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정부의 성소수자 운동 탄압은 민주주의의 총체적 후퇴를 드러낸다
2026년 9월 튀르키예 정권이 단행한 대대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탄압은 집권 세력이 정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소수자를 희생양 삼은 초법적 폭력이다. 소수자의 권리가 무너지면 민주주의 전체가 위협받는다. 그렇기에 튀르키예 성소수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는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다.
2026년 10월 06일지난 2026년 9월 12일 자정, 튀르키예에서는 성소수자운동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한 국가 권력의 전격적인 작전이 단행됐다. 튀르키예 경찰 당국은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메르신, 아이든 등 5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인 강제 수사를 벌여 최소 116명을 구금하고, 이 가운데 82명 이상을 재판 전 구속 상태로 감옥에 가두었다. 구속된 이들 중 최소 25명은 수십 년간 현장을 지켜온 주요 성소수자 인권단체 및 HIV 감염인 인권단체의 설립자와 운영진들이었다.
이번 탄압은 앙카라의 역사 깊은 인권단체 ‘카오스 GL(Kaos GL)’의 선출직 이사회 및 감사기구 정위원 전원을 구속하고, 이스탄불의 ‘스포드(SPÖD)’, ‘람다이스탄불(Lambdaistanbul)’, ‘리스탁(LİSTAG, 성소수자 가족협회)’, 메르신의 ‘무암마(Muamma)’ 등 대표적인 단체들의 사무실을 샅샅이 압수수색하는 방식으로 자행됐다. 나아가 이스탄불 지방정부는 검찰 통보를 거쳐 이들 단체에 대한 강제 해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인권운동단체의 법적 존립 자체를 파괴하려 드는 것이다.
‘가족 보호’라는 이름으로 성평등 활동 전반을 공격
튀르키예 정부가 자행한 이 작전의 이름은 ‘우리 가족은 안전하다(My Family is Safe)’였다. 당국은 이번 작전이 아동 착취, 음란, 성매매, 조직범죄에 맞서 ‘전통적 가족 제도’와 ‘공중도덕’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정작 경찰과 검찰의 신문 과정에서 쏟아진 질문들은 단체의 일상적 운영 구조, 회원 명부, 합법적인 국제 재정 지원 내역, 인권 출판물 발간 경위 등 통상적인 시민사회 활동 전체를 겨냥했다. 더욱이 9월 14일 튀르키예 법무부는 전국 175개 수석검찰청에 긴급 회람을 내려보내, 청소년을 ‘무성별화(genderlessness)’로 이끄는 활동들에 대한 전담 검사를 지정해 조직범죄 기법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 등 정당한 권리 옹호, 교육 활동 자체를 형사처벌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사법적 폭력과 함께 여론을 틀어막기 위한 디지털 검열과 집회의 자유 침해도 전방위적으로 이어졌다. 카오스 GL의 웹사이트를 비롯해 언론사 ‘에브렌셀(Evrensel)’, 국제앰네스티 튀르키예 지부 등 사태의 진실을 알리고 연대를 표명한 언론과 인권단체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대거 차단됐다. 이에 항의해 이스탄불 법원 앞과 앙카라, 이즈미르 도심에서 거리로 나선 시민, 변호사, 언론인 등 120여 명 이상이 현장에서 무더기로 연행됐다. 현재 튀르키예 형법 어디에도 동성애나 성소수자 정체성 자체를 직접 처벌하는 법 조항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탄압 작전은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초법적 폭력이다.
통치 위기를 은폐하기 위한 ‘희생양 정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스탄불 도심에서는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라이드(자긍심) 행진이 평화롭게 열렸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10여 년 장기집권 과정에서 모든 것이 뒤집혔다. 정권은 파탄 난 경제 위기와 치솟는 물가,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과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임계점에 달할 때마다,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가족의 위기’와 ‘도덕적 공황’을 기획했다. 법률상 범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중도덕’과 ‘협회법 위반’이라는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가장 취약한 성소수자 집단을 국가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만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독재 권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허물고 시민사회 전체의 입을 틀어막는 ‘민주주의의 총체적 후퇴’를 상징한다.

역사 속 독재 권력이 반복해 온 익숙한 공식
지배권력이 성소수자를 희생양 삼을 때, 그 칼끝은 언제나 민주주의와 사회 전체의 자유를 향했다.
- 나치 독일: 1929년 대공황 이후 극심한 사회적 위기와 혼란이 닥쳤을 때, 나치 세력은 성소수자를 "독일 민족의 재생산과 순결을 파괴하는 퇴폐 분자이자 유대인-볼셰비키의 음모"로 규정하면서 희생양으로 삼았다.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가 가장 먼저 습격해 도서를 불태우고 폐쇄한 곳이 바로 젠더 관련 학술연구소(Institut für Sexualwissenschaft)였고, 또 형법을 개정해 성소수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집단 학살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경찰과 게슈타포에 의해 성소수자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약 1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성소수자는 약 5,000명에서 15,000명으로 추산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학살과 탄압은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치 체제가 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 공론장 전체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결정적 발판이었다.

- 미국의 매카시즘: 1950년대 초 미국 극우 반공주의 세력은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 광풍은, 성소수자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소련 스파이의 협박에 취약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왜곡된 공포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정부 공직에서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해고했다. 이는 수천 명의 무고한 공무원과 군인을 사찰하고 축출하는 광범위한 국가 감시 체계로 이어졌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스톤월 항쟁의 역사적 거점에서 무지개 깃발 게양을 중단시킨 행태 역시 이러한 역사적 궤와 맞닿아 있다.
- 러시아 푸틴 정권: 2013년 푸틴은 ‘성소수자 선전 금지법’으로 시작된 탄압은 2023년 ‘국제 성소수자 운동’ 자체를 극단주의 조직으로 규정해 전면 불법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성소수자를 악마화하며 대중의 시선을 돌린 푸틴은 독립 언론과 비판적 시민사회를 모조리 압살했고, 결국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극단적인 군사 독재 체제로 치달았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에서 경제 위기와 불평등, 장기집권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치솟을 때, 지배권력은 자신의 실정을 은폐하거나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소수자에게 ‘도덕적 공황’을 덧씌워 가상의 적으로 만들어 왔다. 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권위주의로 회귀하기 위한 예인선이자,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는 독재의 신호탄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는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스톤월 기념지에서 무지개 깃발 게양을 중단했는데, 이곳은 1969년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던 역사적 장소다. 당시 항쟁은 게이바 ‘스톤월 인’에 경찰이 들이닥쳐 동성애자들을 체포하며 시작됐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모든 곳에서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탄압과 왜곡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
튀르키예의 투쟁은 곧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다
튀르키예에서의 성소수자 탄압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를 동원해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고 비판적 목소리를 배제해 온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런 배제와 억압의 통치 방식은 오늘날 극우 세력에 의해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이주노동자, 장애인을 향한 혐오 정치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가 증명했듯, 지배권력은 위기에 몰리면 언제든 폭력적인 권위주의로 회귀해 민주주의 전체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소수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탈당하는 것을 묵인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노동권과 언론의 자유, 광장의 민주주의마저 빼앗기는 파국을 맞이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튀르키예 성소수자들의 투쟁을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으로 받아안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존재는 결코 금지될 수 없다. 권력의 폭력이 아무리 거세도 인간 존엄과 자유를 향한 민중의 전진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튀르키예의 성소수자들이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광장을 활보할 수 있을 때까지,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글: 홍명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