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 학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모기업 저항행동을 돌아보며
한국 방산기업의 무기가 집단학살에 사용되고 있고, 그 기업들이 대학 내 취업박람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숭실대에서 저항행동에 함께했던 이의 후기를 공유한다.
2026년 11월 02일저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공개된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행동을 꽤 힘들어하는 편입니다. 수십, 수백 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는 그나마 괜찮습니다. 나와 같은 행동을 하며 같은 시선을 받는 사람들이 많으니 무리 사이에 몸을 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피켓 시위나 기자회견, 유인물 배포처럼 소수 인원으로 진행하는 활동은 유독 어렵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피할 길 없이 오롯이 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숭실대학교 사회참여 소모임 ‘틈새’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활동을 할 때마다 스스로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선량하게 웃으며 홍보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이번 숭실대 취업 박람회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연루 기업인 LIG가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행한 저항행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숭실대 형남공학관 앞에서 보낸 한 시간
9월 7일, “어느 취준생의 고민 -집단학살 공모기업의 숭실대 잡페어 참여에 부처”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작성해서 학내 게시판에 부착했습니다. LIG가 잡페어에 참여하는 9월 8일, 박람회가 열린 형남공학관 출입구에서 저를 포함한 틈새 회원 네 명은 LIG의 집단학살 연루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잔뜩 긴장한 채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유인물을 전달했습니다. 다행히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오가는 학우들 가운데 간혹 불편함이나 비웃음이 섞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지만, 많은 학우분들이 유인물을 받아주셨습니다. 준비한 400여 부의 유인물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유인물을 다 나눠준 뒤, 저희는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고 활동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LIG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자마자 관계자 한 분이 달려 나오셨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서로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유인물 배포라는 1차 목적을 달성한 저희는 곧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공모기업의 취업박람회 참여에 항의하는 행동은 큰 불상사 없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학기 초에 이렇게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진행한 뒤, ‘틈새’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신입 회원 몇 분 들어오셨습니다. 그분들은 취업 박람회장 앞에서 저희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틈새’가 이러한 사안에도 주저 없이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입을 결심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 활동을 계기로 만난 학우들과 뜻있는 몇몇이 모여『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글항아리)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대화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작은 행동이 당장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저희의 행동을 기억했고, 그 기억은 새로운 만남과 대화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현장에 섰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결실이 시간이 지나며 조용히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작은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당장은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번 행동은 이 문제를 더 많은 학우와 나누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로 초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안에 작게나마 파문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도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고, 저희가 준비한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대화하는 모임에도 신청자는 없었습니다. 유인물을 받아간 분들이 과연 얼마나 읽어보셨을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학우에게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과 한국 기업의 책임을 알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반응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까요. 누군가는 유인물을 읽으며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보았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향후 집단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조용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한 시간의 짧은 행동으로 당장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학내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진리와 봉사’? 대학의 역할에 대한 물음
2026년 7월 29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7만 3,335명, 부상자는 17만 4,052명에 이릅니다. 사망자 중 2만 1,283명은 어린이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이 존엄을 짓밟힌 채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대학은 학살에 연루된 기업을 취업박람회의 손님으로 기꺼이 환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학우들의 무관심을 단순히 개인의 무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취업난이 심각한 오늘날, 학우들은 막막한 미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박람회장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낯선 학생들이 먼 나라의 비극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선뜻 관심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은 일 입니다. 당장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에게 타인의 고통까지 돌아볼 여유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대학의 역할’을 묻고 싶습니다. 대학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스펙 경쟁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숭실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으며, ‘진리와 봉사’를 건학 이념이자 슬로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 현실 앞에서 진리와 봉사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더욱 끈질기게 물어야 마땅합니다. 학살 연루 기업을 환대하는 것이 과연 대학의 참된 역할인지, 그 기업의 참여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대학의 구성원들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의 행동이 이런 질문을 학내에 얼마나 깊게 남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희를 비웃거나 불편해하는 학우들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고, 관계자분과 언성이 높아졌을 때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즉각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이전까지 던져보지 않았던 질문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씨앗은 싹을 튀우고, 자라난다
저는 이번 행동이 ‘씨앗을 심는 일’이라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활동이 가져온 즉각적인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꾸준히 물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결과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져 새에게 먹힐 수도 있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시덤불 사이에서 힘겹게 싹을 틔우더라도 더 자라지 못하고 시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면, 그중 몇 개는 반드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것입니다. 덩굴을 뻗어 단단한 벽을 타고, 서로를 휘감으며 자라 올라갈 것입니다. 유인물을 받아 간 학우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부 알 수 는 없지만, 저희의 행동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씨앗이 이미 작게나마 싹을 틔워낸 것입니다.
물론 이 작은 싹을 두고 저희가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었다거나 승리했다고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며, 대학과 사회의 구조도 역시 단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싹은 이미 자라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 속에서 저는 계속해서 씨앗을 뿌려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미 작은 기쁨을 수확했으니,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좌절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씨앗을 심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 유은빈 (숭실대 사회참여 소모임 “틈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