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두와 만남 | 호르무즈 파병 반대 식탁과 낭독회로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나는 그때의 낭독을 통해 전쟁과 파병이 여러 사람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전쟁과 파병을 막는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하고 싶었다.
2026년 11월 04일지난 9월 28일, 저녁 돌곶이포럼은 ‘호르무즈 파병 반대 식탁과 낭독회’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쓴 짧은 글 하나와 최은미의 「너무 아름다운 꿈」(『너무 아름다운 꿈』, 문학동네, 2013) 일부를 낭독했다. (「너무 아름다운 꿈」이야 무척 좋은 소설이지만) 내가 들고 온 글은 그 자리에 완벽히 들어맞는 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도미야마 이치로의 『시작의 앎』(심정명 역, 문학과지성사, 2011), 뎡야핑의 『연대자의 윤리』(리시올/플레이타임, 2026) 등 전쟁이라는 비극을 관통하거나 현 세태에 밀접해 있는 글에 다 같이 생각해 볼 지점이 더 많았던 듯하다. 다만 직접 쓴 글을 가지고 온 것은 나 혼자여서인지 감사하게도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특별히 주목해줬다. 그 덕분에 내게 그 순간을 전할 수 있는 지면을 얻을 수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글에서 내가 내보일 게 있었던 ‘낭독회’ 이야기보다 다른 이들이 정성껏 만들어준 ‘식탁’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하고 싶다. 특히 만두 이야기. 깻잎 만두와 고수 만두 이야기 말이다.
나민이 보내준 포스터에 따르면 파병 반대 식탁과 낭독회는 원래 이렇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 1) 전쟁을 몰아내는 텍스트들을 가져온다.
- 2) 함께 텍스트를 낭독한다. 목소리에 목소리를 더하며 읽는다.
- 3)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정성껏 식탁을 차려 먹는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파병 반대 식탁과 낭독회는 내게 이렇게 느껴졌다.
- 1) 가지고 온 것이 전쟁을 몰아내는 텍스트든 포도든 쿠키든 상관없다. 일단 모인다(가지고 온 게 없어도 상관없다!).
- 2) 모인 자리에서 깻잎 만두와 고수 만두로 만든 만둣국을 나누어 먹는다.
- 3) 만두의 힘으로 누군가 가지고 온 텍스트를 낭독하고 대화를 나눈다.
- 4) 낭독하며 배가 꺼졌으므로 감자전을 구워 먹고 힘을 낸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만둣국이 다 완성된 후였다. 싱크대에는 밀가루 자국이 남아 있는 쟁반과 조금 남은 만두소가 든 대야 등 다 같이 만두를 빚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작은 집은 만두와 청경채로 끓여 낸, 따뜻하고 맑은 만둣국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 잘 왔다고 먹으려던 참이라고 말하며 모인 분들이 나를 반겨줬다. 말 그대로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니 뻘쭘했지만, 저녁을 못 먹은 관계로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뻔뻔히 숟가락을 놀리게 되었다.
큰 냄비에는 고수를 넣은 만두가 들어가 있고 작은 냄비에는 고수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깻잎을 넣은 만두가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뒤섞였는지 깻잎 냄비에 고수 만두가, 고수 냄비에 깻잎 만두가 종종 들어가 있었다. 고수를 예상하지 못하고 만두를 입에 넣은 이들이 종종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렇게 고수 만두에 당첨된 이들은 일단 입을 대어버렸으니, 책임감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그 만두를 처리했다. 그렇게 만두를 먹다가 생각보다 고수가 자기 입맛에 맞는 거 같기도 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해진 낭독회 시간은 9시였으나 수업이나 일정 때문에 그 시간에 사람이 다 모이지 못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모인 우리는 못 본 사이에 어떻게 지냈는지, 처음 보는 이라면 누구인지 질문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냉장고에 모아두었던 음료와 술을 홀짝이거나 냄비에 남아 있는 만둣국 국물을 야금야금 떠먹기도 했다. 열두 시간 전에 먹은 샌드위치가 마지막 끼니였던 나도 그쯤 되니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도 좀 풀어져 사람들 하는 말에 깔깔대며 웃거나 끼어들어 말을 꺼내기도 했던 것 같고.
사람들이 하나둘 더해질 때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이들은 “저녁은 먹었냐”, “배는 안 고프냐”하는 말을 도착한 이에게 건넸다. 다들 이 자리에 늦을 만큼 바빴던 사람들이었고, 바빠서 밥을 못 먹었음에도 이 자리에 늦게나마 오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만둣국은 데워지고 또 데워져야 했다. 그 탓에 국물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던 만두는 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풀어졌고, 사람들은 만두피와 만두소가 흩어진 국물을 마셔야 했다. 더 이상 어떤 게 고수 만두고 깻잎 만두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고수 향도, 깻잎 향도 물씬 나는 국물이 있었을 뿐.
냄비가 거의 다 비워졌을 때쯤에야 낭독회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저는 누구고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파병이나 전쟁을 잘 아는 건 아닌데요, 근데 맛있는 거 준다고 해서 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파병이나 전쟁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 이 자리에 오긴 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지금 논의되고 있는 파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나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소식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소식을 재빠르게 쫓고 곧장 반응하는 이들 물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았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서 낭독하는 게 맞는 일일까?’ 그때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나민이 현재 호르무즈 파병에 대한 상황을 한 번 정리해 줬고, 그 후 낭독이 시작되었다. 내가 쓴 글은 할아버지와 아빠에 대한 글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베트남에 파병된 사람이었고, 아빠는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이력이 있는 직업군인이다. 할아버지는 베트남 파병으로 국가유공자가 되셨고, 엄마는 아빠가 이라크에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와의 결혼을 결심했으며, 그 결심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의 딸이 되었다. 아빠가 아랍에미리트에 있었을 때는 트럼프가 전쟁을 선포하고 이란이 미국에 대한 반격으로 미군이 주둔한 중동권 국가를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게다가 하필 우리 가족은 그때 아빠를 보러 아랍에미리트에 가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폭음을 들으며, 사 두었던 한국행 비행기 표가 계속해서 취소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가늠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의 낭독을 통해 전쟁과 파병이 여러 사람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전쟁과 파병을 막는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덩달아 나는 나 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좀 징징거리고 싶었다. 자신이 전쟁과 파병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의 할아버지와 아빠를, 그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그들 앞에서 어떻게 평화와 폭력에 대해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이 겪었던 불안과 고통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그 일을 군 내부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해도 되는지 무척이나 고민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글에서, 할아버지와 아빠를 가족으로 둔 나,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나의 결론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제 유감(전쟁에 연루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향한 유감)을 감출 생각이 없다. 아빠와 할아버지를 작가의 관점에서 비난할 생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유감과 불쾌를 감출 수가 없고 따라서 아빠와 할아버지가 내 소설 속에서 존재했듯 유감을 감출 수 없는 나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 그 존재들을 경합시킬 것이다. 아빠와 할아버지를 마음 다해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랑 때문에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나는 그런 태세로 지금을 대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결론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이 낭독을 통해서 묻고 싶었다. 나는 이 경합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느냐고.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나민이 낭독해준 도미야마 이치로의 글이 내게 답이 되었다. 정효가 가져와 승지가 대독해준 뎡야핑 활동가의 글도 내게 답이 되었다. 무엇보다 낭독이 모두 끝난 후, 식탁에 모여 앉은 이들이 꺼내준 말 하나하나가 내게 답이 되었다. “사실 우리 가족도...”, “저도 우리 아빠 앞에서...”, “언젠가 제 동생 앞에서…….“ 그렇게 시작되는 말들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낭독회가 시작될 때는 그냥 먹을 게 있다고 해서 왔다고 했던 이들이 내게 그 이야기를 선뜻 내어주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뒤섞였고, 그러므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앞으로 더는 무관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무관할 수 없는 사이‘인 무리를 키우고 또 키우는 것이, 당장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조금 우스운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의 감동은 모두 만두 덕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날로부터 삼 주쯤이 지난 지금, 벌써 파병 반대 식탁과 낭독회 자리가 또 생긴다면 낭독하고 싶은 글들이 벌써 많이 생겼다. 이번 『문학동네』 가을호의 여는 글을 낭독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발제 순서를 정해 오카 마리의 『가자란 무엇인가』(2024, 두번째테제)를 몇 주에 걸쳐 읽어도 재밌겠단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다음 식탁과 낭독회가 있다면, 그땐 꼭 내가 만두를 빚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그 안에 깻잎이 들었든, 고수가 들었든, 먹는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 만두를. 계속 끓여지는 바람에 그 형체가 다 흩어지더라도 국물을 더 향긋하게 만들 뿐인 만두를. 우리가 그날의 만두처럼 우연한 만남을 만들고, 또 풀어지고 뒤섞이는 존재가 될 때 평화가 오리라고 믿어볼 수는 없을까, 나는 생각한다.
또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속으로 들어오기를 빌어보고.
글 : 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