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등 노동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 대만 아사히글라스 노동자 파업
아사히글라스 대만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구미와 대만의 AGC 공장은 같은 모회사, 같은 제품, 같은 출발점을 가진 공장들이다. 대만의 파업과 구미의 9년을 나란히 놓으면, 한 공장의 노사분규로는 보이지 않던 AGC 자본의 구조가 드러난다.
2026년 10월 06일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 아직 크게 발전하지 못한 대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은 드문 경험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이기에, 이런 투쟁 경험의 축적은 대만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서나 초국적 자본에 맞선 동아시아 노동자들의 연대 경험에 있어서나 중요하다. 최근 경고 파업에 돌입해 기세 있게 투쟁한 AGC 대만 공장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대만의 노동운동가 출신 필자의 글을 기고받아 공유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아사히글라스 자본이 얼마나 악랄한지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싸움이 단지 구미공장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월 5일 오전 8시, 대만 중서부 윈린(雲林)현 더우류(斗六)시의 디스플레이 유리 공장에서 파업이 시작됐다. 회사 이름은 ‘아이제쉬(艾杰旭) 디스플레이 글라스’. 한국에 익숙한 이름으로 바꾸면 AGC, 옛 아사히글라스의 대만 법인(AGC ELECTRONICS TAIWAN INC, 台灣艾杰旭電子股份有限公司)이다. 윈린현에서 합법적 절차를 거쳐 파업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조합측은 회사가 25년 전 공장을 세운 뒤 단 한 번도 전 직원 일괄 임금인상 제도를 만든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독자라면 이 회사 이름에서 ‘구미’에 있는 한 공장을 떠올릴 것이다. 이 공장에서는 2015년 6월 30일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된 178명, 9년의 투쟁, 그리고 2024년 대법원 판결과 3321일 만의 복직.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의 싸움이 있어왔다. 구미의 AGC화인테크노한국(AFK)과 더우류의 대만 법인은 같은 모회사, 같은 제품, 같은 출발점을 가진 공장들이다. 대만의 파업과 구미의 9년을 나란히 놓으면, 한 공장의 노사분규로는 보이지 않던 AGC그룹 자본의 구조가 드러난다.

처음부터 ‘자매 공장’이었다
아사히글라스는 1907년 미쓰비시 창업가 2대 당주 이와사키 야노스케의 차남 이와사키 도시야가 세운 회사다. 1925년에는 남만주철도와 함께 다롄에 공장을 세우며 제국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위원회가 확정한 현존 강제동원 기업 299곳의 명단에 ‘아사히유리’라는 이름이 올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8년 회사는 111년 동안 쓴 이름을 버리고 AGC가 됐다.
이 회사가 한국과 대만에 디스플레이 유리 거점을 세운 것은 거의 같은 시기였다. 2004년 5월 아사히글라스는 지분 42.76%를 가진 한국전기초자와의 합작을 전제로 구미에 TFT-LCD용 유리기판 신설법인을 세우고 2005년 7월 양산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같은 발표문에는 지분 100%를 가진 대만 더우류의 ‘아사히글라스 파인테크노 대만’이 함께 등장한다. 2007년 발표에서도 대만과 한국 법인은 나란히 해외 생산거점으로 소개됐다. 이름조차 같은 ‘파인테크노’였다.
두 곳의 정부는 모두 ‘일자리’를 이유로 이 회사를 반겼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약 10만 평 부지 50년 무상임대, 국세 5년 면제, 지방세 15년 감면 등 600억 원 규모의 혜택을 내줬다. 대만에서는 2005년 셰창팅(謝長廷) 당시 행정원장이 신공장 가동식에 직접 참석해 이 회사를 ‘대만의 친구’라 부르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에서 ‘전범기업’으로 불리던 회사가 대만에서는 ‘친구’로 불린 셈이다. 그러나 대접은 달랐어도 두 공장 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만: 25년 동안 제자리인 기본급
대만 노조에 따르면 생산직의 최저 기본급은 오랫동안 1만9200대만달러, 2만6200대만달러 수준에 묶여 있었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기본급에 수당을 얹어 최저임금 기준을 겨우 맞추는 구조다. 올해 6월 윈린현 정부의 중재로 회사는 7월 말까지 전 직원 임금인상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9월 15일 노조가 받은 답은 ‘없다’였다. 선취안청(沈全成) 위원장은 공장 앞에서 80시간 단식을 벌였고, 노조는 10월 5일 경고 파업에 들어갔다.
회사가 올해 기본급을 올렸다고 내세우는 대목은 더 눈여겨볼 만하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기본급 2만7200대만달러에 연중·연말 상여금 각 3개월분을 더해 연 18개월분을 받던 임금이, 올해는 기본급 3만600대만달러에 연 16개월분으로 바뀌었다. 계산해 보면 2만7200×18과 3만600×16은 모두 48만9600대만달러다. 기본급은 12.5%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연간 총액은 한 푼도 늘지 않았다. 상여금 두 달 치를 기본급으로 옮겼을 뿐이다.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낯익은 임금체계 꼼수다.
노조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곳은 도쿄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AGC는 2022년 조합원 평균 6.09%, 2023년 6.36% 임금을 올렸고, 2030년까지 원칙적으로 인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일본 본사의 주력은 반도체이고 대만은 패널 수요 감소로 사정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에 재무제표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AGC가 직접 펴낸 『통합보고서 2026』은 2025년 디스플레이 사업의 매출이 늘고 수익성이 꾸준히 개선됐다고 적고 있다.

‘국가별 임금’이라는 회사 방침
같은 보고서 62쪽에는 더 분명한 문장이 있다. AGC 그룹은 각 회사가 있는 국가와 지역의 동종업계 보수 수준을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며, 일본 본사인 AGC주식회사는 2022~2025년 해마다 약 5~6%씩 임금을 올렸다는 것이다. 대만 노동자의 임금을 정하는 것은 그룹이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대만 업계가 얼마를 주느냐다. 대만 법인이 “사업체마다 사정이 다르다”며 일본과의 비교를 거부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AGC 안에는 세 층의 노동자가 있다. 꾸준히 임금이 오르는 일본 본사 정규직, 현지 시세에 묶인 해외 법인 정규직, 그리고 해외 법인에서 가장 힘든 공정을 떠맡는 하청 노동자다. 과거 구미의 GTS 노동자들이 바로 이 세 번째 층이었다. 회사 내부 문건 ‘S-프로젝트’가 노조 결성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을 준비했다는 사실, 노조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해고 문자가 날아왔다는 사실은 그 층이 얼마나 쉽게 잘려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층과 층 사이의 경계, 곧 국경과 법인격과 도급계약은 책임의 경계이기도 했다. 대법원이 AFK를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하기까지 9년이 걸린 이유다.
공교롭게도 AGC는 장기 경영전략에서 ‘공정하고 안전한 일터 만들기’를 회사가 기여할 사회적 과제로 꼽고 있다. 그 ‘공정’은 아직 국경을 넘지 못한 듯하다.

“2등 노동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대만 노조의 구호는 단순하다. ‘2등 시민’ 취급을 거부한다는 것, 그래서 해마다 제도적인 5% 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구미의 노동자들이 9년 동안 말해 온 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문자 한 통으로 버려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백 년 전 제국의 기업이 식민지에 공장을 세웠고, 백 년 뒤 그 후신은 옛 식민지 두 곳의 공장에서 국경을 따라 노동자를 나누고 있다. 물론 오늘의 AGC는 제국이 아니며, 임금 격차의 직접적 원인은 다국적 기업의 비용 관리다. 그러나 임금의 높낮이가 옛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따라 그어질 때, 옛 식민지 노동자들의 항의는 한 겹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구미의 해고자들은 스스로를 ‘들꽃’이라 불렀다. 9년 뒤 그들은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갔고, 2026년 2월 파기환송심도 불법파견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들꽃은 끝내 피었다. 그리고 지금, 바다 건너 더우류에서 같은 회사의 노동자들이 그 길을 이어 걷기 시작했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가 9년 동안 닦아 온 길이다. 구미의 싸움이 일본 노동자들의 연대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듯, 더우류의 싸움에도 한국 사회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구미에서 핀 들꽃이 더우류에서도 다시 피어나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 윈린현 첫 합법 파업: 《聯合報》 https://udn.com/news/story/7326/9783795
- 일괄 임금인상 제도 부재·일본 임금인상 비교: 《中國時報》 2026.9.30. https://www.chinatimes.com/realtimenews/20260930003378-260405
- 기본급 1만9200·2만6200대만달러: 中央社 https://tw.news.yahoo.com/%E8%89%BE%E6%9D%B0%E6%97%AD%E5%B7%A5%E6%9C%8310%E6%9C%885%E6%97%A5%E7%BD%B7%E5%B7%A5-%E5%8B%9E%E5%8B%95%E9%83%A8%E7%B1%B2%E8%B3%87%E6%96%B9%E9%87%8B%E5%96%84%E6%84%8F-073702352.html
- 6월 중재·9월 15일 회신: 《Newtalk》 2026.10.5. https://newtalk.tw/news/view/2026-10-05/1063700
- 80시간 단식·경고 파업: 《自由時報》 https://ec.ltn.com.tw/article/breakingnews/5589457
- 상여금의 기본급 전환(18개월→16개월): Yahoo奇摩新聞 https://tw.news.yahoo.com/%E8%89%BE%E6%9D%B0%E6%97%AD%E5%8B%9E%E8%B3%87%E5%8D%94%E5%95%86%E6%9C%AA%E9%81%94%E8%AA%BF%E8%96%AA%E5%85%B1%E8%AD%98-%E5%B7%A5%E6%9C%83%E6%B1%BA%E8%AD%B010-5%E8%B5%B7%E4%BE%9D%E6%B3%95%E7%BD%B7%E5%B7%A5-043515989.html
- 재무제표 비공개·‘2등 시민’ 발언: 《Newtalk》 2026.9.29. https://newtalk.tw/news/view/2026-09-29/1062395
- 일본 본사와 비교 불가 주장: LINE TODAY https://today.line.me/tw/v3/article/BEmogzN
- AGC 2022년 6.09% 인상: 《東洋経済オンライン》 https://toyokeizai.net/articles/-/610031
- AGC 2023년 6.36% 인상·2030년까지 인상 지속: 時事通信 https://www.sbbit.jp/article/refers/117254
- 디스플레이 사업 수익성 개선(pp.25–26), 국가별 보수 기준·일본 5~6% 인상(p.62): AGC Integrated Report 2026 https://www.agc.com/en/sustainability/pdf/agc_report_en_2026.pdf
- ‘공정하고 안전한 일터’ 장기전략: AGC 2022년 2월 공시 https://www2.jpx.co.jp/disc/52010/140120220207582358.pdf
- 창업자와 미쓰비시: 《ニュースイッチ》 https://newswitch.jp/p/24791
- 1925년 다롄 쇼코글라스: 兒玉州平, 『三菱史料館論集』 25호(2024) https://researchmap.jp/kodamas/published_papers/45930159/attachment_file.pdf
- 강제동원 기업 299곳 명단: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7062 ;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604126587H
- 2004년 구미 신설법인·한국전기초자 지분 42.76%·대만 법인 지분 100%: 아사히글라스 보도자료 2004.5.24. https://www.agc.com/news/pdf/20040524.pdf
- 2007년 해외 생산거점: 아사히글라스 보도자료 2007.10.4. https://www.agc.com/news/pdf/20071004.pdf
- 구미 투자 혜택 600억 원: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7062
- 셰창팅 행정원장 ‘대만의 친구’ 발언: 대만 행정원 2005.5.11. https://www.ey.gov.tw/Page/85695CF8981C15BD/80f28c20-e06b-4872-a609-2c526aa67aa9
- 문자 해고 178명·3321일 만의 복직: 《시사IN》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716
- S-프로젝트 문건: 《시사IN》 https://v.daum.net/v/9PapukOJGR?f=p
- ‘들꽃’·GTS 도급 구조: 《경향신문》 2024.8.1. https://www.khan.co.kr/article/202408011212001
- 파기환송심 유죄 유지: 《서울신문》 2026.2.1.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6/02/01/20260201500009
- 일본 승리 보고대회: 《노동과세계》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5414
글 : 임운(林芸, 린윈) 칭화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