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전쟁반대 토끼 일러스트 밈과 반전평화운동
2026년 5월 3일
최근 일본 다카이치 정권의 헌법 9조 개헌과 살상무기 수출 제한의 완전 해제를 둘러싸고 일본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3월 말부터 일본 SNS상에서는 토끼가 전쟁 반대의 상징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미 후쿠오카의 인권 변호사 고토 토미카즈에 의해 소개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그 흐름과 관련하여 소비자 중심주의와 표현의 자유 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전쟁 없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금기인가
2026년 3월 중하순경, 일본의 전쟁 반대 국회 앞 시위를 앞두고 토끼 일러스트를 주로 그리던 트위터 이용자 @yura_inaho 씨의 계정에 #NOWAR 태그와 함께 한 장의 일러스트가 올라왔다. 하얀 개망초를 물고 있는 토끼와 몇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에 ‘世界中から戦争がなくなりますように(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기를)’라는 문구와 ‘AI 학습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그림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러운 동물들의 세계를 그리는 작가가 ‘전쟁 반대’라는 극도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며 넷우익들의 ‘조리돌림’이 벌어졌다. 극심한 공격을 받은 작가는 게시했던 일러스트를 삭제했다. 이어 "SNS가 아닌 현실의 친구들과 정치에 대한 고민을 더 심화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계정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트위터에서의 혼란스러운 조리돌림 행태, 그것도 '전쟁 반대'라는 보편적 주장을 "반일주의"라 부르며 마치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될 '정치적 주장'으로 몰아세우는 넷우익들의 난동이었다. 이는 역으로 전쟁 반대라는 일상적인 슬로건조차 금기시되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이 사태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이 사태를 지켜본 수많은 이들은 저마다 #NOWAR 혹은 #NoWarBunny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해 전쟁에 반대하는 토끼나 동물 그림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부터 전업 작가들까지 저마다 자신만의 토끼(혹은 다른 동물)를 그리며,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 동참했다. 탈정치화된 소비자 집단이 극우화된 지향점으로 생산자들을 통제하려 했다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협력은 정치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짚어준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러스트들을 살펴보았는데,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수백 가지가 넘는 작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비상업적 활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된 것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해당 사태를 둘러싼 반응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금기시될 이유가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상식적인 반응이다. 다만 이 반응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전쟁 반대가 ‘비정치적’인 구호이기에 이것을 정치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정치적이라 할지라도 그 성격을 논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는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러스트 작가에게 개인적인 의뢰를 맡겼다는 사실이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할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창작자-소비자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인터넷상에서 창작자의 성향을 문제 삼아 공격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손가락 음모론’ 같은 사례는 근거 없는 안티페미니즘 음모론에 기반한 난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창작자에게 극우적 탈정치성을 강요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공격한다는 점, 즉 자기검열의 일반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손가락 사태가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듯, 전쟁 반대 금지 또한 일본만의 사건이 아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를 소비자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억압하고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흐름이 한일 양국 사회의 소비자층에 팽배해 있다.

비정치를 넘어서 정치적인 것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대단히 보편적인 주장처럼 여겨진다. 심지어 전쟁을 추구하는 호전주의자들조차 표면적으로는 군비 경쟁이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전쟁 반대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번 사태에서는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 란다는 희망이 ‘정치적’이라는 공격을 받았던 것일까?
일본 사회가 ‘전쟁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는 과정에 있기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희망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발언일 수밖에 없다. 이는 군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평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쟁 반대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그 희망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발언을 금기시하려는 소비자 지상주의의 부당한 요구를 인정해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창작자의 정치적 자유를 공격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창작자에게 ‘비정치적일 것’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적을 지닌다. 이들이 요구하는 비정치성은 각각 안티페미니즘과 군국주의라는 우경화된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금기는 더욱 우경화된 정치성이 침투할 공간을 만들 뿐이다.

정치가 멈춘 곳에서 비민주적인 지배는 더욱 강력해진다. 한일 양국의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의 요구는 무조건 옳다는 논리는 그간 탈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방식은 오히려 소비자 집단 자체를 탈정치화하고 우경화해 왔다.
이번 전쟁 반대 토끼 일러스트 붐은 탈정치를 표 방하는 소비자들의 공격을, 모두가 생산자의 역할을 공유함으로써 맞받아친 사례다. 소비자주의의 우경화된 탈정치성을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대된 정치성으로 돌파한 일본 SNS의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비자주의에 대항하는 또 다른 소비자주의가 아니라, 생산자들의 연대가 평화와 표현의 자유라는 정치성을 띠고 극우적 정치성에 맞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헌법 9조 개헌과 살상무기 수출 제한 해제 등 급격한 정세 변화 속에서, SNS의 일러스트 붐은 이제 전쟁 반대 토끼를 넘어 무기 수출 반대와 정권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은 전쟁의 문제에서 어떠한가? 한국의 문화소비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토끼 일러스트 붐을 보며 고민이 깊어진다.




덧붙이며

일러스트 작가이자 현직자로서 @ulaken가 이번 저항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들도 참고할 만하다. 토끼가 상징이 된 배경을 마케팅적으로 접근한 글이나, 정치적 발언이 의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창작자의 고민을 담은 글 등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