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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문제에 대해 좌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대만 문제에 대해 좌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대만 정책에 관한 논쟁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는, 이런 논의들이 대만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대만인의 참여도 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2026년 10월 31일

이 글의 공동 필자는 레베카 칼(Rebecca Karl), 아민다 스미스(Aminda Smith), 파비오 란자(Fabio Lanza) 등 <포지션 폴리틱스>(Positions Politics)의 프락시스(Praxis) 섹션 편집진이다. <포지션 폴리틱스>는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여러 연구자들이 창립한 학술지로, 네 개의 칼럼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프락시스>다.

우리는 최근 “대만 문제에 대한 좌파적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은 정치적 긴박함을 수반한다. 질문자에 따르면, 올해 2월 ‘뮌헨 안보 컨퍼런스(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미국 민주당 내 진보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이하 AOC)가 '대만 문제'에 답할 때 지나치게 어설프게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중국 근현대사 연구자로, 줄곧 이 문제를 정리하려 애썼다. 좌파의 원칙에 철저히 부합하면서도, AOC 같은 정치인이 오늘날의 현실 정치 속에서 실제로 발언할 수 있는 '좌파적' 논리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가장 적절한 표현과 논리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질문자도, 우리 자신도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뮌헨 안보 컨퍼런스’에서 블룸버그 방송의 진행자는 AOC에게 "중국이 침공한다면, 미국은 정말로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AOC는 말문이 막힌 듯 얼버무리다가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할 뿐, 파병 여부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이는 우파에게는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고, 좌파에게는 참담한 광경이었다. 이에 우리는 대만 현지의 목소리를 찾아 미국 좌파가 대만 문제에서 방향을 잡는 데 참고가 될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뮌헨 회의에 참가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 하원의원
뮌헨 회의에 참가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미 하원의원

왕즈밍(王智明)은 ‘중앙연구원 유럽·미국연구소(中央研究院歐美研究所)’ 부소장이자, 대만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반전 성명(反戰聲明)』의 연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글에서 '반전' 입장을 계속해서 설명하며, 미국 좌파가 대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전에 먼저 미국 역사 발전 과정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대만을 강대국 간 게임의 졸(卒)로 취급하는 것을 거부하며, 양안 사이의 복잡하고 실재하는 역사적 연결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네 학자의 관점은 왕즈밍과 다르지만, 각자 고유의 분석 틀과 진입점을 제시한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대만 연구 과정을 운영하는 린위샹(林宇翔)은 일부 서방 좌파가 반미 감정 때문에 중국공산당을 맹목적으로 미화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좌파는 미국 패권과 중국공산당의 팽창적 야심 모두를 거부해야 하고, 대만이 자국 방어를 위해 실용적인 '고슴도치 전략(porcupine strategy)'을 채택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명교통대학(國立陽明交通大學)의 류지후이(劉紀蕙)는 진보파가 경직된 '반전' 교조에 묶여 권위주의적 팽창에 직면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좌파가 '피압박자의 정치적 주체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만 인민의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미 제국주의 패권 지지와 결코 같지 않다고 역설한다.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성장했고, 대만에 정착한 후로는 대만 원주민 언어 중 아메이어(阿美語)에 능통한 동화대학(國立東華大學) 족군관계·문화학과 부교수 P. 케림 프리드만(P. Kerim Friedman)은 최근 국제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만 만유록(臺灣漫遊錄)』(한국어판은 ‘1938 대만 여행기’)을 실마리로 삼아, '전략적 모호성'과 탈식민지적 상황 아래 대만의 생존 현실을 드러낸다. 그는 냉전 이분법을 깨고 '밀크티 동맹' 같은 풀뿌리 연대를 통해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만에 국제적 지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역시 양명교통대학 소속인 셰이이(謝一誼)는 더 넓은 시·공간적 차원에서 대만 문제를 직시한다. 베네치아 예술 노동자 파업과 베르사유 강화회의에서 외면당했던 호찌민의 좌절을 교훈으로 삼아, 미국 좌파에게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는 '정착민 식민주의'적 시각을 버리고 자치를 수호하려는 대만인의 진실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력히 요청한다.

왕즈밍 | 좌파와 '좌경(左傾)'

미국 좌파의 입장은 무엇보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미국 제국주의를 강력히 규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미국이 식민 강대국임을 인정하고, 그 본질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미국은 19세기에 북아메리카·하와이·태평양 도서(필리핀, 오키나와, 대만 포함)의 원주민을 식민지로 수탈하여 당시 중국에서 진행되던 식민지 분할에 참여했고, 냉전 시기에는 반공 정책을 추진했으며, 탈냉전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중국 시장에서 이익을 챙겼다. 미국의 대만 정책은 줄곧 그 식민지적 역사와 자본주의적 제국 야욕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는 1850년대 미 국무부가 대만 병합과 식민지 거점·해군 기지 건설을 시도했던 각종 제안에서부터, 1867년 로버 호(Rover號) 사건으로 원주민에게 감행한 실패한 원정, 당시 원정에 가담했던 주샤먼 미국 영사 찰스 르장드르(Charles le Gendre)가 훗날 일본의 대만 침략을 도운 일,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으로부터 대만을 탈취하려 했던 '방파제 작전(Operation Causeway)'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은 반공을 명분으로, 과거의 국민당이든 현재의 민진당이든 가리지 않고 미국 제국주의의 도구로 삼아 왔다. 미국 좌파에게 대만에 관한 좌파적 입장은 반드시 이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좌파 정치가 해방을 향한 열망과 자결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면, 미국은 대만을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삼는 것을 중단하고, 대만에 거짓된 독립의 희망을 주는 것을 중단하며, 진정성 있게 중국과 협상하여 대만의 자치와 민주적 삶의 방식을 보장해야 한다. 이 보장은 무력 과시가 아닌 가치에 의한 설득에 기반해야 한다. 대만은 미국의 전략이나 국가 이익의 ‘졸’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함께 수호하는 파트너로 여겨져야 한다. 지난 30여 년간 대만은 민주주의가 중화권 사회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기능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다. 전 세계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민주 사회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전쟁 때문에 소멸하는 것이다. 대만이 민주적이고 활력 있게 유지되는 것이야말로 전제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에 맞서는 장기적인 승리다.

셋째, 대만 문제는 복잡한 역사의 산물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으며, 1895년 이전 중국은 섬의 원주민에 대한 부분적인 관할권을 갖고 있었다. 1945년 대만은 중국으로 귀속되어 국민당이 중화민국의 이름으로 통치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국민당은 대만으로 패퇴했다. 대만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 이곳은 중국과 깊은 문화적 연결을 갖고 있다. 따라서 대만이 현재 실질적 독립을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중국과의 복잡한 관계를 단순히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환원할 수는 없다. 평등과 정의를 중시하는 좌파적 대만 방침은 이러한 역사적·정치적 뉘앙스를 인정해야 한다. 대만의 독립 열망을 직시하면서도 양안 사이에 진지하고 강력한 연결이 실제로 존재함을 인식하되, 그것을 단순히 중국의 통일전선 책략으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양안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건설적인 대화와 분쟁 해소를 장려해야 하며, 이 작업이 오늘날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번영에 불가결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대만을 재통합하고자 한다는 의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며, 미국의 역할은 현상이 폭력이나 강압에 의해 바뀌지 않도록 보장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은 양안 인민 스스로 협의하도록 맡기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만에 대해 좌파는 전쟁을 절대 피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미국이 대만에서, 혹은 과거 이란·이라크·아프가니스탄·베트남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제국주의적 입장 외에 다른 어떤 입장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고 솔선수범하여 전 세계적인 군비 축소를 이끌어야 한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이 '미국 중심주의'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강령을 넘어, 공존과 생태 안보 같은 지구 전체의 관심사로 초점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AI에 대한 맹목적인 경쟁은 제한되어야 하며, AI의 응용을 사회 복지와 정의로 돌려야 한다. 사리사욕이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 아직 여력이 있는 동안 미국은 진정한 '자유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지역적 차이를 존중하고 포퓰리즘 정치를 억제함으로써 글로벌 거버넌스를 장려해야 하며, 호전성과 무기 거래에서만 이익을 얻는 일괄적인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린위샹 | '반제국주의'와 '반전제주의' 사이에서

대만 문제는 미중 두 나라의 각축 속에 끼어 있고, 자칫하면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대만 정책에 가장 정통한 정치인이라 해도 명확한 대만 정책을 수립하기란 여전히 지난한 일이다. 어느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정책은 미국에 상당한 유연성을 부여하여, 대만이든 중국이든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먼저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중 억지'를 구사할 수 있게 해 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이 유지해 온 현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만·미국·중국 3국 간의 구조적 조건이 변화하고 있다. 대만은 계엄 통치를 시행하던 권위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품고, 동성 결혼을 허용하며,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는 다원적 사회로 탈바꿈했다. 과거 국민당 통치로부터의 '탈식민화' 과정의 일환으로, 대만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동일시를 거부하고 있으며, 불과 3%만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 추세는 역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베이징의 중국 중앙정부에게 대만과의 '통일'(사실상 흡수)은 오래된 국가 목표다. 최근 들어 중국공산당의 군사 역량은 대폭 강화됐고,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전면 침공에 미치지 않는 각종 '회색지대' 수단도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예컨대 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는 끈질기고 강력한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이 그것이다. 2016년 이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입장은 날로 적대적으로 변해, 중국을 미국 패권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게 됐다. 미국의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대만 문제를 미중 관계에서 잠재적인 협상 카드나 반대 세력을 분열시키는 쐐기 이슈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만 문제는 두 세계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촉발하고 세계 경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블룸버그는 그 손실 규모를 10조 달러로 추산하는데, 이는 2009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을 합산한 것보다 크다. 따라서 대만 문제에서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미묘한 결을 살린 입장을 취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좌파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국제 정책에서 좌파의 기본 원칙은 세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만에도 적용된다. 침략과 적대 대신 외교와 협력을, 일방적 행동 대신 다자 참여와 합의 구축을, 국경을 초월한 무한 자본주의로 악화되는 세계적 경제 불평등,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지속적인 기후 변화처럼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들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대만 문제에서 좌파의 절대적 입장은 어떤 형태의 제국주의에도 반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쇠퇴하는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을 대중 견제의 카드로 삼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에 반대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중국공산당의 대만에 대한 '실지 회복 민족주의' 주장, 즉 대만 인민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는 것도 거부함을 의미한다.

대만의 문화와 이민 역사는 확실히 광의의 '한자 문화권'과 연결되어 있지만, 문화적 연원은 주권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더욱이 대만 병합을 합리화하는 데는 절대로 사용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대만 독립 지지자들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폄하하려 하지만, 대만인들의 자치 열망은 이미 한 세기를 넘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와 국민당 독재 통치를 차례로 벗어나기 위한 험난한 투쟁과 주장을 통해 인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왔다.

따라서 좌파는 대만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지지해야 한다. 대만인 대다수는 중국에 동일시하지 않으며 베이징의 주권 주장을 거부한다. 빠른 통일을 지지하는 비율은 1.1%에 불과하고, 미래 어느 시점의 통일을 지지하는 비율은 6.1%다(아마도 베이징의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를 가정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들도 마찬가지로 증폭되어야 한다. 여러 세기에 걸친 '정착민 식민주의'에 의해 주변화된 대만 원주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현대 민족 국가의 등장보다 수천 년 앞서 이 땅을 관리하고 지켜 왔다. 좌파는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지속적인 식민주의가 원주민에게 가하는 억압에 반대하고, 고용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며, 대만·중국·미국 나아가 세계 각지에서 민간 사회와 거버넌스 권한을 포퓰리즘·민족주의·신자유주의에 내어 주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물론 주류 정치인은, 비록 좌파라 할지라도,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면서 '순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이란 등지에서 일방적인 전쟁이 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입장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컨대 미국이 완전 철수 신호를 내보낸다면(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중국공산당의 침공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대만을 방어하겠다고 약속한다면, 베이징이 궁지에 몰려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느낄 경우 이 역시 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샌더스나 AOC 같은 저명한 좌파 인사들의 입장—즉 전 세계적 권위주의의 부상이 우리에게 노동을 지지하는 국제 정치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운다는 것—은 베이징이 의존하는 민족주의와 무력 시위를 실제로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국가 기구에 대한 장악력은 경제 호황과 불황 주기에서 모두 강고해 보이며, 대만에 대한 민족주의적 '수복' 입장도 1950년대 이후 기본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그럼에도 좌파는 이 문제에서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의 대만인은 미국과 그 동맹 체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명백히 문제가 있다—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대만의 묵인적 지지가 그 뚜렷한 예다. 대만에서는 트럼프(그의 첫 번째 임기 중)를 축하하는 퍼레이드가 열리기도 했고, 고(故) 일본 우파 자민당 지도자 아베 신조를 흠모하는 경향도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상당히 문제적인 정치적 입장으로, 대만 시민을 세계 각지의 식민주의적·외국인 혐오적·여성 혐오적 정치 세력과 연루시킨다. 일부 대만 좌파는 이 때문에 미국을 거부하지만, 그러다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달아 중국공산당을 미화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이미 공개적으로 대만 병합 계획을 밝혔고, 대만에 권위주의 통치를 실시하여 대만 민심이 자신의 주권을 수호하는 배경에 깔린 진실된 '탈식민지적 정당성'을 지워 버릴 것이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 외에도, 식량과 의료 분야에서 전 세계적 연쇄 붕괴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중국공산당의 통치는 거의 틀림없이 대만을 권위주의 통치의 어둠 속으로 되돌릴 것이다. 신장과 홍콩에서 베이징이 한 일을 보면, 대만이 중국공산당에 통치된다고 해서 낙관할 여지는 전혀 없다.

도발 없이 외교적 노력을 지속한다는 이상과 대만에 일정 수준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것—현실 정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좌파적 입장의 수정

미국의 관점에서 핵심 문제는 '공약'이다. 제니퍼 카바나(Jennifer Kavanagh)와 스티븐 베르타임(Stephen Wertheim) 같은 미국 외교 정책계의 반전 목소리들은 미국이 대만과 관련된 어떠한 분쟁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완전 철수'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자국 군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만이 자국 방어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입장은 워싱턴의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1979년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보장하지만, 이 규정이 미국 방위 계약업체와 워싱턴의 주전파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준다는 점은 확실히 받아들이기 불편하다. 이상적으로야 무기가 더 적은 세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만 문제의 경우, 중국공산당은 대만 병합을 내정이자 역사적 필연으로 보고 있음을 이미 분명히 밝힘으로써 대(對)대만 무력 사용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는 (서구)좌파의 입장과 현실주의자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절충안일 것이다.

대만의 관점에서, 수정된 좌파 정책은 여러 극단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미국 군산 복합체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지만,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군산 복합체에 자신을 의존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대만은 '고슴도치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분쟁을 억지할 수 있는 일정한 안보 보장을 확보하면서,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격용 무기는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 복지·전 국민 건강 보험 유지 등 중요한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대만의 능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대만은 또한 소통과 가능성을 열어 두는 방식으로 베이징과의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 중국 관광객들이 대만에서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과거처럼 중국 유학생들과 대만 사회를 진정으로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 새 세대 중국인들은 이전 세대보다 대만과의 접촉이 적어 대만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물론 베이징이 대만 병합을 추구하고 있고, 외교적으로는 대체로 타협하지 않는 쪽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또 베이징이 현재 집권 중인 민진당과 교류를 꺼린다 해도, 타이베이는 낙담해서는 안 된다.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는 때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낳는다. 린샤오팅(林孝庭)과 조지프 토리지언(Joseph Torigian) 같은 학자들의 연구가 지적하듯, 냉전의 절정기에도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보이던 지도자들이 중요한 정치 문제에서 여전히 조율하고 협상할 여지를 갖고 있었다. 1980년대 발트해 연안 국가의 저항 운동가들도 당시에는 1990년대의 변혁이 자신들을 독립 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외교의 효용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도 있지만, 외교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데는 거의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대만과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베이징의 대만 침략은 '실지 회복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야망임을. 대만과 미국 모두 다른 나라들이 대만을 내정 문제로 보는 베이징의 주장을 반박하도록 장려하고, 대만인이 자신의 미래를 자결할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해야 한다. 베이징의 대만 정보전에 대응하기 위해 대만과 미국은 대만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부각시켜야 한다. 한족 이민자의 후손만이 아니라 원주민, 동남아시아 출신의 '새로운 주민(新住民)', 역사적으로 소외된 다른 목소리들을 포함해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대만의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 포럼에서의 대표권을 지지해야 한다.

중국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책임 있는 글로벌 참여자라고 주장하는 한, 우리는 책임 있는 강대국에게 기대되는 규범적 기준으로 중국을 요구해야 한다. 현재 자유주의적 국제 규범에 대한 논의가 역사적 저점에 처해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의 외교 정책을 보면 중국은 여전히 구두로나마 국제 체제와 다자 국제 사회의 규범을 추종하고 있다. 어떤 단일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아니라. 좌파는 국제 체제의 모든 구성원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위협받지 않고 생존하려는 대만 인민의 의지를 존중하도록 촉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대만에 대한 어떠한 침략 행위(설령 봉쇄에 불과하더라도)는 책임 있는 국가로서 중국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수십 년간 소국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서방 주도 국제 체제의 대안을 제공하려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을.

좌우 양측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동아시아 평화 유지에서 더 큰 안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만 지지에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적극적인 것은 일본이지만, 이 지지가 ‘대일본제국’에 대한 강한 향수를 품은 자민당 극우에서만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런 입장은 중국공산당·한국·지역 내 다른 나라들에 깊은 불안감을 준다. 미국은 역내 전반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가 모두의 최대 이익에 부합함을 강조해야 한다. 베이징을 의심하는 쪽에서만이 아니라. 역내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모두 행동이 고조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나라들(한국·호주·유럽 국가들)조차, 중국이 일방적으로 안정을 해치는 행동(예컨대 대만이나 미국에 미사일 발사)을 할 때는 외교적 압박을 가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대만·중국의 좌파 모두 평화가 궁극적 목표임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는 정치 지도자들이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독려해야 한다. 지금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이란에 전화(戰火)가 끊이지 않고, 군비 확장과 침략이 횡행하는 시대에 평화가 요원해 보이더라도,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국가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반응하게 되어 있으며, 대만의 역사는 권위주의 국가조차 그렇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했다. 단결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메시지를 전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류지후이 | 좌파를 다시 생각하다—AOC, 대만, 그리고 진보 정치의 위기

블룸버그 방송 진행자가 AOC에게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파병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AOC는 한동안 침묵하며 답하지 못했다. 대만에 있는 인문학 연구자로서, 중국·대만의 복잡한 문제를 오랫동안 관심 갖고 어떤 형태의 내부 식민주의든 비판해 온 좌파 지식인으로서, 나는 오늘날 '좌파'의 의미에 대한 재고를 제안하고자 한다.

'좌파'가 완전히 모호한 딱지가 되어 버린 지금, 오늘날의 좌파적 입장이란 과연 무엇인가? '좌파'라는 정치적 범주가 점점 흐릿해지는 상황은 진보 정치의 생명력을 갈수록 고갈시키고 있다. 우리는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좌파'라는 정치적 범주의 핵심은 결코 단순한 '반전'이나 '반개입'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적 억압에 대한 비판과 피압박자의 정치적 주체성 수호다. 반개입이 수단이 아닌 최종 목적이 될 때, 좌파는 가장 근본적인 판단 기준을 잃는다. 이것이 현재 교착 상태의 근본 원인이다.

뮌헨에서 AOC가 보인 침묵은 미국 진보 좌파의 구조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미국 진보 좌파가 오랫동안 견지해 온 '군사 개입 반대' 입장이 AOC가 질문을 회피하는 이념적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 이 프레임 아래서, 대만 방어를 위해 파병하겠다는 어떠한 명확한 약속도 불가피하게 반전 정서를 가진 그녀의 선거 지지층을 자극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AOC의 40초 간의 망설임이 결국 미국의 표준적인 '장기 정책' 입장—군사 행동 약속도 거부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으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을 우연히 유지했다고 변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변명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AOC의 대만 문제에 대한 침묵은 대만과 중국 문제에서 미국 진보 좌파의 더 깊은 구조적 모순을 반영한다. 진보파의 외교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 제국주의' 패권 비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의 지역 팽창주의—특히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 '반패권' 전제가 중국의 패권 확장을 비판하는 데는 무력해 보인다. 자신의 '반전'과 '반개입' 입장에 묶여 손발이 묶인 그들은 '대만 방어 지지'를 입에 올릴 수조차 없다.

뮌헨 안보컨퍼런스에서 AOC는 한편으로 '권위주의의 위험'에 대한 우려를 명확히 표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만 문제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 자기 모순은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진보 좌파의 선택적 태도를 반영한다. 그들의 비판 프레임은 종종 우파 포퓰리즘 정치(트럼프주의 등)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의 권위주의적 팽창에 직면해서는 '분쟁 방지'와 '다자주의' 같은 얼버무리는 언사를 동원해 정면 대결을 회피한다.

진보 좌파는 인권·민주주의·자결을 높이 내세우는데, 대만은 바로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는 현장이다. 대만은 1980년대에 평화적인 민주적 개혁을 거쳐 권위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벗어났으며, 그 이후로 인권을 존중하고 자결을 긍정하며 잘 기능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 좌파의 반군사 입장이 구조적 장벽을 형성하여, 그들의 '인권 담론'을 구체적인 안보 약속으로 전환하지 못하게 한다.

AOC는 답변에서 '경제 연구와 전 지구적 배치'를 분쟁 방지 수단으로 제시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파병 여부)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수사적 논리는 진보 좌파가 안보 문제를 경제 문제로 대체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공급망 민족주의'를 '군사 동맹 약속'보다 우선시하는 그들의 선거 지지층의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환은 대만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다. 순수한 경제적 혹은 외교적 방도만으로는 비대칭적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좌파가 오명을 쓰는 배후에는 '인지 오류'의 문제가 숨어 있다. 샌더스의 핵심 정책 제안들—전 국민 의료 보험, 최저 임금 인상, 무상 공립 대학 교육—은 여론조사에서 장기간 초당파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샌더스 본인과 그의 정책들은 주류 언론과 민주당 주류로부터 끊임없이 '급진적'이고 '현실 감각이 없다'는 낙인이 찍혀 왔다. 사실 이 정책들은 전혀 급진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유럽 복지 국가에서는 표준적인 것들이다. 이 인지 오류는 진지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다.

현재 좌파 위기에서 가장 충격적인 면은 미국 우파가 좌파의 언어를 어떻게 가져갔느냐다. 트럼프와 그 주변인들—부통령 밴스와 전 참모 배넌 포함—은 좌파의 반자본주의적 수사 프레임을 받아들여, 반기득권·반엘리트·반월가 정서의 언어를 대규모로 활용했다. 배넌은 레닌의 조직 전략을 연구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고, 이를 참고했음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우파는 좌파의 반자본주의 비판을 '과두제'와 '딥 스테이트'를 겨냥한 민족주의적 음모론으로 전환시켰다. (전) 국가정보국장 털시 가버드와 각종 MAGA 진영 역시 같은 반전·반개입주의적 논조를 제시했다. '반개입'이 '피압박자의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진정한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때, 그것은 어떤 정치적 입장에 의해서도 무결히 흡수될 수 있다—권위주의적 팽창에 봉사하는 입장들을 포함하여.

이런 '좌파' 위기는 대만에도 그 판박이가 있다. 일부 구세대 대만 좌파는 중국과 사회주의 역사를 동일시하고, 이를 근거로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소위 '사회주의 중국'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는 역사 인식론에서 근본적인 오류다. 또한 이 구(舊) 좌파는 중국이 이미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로 변해 버렸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대만 좌파 역시 '반전' 입장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면서도, 자신들이 직면하는 '중국'이 인권을 희생시키는 권위주의 제국이라는 사실도, 대만 인민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긍정해야 할 필요성도 외면하고 있다.

오늘날 AOC나 어떤 좌파 운동가가 직면한 문제들은 '전쟁이냐 반전이냐', '중국이냐 대만이냐'라는 단순화된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인민은 어디에 있는가? 인민 주권은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가? 좌파는 자신의 '반전' 자아상을 유지하기 위해 인민의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자율적인 삶을 희생시켜야 하는가? 우리는 더 적극적인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취하여 어떠한 군사 침략 행위도 발생하기 전에 막을 수 있는가? 좌파는 인권의 이름으로 대만을 민주적 정치 실체로 보호하는 데 헌신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그 안에서 인민이 자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진정한 좌파 입장은 반드시 피압박자의 정치적 주체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선입견에 따른 '지정학적 진영' 선택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대만 인민이 권위주의적 압력 아래서도 굳건히 지켜 온 민주적 자치 실천이야말로 좌파가 힘껏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대만이 미국 편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만 인민이 자신의 정치적 삶의 형태를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자결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 패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제국이 '반제국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기존의 패권을 대체하도록 내버려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P. 케림 프리드만 | AOC는 『대만 만유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번 부커상을 수상한 역사 로맨스 소설 『대만 만유록(臺灣漫遊錄)』의 핵심 질문 중 하나는 두 주인공이 과연 친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일본 통치하의 대만을 방문하여 통역사 왕첸허에게 강한 감정을 품게 되면서 우정에 관한 질문이 제기된다. 왕첸허는 정면으로 답하기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를 친구로 여긴다면 나도 그렇게 볼게요." 그녀의 이 모호한 답변은 한동안 통했지만, 아오야마의 감정이 더 강렬하고 집착적으로 변해 가면서 왕첸허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되고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아야만 했다.

최근 202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AOC도, 중국의 침략에 맞서 '미군의 대만 방어를 약속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곤경에 처했다. 정적들은 그녀의 버벅이는 답변을 외교 경험 부족의 증거로 재빠르게 낚아챘다. 하지만 설령 그녀가 더 유창하게 표현했다 해도, 그것은 결국 대만에 대한 미국의 오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관례를 설명하는 데 불과했을 것이다.

조너선 설리번(Jonathan Sullivan)과 레브 나흐만(Lev Nachman)이 그들의 저서 『대만: 위협받는 논쟁적 민주주의(Taiwan: A Contested Democracy Under Threat)』에서 말했듯, "전략적 모호성이란 귀결되는 바, 군사 충돌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과연 대만에 손을 내밀 것인가의 문제다." 이 전략의 목적은 중국과 대만 정부가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즉 어느 한쪽도 일방적으로 가볍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부 미국 대통령들은 '전략적 명확성'으로 '모호성'을 대체하려 시도했다. 예컨대 바이든은 AOC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발언들은 곧 워싱턴 외교 기득권에 의해 서둘러 '거두어들여지거나' 해명됐다. 반대 방향의 조작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자신이 줄곧 시진핑 중국 지도자와 대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논의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왕첸허와 아오야마의 관계처럼, 이 모호성 전략은 한동안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정학적 지형이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나는 AOC가 어떤 대만 정책을 제시해야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미 제국주의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는 왕첸허가 아오야마에게 한 클라이맥스 장면의 답변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오야마 씨가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은, 당신의 보호가 필요한 얌전한 본섬 통역사였지, 그건 진정한 '왕첸허'가 아니에요, 나 자신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오야마 치즈코와 왕첸허는,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만 만유록』

대만 정책에 관한 논쟁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는, 이런 논의들이 대만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대만인의 참여도 없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나는 외교 정책 전문가도 군사 전략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인류학자이자 대만 시민으로서 나의 '제2의 고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이런 논의에서 꼭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왕첸허처럼 대부분의 대만인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이지만,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저 깊은 선에서는 확고히 '대만인'으로 자신을 규정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대만에서 독재 정권을 지지했다. 그 결과 대만 인민은 수십 년간 '백색 공포'와 잔혹한 탄압을 겪었다. 수천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됐고, 더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다. 나에게는 몇 권의 금서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10년을 정치범으로 복역한 친구가 있다.

이 시기 동안 국민당이 이끄는 중화민국이 대만을 통치했다. 국민당은 자신들의 억압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이 전 중국의 유일한 합법 통치자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대만과 몇몇 외딴 섬들만 다스렸으면서도. 이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대만을 여러 성(省) 중 하나로 취급했다. 심지어 중국의 다른 성들(티베트, 몽골 포함)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민대표대회'까지 설치했다. 그 성들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으니 유명무실해진 국민대표대회는, 투표를 위해 휠체어에 실려 나와야 할 정도로 고령화한 대표들만 남아 대만인들로부터 ‘만년 국회’라는 비웃음을 샀다.

대만인들이 '만년 국회'라고 비웃는 이 기관에는 노령의 대표들이 넘쳐났고, 일부는 투표를 위해 휠체어에 실려 들어왔다.

이것이 보통의 대만인이 경험한 냉전이었다. 그것은 미중 간의 거대한 지정학적 체스 게임이 아니었다. 실제 적대 행위가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중국과 전쟁 상태인 척 자신의 통치를 합리화하는 잔혹한 독재 정권이었다. 대만인들이 추구한 것은 국민당이 만들어 낸 허구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었지,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었다—중국공산당은 대만을 통치한 적이 없으니까. 대만인들은 언론의 자유, 민주적 선거,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권리, 자신의 역사를 배울 권리를 원했다. (당시 중국 중심의 교과서들은 대만 본토 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국의 철도를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원했고, 결국 쟁취했다. 누가 베풀어 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몸으로 투쟁하여 얻어 낸 것이었다. 그들은 '만년 국회'를 폐지하고 중국과의 전쟁 상태를 종식시켰다. 2016년 국민당이 마침내 선거로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 대만 최초의 여성 대통령 차이잉원은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과거의 죄행을 밝히고 '국민당 부정 당산(당의 자산) 처리위원회'를 통해 민간에서 약탈한 방대한 재산을 박탈했다.

대만이 '전략적 모호성' 정책 아래 번영하는 국가로 발전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바티칸을 포함한 열 수 나라만이 대만을 국가로 승인하지만, 대만 여권의 무비자 국가 수는 세계 31위다. 세르비아와 페루의 뒤를 잇는 순위다. 대만의 모호한 지위는 대만이 미중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게도 해 주었다. 폭스콘 같은 대만 기업들이 애플 같은 미국 최고 테크 기업들을 위해 중국의 공장을 관리하는 것처럼.

대만인들은 대체로 이런 배열에 편안함을 느낀다. 거듭된 여론조사에서 대만인들은 '현상 유지'를 지지한다고 답한다. 스스로를 '중국인'보다 '대만인'으로 여기는 비율이 이미 훨씬 높아졌음에도. 보통 대만인의 개인적 정체성은 이미 지정학적 걸음을 앞질러 버렸다. 이것이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다. 그래서 중국은 베이징의 민족 통일 관점을 강제로 시행하려는 여러 법률을 통과시켰다.

대만인들이 냉전을 뒤로 하고, 에스노 민족주의(ethnonationalism)를 거부하고 토착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양안 관계에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새롭고 다원적인 민주 국가 건설에 헌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막 갖기 시작한 지금, 그들은 다시 그 '냉전의 틀'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을 밀어 넣는 자들의 일부는 그들의 동맹국들이고, 일부는 그들의 대만 동포들이다.

수십 년간 양안 평화 관계를 유지해 온 암묵적 합의는 이제 현 상황에 대응하기 불충분하다. 이는 상당 부분 시진핑이 '대만 문제'에 점점 더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외교협회 연구원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가 지적했듯, "중국은 대만 방공 식별 구역을 침범하는 빈도와 규모를 대폭 늘렸다… 대만 주변에 인민해방군 해군과 중국 해경 선박을 거의 쉬지 않고 배치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 공역과 해역에 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대만 주변에서 복잡하고 지속적인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 섬의 상업 활동을 방해한다. 가장 도발적으로는, 2026년 1월 중국 군용 드론이 처음으로 대만의 영공을 침범했다."

지금 가장 아이러니한 현상 중 하나는 과거의 앙숙—국민당과 공산당—이 이제 같은 편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양안 상황 변화의 결과다. 오늘날의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이고, 민족주의가 대체로 공산주의를 대신하여 통치 정당성의 이념이 됐다. 이는 중국공산당을 이념적으로 국민당과 더 가깝게 만든다. 국민당 고위층은 신화적인 '중화 민족의 시조' 황제(黃帝) 제사를 지내러 가기도 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자기 지지자들이 이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국공 양당은 이제 서로를 유용한 정치적 파트너로 본다. 집권 권력을 박탈당하고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당은 중국 문제에서의 '실용주의'를 최대 셀링 포인트로 삼는다. 중국과 교섭할 때 자신들을 '책임감 있는 조타수'로 포장한다. 중국 쪽도 이렇게 변한 상황을 알뜰하게 활용한다. 중국 관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숙제를 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국민당 정치인들을 극력 끌어들인다.

우파의 종족 민족주의가 대만의 민주적 다원주의를 위협한다면, 좌파의 교조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위협을 가한다. 반제국주의자들 사이에는 미국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갈망하는, 냉전 시대에 대한 잘못된 향수(misplaced nostalgia)가 퍼져 있다. 이는 때로 '다극화(multipolarity)'의 언어로 포장된다. 인도의 여성 운동가이자 전 인도 공산당 정치국 위원인 카비타 크리슈난(Kavita Krishnan)이 지적했듯, 이런 논조는 한때 키신저와 닉슨이 주창했던 '현실 정치'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좌파 현실주의자들은 극우 세력과 이상한 정치적 동맹을 맺었다. 트럼프가 제시한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 푸틴과 시진핑이 주창하는 '공정한 다극 국제 관계 체제 건설에 대한 열망'과 완전히 부합한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경계하게 만들어야 한다. 크레이그 스미스(Craig Smith)의 말처럼, "지역적 지도력이 운명, 보호 책임, 혹은 문명의 중심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은혜'와 '패권'의 차이를 갈수록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소설 속 통역사 왕첸허가 아오야마의 '우정'을 압박으로 느꼈듯, 대만인들도 중국의 '양안 일가(兩岸一家親)' 주장을 거부한다. 왕첸허가 이 식민지적 은인의 우정을 거부한 것은, 그 우정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정체성이 지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여러 이름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것은 대만의 문화 유산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지를 설명한다. 역사학자 에반 도리(Evan Dawley)가 지적했듯, 일본 식민 경험은 독특한 대만 정체성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많은 좌파 인사들이 『대만 만유록』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이 공개적으로 이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좌파의 반응은 이러한 대만인들의 목소리를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동시에 왕첸허의 선언에 주의해야 한다. 그녀는 '보호가 필요한 얌전한 섬사람'이 아니며, 국가로서의 대만도 마찬가지다. 현실 정치의 대안은 대만을 희생자로 하는 도덕극으로 국제 관계를 순진하게 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작년에 대만의 외교 정책을 비판했듯, 대만 내부에서 민주적 전환을 경험했지만 그 외교 수완은 여전히 냉전 사고 속에 갇혀 있다. 국제적 동맹을 찾기 위해 대만은 종종 일부 나라들의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예컨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만행)를 못 본 척하는 것을 매우 기꺼이 한다.

그러나 진정한 좌파적 연대는 민족 국가의 프레임을 넘어, 풀뿌리 차원에서 공동체 간의 수평적 연결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만 시민 사회가 '냉전 이분법'을 넘어서려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레바논계 팔레스타인 작가 엘리아 아유브(Elia Ayoub)는 '밀크티 동맹'을 예로 들었다. 이는 홍콩·대만·태국·미얀마 (그리고 그 너머)의 토착 공동체들 사이에 동맹을 구축하려는 네트워크로, 제국의 틈새에 낀 사람들이 "우리의 땅과 우리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들 사이에서 더 유기적인 연결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모범을 제공한다.

중국은 이런 연대 네트워크가 자국의 패권에 미치는 위협을 잘 알고 동맹국들과 국제 기관들에 압력을 가해 대만 대표들의 참여를 막으려 한다. 기후 변화가 세계 해양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회의든, 국제법관협회(IAJ)든, 세계보건기구(WHO)든, 세계 프라이드(World Pride)든, 심지어 올해 5월의 라이츠콘(RightsCon)이 주최 측이 대만을 자격 박탈하기를 거부하자 잠비아가 직접 행사를 강제 취소시켰든, 대만의 참여 자격은 종종 거부되거나 취소되고 활동이 취소되거나 참여자들이 주최국에 의해 강제 추방된다.

AOC 같은 미국 진보파 정치인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한 가지는, 보통의 대만 시민들이 전 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권리를 보호하는 데 헌신하는 것이다. 국제 활동과 다른 연대 행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 활동들에 참여하기 위해 대만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배신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소설 속 아오야마 치즈코가 결국 자신의 '치짱(千ちゃん)'이 진정한 '왕첸허(王千鶴)'가 될 수 있도록 배운 것처럼, 세계도 대만이 진정한 대만이 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셰이이(謝一誼) | 대만, 팔레스타인, 베트남, 베네치아

AOC가 뮌헨 회의에서 말문이 막혔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베네치아로 환승 중이었다. 암스테르담대 사회분석컬리지가 주최한 3일간의 학술 행사 '예측 불가능한 시각성: 폭력과 시각성의 문제(Wayward Visuality: The Question of Violence and Visuality)'가 끝나고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박사 과정 학생들은 팔레스타인 의제, 영화 상영, 실천 워크숍을 원래는 이론적 탐구로 가득할 것이라 예상되던 이 학문적 자리에 녹여 냈다.

이런 자리에서 주디스 버틀러 같은 귀에 익은 이론가들의 이름이 오감에도, 그 자리에 함께한 참여자들 사이에 실재하는 인종·젠더·사회·경제적 차이는 아무도 직시하지 않을 때, 나는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문화 연구 분야에서 좌파의 보편적 입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이 방식은, 베네치아 예술 노동자 파업에서 내가 30%쯤밖에 알아듣지 못한 짧은 이탈리아어 연설보다 오히려 더 나를 서늘하게 했다.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 예술 노동자 파업의 두 번째 행동에 연대하러 갔다. 이 파업은 내 이탈리아 친구들이 조직한 것으로, 그들은 올해 5월 8일 현지 역사상 유례없는 예술 노동자 파업을 일으켜 202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많은 예술가 전시관들을 폐관시키는 성과를 냈다. 나의 학자 친구이자 베네치아 예술 조직 'S.a.L.E. Docks'의 핵심 인물인 마르코 바라발레(Marco Baravalle)는 이 베네치아 파업 행동들이 팔레스타인 운동으로부터 중요한 경험을 흡수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2025년 가을 이탈리아 전국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 이후 축적된 투쟁 역량이 이후 베네치아인들이 현지 말게라(Marghera) 항에서 이스라엘로 출발하려는 화물선을 봉쇄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일부 시위와 파업에서 나는 이탈리아 큐레이터 팀원들이 작은 보트를 몰아 대형 크루즈선을 포위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몸짓이자 '예측 불가능한' 저항 전술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 사회 운동 친구들과 함께 이 파업들과 시위들에 참가하면서 나는 때때로 1919년의 호찌민을 떠올렸다. 그는 베르사유 강화 회의 문밖에 서서 베트남 독립 청원서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뒤 좌절을 안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무장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호찌민을 떠올린 것은 그가 나에게 많은 대만 학계 친구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 '흑곰 학원(黑熊學院)'의 민방위 훈련에 깊이 참여하며, 중국공산당이 언제라도 발동할 침공에 대비해 보통의 대만 시민들을 동원하고 있다. 베르사유 강화 회의이든 뮌헨 안보 컨퍼런스든, 그 목표가 아무리 고상하게 들릴지라도 피식민지 민족에게 그 의미는 사실 미미하다. 대만과 중국공산당 사이의 협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를 아무리 바란다 해도, 잔혹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홍콩의 운명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다. 나의 펀자브(Punjabi) 친구도 이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깊이 느끼고 있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전쟁 이후 강대국들이 피식민 민족들에게 약속한 '탈식민화 계획'(영국의 인도 독립 허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예리한 비판을 가한다. 한때 남아시아 대륙의 많은 이들이 꿈꾸었던 아름다운 미래가 이제는 민족주의와 종교 분열의 수렁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렇다면 대만 좌파에게, '협상의 무의미함'에 대한 이 고통스러운 깨달음과 소위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간파(어쩌면 AOC가 뮌헨 회의 인터뷰에서 말문이 막혔을 때 뇌리를 맴돌던 진짜 생각일지도 모른다)가 아니라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AOC에게 진정으로 건설적인 것은, '정착민 식민주의'에 철저히 반대하는 연설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식민주의야말로 가자 지구의 인종 학살과 대만 해협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1945~49년 사이에 100만 명의 중국 난민이 패전한 장제스의 군대를 따라 대만으로 달아났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장제스와 그의 미국의 지원을 받는(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완충 지대로서) 중국 파시스트 정권이 도착하기 전에, 이 섬은 대일본제국, 대청제국, 동녕왕국 / 정씨 해적 집단, 대만 북부의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 및 남부의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차례로 점령된 바 있다.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는 것은, 국민당이 1949년 패전을 은폐하기 위해 꾸며 낸 정착민 식민지 서사와 환상을 유지하는 것이며, 또한 중국공산당이 전승국으로서 한 번도 통치한 적 없는 영토를 주장하는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시한 뒤틀린 역사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이 정착민 식민지 담론은 역사적으로 극도로 부정확한 것이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 나아가 1919년의 호찌민이 느꼈던 좌절과 마찬가지로 황당하고 끔찍하다. 이것들 모두 과거와 현재의 탈식민화 과정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유산이다. AOC나 미국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누구라도 앞으로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 한다면, 첫 번째 단계는 반드시 이 정착민 식민지 프레임을 뒤집고 거부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공격한다는 가정 하에 '대만을 포기하자'는 정서가 미국 좌파 진영에서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대만 역사에 대한 국제 사회의 무지를 반영한다. 사실 이 섬의 산간 지역에는 유구한 게릴라전의 전통이 있다. 일본 식민 통치 시기에도, 대만 공산당 게릴라들이 장제스의 백색 공포에 맞서 산속에 숨어들었을 때에도 그랬다. 자주를 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와 대만이 각자가 직면하는 권위주의적 침략을 방어할 때 공유하는 특성이다. '흑곰 학원'은 바로 이런 민방위 훈련 조직으로, 최근 몇 년간 섬 내 각계각층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끊임없는 위협과 갈수록 노골화되는 군사적 야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반영한다. 현재의 민주적 메커니즘이 없었다면(즉 대만 입법원과 미국 의회가 여전히 군비 예산 심의 권한을 갖고 있다면), 자기 방어에 대한 대만 대중의 강렬한 요구에 부응하여 민족주의 정치인들이 기세를 타고 부상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호찌민이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1940년 '호찌민'으로 개명한 뒤, 그는 자유주의적 약속—미국이 베트남의 탈식민화를 이끌어 독립을 완성하도록 도울 것이라는—에 대한 믿음에서 '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호찌민이 독특한 베트남 민족주의 입장으로 방향을 전환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고 본다. 민족 해방을 향한 새로운 길에 오른 뒤 호찌민은 장제스의 지원을 확보하러 중국으로 갔다가 오히려 장제스에게 18개월 동안 투옥됐다. 중국 투옥 기간 동안 호찌민은 후에 『옥중일기(獄中日記)』로 불리게 된 작품을 썼다. 고전 한문으로 쓰인 시집으로, 그 중 한 수는 다음과 같다.

남녕 감옥 참 모던하여, 밤낮없이 환한 전등이 켜지네;밥은 매 끼마다 죽 한 그릇, 뱃속은 시시때때로 항의하는구나. - 호찌민(1943). 〈남녕 감옥〉, 『옥중 일기』

강대국 각축 사이에 끼어 있던 호찌민은 뱃속이 텅 빈 채 떨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전술'을 구사해야 할 필요성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대만이 이런 장기간의 긴장과 고난, 전쟁의 처지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1919년 베르사유 강화 회의에서 호찌민의 청원을 누군가 들어주었다면, 혹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제대로 처리됐다면, 미국은 나중에 그토록 강인한 적을 스스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AOC와 그의 민주사회주의 동료들에게는, 어쩌면 직접 대만에 와서 대만인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진정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정보에 입각하고 현실에 기반한 미국의 대만 정책이야말로 현재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는 유일한 출구일지도 모른다.

글 : 레베카 칼(Rebecca Karl), 아민다 스미스(Aminda Smith), 파비오 란자(Fabio Lanza)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