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해상 참사가 일본 사회운동에 던진 질문과 성찰

오키나와 해상 참사가 일본 사회운동에 던진 질문과 성찰

오키나와 평화 운동과 일본 사회운동은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을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평화 운동의 근간을 타격하며 자신들이 그간 추진해왔던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 시도가 정당했다며 강변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운동이 자신의 한계와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하며 새롭게 자세를 가다듬는다면 결코 재출발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2026년 6월 30일

[동아시아]오키나와일본, 오키나와, 반전평화, 청소년, 재난

지난 3월 16일, 일본 오키나와현 앞 바다에서 두 척의 선박이 전복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상 악화로 풍랑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무리한 출항을 감행하다 벌어진 사건이었다.

전복 사고가 발생한 선박은 단순한 어선이 아니었다.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오카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 외부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엎고 헤노코(辺野古) 해변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이래, 미군기지 헤노코 이전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해상 캠페인을 위한 선박이었다.

당시 두 척의 선박에는 21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전복 사고로 4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졌다. 사망한 두 명 중 한 명은 선박을 조종하던 71세의 선장 겸 개신교 목사, 다른 한 명은 17세의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해상 시위 선박에는 도시샤국제고등학교(同志社国際高等学校) 학생들이 ‘평화 학습’ 수학여행의 일환으로 타고 있었다.

사건은 금세 일본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사건 초기의 언론이 주목했던 것은 정부 차원에서 풍랑주의보를 발표했음에도 이를 어기고 출항을 감행하다는 점이었다. 알려진대로 일본은 지진이나 쓰나미(지진해일)과 같은 자연 재해가 다른 국가에 비해 빈번하게 벌어지는 편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게 높은 빈도의 재해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국민이 이를 따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이 요구된다. 달리 말하면, 정부가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유와 상관 없이 해당 국민의 책임이 된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은 이미 정부의 기조에 ‘불만만 늘어놓고 어깃장을 놓는다’는 식으로 미운 털이 박혀 있던 평화운동 계열 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원래부터 정부에 반대하던 이들이 풍랑주의보까지 무시하더니, 결국 활동가 자신은 물론 학생까지 죽게 만들었다는 서사가 완성된 것이다.

운동에 대한 총체적 공격

메이저 언론들은 연일 이 사고를 집중 취재했고, 이내 사건 발생 전의 정황들이 밝혀졌다. 해상 캠페인을 진행하던 ‘해상 헬리콥터기지 건설반대・평화와 나고시정 민주화를 요구하는 협의회’(海上ヘリ基地建設反対・平和と名護市政民主化を求める協議会, 이하 협의회)는 캠페인의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고, 개시 결정이 선박을 운행하는 선장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사고 발생 약 20분 전 해경이 “풍랑주의보가 선포됐으니 항해를 자제해달라”는 통보를 수차례 했으나 이것이 무시됐다는 점, 도시샤국제고의 교사가 선박엔 학생만 오르게 하고 자신은 동승하지 않았던 사실도 밝혀졌다. 선박 출항 전 사전 점검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 캠페인에 함께하는 인원에게 구명조끼 착용법 등 안전 안내가 없었다는 점, 해상 캠페인이 항로 운행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았던 것 등이 지적됐고, 협의회에 질타가 쏟아졌다.

협의회를 파헤친 뒤, 도시샤국제고등학교에 대한 집중 비판이 이어졌다. 도시샤국제고등학교가 40년 넘게 평화 학습을 주제로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보내왔다는 점, 이 과정에서 학교와 협의회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 선박 사용료 명목으로 캠페인마다 15,000엔을 지급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 드러났다. 또, 명확히 미군 기지 반대 운동에 동참하게 되는데도 이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 보호자에게 선박 탑승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 상해보험에 가입하거나 협의회 측에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도 질타받았다.

논란은 폭넓게 확대됐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일본공산당 등의 좌파 정치세력, <오키나와 타임즈>, <류큐신보> 등 지역 언론, 2018년 이후 장기간 오키나와현 지사로 역임 중인 타마키 데니(玉城デニー)에 대한 공격으로도 발전했다. 선박을 운전하다 사망한 선장이 공산당의 공인을 받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는 점, 지사 선거 시기 타마키 데니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선박에 부착했다는 점까지 파헤쳐졌다. 심지어 중국의 국영매체 <환구시보> 기자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선박보다 좀 더 튼튼한 캠페인 선박에 탑승했었다는 사실까지 파헤치며, ‘친중’ 논란까지 더해졌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4월 7일, 문부과학성은 일본 전역의 지자체장과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청’에 해당하는 기구), 학교장에게 교외 활동에 대한 위기관리 매뉴얼의 점검 및 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4월 24일에는 해당 학교재단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작했으며, 같은 날 학교가 위치한 교토에선 ‘학교 측 위기관리 매뉴얼에 결함이 있다’는 이후로 교외 활동 자제를 요구했다. 4월 28일에는 국토교통성 차관이 사고 현장을 시찰하고, 사고 장소 근처 해변에서 헌화와 묵념을 진행했다.

5월 22일, 도시샤국제고등학교의 오키나와 수학여행이 교육기본법 제14조 2항 “법률에 의해 규정된 학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정치 교육 및 기타 정치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法律に定める学校は、特定の政党を支持し、又はこれに反対するための政治教育その他政治的活動をしてはならない。)는 것을 빌미로, “학교가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하는 행동을 했ㄷ”고 판단한 보고서를 발행했고, 재단 측에는 시정 지시를 요구하는 통지를 보냈다. 이는 해당 조항이 최초로 발동된 순간이기도 했다.

같은 날 오키나와 지역의 사무를 총괄하는 일본 내각부(행정자치부) 오키나와종합사무국은 사망한 선장이 면허 없이 배를 운전했다는 것을 이유로 해경에 협의회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같은 날 교토부 지사는 법률 위반을 명목으로 도시샤국제고에 대한 운영 보조금을 감액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6월 2일 기자회견에서 문부과학성 장관 마쓰모토 요헤이(松本洋平)는 본 사건을 “정치 활동을 위한 선박에 학생을 탑승시킨 극단적인 일”이라 명명했다. 6월 23일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도시샤국제고등학교의 안건 관리 및 교육 활동 관리는 현저하게 부적절했다”며 정부 차원의 개입은 부적절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해경이나 정부 부처를 넘어 이번에는 총리가 사건을 직접 언급하였기에, 사건이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안전’ 논리

일본 정부 차원의 압박과 언급의 수위가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운동과 좌파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이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제재에 나선 것은 과했다는 비판이 있을 뿐이다. 일본공산당은 “정부의 제재 조치가 과하다”고 언급할 뿐이었고,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사이코 코헤이는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행동 자체는 잘못 됐다”고 발언했다. 풍랑주의보에도 출항을 강행하다가 사고가 났고, 이렇다 할 안전 대응 체계도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뾰족한 대응의 수가 없긴 하다.

하지만 사안을 다루는 언론과 정부의 자세에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 사고가 사회운동만의 문제일까. 일본에서도 풍랑주의보나 각종 기상 경보가 발효되는 경우에도 출퇴근을 비롯한 일상 활동은 벌어진다. 당국의 주의가 있음에도 어디까지나 권고에 머무른다. 한일 양국 모두 기상주의보나 기상경보에 대해서 적절한 안내를 촉구할 뿐, 야외 활동 자체를 금지시키지는 않는다. 기상이 악화되는 순간에도 각자 다양한 이유로 일과 활동을 계속 해야만 하는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고, 활동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마치 상황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야 가능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기상 상태가 나쁠 때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은 안전한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출퇴근을 하듯, 누군가는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와중에서도 1인 시위를 하거나 집회를 연다. 일정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동인 것은 맞지만, 그런 위험성이 존재하는 와중에서도 각자에게 야외 행동을 해야만 하는 동인이 있기 때문이다.

헤노코 기지 반대 운동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가 그랬듯, 미군기지로 인한 사건사고나 불편은 끊이지 않는다. 애초 자국 영토에 타국의 군사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묵묵히 납득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은 2009년 리버럴 정당인 민주당이 집권할 때 오키나와에서 미군 기지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믿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약속이 뒤집어지는 상황까지 목도했다. 이후 민주당은 자멸했고, 다시 자민당 정권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운동은 더 필사적인 목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언론과 정부의 접근은 이런 맥락을 짚기 보다는 기계적으로 ‘안전하지 않았다’는 점에만 초점을 기울이며 집중 공격했다. 하지만 이는 기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미군기지를 반대하기 위한 캠페인이 벌어졌음을 방증하기도 하다. 평화 지향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민주당 정권(2009-12년)이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자민당 아베 신조 내각, 그리고 아베의 정책을 계승한 현재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군사 확대의 목표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초조함은 계속 높아졌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풍랑주의보에도 출항을 강행하게 만든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든 인명 사고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내세우는 안전의 논리는 얼마나 단단한가. 동일본 대지진과 그로 인해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원전의 안전 신화는 깨진지 오래이지만, 일본 정부는 에너지 효율성의 논리를 내세우며 안전을 억누른지 오래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오키나와 미군기지도 중장기적으로는 전쟁의 긴장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동하며,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주일미군 장병의 범죄 문제 역시 마냥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다.

일본 정부 스스로 안전의 논리를 쉽게 다른 논리로 대체하고, 언론은 이에 대해 비판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만큼이나 일상적으로 안전을 신경쓰기 어려운 곳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는 합심하여 이렇게 안전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개인을 비롯한 민간 차원에서도 항상 안전을 신경써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의 차원에서 안전 문제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에서 안전을 등한시 하는 사이에 불안한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 일군의 시민들은 필사적 움직임에 나섰고,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들의 안전을 침해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제는 자신들이 안전을 등한시해온 역사는 지워버린 채 ‘안전하지 않다’며 문제를 외부화하는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다.

자성

이번의 사망 사건을 그저 그간의 맥락만을 언급하며 협의회 측의 문제를 결코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풍랑주의보에서도 출항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 이외에도 이번에 사망한 사고 선박의 선장이 선박 운전 면허가 제대로 없었다는 것, 도시샤국제고에서 수학 여행 온 학생을 해상 캠페인에 참가시키는 과정에서 충분히 이 캠페인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말해도 결국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리버럴한 경향의 도시샤국제고와의 관계를 통해 학생들을 해상 캠페인과 같은 사회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며 조금이라도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늘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위한 준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더 치명적인 사건도 있었다. 6월 17일, 이번 전복 사고로 사망한 선장이자 목사였던 70대 남성이 2010년 한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산케이신문>이나 <주간문춘> 같은 보수적이거나 선정적인 매체이 보도도 아니었고, <류큐신보>에서 내놓은 단독 보도였다. <류큐신보>는 피해자의 증언 뿐만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선장의 주변 인물과의 취재를 통한 교차 검증을 거쳤다는 코멘트를 덧붙이며 보도의 신빙성을 강조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여러 차례 자신의 피해를 주변에 호소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가해자에게 운동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평화운동이 운동 내부에서 평화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고, 문제가 발생해도 묵인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운동이 정부의 거센 압박에 시달리고, 여론 차원에서도 수세에 몰려 있었다는 맥락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운동이 유지되는 것에만 급급할 뿐, 제대로 유지되기 위한 성찰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상황을 스스로 보여주고 만 것이다.

운동에서 밝혀진 문제가 곧 운동이 그간 맞서왔던 주장이 정당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몇 달 간 일본 정부나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운동에서 드러난 치명적 문제는 주장을 전유하기도 좋게 만든다. 운동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벌어진 문제를 자성하고 바꿔내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런 식의 논리는 힘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류큐신보>가 자신들 역시 사건과 간접적으로 얽혀 있다며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이번 성폭력 피해 사실 보도로 인해 오키나와 운동 사회에서 비판이 가해질 것을 감수하고 보도를 한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이번 사망 사고를 기점으로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평화 운동의 근간을 타격하며 자신들이 그간 추진해왔던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 시도가 정당했다며 강변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저 이번의 사태를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며, 계속 정체된 상황으로 남아있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일본 정부가 이번 사고를 통해 추구하는 바를 실현하는 것을 더욱 도울 따름이다. 운동이 이번 일을 계기로 무너진다면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겠지만, 반대로 자신의 한계와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하며 새롭게 자세를 가다듬는다면 결코 재출발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 평화 운동과 일본 사회운동은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과 그 해결은 앞으로 운동이 갈 길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글 : 성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