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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도 좌파도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렌트 자본주의’에 대해

우파도 좌파도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렌트 자본주의’에 대해

일본 사회운동단체 POSSE의 사사키 류지 인터뷰

2026년 10월 31일

[편집주] 아래 글은 일본 사회운동단체 POSSE가 발행하는 매체에 수록된 인터뷰를 번역한 것이다.

[POSSE] 음모론과 배외주의의 확산에 따라 스마트폰과 SNS가 미치는 심각한 영향이 주목받고 있다. 생성형 AI도 급속히 보급되는 가운데, 알고리즘은 우리의 사고와 욕망, 나아가 사회 운동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렌트 자본주의’로 인한 위기를 경고해 온 릿쿄대학 경제학부 사사키 류지 교수의 분석은 무엇일까? 전 세계적으로 음모론과 배외주의가 범람하는 가운데,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받는 영향의 의미나 자본주의에 미치는 충격은 아직 경시되고 있는 듯하다. 이 문제를 ‘렌트 자본주의’로 분석하여 신문이나 잡지 『세계』 등을 통해 주장해 온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사사키 류지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정당만이 아니라, 리버럴과 좌파 진영도 영향받고 있다

POSSE | 사사키 씨의 ‘렌트 자본주의’론에 대한 반응은, 특히 리버럴이나 좌파 진영에서는 어땠습니까?

사사키 류지 | 거의 반응이 없었죠. 스마트폰에 그런 힘이 있을 리 없다고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은 그저 우리가 사용하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2025년 참정당의 약진과 효고현 사이토 모토히코 지사의 사건을 직접 목격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플랫폼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드디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알고리즘에 선동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드러났기 때문이죠. 다만, 지금도 많은 리버럴이나 좌파는 참정당이나 NHK당 등의 지지자들만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는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역주: 국내 번역서명 『감시자본주의시대』), 야니스 바르파키스의 『테크노 봉건제』(역주: 국내 번역서명 『테크노퓨달리즘』), 유발 노아 하라리의 『넥서스』 같은 책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버나드 하코트의 『Exposed』라는 책도 좋지만, 이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네요.

알고리즘을 통해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생활 영역으로 확대되다

POSSE | 대학에서 수업을 할 때도, 학생들의 다수가 보고서나 쪽지시험 답안을 작성할 때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년 비슷한 문제를 출제하고 있는데도 정답률이 극단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문제를 ChatGPT나 Grok에 입력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똑같은 오답이 출력되어, 역시 사용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사사키 류지 | 바로 여기서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습을 엿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구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기계의 편의에 맞춰 일하게 됩니다. 고전적인 예로는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같은 느낌입니다. 테일러주의의 ‘구상과 실행의 분리’죠. 우선 공장 안에서, 그 후에는 사무실 안에서 이것이 철저히 추구됩니다. 원래 막스 베버가 행정 조직을 분석하며 규칙이나 문서에 의한 기록 등을 예로 들었듯이, 사무실에서는 구상과 실행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더욱 철저해집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더 이상 업무 영역뿐만 아니라 생활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구상을 자본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도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았는데도, 구상 부분은 생성형 AI로 대체하고, 출력된 결과를 복사해 붙여넣은 뒤, 자신은 실행 부분의 작업만 하고 있습니다. 대학생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시간이 있을 텐데도, 스스로 구상과 실행을 적극적으로 분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생산 과정에서 노동이 형태적으로뿐만 아니라—즉, 자본가의 지휘 명령에 따라 잉여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실질적으로 포섭되어 있다는 점, 즉 기계의 움직임에 맞춰 작업해야 하는 경우처럼 노동의 기술적 조건 그 자체가 노동자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렌트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이것이 생활 영역까지 확장되어 가는 ‘총체적 포섭’이 발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개인정보 데이터를 제공하면 구글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죠.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알고리즘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훈련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보고 있어도 자신이 흥미를 가질 법한 숏폼 영상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계속 보고 있는 사이에 뇌에 변화가 생겨, 장시간 영화를 볼 동기가 사라지고 짧은 영상을 선호하게 됩니다. 디지털 플랫폼에 의해 욕망이나 시청 습관, 주체의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숏폼 영상으로 훈련되어, 짧은 시간에 간결한 정보를 얻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구상과 실행의 분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정보를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할 일을 극한까지 줄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효율화로 인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 하면, 또 다른 디지털 콘텐츠에 욕구가 자극받아 그곳에 시간을 쏟을 뿐입니다.

최근에는 인생 상담을 ChatGPT에 의뢰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만간 상담은커녕 삶의 방식을 AI에게 결정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업조차 인사를 AI에 맡기고, AI의 판단 탓으로 돌리며 노사 갈등을 피하려 합니다. 미카모토 사토미 씨가 『AI 시대의 노동의 자율성과 자본의 통제』에서 지적했듯이, 자본가에게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매개하는 ‘관리’라는 작업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관리 그 자체를 알고리즘에 맡기는 일이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구상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 점점 사라져 가는 셈입니다. 과거 정치학자 후지타 쇼조는 기술의 소비를 통해 생활에서 마찰을 제거하려는 경향, 혹은 그러한 마찰 제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을 ‘안락으로의 전체주의’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스마트폰과 AI를 통해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의 상황이 아닐까요?

끊임없이 상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렌트 자본주의

POSSE | 소비로 인해 생활 영역이 ‘편해진다’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렌트 자본주의에 의한 포용이 자리잡는다는 말입니까?

사사키 류지 | 생활 영역을 상품과 소비의 세계로 만들어 나간다. 그러한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선 필요했던 것이 포디즘이었습니다. 공장에서 고용되어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대량의 내구소비재를 소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즉, 『제국적 생활양식』(울리히 브란트=마쿠르스 비센)(역주: 국내 번역서명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입니다. 일본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내 집을 사고, 자동차와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를 구입합니다. 게다가 자녀를 두 명 정도 두고, 좋은 대학에 보내죠. 미국이라면 더 넓은 집에 살아갈 것입니다. 어쨌든 선진국 각지에서는 현지 사정에 맞는 제국적 생활 양식이 형성되었고, 상품을 소비하는 세계가 점점 더 구축되어 간 것입니다.

따라서 포디즘의 본질은 단순한 조립 라인을 통한 대량 생산이 아닙니다. 대량 소비를 실현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핵심입니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해왔으며, 획일적인 생산을 통한 비용 절감도 추구해 왔습니다. 다만, 그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팔아낼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 시대의 노동자 계급은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에 등장하는 느낌입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며, 임금을 받으면 술에 취해 순식간에 다 써버리는 그런 느낌이지요. 노동자가 이러한 상태라면, 자본이 노동자로 하여금 많은 상품을 구매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게 하여 소비하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포디즘입니다.

이처럼 안정적인 고용을 확보하고,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며, ‘이런 생활이 이상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생활 양식을 정립해 나가다 보면, 이른바 재생산 영역(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재생산하기 위한 영역. 휴식이나 수면, 식사 등을 취하거나, 생활을 위한 가사를 하는 시간)에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빨래판을 사용해 몇 시간이나 걸려 빨래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세탁기에 넣기만 하면 되므로 시간이 압도적으로 단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사 시간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기업의 광고 등을 통해—경우에 따라서는 행정 당국의 지도나 학교 교육을 통해서— 충족해야 할 위생상의 기준이 높아지거나, 청결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거나, 식사에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강하여, 매일 세탁을 하는 가정도 적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웃들과 분담해 하던 재생산 노동이, 핵가족화되면서 각자 따로 하게 되면서 부담이 늘어나게 된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사 노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사야 할 물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상품을 구입해 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새로운 생활 욕구가 생겨나고, 가사 노동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더 많은 소비 욕구가 창출됩니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안락에 대한 전체주의’가 생겨나고, 이것이 다시 욕망을 부추깁니다. 이처럼 각종 내구재와 서비스의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 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대량소비 사회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경제적 지배와 현재의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환경 부담을 전제로 해서야 비로소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브란트와 비센이 선진국에서 형성된 소비 사회를 ‘제국적 생활 양식’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세기의 자본주의는 이러한 ‘제국적 생활양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킴으로써 이익을 창출해 온 것입니다. 고도 성장 초기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돈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경제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 구매한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자동차를 사들였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강한 나라에서는 급속한 성장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대략 보급되어 어느 정도 정착되면, 교체 수요만 남게 됩니다.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판매 대수가 더 이상 늘지 않게 됩니다.

1970년대 이후, 상품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해 포스트포디즘이 등장합니다. 간단히 말해, 브랜딩과 마케팅이죠. 전자의 경우, 상품을 어떻게 더 비싸게 팔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용상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브랜드화를 통해 1만 엔 정도 하는 물건을 10만 엔에 파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브랜드의 본질은 인위적으로 독점 상태를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명한 농구 선수가 브랜드화한 나이키의 상품은 나이키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욕구에 호소하는 광고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무렵부터 자본주의는 점차 사기 같은 성격을 띠게 됩니다.

POSSE | 그 연장선상에 렌트 자본주의가 있다는 뜻일까요?

사사키 류지 | 그렇군요. 렌트 자본주의에서는 포디즘 시대의 제국적 생활 양식의 확립과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브랜드화 및 마케팅을 토대로 삼으면서,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힘을 활용해 이를 한층 더 촉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상품 매매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라 불렸던 건, 편의점의 POS 시스템 등에서 성별이나 연령대를 겉모습으로 판단해 계산대의 고객층 버튼을 누르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사람들은 매일 스마트폰을 이용해 다양한 앱과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끊임없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누가 무엇을 샀는지. 몇 살에 어디에 살며, 무엇을 사고, 어떤 경향이 있는지. 혹은 스마트워치에서 다양한 생체 데이터를 수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이라면 수십억 명에 달하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양의 증가와 CPU 성능의 발전을 바탕으로 강력한 알고리즘이 구축되어 온 것입니다. 타겟팅 광고를 통한 욕망의 선동, 소셜 미디어에서의 감정 선동 등은 이를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알고리즘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가 통제당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생산수단과 노동자 사이에 뒤바뀐 관계가 발생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사용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가치 증식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가치 증식을 위해 노동자를 사용하는 관계가 성립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뒤바뀜을 물질적인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기계인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알고리즘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관련 기술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즉, 현재의 알고리즘도 단순히 생산 활동이나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도구이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생산 과정에서는 알고리즘의 감시를 받으며 그 지시에 따르고, 소비 과정에서는 알고리즘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상품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포위된 ‘커먼’으로서의 인터넷

POSSE | 사사키 씨는 렌트 자본주의에 대해 “렌트는 원리적으로 자본(혹은 자본이 동원하는 임금 노동)만으로는 생산할 수 없거나 생산하기 어려운 생산(상업) 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얻어지는 고정화된 초과 이윤이다”라고 설명하며, ‘커먼’의 독점을 그 본질로 논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류지 | 여기서 말하는 ‘커먼’이란 사이토 코헤이 씨의 논의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농지나 자연환경처럼 산업 활동을 통해 단기간에 창출할 수 없고, 오랜 세월의 물질 대사와 인간의 활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형성되는 광의의 생산 수단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런 것이기에 모두가 공유하고 다음 세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자본론』 제3권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본래 토지라는 것은 누구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대지의 ‘이용자’에 불과하며, 개인이든 사회든, 혹은 그 시대의 인류 전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유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대대로 인간들 사이에서, 혹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커먼이 노동을 통해 쉽게 생산될 수 없기 때문에, 화폐의 힘을 통해 이를 독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점을 이용하여 획득할 수 있는 초과이윤—평균이윤을 초과하는 부분의 이윤—을 ‘렌트’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지대처럼, 공유재의 독점자에게 그 이용자가 지불하는 대가를 렌트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어셈블리』에서 현재의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디지털 거대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의사소통 능력과 사회적 협력을 장악하고 독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소셜 미디어를 가동하기 위한 서버를 구축하거나 애플리케이션 코드를 작성하는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의 사용 가치의 핵심을 이루는 사람들의 사회적 소통이나 사회적 협력 그 자체는, 자본이 임금 노동을 동원함으로써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본에 의해 직접 창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본이 일단 그것을 ‘생산수단’으로 장악하고 독점할 수 있다면, 다른 자본은 이에 대항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사회적 소통이나 사회적 협업은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이를 많이 장악할수록 더욱 유리한 지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데이터 수집을 통해 알고리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으며,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면, 이러한 독점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플랫폼은 물론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돈 한 푼도 내지 않고도 사람들을 글이나 동영상 게시로 이끌고 있습니다. 글이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무료로라도 많은 이가 봐주기를 바라는 동기가 있으며, 이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탄생합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걸쳐 길러온 사회적 협력에 대한 욕구와 능력—언어, 지식, 문화, 관습, 돌봄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렌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활동이 지닌 협력적 성질이 독점 구축과 렌트 획득에 이용되어 왜곡되어 버립니다.

바르파키스도 지적했듯이, 애초에 인터넷이 오늘날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사회적 인프라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자본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로가 완전히 사유화되어 단지 길을 걷고 있을 뿐인데도 민간 기업에 의해 데이터가 수집되고 계속해서 요금이 부과된다면, 누구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세계는 처음부터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함을 좀처럼 깨닫지 못합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인터넷은 핵전쟁이 발생했을 때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라면 중앙이 파괴되면 기능 불능에 빠지게 되므로, 보다 분산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군의 군사 기술이었으나, 80년대에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90년대 이후부터는 상업적 이용이 허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새로운 IT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단번에 민영화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소통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그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사용자를 포섭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만들어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그로 인해 데이터는 점점 더 많이 모이고, 강력한 알고리즘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의 소통 방식과 욕망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변모해 가는 것입니다.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커먼즈

사사키 류지(계속) | 이처럼 렌트 자본주의는 커먼을 장악하고, 이를 렌트 획득이라는 목적에 최적화하기 위해 커먼 그 자체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로 인해 소통과 협업을 가능하게 했던 기반 자체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연결되어 갈수록 분열이 심화되고, 에코 챔버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공포나 불안, 분노를 부추기는 콘텐츠야말로—비록 그것이 가짜라 할지라도—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 수 있고,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아무리 비참한 상황이라도 이는 모두 다중의 욕망이 왜곡된 것에 불과하며, 그 왜곡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확실히, 현재에도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참정당의 약진 역시 지배적 질서에 대한 대중의 항의 표현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그리의 생각은, 포디즘적 자본주의의 교착 상태든, 그 이후의 포스트-포디즘의 교착 상태든, 금융 자본주의의 교착 상태든, 이 모든 것이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나 글로벌 사우스 사람들의 투쟁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인데, 이러한 관점에는 일말의 진리가 있습니다.

다만, 지금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역시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네그리가 말하는 것처럼 의사소통이 근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네그리의 전망을 실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는 『기호와 사건』(역주: 국내 번역서명 『대담 1972-1990』)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정보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한 커뮤니케이션 사회가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네그리의 질문에 대해,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은 구석구석까지 돈에 침식당하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디지털에 연결됨으로써 오히려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들뢰즈의 통제 사회론이었는데, 지금까지로 볼 때 들뢰즈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렌트 자본주의는 커먼의 포위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커먼을 되찾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커먼은 복구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파괴되어 왔습니다. 특별히 소셜 미디어라고 해서 본래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려는 사람들의 욕구 자체도 긍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자본에 의해 사유화되어, 자본의 이익이 되도록 알고리즘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이 도구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해는, 지극히 순진하고 무비판적인 이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산업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 그리고 렌트 자본주의의 시대로

POSSE | 네그리가 ‘커먼’을 주창한 1970년대 무렵부터 렌트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일까요?

사사키 류지 | 『렌트 자본주의』(미번역)(역주:국내 번역서명『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의 저자인 브렛 크리스토퍼스도 지적하듯이, 렌트의 부상은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참고로 말하자면, 크리스토퍼스의 렌트에 대한 이해는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혼합체이며, 마르크스의 렌트 개념에 근거한 저의 이해와는 다르지만, 대략적인 경향을 파악하는 데는 참고가 됩니다).

산업이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던 시대에는 금융에 대해 강력한 규제가 가해졌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금융은 신용=화폐 지불 약속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이므로, 기존 자본 가치의 한계를 넘어 자본주의적 생산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일시적으로는 약속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기적인 수탈이나 경제 공황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는 후자의 기생적이고 사기적인 측면을 억제하고, 산업 자본을 안정된 상황에서 발전시키기 위해 일정한 규제가 가해져 왔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글래스-스티걸법’처럼 은행과 증권사의 업무를 분리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하락하고 산업 자본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는 가운데, ‘금융 빅뱅’, 즉 금융 시스템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여 투기적 투자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IT 발전이 맞물리면서 ‘금융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토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원리적으로, 노동의 동원과 생산력의 발전에 의존하는 산업 자본과, 단순히 토지를 임대함으로써 지대를 챙기는 기생적인 성격을 지닌 토지 소유는 대립 관계에 있습니다. 금융은 생산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토지 소유는 기생적인 성격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시대는 아직 자본가와 지주가 일체화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1861–63년 초고』에서 자본가는 토지를 국유화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유재산의 원리와 모순되므로 어중간한 요구밖에 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후, 자본가가 토지를 매입하면서 자본과 토지 소유의 일체화가 진행되는데,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토지 매매나 지대를 통해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산업에 대한 투자가 저해되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여, 산업을 통해 수익을 내도록 유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 축적이 정체되는 가운데, 토지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여 매매가 점점 더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게다가 지적 재산권 등 그 밖의 기생적인 이익 획득 형태에 대해서도 유사한 규제 완화가 이루어졌으며, 자연 독점이 형성되기 쉬운 인프라 부문의 민영화도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렌트’라는 수익 형태 자체는 사실 1970년대부터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토지, 자원, 인프라, 지적재산권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자본주의 수익 형태의 핵심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부터 2010년경까지는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르는 편이 그 본질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금융 자본주의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여전히 금융이 중요한 수익 형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거품의 생성과 붕괴를 반복하며 수익을 얻는 것은 자본주의적 통치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어, 다시 일정한 규제를 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대신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개입하여 주가를 끌어올리고, 금융을 통한 수탈을 실현하는 체제로 전환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전쟁을 계기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한계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또 다른 기생적인 수익 형태인 렌트가 부상하여 자본주의의 중심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렌트 자본주의입니다.

그 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앞서 거듭 지적해 온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의 보급과 알고리즘의 발전을 매개로 한 디지털 영역의 확대입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영역은 자동차, 농업, 의료, 교육, 요양 등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되어 갑니다. 게다가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전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우리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산업 분야에서 렌트를 창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국가가 커먼을 어느 정도 관리하고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인프라 부문의 상당 부분도 국영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국가가 ‘선의’로 관리했던 것은 아니며, 산업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렌트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에서는 커먼을 렌트 획득을 위해 고갈시켜 버리는 것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촉진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정치적 통치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대증요법적인 규제를 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합리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포퓰리즘적 세력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 위기나 경제 위기, 나아가 사회적 분열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현재의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렌트 자본주의에 맞서는 운동은 어디에 있는가?

POSSE | 이에 맞서는 운동의 전망은 있을까요?

사사키 류지 | 획기적인 전망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방치해 두면 문명의 붕괴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기후 위기는 심각하여, 조만간 지구공학을 시도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며, 실패할 경우 봉준호 감독의 드라마 『설국열차』처럼 지구 전체의 기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역관계를 감안하여, 중국처럼 권위주의적이긴 하지만 기후 위기 대책에 비교적 적극적인 국가가 앞장서 주기를 바라는 주장도 구미 좌파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국가가 폭주할 위험성이 생깁니다. 이는 전쟁 전의 일본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나아가 과거의 ‘사회주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죠. 따라서 합리적인 권위주의 세력에만 기대를 거는 것 역시, 그것이 언제 비합리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위험이 따릅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기회는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렌트 자본주의는 안정된 지배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위기를 초래하는 불안정한 체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극우나 비합리적인 포퓰리스트들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며, 뉴욕의 맘다니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젊은 세대의 ‘사회주의’화도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과 젊은 세대의 상향식 ‘사회주의화’가 연대할 수 있다면, 이 복합 위기 시대에 맞서 싸울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저 자신은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전체를 둘러보아도, 아직 구체적인 전망을 그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전망이 없다고 해서 굳이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조차도 1848년 혁명에 참여하고 파리 코뮌을 목격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주의의 정치 형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인류사적 수준의 거대한 변혁은 일어나는 것이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렌트 자본주의가 커먼의 파괴로 귀결되는 한, 그것은 언젠가 일어날 것입니다. 문제는 인류사에서 그것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참여하고, 어떻게 이론적으로 총결산하여 다음 단계로 이어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에 존재하는 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재생될 것입니다.

인터뷰이 : 사사키 류지(佐々木隆治)

1974년생. 릿쿄대학 경제학부 교수.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 졸업. 사회학 박사. 일본 MEGA(『신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편집위원회 편집위원. 저서로는 『왜 일해도 부유해질 수 없는가』(카도카와 소피아 문고),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카도카와 선서)(역주: 『마르크스 자본론 3:마르크스 초고본 해설서』로 번역출판되어있음), 『카를 마르크스』(치쿠마 신서) 등이 있다.

번역 : 군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