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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역사로 읽는 이란 침략 전쟁과 호르무즈 위기

제국주의의 역사로 읽는 이란 침략 전쟁과 호르무즈 위기

제국주의 국가의 개입은 언제나 야만적인 폭력으로 점철되었으며, 평화와 자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2026년 10월 27일

10월 15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에 가맹 중인 서울대학교 학내 4단위 공동주최로 ‘이란 현대사와 호르무즈 위기’ 강연회가 열렸다. 공동주최 단위는 관악중앙몸짓패 골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지부 서울대학교분회,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공동행동(약칭 비서공),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기구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다.

강연자인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모국인 이란을 비롯한 서아시아 정치사와 지성사, 이슬람 해방신학, 탈식민주의 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집회와 발언으로 긴급행동과도 연대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아덴만에서 오만만까지 확대하고 해상초계기의 추가 파견을 검토하는 등 호르무즈 우회 파병을 밀어붙이고 있는 지금, 중동 호르무즈 위기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이번 강연은 시아바시 교수의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반전운동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시아바시 교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이란에서,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침략 전쟁과 3년 넘게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마주하고 있다. 중동의 분쟁이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이란 침략 전쟁이 초래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중동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두의 지구를 파괴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 (사진 출처:서울대저널)
시아바시 사파리 교수 (사진 출처:서울대저널)

봉쇄

그는 먼저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한 이유에 대해 짚었다.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은 오늘날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다. 올해 2월 28일 시작된 이란 침략전쟁 시작 직후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 개전 직후 1개월간 퍼부은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이란에 퍼부었다. 국가원수인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정계 및 군부 최고지도자 50여 명이 첫 48시간 동안 몰살당했다. 그 보복으로 이란이 중동의 미군기지를 타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군사적 요인이다. 미국은 중동 전역에 군기지를 가지고 있고, 수십 년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에 물자를 보급해 왔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이란을 폭격하려는 이 지역의 미 해군 작전을 제한할 수 있다. 봉쇄의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모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판매하는데, 이곳을 봉쇄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중동 미군기지 폐쇄를 강요하려는 전략이다. 또한, 봉쇄로 인해 미국, 한국, 유럽 등 대부분 국가의 유가가 오를 것이고, 미국과 서방의 대중들이 그 불만으로 자국 정부를 압박해 전쟁을 멈추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미국이 이란을 침략한 이유를 짚었다. 미국은 핵무기 위협을 명분으로 이란을 공격했지만, 이란이 임박한 핵무기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주장 역시 증거가 없었다. 이란의 유도탄은 미국에 도달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또 하나의 명분은 미국이 독재 정권으로부터 이란인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독재정권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실 이 전쟁의 진정한 성격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중동은 미국에게 있어 무역적,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은 중동, 특히 페르시아만을 장악하고 싶어한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을 '트럼프해협'이라고 부르자고까지 했다. 현재 미국에게 이란은 자신의 패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지만, 사실 이란은 1979년까지는 미국의 동맹이었다.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는 이란의 혁명 정부를 탄압했고, 그 이후의 긴장이 지금의 이란 전쟁까지 이어진 것이다.

제국주의

시아바시 교수는 제국주의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이 전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서구 제국주의는 5세기에 걸쳐 중동과 호르무즈 해협을 지배하려고 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은 인도양 무역과 향신료 무역을 통제하기 위해 호르무즈를 지배했다. 18-19세기에는 영국이 페르시아만 일대를 공격해 지배력을 확대하고, 오늘날의 예멘, 오만, 바레인 등지에 군사기지를 세웠다.

그는 이란이 공식적으로 서방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이란 역시 식민주의의 희생자였다고 말한다. 이란은 20세기 열강인 러시아 짜르 제국과 대영제국에 의해 최소 두 차례 점령당하고 분할되었다. 두 제국은 아시아와 이란 통제를 위해 경쟁했다. 1907년 영러협상을 통해 이란은 북쪽의 러시아 영향권, 남쪽의 영국 영향권으로 나뉘게 된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909년 영국이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를 세우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영국 석유회사 BP(British Petroleum)의 전신이다. 이 회사가 남이란의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채굴하고 판매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이란을 침공해 이란의 거의 전역을 군사점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미국은 제국으로 부상했고, 페르시아만 지역에 미군기지를 세우고 이란 점령을 위해 3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었던 소련, 영국, 미국은 이란의 영토를 경유해 소련에 물자를 보내기 위해서 이란의 철도와 도로를 장악한다. 그리고 이란의 트럭과 차량을 징발해 소련으로 식량, 보급, 무기, 탄약 등을 보냈다. 그 결과 이란인들은 자국의 도로, 철도 등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대규모 식량 부족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기아와 질병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이란인 300~400만명이 사망했다. 연합국의 이란 점령은 1946년까지 계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1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박사가 이란의 새 총리가 된다. 사회민주주의자였던 그는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해 영국으로부터 석유의 채굴, 정제, 수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자 했다. 그러자 영국은 이란에 전쟁위협을 가하고, 엄격한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영국 해군은 이란의 석유, 주요 원자재, 물자, 식량의 수출입을 막았고, 영국정부는 이란의 자산도 동결시킨다. 1953년 8월 19일 미국과 영국은 이란 군부와 협력해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팔라비 국왕의 독재 권력을 강화했다.

쿠데타 이후 1979년의 이란 혁명 전까지 이란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샤) 국왕의 군주 독재 체제에 있었다. 미국은 이란 정부가 SAVAK이라는 비밀경찰 조직을 창설하는 데 깊이 관여했는데, 이 조직은 반정부 세력을 억압하고 반체제 인사들을 납치, 고문, 살해했다. 1953~79년은 냉전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란 국왕은 이 시기 미국을 대신해 무기, 제트기, 대포, 탱크를 제공했다. 60년대 베트남전쟁 때에도 미국에 의료와 물자를 제공하고, 1972년 오만 내전의 마르크스주의 반군과 싸우는 데 이란군 수천 명을 파병하기도 했다. 이란정부는 중동에서 미국의 헌병 역할을 철저히 수행했다.

군주정과 미국에 반대하는 1979년 이란혁명 시위대
군주정과 미국에 반대하는 1979년 이란혁명 시위대

이란 국내에서는 미국의 CIA요원이나 다름없던 국왕에 대한 반정부 정서가 높아졌고, 시위도 일어났다. 이란 국외의 이란인들, 유럽과 미국의 이란인들, 이란인 유학생들도 반대집회를 조직했다. 이란인들의 저항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1978년 말~ 1979년 초 20세기 최대 규모의 대중혁명인 이란혁명이 일어난다. 이란혁명은 근현대사상 최대 규모의 혁명 중 하나로, 1978년 12월에는 전체 인구의 약 16~24%에 해당하는 600만~9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정주의 세력의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비롯해, 이슬람 사회주의자인 알리 샤리아티와 사회민주주의자인 모사데크의 사상을 계승한 세력까지 다양한 정치세력이 참여했다. 시위대의 이념은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이슬람주의를 지닌 사람들까지 다양했으나, 왕정과 제국주의를 내쫓자는 면에서 이들은 단결했다. 그들은 미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979년 1월 마침내 국왕이 쫓겨나자,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다양한 이념의 지도자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호메이니가 주도권을 장악했고, 4월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이 된다. 같은 해 12월 새 헌법이 제정되면서 호메이니의 최고지도자 권력이 확립되었다. 새 헌법이 제정되고,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이 된다.

미국

한편, 이란인들은 독재자 이란 국왕을 재판에 세우고 싶어했지만, 미국은 이란 국왕의 미국 망명을 받아주고, 이란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1979년 11월, 이란의 청년, 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고 점령해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 미 대통령인 지미 카터는 이란 국왕이 자신의 친구라며 오히려 이란에 제재를 부과한다. 미국 은행의 이란 자산 120억 달러가 압류되었고, 미국은 여전히 이 돈을 가지고 있다. 대사관 위기는 444일간 계속되었고 1981년 1월에야 직원들이 풀려났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1980년 사담 후세인의 독재 아래 있던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해 8년 간 전쟁이 이어진다. 이 무렵 이란이 북한과의 관계를 구축하는데, 이란에 무기를 제공할 의지가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제재 때문에 이라크와의 전쟁 기간 중 이란은 다른 나라로부터 물자나 무기를 살 수 없었던 반면, 이라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로부터 무기를 계속 공급받았다. 시아바시 교수는 이 기간에 이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도시에 떨어진 이라크군의 폭탄이 미국에게 공급받아 프랑스 제트기에서 투하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쟁 막바지 2년간, 사담 후세인은 이란 군인들과 민간인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이 무기는 독일제로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살포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은 1988년 미 군함이 페르시아만에서 기뢰에 손상된 사건을 계기로 이란의 해상 시설과 군함을 공격하는 ‘사마귀 작전’을 벌였다. 다른 중동 국가들 역시 이라크 편을 들어 자금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이란이 사우디, 쿠웨이트, UAE 등의 석유를 차단하려고 해협 봉쇄를 꺼내든 것이다. 미 해군은 이란 해군기지와 유정을 폭격했고, 많은 이란 군인들이 죽었다. 이란 민항기 격추로 290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이란·미국의 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던 1990년대를 지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이란에 대해서도 군사적 위협을 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으로 미국이 수렁에 빠졌기 때문에 실제 이란 공격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전쟁 위협은 계속되었다. 민주당 오바마 정부 때도 위협은 계속되었다. 그 외에도 사이버공격, 이란의 군 지휘관과 핵과학자 암살 등 간접적인 전쟁이 2000~2010년대 내내 지속되었다. 오바마는 ‘치명적 경제제재’라 부르는 제재로 의약품, 의료 장비, 식량 등의 접근을 가로막는 잔혹한 정책을 지휘했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미국의 저강도 전쟁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란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맞설 수 없기 때문에, ‘비대칭억지전략’이라 부르는 새로운 국방전략을 채택했다. 첫째는 핵 헷징, 둘째는 자국 군수산업 육성, 셋째는 역내 동맹들의 연결망 구축이다. 시아바시 교수는 먼저 핵 헷징의 개념부터 설명했다. 1970년대 왕정 시절 처음 시작된 이 개념은 일본이 시작해 여러 나라들이 일본을 흉내내 취한 전략으로, 공식적으로는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과학기술을 이용해 핵무기를 갖는 데 필요한 것들은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다. 시아바시 교수는 이란 역시 핵 헷징을 통해 미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 능력을 상당 부분 갖췄음에도 결국 공격을 당했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전략은 자국 군수산업 육성으로, 제재로 다른 나라에서 무기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드론, 유도탄 등 자체적인 개발로 군수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다. 세 번째는 역내 동맹들과의 연결이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등과 동맹을 맺어왔다.

위기의 시대

이란 포위망의 주요 미군기지와 병력 수
이란 포위망의 주요 미군기지와 병력 수

현재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도 분쟁이 진행 중이다. 예멘은 영국 식민주의와 남북 분단, 통일 이후의 정치적 갈등을 거치며 오랫동안 분쟁을 겪어 왔고, 현재 내전의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후티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기존 송유관을 활용해 석유 수출을 우회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동부에서 홍해 연안의 얀부항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을 통해 석유를 운송하고, UAE는 하브샨에서 오만만 연안의 푸자이라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이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얀부항에서 출발한 유조선은 유럽으로 향할 경우 수에즈 운하를, 아시아로 향할 경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다. 그런데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예멘 바로 옆에 있다. 이란과 동맹 관계에 있는 후티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로 공격을 감행해 왔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더라도 후티의 공격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란을 넘어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통제권과 예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란 전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 국제수역이 아니라 이란과 오만의 영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양국의 공동 관리를 주장해 왔다. 시아바시 교수는 미국이 여전히 호르무즈를 통제하고 싶어하지만, 세계는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 중 하나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의 힘의 균형의 변화라고 지적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첫 질문은 현재 파키스탄과 튀르키예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후 예멘의 후티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쟁에 참전했는데, 이후의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연사는 미국 제국주의가 쇠퇴하는 가운데, 중동의 석유와 지정학적 이점들 때문에 더욱 중동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하고 싶어하는 점을 지적했다. 미중 경쟁 때문에 중국을 중동에서 쫓아내고 싶은 점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동의 많은 친미 국가들은 이란 침략 전쟁 이후 이란의 공격을 받아왔으며, 미국이 자국의 안보 우산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점을 경험했다. 미군기지가 있는 곳은 모두 이란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카타르를 공격했을 때도 미국은 동맹인 카타르를 보호하지 않았고, UAE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었다. 사우디와 튀르키에, 파키스탄의 동맹도 하나의 옵션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튀르키에를 다음 표적이라고 주장하는 지금 미국만큼이나 중동의 힘의 균형 역시 변화하고 있다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질문은 이란혁명이 다른 국제적인 대중시위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연사는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이란에는 어디에나 혁명정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혁명이 터지자, 유학생들이 귀국해 이란 혁명에 참여했는데, 그들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미국, 유럽, 전세계의 혁명운동을 알게 되고 여기 참여하게 되었다. 흑인민권운동,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반전운동,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 여성운동 등 수많은 운동에 함께했다. 이것은 초국가적 혁명정신이고 연대정신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자신의 해방과 다른 사람의 해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란 밖에 있던 이란인들이 다른 혁명운동들에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었고, 이란의 혁명이 다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9년 혁명이 터지자 이란으로 돌아온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했고, 3.8 국제여성절에 혁명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란 여성들이 누구도 히잡을 강요할 수 없다고 외치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이란으로 가 그 시위에 함께했다. 이란의 다음 혁명은 여성혁명이 될 거라고 외치면서. 이것은 초국가적 혁명이었다. 이 당시 모든 혁명가들은 이란에 가길 원했다.

전쟁이 이란 사람들을 독재에서 해방시킬 거라며 미국을 옹호하는 주장을 이란인들이 어떻게 봐야하냐는 질문도 있었다. 시아바시 교수는 단일한 ‘이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란인은 한 덩어리로 된 집단이 아니며, 이란인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을 지지하는 이란인들이 있고, 재한 이란인들 중에도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외국을 군사적으로 침략해서 다른 나라 국민을 해방시키겠다는 이른바 ‘해방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폭탄과 유도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오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당신의 땅에 들어와서 당신을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천명을 살해한 이란 독재정부에 대한 분노와 트라우마로 외부 개입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은 전쟁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바꿨다는 말도 덧붙였다. 7개월간 폭격과 제재가 이어지고, 수천 명이 죽고, 300만 명이 피난민이 되는 것을 보며 삶의 붕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쟁에 반대한 이란인도 많았다. 수천 명이 매일 밖으로 나와 전쟁반대를 외치고, 다리 위에 서서 “이란의 교량과 민간 인프라를 폭격하려면 우리를 죽여야 할 것이다” 라고 외쳤다. 연사 또한 민주적이고 인권이 있는 이란을 원하지만, 그것이 제재나 전쟁으로,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같은 제국주의 국가, 집단학살 국가의 침략으로는 더더욱 달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호르무즈 파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현재, 한국과 이란 전쟁의 연관성과 북한과 이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란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을 지지하고 연료 등 물자 지원을 제안했으며, 이후 남북 모두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혁명 이후 북한이 이란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가까워졌지만, 군사적으로 자급자족하는 현재 두 국가는 예전만큼 가깝지 않고, 최근에는 러시아나 중국과 좀 더 가까워졌다. 호르무즈 파병에 관해서는 한국정부가 참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말과 함께 이란 침략 전쟁이 중동 전체를 불태우는 일임을 확실히 했다. 중동에 무기를 더 보내고, 함정을 보내고, 군함, 군인, 장비를 더 보내는 모든 것이 이 불에 연료를 더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우리가, 한국이 해야할 것은 이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이 언젠가 중동을 떠날 미국이 아니라 중동국가들과의 장기적 관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제

강연에 함께 한 참가자들 (사진 출처: 서울대저널)
강연에 함께 한 참가자들 (사진 출처: 서울대저널)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고, 무슨 행동을 해야 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우리가 속한 어떤 곳이든, 공동체든, 회사든 우리가 믿는 원칙을 고수하고 반전 의제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관, 정부, 회사, 대학이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대학은 하나의 공동체이며,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대학이 내리는 우리 사회와 관련된 모든 결정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함을 강조했다. 대학이 집단학살 국가인 이스라엘 센터를 만들고, 무기 대기업들이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것, 그런 기업들과 대학이 협력하는 것, AI기반 무기 기술을 만들기 위한 협력에 우리의 학비와 월급이 쓰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를 바라며 그것을 돕고, 따르겠다고 말했다.

강연 서두의 지적처럼 우리와 이란, 중동,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평범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고유가, 고물가로 고통받고 있다. 공공복지에 쓰여야 할 예산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무기의 생산과 유지에 낭비되고 있다. 매년 청해부대 파병에만 연간 수백억 원이 소요된다. 국방부가 추계한 2025년 파견연장 소요예산은 376억 원에 달한다. 청해부대는 해군 함정과 특수전 요원 등이 포함된 무장 전투부대일뿐더러, 전쟁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지원은 전쟁을 부추길 뿐 끝낼 수 없다. 우회 파병이든, 비전투병 파병이든, 모든 파병은 장병들과 중동 지역의 교민들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혹시라도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한국은 당사자로서 이란 전쟁의 수렁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모든 파병 계획을 당장 중단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란침략 전쟁 개입은 아무런 명분이 없고, 중동의 전쟁을 막는 것은 곧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란 현대사 강연을 통해 제국주의 국가의 외국에 대한 개입은 언제나 야만적인 폭력으로 점철되었으며, 그 개입은 결코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평화와 자유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강연이 끝난 후 사회자는 격주로 열리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집회와 1인 시위 등 실천 활동들을 소개했다. 서울대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가입 단위들이 앞으로 반전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할 기회를 넓혀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학뿐 아니라 회사, 지역사회 등 곳곳에서 이런 강연회, 토론회, 시위와 직접행동 등을 통한 반전운동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글, 정리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