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된 팔레스타인 땅에 닻을 내릴 때까지 | '우리가 함께 만든 항해 이야기' 후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한국 본부’ 다과회 <우리가 함께 만든 항해 이야기>에서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함께 배를 띄우고 나아갔던 마음들을 나누었다.
2026년 10월 30일지난 9월 16일 저녁, 플랫폼C 사무실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한국 본부’가 주최한 다과회 <우리가 함께 만든 항해 이야기>가 열렸다. 지난여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상 봉쇄를 부수기 위해 진행했던 항해를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항해를 직접 준비한 이부터 멀리서 응원과 모금을 보탠 이, 매일 항해 소식에 귀를 기울인 이, 기도로 마음을 보탠 사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지난 항해에 온기를 보탰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거대한 폭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커다란 권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 있는 민중의 힘을 잇는 연대라는 사실과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무너진 곳에 가닿을 수 있다는 믿음. 지난 항해는 바로 그 믿음 속에서 전 세계의 민중들이 모여 하나의 선단을 이루어낸 역사였다.
다과회 역시 누군가의 일방적인 경험담을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방식보다는,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지난 항해를 되돌아보고 향후 활동을 다짐하는 따뜻한 소통의 자리로 꾸려졌다.
다과회인 만큼 먼저 식탁의 풍경을 빼놓을 수 없다. 항해를 함께 준비하였던 정현과 광대가 직접 만든 지중해식 따뜻한 감자 샐러드와 코코넛오트밀쿠키, 떡볶이와 초코 케이크가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다. 온기 어린 음식이 놓인 식탁에서 참석자들은 ‘어떻게 이 항해와 인연이 닿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서로를 소개했다.

가자와 우리의 인연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각자의 다양한 계기들이 존재했지만, 항해에 연대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는 대부분 ‘항해자, 혹은 항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개인적 인연’을 꼽았다. 친구인 누군가, 함께 투쟁하였던 동지, 집회에서 마주쳤던 이, 같은 땅을 밟았을 사람이 바다 위에 있다는 소식에 속절없이 이 항해에 마음을 보탤 수밖에 없어졌다는 고백이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 그 속의 친밀함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바다로 모이게 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깊이 ‘연루’된 이상,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다. 그것은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가자로 향했던 이번 항해는 해상 봉쇄를 뚫기 위한 직접 행동이었다. 그 목적지에는 가자 민중들과의 만남, 즉 또 새로운 ‘연루됨’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의 ‘연루’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것. 우리가 왜 항해를 시작했고, 왜 계속하여 항해를 이어가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한 대화였다.
항해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난관도 식탁 위에 올랐다. 항해를 앞두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지중해의 긴장이 고조되고 이스라엘 점령군의 해상 통제가 강화되면서 과연 항해를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으나, 목표가 명확했기에 항해를 계속하기로 했던 결정의 과정도 공유됐다. 그 과정에서 당초 계획했던 대규모 국제 선단이 와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에 항해자들은 이탈리아 항만 노동자들과 함께 무기 수송선을 막기 위한 파업이라도 성사시키려 애썼으나 이마저도 좌절되었고, 그 과정에서 거듭 마주해야 했던 인종차별의 경험도 이야기되었다.

함께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도움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그것이 ‘연대’라고 느껴졌었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킨 대목은 한국 외교부의 여권 무효화 및 취소 강행 조치였다. 이로 인해 해초 활동가가 선단에서 분리되어 고스란히 그 위험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이러한 과도한 억압을 두고 도리어 ‘국민 보호’를 위한 조치였다고 말하는 외교부와, 이에 동조하는 재판부의 입장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도 함께 나누었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자주 회상된 단어는 ‘깃발’이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 본부’는 이번 항해에서 후원단체 ‘띄우미’로 함께 한 수많은 단체들의 깃발을 하나로 묶어 배의 돛에 매달았다. 한국의 거리와 광장에서 휘날리던 깃발들이 바다 위로 모여 가자로 향하는 항해에 함께한 것이다.
한 ‘띄우미’ 참여자는 돛에 달린 깃발 사진을 보며 “나 역시 그 배에 함께 몸을 싣고 있는 듯한 묵직한 감각을 느꼈다”고 전했다. 항해자에게도 깃발은 남다른 의미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항해자들이 깃발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깃발에 적힌 단체와 한국의 사회운동의 역사를 하나씩 설명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 자신감은 우리가 쌓아온 한국 시민 사회 운동에서 기인한 믿음이라고도 말했다. 이란 침공 상황의 여파 등으로 함께 항해를 준비하던 각 지부들이 와해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본부만이 끝까지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우리가 한국 사회운동 속에서 다져온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축적된 믿음 덕분이었다.

팔레스타인 연대에 더 많은 사람을 연루시키기
그렇다면 이번 항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확인했을까. 이 질문에 한 참석자는 “(이번 항해를 통해) 한 번 문을 열고 나아간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의 몫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계속해서 말하고 공유하는 것”이라는 울림 있는 발언을 남겼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감을 무화시켜버리는 이 항해를 경험한 이상, 그 누구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모두가 공통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항해를 통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연대의 그물망에 연루시키는 일이다.
행사 마무리에 참가자들은 각자 맡았던 소박하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실천들을 되짚으며 향후 다짐을 나누었다. 항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마들렌을 구워 팔았던 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모금을 진행했던 일, 관련 기사 댓글 창의 혐오 발언을 반박하는 비공식 댓글을 단 활동까지… 배를 바다에 띄우고 또 그 배가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 실천의 형태는 무척 다채로웠다.
이 모든 다짐은 항해를 하던 시기 내내 함께 외쳤던 하나의 구호로 모였다. “해방된 팔레스타인 땅에 닻을 내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항해는 멈추지 않는다”. 이번 항해로 확인했듯,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는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항해를 매개로 서로를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바로 항해다. 우리의 연대와 행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닻은 머지않아 해방된 팔레스타인 땅에 반드시 내려질 것이다.
글: 정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