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된 바이러스 ③ | 코로나19바이러스와 자본주의, 의료공공성
2021년 8월 2일
이 글은 2021년 7월 17일 플랫폼c가 주최한 월레포럼 ‘정치화된 바이러스’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박경득 서울지부장이 발표한 발제와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발표자(전진한) | 전 세계적으로 4차 대유행이 델타변이와 함께 찾아왔다. 선진국들의 경우 백신 접종률이 높다 보니 확진자는 증가하지만 사망자는 거의 증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7월 상황이며, 이후 확진자가 늘면서 사망자도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도 ‘싱가포르 모델’을 말하면서 코로나19가 독감 수준으로 위험이 낮아졌으니 방역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작년 말부터 확진자가 10-20명 정도로 통제되었다. 그럼에도 지난달 말이 되어서야 2명이 식사를 할 수 있게 허용해주었고, 최근에 와서야 5명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엄청난 수준의 락다운을 했다가 이제 아주 조금 풀었다고 봐야지, 확진자를 세지 않고 방역을 포기한 것이 전혀 아니다.
실제 방역 완화에 앞장서는 나라는 영국인데, 영국은 7월 19일부터 모든 방역조치를 해제(‘Freedom day’)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8월 피크에 하 루 100~200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8월에 이는 거의 현실이 되었다). 영국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임에도 코로나19 환자 입원이 늘고 있었다는 점, 1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후유증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 사회 전반적으로 감염이 만연하게 되면 취약층의 일상 활동은 더 제약받을 수 있다는 점, 감염이 늘어나면 변이바이러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가 방역 조치 완화를 성급하게 취한 이유에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다.
극우 정치인인 보리스 존슨은 판데믹 초기에도 방역을 사실상 포기했다. 2020년 3월, 일일 확진자가 500명도 안 나오던 시절에 보리스 존슨은 “많은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집단면역이라는 슬로건 하에 ‘느슨한 방역조치’로 초기 대응을 하면서 확진자 급증을 야기한 바 있다. (2021년 9월1일 현재 누적확진자 676만 명, 사망자 13만2천 명) 어차피 코로나에 확진되어 사망까지 이르는 것은 비생산인구인 노년층이고, 생산인구인 젊은층은 큰 위험을 겪지 않아 이렇게 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 👀이탈리아의 경우 롬바르디아에서 폭발적인 대유행을 경험한 바 있다. (관련글: 이탈리아의 강력한 봉쇄 조치의 원인은 취약한 보건위생 시스템에 있다) 롬바르디아주는 밀라노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상공업 핵심지역이고, 중국인들의 왕래도 잦은 편이다. 롬바르디아 소재 기업들은 유행 초기 락다운에 반대했다. 극우 성향의 당시 주지사는 자본의 주장에 호응해 봉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유행과 무수한 사망자를 낳았다. 이후에도 기업이 방역 완화를 요구하고, 정치권이 이를 수용해 확진자가 충분히 줄어들기 전 봉쇄를 완화했다가 다시 대유행을 맞는 패턴이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비슷하게 관측됐다.
경제논리에 의한 방역과 의료 불평등
우리는 코로나19는 방역조치를 취하면 확진자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면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방역조치의 고통은 필요한 자원을 평등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됐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간의 경쟁과 기업의 요구로 인해 정부가 끊임없이 방역을 완화하고 기업 이익과 시민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그런데 방역완화는 기업들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회가 방역의 고통을 완전히 개인들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에 대한 지원은 막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노동자와 서민에 대한 지원은 매우 적다. 한국의 코로나19 사회안전망 지출은 주요국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코로나19 방역의 제1지침이 ‘아프면 3~4일 쉬기’이다. 그러나 정말로 아프다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주요 선진국 중 법정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방역지침 제2수칙은 ‘두 팔 간격 거리두기’다. 하지만 그 조차도 지킬 수 없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쿠팡 물류센터, 구로콜센터와 같은 집단감염 사례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거리두기 조치는 과학적으로 진행하고, 이에 대한 보완조치를 정책적으로 실시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듣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하고 있는 ‘서민들의 피해와 고통’을 핑계로 방역조치를 기준대로 하지도 않았다.
방역기준은 불비례했다. 소규모 자영업자, 교육, 돌봄, 공연예술 같은 문화, 개인들에 대해서는 엄격히 통제했지만, 대기업 사무실과 공장 같은 생산현장에서 상당히 많은 감염이 발생했음에도 거리두기를 강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3밀(밀접, 밀집, 밀폐) 공간인 대중교통은 방치했다.
그러면서 방역실패을 개인에게 떠넘겼는데, 대표적인 것은 2020년 5월 ‘거짓말 학원강사’ 사건이다. 한 학원강사가 5월 이태원 클럽에 갔다가 확진되었는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이로 인한 해고를 우려해 동선을 숨긴 사건이다. 열악한 소수자 인권과 노동권으로 인해 발생한 불행이었는데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개인을 비난했고 인천시는 이 학원강사를 고발해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약자들에게 피해자 집중되면서 주류 학계조차도 코로나는 판데믹(pandemic)이 아닌 신데믹(syndemic), 즉 “사회적 요인이 함께 얽혀 벌어지고 있는 감염사태”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한국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더 많이 감염되었다.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한 2021년 1월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계층이 가장 높은 4분위 계층에 비해 약 19% 더 많이 감염되었다. 60세 이상에서는 4분위 계층에 비해 1분위가 39%, 2분위가 29%, 3분위가 13% 더 많이 감염되었다. (Tak Kyu Oh etc, 2021.)
공공의료 방치가 만든 문제들
한국의 공공의료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박경득 지부장이 설명해주셨다.(관련글: 병상이 있어도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 한국은 병상수가 많은 나라다. 병상 수 기준으로 주요 선진국의 10대 병원 중 4개가 서울에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병상이 부족’한 것은 실제 공익적 역할을 할 공공 병상은 매우 부족하고, 민간병원은 코로나 환자를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코로나 환자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민간병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간병원이 이를 꺼려하고 정부가 한 달 이상 이를 미루는 사이에 3차 유행 희생자들이 늘어났다.
공공의료 부족으로 위기가 계속되면 정부는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택했다. 요양병원에서는 확진자와 비확진자를 모두 가둬 서로 감염되게 했다. 정부는 이를 ‘코호트 격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렀으나 실제로는 환자들을 가둬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장애인 시설, 교정시설 등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공병원은 취약계층 환자를 전담해왔는데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 HIV 감염인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절단된 엄지손가락을 들고 20개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서울시 공공병원이 다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노숙인들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열일곱 살 정유엽 씨 사건의 경우, 1차 유행 당시 고열이 끓어 병원에 갔는데 ‘코로나 의심환자’라는 이유로 민간병원들이 죄다 정씨를 돌려보냈다. 결국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암 3기 환자인 고인의 아버지가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하며 공공의료 강화를 요구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공공의료 부족 문제는 이번으로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지만, 이전에도 민간중심 의료에서 과잉진료 등 왜곡된 행태들이 알려져 있었다. 연평균 의료비나 환자 1인당 의사 방문 횟수도 높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형병원은 엄청난 순이익을 거둔다. 한국은 미국보다 재난적 의료비 지출(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가구 비율이 높다. 한국은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와 민간보험 시장 팽창 속에서 건강보험 보장성도 한계에 부닥친다.
민간보험의 한계는 분명하다.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거의 80%에 달하고 민간보험 가입자는 1인당 월평균 무려 13만2천원을 내고 있지만 민간보험이 보장해주는 의료비는 정액보험 가입자의 경우 겨우 6.2%에 지나지 않는다. “로또를 사는 게 더 이익”이라는 웃지 못할 결과도 있다. 얼마 전까지 삼성생명 건물에서 농성한 암보험 사기 피해자들의 사례도 보험사가 갖은 이유와 수단으로 보험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한편에서는 과잉진료가 벌어지고 한 쪽에서는 필수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공공의료를 보장하지 않으니 민간병원은 죄다 서울에 세워지고, 환자들도 KTX를 따라 다 서울로 흡수되고 있다. 그러니 지역 의료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응급실이나 분만실이 없는 지역도 많다.
세계적인 공공의료의 후퇴
공공의료 문제는 한국에만 있지 않다. 유럽의 병상은 기본적으로 70퍼센트가 공공병상이지만, 오랜 긴축으로 인해 공공의료가 붕괴했고 코로나19를 맞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유럽연합은 회원국에 보건의료 지출을 삭감하고 의료를 민영화하라고 63 차례나 요구했다.
민간병원 중심 한국은 자본축적의 결과 병상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반면 공공병원 중심 유럽 국가들은 긴축 때문에 병상이 줄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의료라는 같은 원인의 서로 다른 현상이다. 영국에서는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병상수가 무려 40퍼센트나 사라졌다. 스웨덴은 39퍼센트, 이탈리아는 32퍼센트, 프랑스는 25퍼센트의 병상이 줄었다.
이런 국가들에서도 민간병상은 늘어났다. 문 닫은 공공병원의 상당수를 민간회사나 민간병원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도 민간병원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이 아니라, 수익성 높은 만성질환이나 외래에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는 30퍼센트가 민간병상인데, 중환자병상 중 민간병상은 전체의 15퍼센트에 불과하다. 더구나 민간병원의 코로나19 대응 기여는 매우 미미했기 때문에, 영국 NHS(국립의료제도) 노동조합은 정부에게 “민간병상을 징발하라”고 요구해야 했다. 스페인은 아예 민간 병원 전체를 일시적으로 국유화했다.
의료민영화로 이탈리아 요양시설에서는 현지 언론의 표현 그대로 ‘학살’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전체적으로 공공병상은 8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롬바르디아주에서는 의료민영화 기조로 인해 비중이 50퍼센트에 불과했다. 롬바르디아 주지사는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자 감염병 환자 치료능력이 없는 요양병원으로 코로나 환자를 옮겨버렸다. 그 결과 요양병원 환자들이 집담 감염되었고, 이로 인해 상당수 환자가 사망했다.
일본은 코로나19 초기에 고열이 4일 넘게 끓어야 확진검사를 할 수 있었다. 계속된 보건소 통폐합으로 검사 역량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료공급 체계를 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아예 건강보험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 10명 중 1명은 의료비 때문에 치료도 검사도 받지 않겠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방역이 불가능했다.
글로벌 백신 불평등
코로나가 ‘신데믹’인 이유 중 하나는 백신 불평등이다. 고소득 국가는 50퍼센트 이상 접종이 이뤄진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1퍼센트 정도만 접종을 했다. 이를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라고도 부른다. 북미와 유럽, 한국, 일본 등은 모두 전체 인구 중 3배를 넘게 백신을 구매했다. 그래서 3차 부스터샷 논의가 나오는 한편, 가난한 국가들은 백신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매우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팬데믹 해결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변이바이러스의 출현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는 백신이 제약사의 ‘특허 상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 제약사가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금은 국가와 비영리단체로부터 받은 것이기도 하다. 공공 자금을 투자받아 만든 백신을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의 부를 합하면 전세계 가난한 나라 사람들 전체에게 1.3회의 접종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은 TRIPS(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에 있는 특허권 조항 적용 유예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림을 보면, 노란색 별표가 공동발의 국가, 초록색이 찬성국가, 빨간색이 반대국가다. 원래 유럽과 미국이 반대의 주축이었는데 바이든 행정부 이후 미국 정부의 입장은 바뀌었다. 그럼에도 WTO(세계무역기구)에서는 만장일치가 원칙이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인해 유예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에 갈 때마다 백신과 의료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TRIPS 유예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 없이 침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TRIPS 유예 결의안이 발의되어 있는데, 더 많은 압력이 필요한 상황이다.(관련글: 장혜영의원, 전세계 모든 시민의 평등한 백신 접종 위한 결의안 발의) 이러한 것들을 보면 코 로나 위기는 인간이 손 쓸 수 없이 겪는 상황은 분명 아니다.
재난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각국 정부는 긴축과 민영화를 밀어붙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재난자본주의라 할 만하다. 한국도 보건의료 부문 민영화·규제완화를 추진 중이다. 작년 초 정부는 시민사회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개인 동의를 받지 않고 ‘가명정보’(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재식별될 수 있는 정보)를 기업이 판매,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정부는 이 법을 활용해서 가족력, 유전병, 정신질환, 성이력, 산과력 등 민감정보인 의료정보까지도 기업에 넘기려 하고 있다. 이런 비식별(암호화) 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재식별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이런 기조에 따라 최근 공공의료 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넘겼다. 민간보험사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도 이어지고 있다. 보험사들이 직접 건강관리 명목으로 헬스케어 자회사를 차리고 만성질환 관리까지 허용하고 있다. 이는 민간보험사가 병원과 연계하여 의료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식 모델로 옮겨가는 수순이다.
원격의료 비대면 정책도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의료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원격의료가 늘어났는데, 디지털 접근 제약이 있는 사람들의 의료이용이 현저히 감소했다. 즉 65세 이상 노인, 비영어권,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이용 저소득자, 흑인, 라틴계, 아시안 등이 제약을 겪는다는 것이다. (관련글: “한국판 뉴딜정책에 공공의료 한 줄도 없어”)
유럽의 원격의료도 의료영리화 측면이 크다. 영국 등 국민보건의료 서비스가 갖춰진 국가들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긴축이 진행되어 왔다. 이로 인해 의료의 질이 저하되고, 대기 시간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틈타 일부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의를 곧바로 만날 수 있는 영리 원격의료 사업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긴축을 틈탄 의료영리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코로나 시대에 원격의료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원격의료로는 중환자를 돌볼 수 없고, 감염병 환자를 치료할 수 없으며, 응급·분만치료나 취약계층 의료 공백도 해결할 수 없다. 당장 병원이 없고 환자 곁에 의료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의 의료 현실은 매우 상업화되어 있어 약물에 의존하는 3분 진료가 벌어지고 있다. 원격의료는 이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원격의료와 약품 배송은 대형병원과 대기업 돈벌이를 위한 경제 정책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방문진료, 공공의료 강화일 것이다.
정부는 감염병 사태로 K-바이오, K-의료의 우수성이 입증됐다는 프레임으로 의료기술 규제완화도 추진한다. 의약품·의료기기 등을 일단 병원에서 먼저 써보고 사후검증하겠다고 한다. 환자를 실험대상 삼겠다는 것이다.
반면, 반드시 필요한 공공의료 강화는 회피하고 있다. 올해 공공병원 확충 예산이 0원으로 책정되었다가, 시민사회단체 반발로 15억원으로 겨우 늘린 바가 있다. (관련글: 공공의료 확충 예산 사실상 ‘0원’으로 확정한 정부여당 규탄한다)
자본과 국가는 왜 의료민영화에 집착하는가?
의료산업은 이윤율이 높다. 2008년 한국 병원산업 순이익률은 9.1퍼센트다. 제조업 2~3퍼센트에 비해 훨씬 높다. 병원 산업의 높은 이윤율은 높은 노동강도와도 연관되어 있고, 과잉 진료를 통한 환자 건강과 의료비용 수탈과도 관련이 깊다. 제약 기업들도 전통적으로 이윤율이 높다. 전 세계 제약 산업의 2001년 평균 이윤율은 18.5퍼센트에 달했다. 그동안 의약품은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으며 높은 약가를 유지해 수익을 누려왔다.
‘의료산업’을 이윤추구영역으로 삼을 수 있다면 경제위기 시 기업으로서는 안정적으로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의료는 의식주처럼 필수적 재화로서 수요나 공급에 따라 가격이 쉬이 변하지 않는다. (가격비탄력성) 또한 환자는 시장의 다른 상품과 달리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의료인의 진단과 처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보비대칭성) 따라서 만성적 저성장 시대일수록 의료를 영리화‧규제완화 해 자본의 수익처로 삼으려는 동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기에 왜 공공의료가 더 중요한가
감염병 유행 시기, 기후위기 시기에 공공의료가 훨씬 더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코로나19는 더 큰 위기의 전조다. 코로나19 자체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직접적으로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 관련글: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후변화 때문?) 기후 변화로 인해 박쥐들이 서식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미얀마와 라오스, 중국 남부 지역에 박쥐가 엄청 늘어났다. 박쥐는 천문학적 수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갖고 있는데, 이때 바이러스는 박쥐에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천산갑 등 중간 매개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된다. 사스도 사향고향이를 통해 전파된 바 있다. 오늘날 기후위기가 이런 상황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기후가 1도 오를 때마다 모기 발생이 10퍼센트씩 증가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뎅기열이나 지카바이러스 등도 발병율이 늘어날 수 있다. 한국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진드기로 인한 라임병도 한국에 늘고 있다. 수백년 만에 한번 발생할 산불 홍수 등이 발생하고 있다. 인구가 코로나19로 경험한 바와 같이 공공의료체계가 없이 민간의료체계만으로는 이런 재난에는 절대로 대응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공공의료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공공의료는 기후위기에 맞선 해결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의료와 돌봄은 고용 규모가 큰 대표적인 저탄소 노동이다. 또 의료는 탄소배출의 5% 이상을 차지하는 막대한 영역이다. 낭비적 의료를 줄이려면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중심 의료체계는 돈 안 되는 예방에는 투자하지 않고 돈벌이가 되는 치료의학에 집중하고, 엄청난 과잉진료까지 벌이고 있다. 의료가 공공화되어 예방서비스에 집중한다면 질병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않게 만듦으로써 불필요한 탄소배출과 유해한 오염물질들을 줄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사회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데, 기후변화의 근본적 원인인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고, 사회 전체를 공공적으로 전환하는 운동의 일부로 공공의료를 요구하는 것이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질의 응답
질문 | 백신 지적재산권 특허권 유예 조항 관련해서 한국 정부 입장이 어떤지 궁금하다.
발표자 | 한국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침묵한다는 것은 사실상 ‘반대’라고 보면 된다. 계속해서 회의가 있고,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회담에 가서는 백신 생산 허브화 합의 등을 하고 있는데, 이는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본다. 한국이 전 세계 백신 생산의 허브가 된다고한들, 저발전 국가에 백신 공급이 안되면 결국 선진국간 집단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든다.
질문 | 백신 특허권 관련된 지도가 국가 소득 수준에 따라서 충격적일 정도로 찬반이 갈렸는데, 미국의 입장이 중간에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뀐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 내에서 운동이 있었나?
발표자 | 운동이 있었다. 대규모 집회나 파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이것 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흐름이 있었다. 중국은 백신을 개발해서 남미 국가들에게 많이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부담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특허권이 풀린다고 해도 생산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 그런 측면을 생각한 것 같다.
가계 소비 중 의료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질문 | 의료 공개 건강보험 미비화 사례로서 미국을 자주 들고 한국의 건강보험이 모범적이다, 이런 말들을 많이 접한다. 하지만 자료를 보니 한국이 오히려 공공병상 비중 측면이나 개인의 의료비용 부담 측면에서 미국보다 열악한 게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특히 더 병원에 자주 가거나, 미국인들이 특히 병원비가 너무 높아가지고 병원에 특히 안 가는 것인지,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발표자 | 이 OECD 그래프는 굉장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 의료는 산업화 정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다만 결정적으로 미국이랑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미국에는 일단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없고, 민영 보험사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같은 특히 이제 저소득층 중심으로 한 보험은 거의 15퍼센트 가까이 커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점들은 한국에 비해 낫긴 하지만, 전 국민을 아우르는 보험 제도가 없다는 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에는 영리병원이 많다. 그러다 보니까 세계의 의료보장제도를 몇 가지 통계로만 분류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 다. 미국 의료는 훨씬 더 상업화가 많이 돼 있으며, 의료 쪽에 침투한 기업도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코로나 환자조차도 치료를 보장하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편의점에 가면 살을 꿰매는 바늘이나 실을 판다. 이빨이 시려도 치과에 못 가니까 국소 마취제를 편의점에서 판다. 구글에 미국인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것은 응급의료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다. 그 정도로 개인들이 감당하고 있는 게 워낙 많다. 이런 점들이 한국과 미국의 차이다.
한국 자본가들은 전국민 건강보험과 영리병원금지, 이 두 가지가 자신들의 영리 행위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영리 병원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를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니까, 영리 자회사라는 형식으로 여러 병원을 영리 병원과 비슷하게 만드는 꼼수를 쓴다. 또,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바로 붕괴시킬 수는 없으니까 민간보험사를 차츰 활성화시키고 건강보험에 있는 공공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게 주는 방식으로 조금씩 규제 완화를 꾀한다. 자본의 이러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질문 |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시청률이 엄청 높다. (8월26일 기준 12.7% 닐슨코리아) 저도 러브라인이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보고 있지만, 볼 때마다 약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그 병원이 너무나 크지 않나 싶어서다. 병원이 호텔처럼 생겼고, 그 병원의 의사들은 현실의 의사와 다르게 너무나도 다정하고 돈보다 환자를 위하는 의사처럼 나온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의사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VIP 수술을 찬미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VIP에게 돈을 많이 받아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수술을 해주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런데 이것은 의료 민영화에 대해 지나친 찬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VIP 병동 운영할 돈으로 없는 사람들에게 수술해준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걸 지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마치 대학 입시로 본다면 기여 입학제가 이와 같은 논리가 아닐까 싶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내고, 그걸로 돈 없는 장학금을 주면 되는데 왜 반대하냐’와 같은 논리 말이다. 그러니까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의 전제 없이, 호텔 같은 병원을 지어서 돈 있는 사람들의 돈으로 없는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발상 자체가 해학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공성을 파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VIP 병동을 실제로 영리 병원들이 드라마처럼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또, 아까 발표자가 IMF가 의료 노동자의 임금 삭감을 요구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맥락에서 그걸 요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추가 설명 부탁드린다.
발표자 | 두 가지 다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저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조금 봤는데 너무 판타지이고, 그냥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 현장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 것 같다. VIP 병동을 그렇게 운영해서 받은 본인 부담금으로 저소득 환자들한테 도와준다는 식의 제도도 판타지에 가깝다. 미국에 있는 영리병원에서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긴 한데, 저는 일단 한국에서는 못 들어본 것 같다.
IMF 관련해서는 저 역시 구체적인 내막은 모르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유럽연합이 각 회원국들한테 긴축 정책을 요구하는 것처럼, 혹은 한국이 1997년에 그랬듯이 구제금융을 치루면서 민영화나 상업화, 규제 완화 등 여러 가지를 요구하는 맥락에서 요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저소득 제3세계 국가들에서 규제가 완화되고, 기업들의 침투가 많아질 수 있어야 제1세계 국가의 자본이 거기에 투자하거나 시장을 넓힐 수 있게 된다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박경득(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 한국에는 영리 병원이 없지만 서울대 병원도 VIP 병동을 제일 꼭대기 층에 운영하고 있다. VIP 병동은 병실 하나가 다른 병동 4~5개의 병실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비행기의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한국이 운영하고 있는 건 거기에서 나오는 돈이 다른 병상 5개를 합친 거보다 많다고 보긴 어렵고, 그냥 홍보용이다. “아무개가 입원했다”, “대통령이 왔다”, “어디 그룹 회장이 있다” 같은 말들은 큰 광고 효과가 있다. 또, 그 사람들이 입원하면서 기부 효과도 많다. 가장 큰 것은 상급 종합병원의 의사들이 굉장히 정치적이고 야망도 크다는 점이다. 이들의 핵심 인맥이 환자라는 거다. 환자 누가 오느냐에 따라 그 환자가 인맥과 자산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VIP들을 진료하고 싶은거다. VIP 끈이 필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환자들이 되는 거다. 그 병동 수익을 갖고 뭘 하는 건 없다. 그 이상의 이익이 생긴다고 보는 거다.
질문 | 영국이나 이탈리아 등 정 보 의료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나라들을 예로 들어 주셨다. 하지만 단순히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코로나에 잘 대응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영국 같은 나라의 대처 사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을 부탁드린다. 공공의료가 나름 잘 돌아가고 있는 나라의 사례는 전혀 없는지도 궁금하다.
발표자 | 유럽은 한국보다는 훨씬 잘 대응한 편이다. 프랑스만 해도 하루 확진자가 수만 명이 생기는 수준이었는데, 이를 거의 두 달 가까이 버티다가 더 이상 병상이 부족해서 붕괴했다. 반면 한국은 하루에 확진자가 10~20명씩 생길 때도 벌써 “지역에 병상이 없다”는 말들이 나왔다. 이제는 100명대로 생긴 거니까 다음부터는 며칠 만에 병상이 포화됐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국이랑 유럽은 근본적으로 애초에 달랐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왜 더 잘 대응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내부 반성을 하는 유럽 내 언론인들이나 전문가들의 글을 보면, 민간 병원이 많아지고 긴축으로 공공병원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대응을 충분히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까 공공병원을 더 강화하고 복원을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공공병원이 중요하다는 걸 거꾸로 보여준 것이 유럽의 사례다. 공공의료에 정부가 투자를 많이 하고 강화해야 한다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질문 | 우리가 유럽처럼 확진자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면 정말 전혀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발표자 | 그렇다. 확진자가 많아졌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