상상력을 해방시키기는커녕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정치주의와 패배주의가 낳은 한계입니다.
일본의 좌파는 SNS에 휘말려 버린 것일까?
와타나베 | 일본 좌파 진영에서 맘다니 측의 주장을 두고 “비현실적이다”, “곧 좌초될 것이다”라는 회의가 번지는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되었듯,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사회를 실제로 변화시켜 본 성공 경험이 오랫동안 단절되면서 상상력이 고갈된 탓이 큽니다. 게다가 SNS를 통해 운동을 확산시키려는 손쉬운 발상은 이러한 ‘패배주의’와 매우 친화적입니다.
SNS는 ‘참여도(Engagement) 지상주의’ 알고리즘으로 설계된 플랫폼입니다. ‘좋아요’, 리포스트, 조회수, 체류 시간 등을 극대화하는 자극적인 게시물이 우위를 점하고, 플랫폼은 이를 통해 더 많은 사용자 데이터를 추출합니다.
그러다 보니 SNS 공간에서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분석하고 조직화를 통해 변화를 꾀하는 ‘복잡하고 지난한’ 담론보다는, 비용 대비 효과가 빠르고 기존 통념에 쉽게 부합하는 직관적인 게시물이 더 큰 호응을 얻습니다. 사회운동의 힘으로 현실을 바꾸는 과정을 포기한 채 SNS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외국인, 재무성, 고령자 등 손쉬운 ‘적’을 상정해 공격하는 태도 역시 사회구조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를 공부하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해법을 찾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비효율적인’ 일로 치부됩니다. 그 결과 소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구조적 변혁 운동은 기피되고, 삶의 고통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명확한 ‘적’을 설정해 표를 모으는 방식이 득세하게 된 것입니다.

오기타 | 최근 번졌던 ‘재무성 해체’ 시위가 대표적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대중운동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주장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방향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이익을 빼앗겼다”는 식의 순수한 ‘피해자성’ 호소에 가깝습니다. 그곳에 넘쳐나는 것은 사회 변혁의 상상력이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뿐입니다.
취업 빙하기 세대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함에도 방치되었고, 파이를 갉아먹는 외국인이나 긴축 재정을 고집하는 재무성이 ‘주적’이라는 논리로 흘러갑니다. SNS는 이러한 “나는 억울한 피해자이니 구제해 달라”는 감각을 흡수하고 증폭시킵니다. 단순한 ‘적 대 아군’의 이분법 구도는 SNS 알고리즘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녀석이 나쁘다”와 알고리즘의 친화성
와타나베 | “저 녀석 탓이다”라는 외부 귀인(타자화) 사고가 만연해진 결과입니다. 2000년대에는 빈곤 문제를 두고 ‘자기책임론’이 맹위를 떨쳤습니다. “노력하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다”, “의지의 문제다”라는 식의 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특히 최근 5년 사이 불평등과 계층 고착화가 심화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부모 가챠(수저 계급론)’라는 유행어에서 보듯,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숙명론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러자 자기책임론이 뒤집혀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저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타자 책임론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자기책임론과 타자책임론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둘 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질문하지 않습니다. 공격의 화살이 ‘나’를 향하느냐, ‘외부의 타자’를 향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구조 분석이 결여된 타자책임론이 지배할 때, 배외주의나 재무성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음모론이 폭발적인 위력을 얻게 됩니다.
우파는 이러한 세태에 편승해 손쉬운 ‘적’을 만들어 포퓰리즘을 선동합니다. 반면 리버럴과 좌파는 SNS에서 이들의 음모론과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데 몰두하지만, 그 비판 역시 진보 성향 이용자들 사이에서 트래픽을 일으키는 ‘쇼윈도 프로레슬링’에 그치곤 합니다. 양측 모두 SNS 플랫폼의 데이터 착취 시스템에 포섭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모토 | 좌파가 SNS의 노예로 전락한 셈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개 역할을 해야 할 중간 조직이나 사회적 연대가 힘을 잃은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리먼 쇼크) 직후에는 자기책임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후 새로운 노동조합이나 대안적 사회운동의 연대 모델이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파견촌’ 운동과 금융위기의 여파는 민주당 정권 교체를 이끌어냈지만, 사회운동 진영의 독자적인 대중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정권의 실패와 함께 운동도 무기력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거릿 대처의 말처럼 “사회 같은 것은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상태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타자책임론에 기반한 포퓰리즘이 힘을 얻는 이유는 사람들의 삶이 실질적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고물가와 기후위기로 실질 소득이 줄어들며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의 문제를 오롯이 개인과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조건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남의 것을 빼앗아 올 수밖에 없다”는 적대적 논리로 흐르게 됩니다. 이것이 외국인이나 노인을 적으로 돌리는 배외주의로 연결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공중전(온라인 여론전)에만 매몰되어 민중의 구체적인 삶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가솔라’는 ‘자본’ 대 ‘주민’의 문제다
시기하라 | 미야기현 지사 선거를 겪으며 구조 분석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산림을 대규모로 벌채하고 들어서는 ‘메가솔라(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와다 후보와 참정당은 메가솔라 건설 전면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주민들의 생활 감각에 정확히 부합했습니다. 실제로 산간 지역에서 메가솔라 단지를 보면 삶의 터전이 자본에 무참히 침식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마치 ‘식민지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대대로 드나들던 산이 이름 모를 외지인의 사유지로 전락해 출입조차 통제됩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참정당의 주황색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 지방의 민낯입니다.
문제는 좌파 진영이 이 사안에 대해 어떤 대안과 분석을 제시했느냐는 점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참정당의 직관적인 구호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메가솔라 문제는 일본 지방 경제의 본질적인 모순과 직결됩니다.
자본이 지역의 자연과 토지를 매입해 파괴하고 오염시킨 역사는 원전 건설, 미나마타병, 욧카이치 천식 등 유구합니다. 과거에는 자본이 자연을 ‘포위’하는 대가로 보상금이나 일자리 같은 경제적 분배를 제공했기에 주민들은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지역 경제가 자본의 시혜에 종속되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메가솔라 사업은 지역에 떨어지는 경제적 혜택이 거의 전무하며, 일방적인 환경 파괴와 산사태 위험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정당은 이 분노를 ‘외국 자본’, 특히 ‘중국 자본’이라는 가시적인 적을 겨냥하는 배외주의적 프레임으로 가로채 지지를 흡수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외국 대 일본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 대 주민’의 문제입니다. 숲과 자연환경을 주민 스스로 자치적으로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순환 경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적대선의 방향을 어디로 설정하고 어떤 비전으로 싸울 것인지 좌파가 대안적 담론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널리스트 쿠도 리츠코 씨가 소개한 스페인의 ‘사회적 연대 경제(주민 자치적 경제 운영 모델)’처럼,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대담한 실천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운동입니다.
이와모토 | 빈곤화가 가속되는 사회에서 좌파가 실질적인 경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군요. 일본 좌파는 ‘어포더빌리티’를 전면에 내걸고 당선된 맘다니의 전략에 비해 민생 경제에 대한 현실 감각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반면 현장에서는 ‘빈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극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무료 급식 지원 현장에 나가보면, 연금 생활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흘 동안 물밖에 마시지 못했다”, “하루에 우동 한 그릇으로 버틴다”며 찾아옵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부유층의 자산 증식과 과잉 소비가 주도하고 있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저소득층과 연금 수급자의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져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 앞에서 공허한 구호만 늘어놓는 좌파의 모습은 대중에게 무책임하게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SNS에서 벗어나는 사회운동을 만들기 위해
와타나베 | 앞으로 SNS의 트래픽 지상주의와 소모적인 온라인 비방전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뉴욕 시장 선거는 그 대안적 경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희망을 줍니다.
극단화된 개인주의와 SNS 플랫폼이 초래한 고립 속에서, 청년 세대는 오히려 타인과의 생생한 교류와 공동체적 연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SNS 권력이 낳은 소외가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만남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고 있는 셈입니다. 비록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SNS 의존을 탈피해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운동 방식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입니다.
이와모토 | 저 역시 SNS에서 나름 ‘화제의 인물’이 되어본 경험이 있지만(웃음), 미디어나 SNS의 주목을 목표로 삼다 보면 운동의 방향성 자체가 플랫폼의 논리에 휘둘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22년에 진행했던 ‘학자금 대출(장학금) 탕감 프로젝트’는 청년들이 단순한 ‘불쌍한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사회운동으로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역주: 일본에서 ‘장학금(奨学金)’은 통상 상환 의무가 있는 학자금 대출을 의미하며, 무상 지원은 2017년에 도입된 ‘급부형 장학금’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기성 언론은 참가자들의 비참하고 자극적인 사연만을 캐내려 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자살을 결심했던 순간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는 식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당당한 사회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무기력한 피해자로 묘사하려 한 것이죠.
SNS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개인 서사만이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 사이에서조차 “빚이 더 많고 더 비참하게 고통받는 사람”이 운동의 대표성을 독점하는 기이한 서열화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라는 수동적 위치를 딛고 연대하여 싸우는 과정이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절감하고 지난 몇 년간 POSSE 내부에서 ‘SNS나 미디어 의존형 운동을 탈피하자’는 논의를 치열하게 이어왔습니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가 전단지를 직접 나눠주고, 주민들과 마주 앉아 토론하며 동료를 모으는 풀뿌리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활동의 지향점이 훨씬 명료해집니다. 자극적인 사연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 설명하고 함께 행동하면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진정한 즐거움이자 힘이 됩니다.
SNS를 활용한 유니온 운동의 한계
오기타 | 노동운동에서도 SNS는 중요한 교섭 자원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사업장에 조합원이 단 한 명뿐이라도 SNS를 통해 부당노동행위를 공론화하고 여론의 압박을 이끌어내 단체교섭을 유리하게 이끈 성공 사례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운동의 성격을 특정한 방향으로 왜곡시키는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문제를 철저히 ‘개인의 피해’로만 서사화하여 대중의 일시적인 분노와 동정심을 소비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노동자를 주체적 조직가가 아닌 ‘피해자이자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동료를 설득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를 맺으며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훈련이 뒷전으로 밀리기 쉽습니다. 노동자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현장에서 사람을 모으고 관계를 재구축하는 본래의 노동운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기타 | 노동문제를 ‘생존과 돌봄의 재생산’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돌봄 서비스의 무분별한 민영화·시장화로 인해 보육과 개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관한 상담이 끊이지 않습니다. 보육 현장의 노동 착취는 보육교사 개인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보육의 질 저하로 이어져 아이들의 안전과 지역사회의 존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합니다.
실제로 한 어린이집에서는 임금 체불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시설장이 학부모들에게 벽보 한 장으로 당일 ‘일방적 폐원’을 통보하고 도주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남겨진 어린이집 교사들과 노동조합, POSSE 청년 활동가들은 긴급 논의 끝에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자주 운영(자율적 공동 운영)’을 결의했습니다. 시설과 설비에 대한 강제 압류를 막기 위해 폐원된 건물에서 24시간 철야 농성을 벌였고,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연대, 시민 모금을 조직하며 2주 동안 어린이집을 자체적으로 운영해 냈습니다.
이 경험은 노동운동이 직장 담장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웅변합니다. 보육교사의 권리는 아이들의 돌봄권, 부모의 생활권, 지역사회의 공공성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등 다양한 주체들이 같은 생활 현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SNS는 단순한 상황 공유 도구에 불과했을 뿐, 운동을 추동한 알맹이는 어디까지나 현장에서 나눈 대화와 신뢰였습니다.
돌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조직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결합할 때,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연대가 열립니다. 이러한 살아있는 관계 맺음은 SNS 공간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식량 기부 급감에서 농작물 자급 생산으로
시기하라 | 센다이에서는 SNS상의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POSSE, 푸드뱅크 센다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센다이(Fridays For Future Sendai)’가 연대하여 지역의 실질적인 생존을 지키는 실천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주력하는 활동은 ‘식량 자급 생산과 분배’입니다. 먹거리 위기에 처한 이들이 늘어난 만큼 직접 식량을 생산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24년 10아르(약 300평) 규모에서 2025년 총 30아르(약 900평)로 확대되었고, 도쿄돔 5개 면적에 달하는 방치된 산림을 개간해 생산 거점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푸드뱅크 등 민간 지원 단체로 들어오는 기업의 식량 기부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푸드뱅크 센다이 내부에서는 2024년 7월경 물품 부족으로 식량 배부를 잠정 중단하고 생활 상담만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고민까지 오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의 지원 단체들은 통조림이나 라면 하나를 더 얻기 위해 기업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풀뿌리 진영이 직접 식량을 자급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이 신선한 채소와 쌀을 섭취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푸드뱅크 센다이 한 곳에서만 연간 7,000~1만 명의 빈곤층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에서, 시장과 기업에 기생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간 마을을 돌며 전단지를 배포하고, 농민들을 직접 설득하며 친환경 농법을 배우는 일은 결코 낭만적인 귀농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가장 치열한 현실 투쟁입니다. 지금의 모순을 방치한다면 수많은 시민들이 굶주림과 기후재난 속에서 스러져갈 것입니다.
기업의 식품 폐기에 의존하다 보니, 사회에 맞서 싸울 수 없게 되었다
시기하라 | 대다수 푸드뱅크는 기업의 ‘식품 재고·폐기물 기부’에 재정을 의존합니다. 사회적으로 식품 폐기는 줄어들어야 마땅하지만, 폐기가 줄어들면 빈민 지원이 중단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지원 단체를 보수화시킵니다.
기초생활보장(생활보호) 수급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푸드뱅크의 지원 없이는 끼니를 잇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넘쳐납니다. 지원 현장은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가장 밑바닥의 고통이 집약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드러난 부조리한 노동조건을 고발하거나 사회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기업의 후원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얌전한 단체’로 보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비판 의식(엄니)이 거세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조는 묻지 않은 채 음식만 배급하는 시혜적 자선활동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식량 지원은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정치적 문제 제기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합니다. 지원 단체가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는 생산 기반을 갖추는 것은, 자본과 국가에 길들여지지 않고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됩니다.

생활보호 운동을 통해, 생존 자체를 부정하는 국가와 맞선다
이와모토 | 도쿄의 빈곤 투쟁을 예로 들자면, 복지사무소가 온갖 핑계로 생활보호 신청 접수 자체를 거부하는 ‘문전박대(미즈기와 작전)’ 행태나, 취약계층을 열악한 무료 저가 숙박시설에 수용하는 국가의 반인권적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빈곤선 이하(가처분 소득 기준 연 127만 엔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는 약 1,932만 명에 달합니다(2022년 후생노동성 국민생활기초조사 추계).
그러나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이러한 체제의 폭력성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독사나 과로사, 치료비가 없어 방치된 죽음들이 마치 개인의 불운이나 ‘자연현상’처럼 묻히곤 합니다. 당사자와 우리가 연대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직접 싸울 때 비로소 사회의 은폐된 모순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활동가들이 당사자와 함께 복지 창구에 동행해 수급을 관철하려 하면, 담당 공무원들이 막무가내로 접수를 거부하거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시설 입소를 강요하는 민낯을 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복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장애인 수첩을 강제로 발급받게 한 뒤 부실한 민간 시설이나 그룹홈에 사실상 격리·감금하는 사례까지 빈번합니다. 이러한 현장의 생생한 실태를 기록하고 구조적으로 분석하여 폭로하는 과정이야말로 사회적 대립 구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출발점입니다.
와타나베 | 현장의 생존 투쟁 속에서 구체적인 요구를 다듬고 이를 대담한 선언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내걸었던 ‘생활 필수 인프라 무상화’, ‘학자금 대출(장학금) 전액 탕감’, ‘외국인 기능실습제도 폐지’ 같은 구호들은 뉴욕 시장 선거의 진보적 의제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허황되다”, “과격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끈질기게 투쟁함으로써 현실적인 변화를 일궈낸 성과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SNS 플랫폼이 초래한 고립감이 깊어질수록 오프라인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연대와 대안적 감수성을 갈망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동료와 함께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효능감이야말로 운동의 상상력을 되살리는 원동력입니다.

생활 필수 인프라의 무상화를 내걸고, 센다이시의 가스·수도 공급 행정을 바꾸다
시기하라 | 산림 개간 활동에 참여하는 한 청년은 대학 1학년 내내 방 안에서 유튜브와 X만 들여다보며 은둔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폐인이 되었다”고 느낀 그는 SNS의 중독적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산을 일구는 현장 활동에 합류했습니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중독 비즈니스’가 극에 달하면서 역설적으로 이에 저항하는 부정(否定)의 에너지가 움튼 것입니다. 이러한 청년들이 흙을 만지고 사람들과 협력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 모습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대담한 비전 제시와 관련해, 우리가 추진했던 ‘생활 필수 인프라 무상화 프로젝트’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과격한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료 급식 현장에서 마주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치열한 토론 끝에 길어 올린 가장 절박한 요구였습니다.
이 운동은 2022년 우울증으로 퇴직한 한 전직 간호사의 비극적인 사례에서 촉발되었습니다. 퇴직 후 저축이 바닥나고 수도마저 끊긴 채, 2주 동안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달걀 한 알로 버티던 분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화 상담 사례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푸드뱅크 이용자의 3분의 1 이상이 공과금을 체납하고 있었으며, 10%는 실제 단수·단전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겨 여름철 열사병이나 겨울철 동사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우리는 체납 가구의 수도 재개통을 지자체와 일대일로 협상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돈을 안 냈으니 끊는 것이 당연하다”, “성실 납부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행정의 냉대를 뚫고, 분할 납부 서약서를 통해 공급을 재개시키는 성과를 냈습니다.
나아가 1년 넘게 시민 서명 운동과 실태 고발을 지속한 끝에, 마침내 센다이시로부터 “가스와 수도는 체납되더라도 사전 통화 한 통만 이루어지면 단수·단가스 조치를 전면 유예하겠다”는 공식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습니다. 현장의 고통에 밀착하여 실태를 규명하고 끈질기게 조직화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던 제도적 장벽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필수 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기능실습제도의 폐지
오기타 | 노동 현장에서는 보육, 요양, 물류, 청소, 건설 등 이른바 ‘필수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담이 쏟아집니다.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을 수행함에도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갈려 나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대책은 명확합니다. 첫째는 필수 업무에 대한 과감한 공공 재정 투입(시설 운영비 증액 및 인력 배치 기준 대폭 상향)이며, 둘째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임금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를 던지면 기득권은 언제나 “재정 부담이 크다”, “비현실적이다”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처우 개선에는 “재원이 없다”고 발을 빼면서도, 대기업들은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며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쌓고 주주 배당 잔치를 벌여왔습니다.
따라서 운동은 지배 질서가 강요하는 ‘현실적 타협’의 프레임을 거부하고 현장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폭로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기존의 전제를 단호히 부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은 태동할 수 없습니다.
그 모순의 극치가 바로 ‘외국인 기능실습제도’입니다. 외국인 실습생들은 열악한 필수 노동 현장의 대체 인력으로 착취당하면서도 과중 노동, 임금 체불, 주거 인권 침해에 시달리며 직장 이동의 자유조차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견디다 못해 이탈하면 ‘불법 실종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이는 개별 사업주의 일탈이 아니라, 국가가 제도적으로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을 자본에 공급해 온 구조적 착취 시스템입니다.
일본의 산업 구조는 이러한 취약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지탱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기능실습제도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제도의 세부 조항을 손질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노동자를 ‘값싸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의 논리 자체를 철폐하기 위함입니다.
특정 집단을 예외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제도가 온존하는 한, 필수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 역시 하향 평준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 필수 노동에 대한 공공 투자 확대와 기능실습제도 폐지는, 이윤 중심의 사회 질서에 맞서 모든 인간의 존엄한 생존을 되찾기 위한 하나의 단일한 투쟁입니다.
와타나베 | “학자금 대출 탕감”, “기능실습제도 폐지”, “생활 필수 인프라 무상화” 같은 요구들은 기득권의 눈에는 ‘비현실적이고 과격한 주장’으로 보이겠지만,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구체적인 ‘생존권’ 관점에서는 가장 정당하고 절실한 과제들입니다.
이와모토 | 대담한 요구는 언제나 치열한 현장의 토양에서 싹틉니다. 이러한 요구는 국가나 자본의 선처를 구하는 청원주의나 의회 중심의 정치공학으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주체적으로 조직을 꾸리고 대중을 묶어세우는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설득하는 풀뿌리 조직화와 함께, 직접 흙을 일구어 먹거리를 생산하고 대안적인 돌봄을 실천하는 현장의 연대 운동에 더 많은 시민과 청년들이 동참할 것이라 믿습니다.
대담 : 이와모토 나나, 오기타 코타로, 시기하라 코이치로, 와타나베 히로토
번역 : 군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