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 2022년 한 해, 세계 정세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연초부터 세계 경제는 저성장과 물가 상승의 고리에 묶여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현금 흐름이 부족한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부도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실업률 상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민중들의 생계고는 날이 갈수록 심화 중이다.
더구나 올해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유럽의 군비 증강을 기점으로 군비 경쟁의 심화를 겪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한반도와 발칸반도, 대만해협, 카슈미르 등지에서도 위태로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생존에 대한 전방위적인 위협 앞에서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은 곳곳에서 자신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C의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東動(동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희망을 재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뉴스레터다. 2022년 1월 1일 700명이었던 구독자 수는 연말인 지금 1,300명으로 늘었으며, 절반에 가까운 열독률 역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연말을 맞아 ‘동동’에서는 편집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올해 동아시아 곳곳에서 발생한 10개의 사회운동과 사건을 선정해보았다. 단순히 참가 규모나 뉴스에 노출된 횟수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저항의 성격과 규모, 지역 분포 등을 고루 고려하였다.
중국 : 제로코로나에 대한 불만과 백지 시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중국에서 강력한 방역 정책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낳은 반면, 중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봉쇄정책을 취했다. 보건의료 및 사회복지 정책 차원에서도 중국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조처를, 미국은 자유방임적 조처를 취했다. ‘친미냐 친중이냐’라는 잣대는 선택을 강요했지만 민중에게는 두 선택지 모두 타당하지 않았다. 권위주의적 대책은 민중의 권리를 지나치게 많이 통제했고, 자유방임적 태도는 국가의 존재 의의를 되묻게 했다.
특히 중국의 방역 정책은 시민들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는 대신 강박적으로 통제에 집착했다. 확진자 증가를 억누르는 데 성공했지만,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병상 수 확보에 집중하는 대신 통제와 봉쇄에만 집중한 것이 문제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해제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도시 빈민과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팬데믹 시기 베이징의 배달 노동자들 [상]
📜팬데믹 시기 베이징의 배달 노동자들 [하]
4월 상하이 전역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라 봉쇄되고, 봉쇄가 몇 개월에 걸쳐 지속되면서 상하이 시민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봉쇄와 그에 따른 불만은 상하이에 국한되지 않았다. 5월 중순부터는 베이징의 대학 캠퍼스마다 항의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제로 코로나와 캠퍼스 봉쇄에 맞선 중국 대학생들의 저항
10월 16일부터 일주 일간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3 연임과 향후 5~10년 중국을 이끌 최고 관료들의 명단이 확정됐다. 대회가 열리기 사흘 전, 베이징 한복판 고가도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확성기를 통해 구호가 들렸다. “봉쇄와 통제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공민이 되자!” 등의 구호는 당대회의 성격과 한계를 폭로하기에 충분했다. 시위를 주도한 펑리파 씨가 내건 구호는 이후 벌어질 전국적인 백지 시위의 주요한 슬로건이 됐다. 📄“새 중국” 약속하며 인권·노동 탄압한 시진핑 두 얼굴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폭스콘 정저우 공장에서 발생한 공장 엑소더스와 쇠파이프를 동원한 시위는 오랜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과 공장 내의 반노동적인 통제가 촉발한 분노에서 비롯됐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위협되는 와중에도 애플과 폭스콘 자본은 정저우시 당국의 지원에 힘입어 ‘폐쇄적 노동 통제 시스템’을 유지하였고, 생산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확진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자, 공장 측은 높은 보너스를 약속하면서 신규 인원을 대대적으로 받았다.
급기야 11월 23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 내 시위에 돌입했다. 경찰들은 흰색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노동자들과 대치했고, 최루탄과 물대포 등을 쏘며 집회를 진압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구타하고 폭력적으로 체포하기까지 했다.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 코로나 방역 부실 속에 건강권 위해 격렬 시위
바로 그즈음인 11월 24일, 중국 대륙의 북서쪽 변두리에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00일 넘게 봉쇄 조치를 당했던 한 아파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10명이 사망한 것이다. 다음 날 저녁, 분노한 우루무치 시민들은 봉쇄망을 부수고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은 거리를 행진하면서 정부의 도시 봉쇄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튿날이 되자 상하이와 베이징, 난징, 청두, 충칭 등 중국 전역의 주요 대도시에서 연대 시위가 발생했다. 사람들은 백지를 들고 곳곳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거나 구호를 외쳤다. 이번에도 시위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부재한 중국 현실을 겨누고 있었다. 주로 대학생과 청년들로 구성된 시민들은 우루무치에서 죽어간 시민들의 죽음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33년에 다가온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가했고, 또 누군가는 일부 급진주의자들이 그런 구호를 외쳤지만, 대중적으로 퍼지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데 이번 시위에는 하나의 퍼즐이 빠져 있다. 바로 ‘죽은 동포들’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 들어 희생자 중 하예르니샤한 압두레헤만(48)씨는 네 자녀와 함께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 14살 딸부터 5살 난 막내까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20대 후반의 굴바하르씨 역시 그의 두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중국인들이 백지 시위로 지키려는 ‘동포’엔 위구르족도 있을까
중국 사회의 모순은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 갈등과 대중 불만이 점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불가피하게 더 많은 저항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엔 정확한 방향이 필요하다. 중국 사회운동의 질적인 진전은 “재교육 수용소를 폐지하라”는 요구를 베이징의 한족 청년들도 외칠 수 있을 때, 폭스콘 노동자와 베이징의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연결될 때 가능할 것이다.
미얀마의 최근 정세 : 계속되는 불복종 운동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무참히 파괴했다. 미얀마 민중들은 곧바로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전개하면서 거세게 저항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부터 글로벌 브랜드의 하청 의류공장 노동자들, 철도, 공항 및 항만, 학교 등 곳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의 물결을 이어갔다. 그러나 군부는 저항을 강력하게 진압하며 학살을 자행했고, 올해 들어 적지 않은 민주 인사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미얀마 노동자들의 2022년 목표는 민주주의 쟁취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4명의 미얀마인을 기억하는 침묵행진
탄압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얀마의 상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얀마에서는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수도 양곤에서는 눈에 띄는 대중 시위가 불가능해졌지만, 북부의 여러 도시에서는 여전히 시위들이 일어난다. 또, 카렌 민족해방군 등 몇몇 소수민족 군대는 군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고,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가 결성한 ‘시민방위군’은 전투 역량을 점차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미얀마 군부의 막무가내 행보는 심화하고 있다. 미얀마는 실질적인 내전 상황에 접어든 것이다.
시민들은 미얀마 군부 또는 친군부 자본가가 운영하는 기업의 불매 운동을 통해 효과적인 타격을 입혔다. 일본의 주류회사 기린(Kirin)과 미얀마 군부가 합작 운영하는 미얀마 맥주(Myanmar Brewery)는 2018년 기준 미얀마 국내 맥주 시장의 80% 점유율을 차지하였으나, 불매운동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기린 측은 보유 지분을 전략 합작회사에 넘기고 현지 시장에서 철수했다.
한편, 한국의 몇몇 기업들은 미얀마 군부와 잡은 손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1년 4월 16일, 포스코 C&C가 MEHL의 지분을 매각하고 합작 관계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한국지부가 이룩한 인권 승리”라 자랑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포스코 C&C는 여전히 MEHL과 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합작 관계에 대한 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진척된 내용은 없다. 엠네스티의 홍보는 포스코 자본에 면죄부를 부여할 뿐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얀마 가스전 사업에 대해 해명되지 않은 문제들
SK 자본 역시 미얀마 군부와의 협력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SK는 겉 으로는 ESG 경영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싱가포르법인 SK에너지인터내셔널이 공동으로 미얀마 현지에 설립한 기업 ‘베스트오일’을 통해 국가행정위원회 상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오일이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하여 미얀마 군부 등에 공급하는 사업에 참여한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와의 협력을 통해 이윤놀음하는 SK이노베이션
무엇보다 우리는 내전의 성패에 모든 운을 걸기보다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가령 음식 배달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터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올해 3월, 미얀마 전역에서 7~8천 명의 푸드판다 배달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푸드판다 노동자들은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문 당 최소 배송료를 670캬트(한화로 약 500원)로 올려줄 것, 실제 이동 경로에 따라 배송 거리를 측정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사업주는 최저임금 580캬트까지 임금을 인상하는 것에 동의하고, 다른 요구 사항을 이행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터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미얀마 민중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연대를 지속해야 한다. 미얀마 군부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몰아내지 않는 한, 동남아시아 민중의 민주주의는 없다. 이는 오늘날 동아시아 전체 정세와도 무관하 지 않을 것이다.
한국 : 3만여 명이 모인 기후정의행진
점증하는 전 세계 기후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 활동가들은 지난 운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기반으로 9.24 기후정의행진을 기획했다. 2019년 9월 있었던 ‘기후위기 비상행동’ 당시 기후운동은 정부를 향해 기후위기 인정과 비상선언 실시, 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과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 방안 마련,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다. 실제 2020년 여름 226개 지자체와 국회가 기후 비상을 선포하고 이후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위원회라는 범국가 기구를 구성하는 등 명목상으로 당시의 요구들은 다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악화 일로를 걸었고,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허구적인 녹색성장과 자본의 새로운 이윤 추구 등 그린워싱에 활용될 뿐이었다.
924 행진 조직위의 3대 요구안은 우리가 힘이 없는 상태에서 권력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탁하는 과거 운동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후위기를 야기한 현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확대에 기반한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불평등 타파를 요구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가장 먼저 화석연료와 생명 파괴 체제 종식을 요구하면서 화석연료 생산, 유통, 소비를 가능한 한 빨리 중단할 것과 이들 기업 에 대한 보조금 등 지원 중단 및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민주적이고 공공적 통제를 주장했고, 이어 “불평등은 기후위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원인”이라는 인식에 따라 모든 불평등 종식 없이는 기후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천명했다. 또한 국내적 불평등의 문제를 넘어 북반구 국가로서 전 지구적 불평등 심화에 일조한 한국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도 요구했다.
40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한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는 수동적 참여를 넘어 각자의 공간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조직했다. “서울 지하철역 대부분에 홍보 포스터가 붙었고, 서울 도심에서부터 소도시 공용터미널과 시골 마을 책방에 이르기까지 포스터와 현수막이 걸렸다. 전국 곳곳에서 행진을 독려하는 선전전과 기자회견, 강연, 간담회 등이 열렸고, 기존 집회와는 달리 개인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기후정의의 렌즈를 통해 나누는 ‘오픈 마이크’ 행사도 곳곳에서 개최됐다. 9월 24일 행진을 앞둔 기후정의 주간에만 100여 개가 넘는 각종 행사와 행동 계획이 제출됐고, 집회와 행진을 도울 자원봉사자 수십 명이 모였다.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 지자체를 포함한 전국 26개 지역에서 버스를 대절하거나 기차 한 량 전체를 예약하는 방식으로 참가단이 조직됐고, 본 행진에 참여하지 못하는 지역 시민들을 위한 지역 차원의 기후정의행진도 곳곳에서 조직됐다.” (김선철)
9월 24일 당일,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모였다. 한국, 아니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동이 조직된 셈이다. 3년 전 5천여 명에 비해 6배 이상 성장했으며, 외연 역시 넓어졌다. “3년 전 행동이 환경단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환경뿐 아니라 노동, 농민, 반빈곤, 평화, 장애인, 성소수자, 복지, 보건의료, 종교, 문화예술, 진보정당 등 한국 사회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영역의 단체들이 조직위에 참여했다.” (한재각)
플랫폼C 역시 기후정의행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8월 청천벽력 실천단 프로그램 중에는 SK빌딩 앞 집회를 개최했고, 9월 초에는 월례 포럼을 통해 이번 기후정의행진의 의미와 목표에 관해 토론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토론을 기반으로 망원역에서의 시민 선전전을 진행했으며, 9월 24일 당일에는 “집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의 가을 소풍”이란 주제로 사전 행사를 진행했다. 본 집회에는 연인원 40여 명의 회원들이 참여했다. 또,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차원에서도 일본과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의 여러 기후정의운동 단위들에 이번 행진의 취지와 목적을 알리는 서신을 발송하고, 연대 메시지를 모았다. 그 결과 100여 개의 연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기후정의행진의 성공을 바탕으로 우리는 기후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자신감을 되찾았으며, 더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발언하고 실천할 정치적 공간을 만들었다. 기후위기를 낳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용기를 얻었다.
중국 : 정저우시 뱅크런 사태 항의 시위
4월 18일, 중국 허난성 소재 4개 은행이 “시스템 유지 보수”라는 공지를 내걸고 예금 인출을 막아버리자, 한 달 넘게 인내하던 시민들은 시위를 시작했다. 5월 중하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책임자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생업으로 인해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은 생수나 얼음주머니, 일회용 우비 등을 박스로 주문해 농성자들과 연대했다. 5월 23일, 정부 당국의 무성의한 대응에 화가 난 시민들은 허난성 정부 청사까지 행진했다. 경찰의 진압 시도에 시민들은 대치를 이어갔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사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는 7월 10일에 벌어졌다. 당일 새벽 5시, 4천여 명의 시민이 인민은행 정저우(鄭州) 지점 앞에 모여 “허난성 정부의 부패와 폭력에 반대한다”, “탄압 반대, 인권과 법치를 요구한다”, “40만 예금주의 중국몽이 허난성에서 무너졌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경찰 수천 명이 진압을 위해 다가오자 ”흑사회(黑社会)!“(조폭을 일컫는 말)를 연호하면서, 경찰 폭력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수개월간 산발적인 시위가 지속됐으며, 당국은 연행과 가택연금, 건강 코드 조작 등을 통한 이동 통제로 대응해왔다. 이 문제는 2021년 헝다그룹 부도를 기점으로 촉발된 중국 부동산 버블의 폭발, 부동산 시장과 연결된 중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 요소는 여전히 남아있다.
🗒️중국 시민 4천 명이 정저우시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이유
제26회 참의원 선거 이틀을 앞둔 7월 8일,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자민당 선거 지원 유세 도중 사제총에 습격당해 사망했다.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베 신조 피습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야마가미는 피습 후 경찰 진술에서 통일교 신자인 자신의 어머니가 교단에 많은 돈을 기부하여 파산한 점을 원한으로 품었다고 말했다. 일찍이 아베 신조는 통일교 행사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등 관계를 맺어왔다. 통일교의 교세 확장 방식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구나 일본 경기가 침체하고 불평등이 점증하면서 삶의 위기를 해소할 출구가 안 보일 만큼 악화하였다. 다시 말해 이번 피습은 단지 한 사람의 왜곡된 판단으로 인한 것이 아닌, 일본 사회에 중첩된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이 드러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9월,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에 대한 국장(國葬)을 치르기로 하자 일본 각지에서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반대하는 실행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주요 도심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수도인 도쿄와 나고야, 교토 등지에서 열린 집회 참석자들은 시민에게 조의를 강요하는 국장은 헌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를 주최한 실행위원회 측은 "기시다 내각은 여론의 반대에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을 강행하고 있다”며, “정권 연장을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조의를 시민에게 강제하는 헌법 위반인 국장의 강행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장 당일 히비야 공원, 국회의사당 주변, 무도관 인근 등에서 열린 집회에는 예상한 참가 규모 5천 명의 3배에 달하는 1만 5천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2022년 일본에서 전개된 사회운동 현장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투쟁으로 기록됐다.
글로벌 공급사슬에 맞선 동남아시아 의류 하청노동자들의 저항
2022년에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의 의류산업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지속됐다. 1월 7일, 대만 기업이 세운 신발공장 푸첸베트남(Pouchen Vietnam)의 노동자 1만 6천 명은 사측이 이번 뗏(Tết) 명절 상여금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하자, 전년도와 동일액의 상여금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파업 방식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업무 복귀를 거부하며 공장 앞에서 시위하는 ‘살쾡이 파업’이었다.
노동자들은 공장 입구 앞 1K 국도 한복판에 서서 몇 시간 동안 교통을 마비시켰다. 파업은 다른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동나이성 비엔호아 타운(Bien Hoa Town) 공단에서 일하는 1만 4천 명의 노동자들도 업무를 중단했다. 경찰은 기동경찰대를 출동시켜 파업 집회에 대응했다.
푸첸베트남 노동자 1만 6천 명이 벌인 파업은 나흘 만에 끝났다. 1월 12일 푸첸베트남 노동조합의 응우옌 탄 팍(Nguyen Tan Phap) 위원장은 “파업이 종료되어 대부분의 노동자가 각자의 자리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 나이키 신발제조 하청공장 노동자 1만6천 명, 명절 상여금 삭감에 맞서 파업
🌏 플랫폼c에 두 차례에 걸쳐 연재된 베트남 노동운동 연구자 조 버클리와의 인터뷰는 베트남 노동운동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RSOA와 베트남 노동연구자 조 버클리의 인터뷰 ①
🗒️RSOA와 베트남 노동연구자 조 버클리의 인터뷰 ②
한편, 얼마 전 열린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남아시아 곳곳의 의류 하청 노동자들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축구 제품을 만드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공정한 임금을 요구하며 시위했다. 월드컵 개막 당일,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아디다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전개했다.
전 세계 260개 노동권 그룹은 10월 24일부터 일주일 동안 아디다스 측에 하청노동자 권리보장을 요구하는 ‘당신의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라(Pay Your Workers)’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들은 “2021년 아디다스는 우리 돈 3조 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8개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3만여 명은 고작 152억 원만을 받았다. 공급망 안에서 임금 착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타르 월드컵 기념품점에서 엄청나게 팔린 각국 대표팀 공식 유니폼은 우리 돈으로 약 8~20만 원이다. 한데 미얀마의 아디다스 하청공장에서 이 유니폼을 만드는 미얀마 노동자들은 하루 4천 원(3달러) 정도도 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아디다스 하청공장의 노동자들은 월드컵 개막 직전 일당 2.27달러를 3.67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파업했다. 공장 측은 미얀마 군부에 파업 진압을 요청했고, 노동자 26명을 해고해버렸다. 이 공장은 대만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 : 나가월드 카지노호텔 노동자 파업
캄보디아 나가월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파업을 지속했다. 2021년 초 노동자 1천여 명에 대한 해고로 촉발된 이 투쟁은 수개월간의 요구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500여 명의 참여, 주요 활동가에 대한 체포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캄보디아 | 나가월드 카지노호텔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사측은 조합원과 활동가들을 표적 해고하고, 기존의 조합원을 비조합원으로 대체한다는 구상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에 맞서 노조 측은 노동조건 개선과 직장 내 성희롱 문제 해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의 중단, 생활임금 보장 등을 걸고 싸우고 있다. 투쟁 과정에서 체포되었던 활동가는 여러 압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각국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투쟁
2021년에 중국 메이투안 및 어러머 배달 노동자들의 산발적인 비공식 파업들, 홍콩 푸드판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돋보였다면, 2022년에는 말레이시아 배달 노동자 파업, 일본 아마존재팬 노조 조직화, 한국 쿠팡이츠 파업 행진 등의 유의미한 사건들이 있었다. 나아가 학계에서는 ‘아시아 플랫폼 노동’을 주제로 온라인 컨퍼런스가 열리기도 했다.
이른바 ‘플랫폼 산업’과 시장이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에도 플랫폼 노동시장의 비공식적 요소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 시스템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기제가 거의 없다. 게다가 아시아의 플랫폼 산업은 몇몇 초국적 기업이 장악해 왔고, 독점은 심화하고 있다. 가령 홍콩과 미얀마, 대만 시장을 장악한 푸드판다의 모기업과 배달의민족의 모기업은 같은 ‘딜리버리 히어로’이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 음식 배달 플랫폼 기업은 점차 아시아 전역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독점과 착취가 심화되는 과정에서도 동아시아 음식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고, 조직화 정도도 강화되고 있다. 글로벌 자본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요구된다. 향후 음식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동아시아 각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발전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서 일본이나 한국·대만 등 신흥공업국들은 더욱 저렴한 인건비와 이윤율 제고를 위해 노동집약적인 제조공장을 주변국으로 이전하였다. 동시에 자국 내 3D 업종이나 저임금 서비스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아시아 역내에서 조달했다. 이에 따라 저임금·저개발 국가에서 북반구 대도시로 이주하는 추세가 강화됐다.
특히 아시아는 대륙 간 이동보다는 국가 간 노동력 이동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단순히 방향만 변화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국면적 위기와 이에 따른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되어, 노동력 이동의 전반적인 양상이 변화한 것이다. 대체로 경제·기술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한·일·대만·홍콩·싱가포르로 이주하는 추세가 일반적인데,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노동자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의 압력을 받는 것이다.
2022년 한 해 수용국인 한국과 대만, 일본 등의 이주노동자 운동도 점차 발전해왔다. 어느덧 이주민 인구가 전체 인구의 5퍼센트에 근접하게 된 한국에서 는 1년 내내 꾸준하게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기능실습생 제도가 가하는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악법 폐지를 위한 캠페인들이 지속되었다. 청년 노동과 빈곤, 이주노동자 문제를 아우르는 시민단체 ‘POSSE’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비판하면서, 이주노동자 상담, 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 스리랑카인 이주노동자, 직장내 괴롭힘에 맞서 싸워 복직
🗒️일본 | 외국인 기능실습생 제도의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선 폐지 운동
대부분 이주노동자인 홍콩 푸드판다 노동자 파업과 노조 조직화 시도 과정을 담은 아랫글 역시 정치적으로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동자 조직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활동가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특히, 온라인 동원과 오프라인 조직화를 병행하여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려 하는지, 이주노동자들과 정주민 노동자들의 단결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돌아본다.
플랫폼c에서는 지난 11월 27일 ‘어딘가에는 싸우 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주제로 월례포럼을 진행했는데, 이날 접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 운동을 포함한 국내 이주민 운동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 두 번에 걸친 화물 노동자 파업
2022년 6월 7일, 화물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며 물류를 멈추었다.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본부 소속 2만 5천여 명의 조합원들과 안전운임제가 있어야 안전과 생존을 회복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비조합원들은 6월 7일 0시를 기해 운송을 멈추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가 무기한 전면 총파업이라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대화를 회피해온 정부와 자본에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화물운송료를 책정하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자본은 최저 입찰을 강요하며 운반비를 깎고 운송사는 다시 화물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는 화물노동자들이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수밖에 없게 내몰았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량 유지에 필요한 원가비용과 최저수익을 보장하고 있어 화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다. 국토부에서 의뢰하고 한국교통연구원에서 발표한 안전운임 시행평 가 보고서에서도 안전운임제 시행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및 도로의 안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화물연대는 계속하여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및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6월의 파업은 8일 만인 14일, 화물연대본부-국토교통부 간 합의로 끝났다.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안전운임 품목 확대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이 그다지 확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합의를 져버렸다. 그 때문에 11월 말 화물연대본부는 다시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11월 24일부터 12월 9일까지 16일 동안 지속된 화물 파업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투쟁으로 기록됐다. 화물 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 일몰제의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조합원-비조합원을 아우르는 투쟁을 전개했다. 6월, 노조에 밀렸다고 판단한 윤석열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마저 무시하면서 노동조합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했고, 친자본 성향의 경제지 및 보수언론들 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파업은 조합원 2만 6,144명 중 3,574명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 61.82%, 반대 37.55%로 마무리됐다. 이 투표에 대다수 노동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투표로 파업 철회를 결정하겠다는 절차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투쟁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화물연대의 조직력이 약화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정부의 직무 유기로 인 해 안전운임제가 폐지되어 결국 모순이 더욱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노동자는 여전히 파업이 매우 정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투쟁은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 : 홍명교
교열 : 윤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