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노동자 파업을 둘러싼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6년 5월 20일
삼성의 ‘가족주의’ 레토릭과 무노조 잔혹사
지난 5월 15일, 김포공항 입국장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카메라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상투적 문구 뒤로 그가 꺼낸 말은 “삼성 구성원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오랜 수사였다. 이 장면은 외환위기 시절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광풍 속에 길거리로 추락하던 시기, 삼 성 자본이 소비자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가족주의’와 ‘애사심’을 강요하며 구축했던 브랜드 슬로건,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을 강렬하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기억하듯 외환위기 이후 삼성이 걸어온 역사적 궤적은 이 가족주의 수사가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잔혹사다. 노조 설립을 가로막기 위해 자행된 납치, 미행, 감시, 감금, 협박, 알박기, 해고, 징계, 그리고 이 모든 통제 전략이 총체화된 이른바 ‘그린화 전략’ 문건 등은 삼성 자본이 말하는 가족의 실체가 철저한 배제와 폭력이었음을 증명한다.
삼성의 브랜딩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총수 일가는 단 한 번도 노동자와 민중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나, 광범위한 여론은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독점 자본의 프레임에 포섭되었다.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저항과 내부 고발은 이런 허상을 폭로했지만, 동시에 막강한 자금력과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 삼성 자본의 헤게모니는 삼성이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동을 손쉽게 통제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 노동자들이 영업이익의 정당한 분배를 요구할 때마다 “회사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보수 언론의 단골 논리로 재생산되고 있다.

파업의 정당성을 가로막는 ‘시선’과 언론의 합창
모두가 알고 있듯 삼성전자 노동자 들의 임금 체계는 초봉 6천만 원 선에서 평균 연봉 1억 4,000만 원~1억 6,000만 원 선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중 최상위권이다. 이로 인해 이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상화된 구조 속에서 이 투쟁을 바라보는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감정을 사회적 권리에 대한 가치 판단과 뒤섞어 전도해서는 안 된다. 고임금 노동자에겐 단결권과 파업권이 존재하지 않는가? 노동조합은 산재로 죽어가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뭉치는 곳이자, 일터의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나아가 사회 변혁적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삼성 자본이 80년 넘게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의 지배 논리를 비호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실증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한국 노동시장 내 임금 불평등의 약 40%는 노동자 개인의 숙련도나 생산성과 무관하게 고용된 기업의 규모와 ‘기업별 임금 프리미엄’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수 언론 등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높은 임금 프리미엄과 성과급 요구를 일종의 부도덕한 ‘지대 추구’ 행위로 규정하며 이것이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비판하지만, 노동시장의 역학을 분석한 지표들은 진짜 원인이 ‘조직노동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공급망 전체의 수익성을 독점하는 원청 대기업 자본에 있음을 짚어내고 있다.
- 참고 | 황선웅, 「기업 간 하도급 거 래 구조와 임금 불평등」, 『기업 이윤과 소득 불평등』(홍민기·황선웅·최한수 공저), 한국노동연구원, 2020
정규직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거나 성과급 요구를 포기한다고 해서 자본가들은 그 절감된 비용을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자발적으로 나누어주지 않는다. 더구나 실질임금이 결정되는 동역학 아래서의 격차는 노동조합의 요구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원·하청 구조 속에서 노동자 전체를 분할-지배하려는 ‘기업규모별 분절 양극화 체계’와 자본의 강력한 분할관리 전략에 의해 양산되는 허상에 가깝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이번 쟁의 국면에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노동운동의 종말”(5월 5일자 조선일보)이라며 치졸한 훈수를 두고 매일 같이 반(反)노조 비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들의 기만성은 철저히 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한다는 점에 있다. 하청 노동자가 파업하면 ‘불법 과격 분자’ 혹은 ‘무임승차’라 낙인찍고, 자격도 없으면서 분수 넘치는 요구를 한다고 몰아세운다. 설상가상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와 연대해 투쟁하면 ‘산업 질서 교란’이라 비난한다. 이른 바 ‘MZ노조’ 등 민주노총이 아닌 기업노조가 설립될 때는 ‘합리적 노동운동’이라 박수 치던 자들이, 막상 그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생적인 투쟁에 나서자, ‘집단 이기주의’라며 몰아세운다. 이른바 자유주의 진보를 자처하던 JTBC나,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MBC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조선일보가 유포하는 반노조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며 사실상 자본의 입을 대변하고 있다.
- [덧붙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임금은 노동자가 한 모든 노동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성과급은 이 착시를 극대화한다. 노동자는 “내가 성과를 더 내서 회사가 이만큼 보너스를 주었다”고 믿지만, 실제 노동자가 성과급 100만 원을 더 받기 위해 자본에 가져다 바친 잉여가치는 그 몇 배에 달한다. 즉, 성과급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을 스스로 더 가혹하게 착취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동자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돌려주는 ‘지연된 임금’의 정산 방식일 뿐이다. 단순한 시간임금 시스템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쉬지 않고 일할 것이다. 반면 성과급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스스로 휴식 시간을 줄이며, 연장 노동을 감내하기도 한다. 회사 실적이 나빠져 성과급이 0원이 될 때, 회사는 ‘성과가 없으니 분배도 없다’며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경기 침체나 경영 실패를 노동자에게 전가해 노동력 상품의 가격인 임금을 후려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강도로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성과급은 자본가들이 더 효율적인 착취를 위해 감추어놓은 임금의 일부일 뿐이다.
이재명 정권의 반노동 본색
김민석 국무총리나 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 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 역시 파업 발생 시 긴급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긴급조정권은 박정희 독재 정권 때인 1963년 4월 노동쟁의조정법 전부개정 당시에 신설된 악법의 유물이다. 도입 당시 <조선일보>조차 “선진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침해 규정”이라고 지적했을 만큼 태생부터 반노동 악법이었다. 63년 동안 단어 몇 개만 바뀐 채 살아남은 이 조항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법 개정을 권고해 왔다. ILO는 반도체 같은 산업이 인류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가 아니므로 파업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해석한다.
과거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철도노조 위원장 출신으로서 필수공익사업 파업권 제한의 위헌성을 수차례 지적하며 싸웠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 위헌적이고 결사의 자유 협약을 위반하는 긴급조정권을 만지작거리며(주무부처 고용노동부의 김영훈 장관은 아직까지 명시적으로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고 말하고 있진 않다), 원론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는 현실은 대단히 심각한 퇴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