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대륙의 배달노동자 리더는 왜 사라졌나
2024년 9월 19일
이 글은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모토로 29년 동안 발간 중인 월간 『작은책』 2024년 10월호에 실린 원고를 토대로 하여 이를 더 자세하게 수정 및 보완한 것이다.
대륙의 라이더연맹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음식배달업계라이더연맹의 맹주입니다.”
2020년 9월 17일,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막 나온 천궈장(陈国江)은 자신의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를 얼굴 위 대각선으로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배달 노동자 천궈장이 ‘비리비리’(유튜브와 같은 중국 내 영상 플랫폼) 내의 음식배달업계라이더연맹(外送江湖骑士联盟) 채널에 업로드하는 모든 영상들을 시작할 때 하는 오프닝 멘트다. 이렇게 인사를 마치고는 한숨도 쉬지 않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떠든다. 이 영상에는 어떻게 하면 가성비 좋은 전기스쿠터를 구매할 수 있을지 조언해달라는 어떤 음식배달부 구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었다.
한데 몇 달이 지난 2021년 2월 25일, 배달노동자 천궈장이 사라졌다. 그는 몇 년 동안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 폭로하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었다. 그가 종적을 감춘지 몇 주 후, 베이징시 차오양(朝阳)구 공안당국은 천궈장을 ‘사회질서 교란죄’(聚众扰乱社会秩序罪)라는 혐의로 체포했다고 공지했다.
체포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천궈장은 본래 구이저우(贵州)성 비예(毕节)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던 그는 10대 후반 시기 중국의 여느 농촌 출신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대도시로 와서 일을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그처럼 농촌 호구를 갖고 있지만 대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농민공'이라고 부른다. 개혁개방 이래 40여년이 지나면서 농민공 인구수는 거의 3억 명 수준까지 늘었다. 이들은 대도시의 풍경을 바꾸었고, 중국 경제발전의 견인차이기도 했다. 천궈장은 베이징에 온 이래 이런저런 일들을 하기도 했지만, 주되게 했던 일은 음식배달 플랫폼의 배달노동이었다.
스마트폰의 발전에 따라 성장해온 중국의 플랫폼 산업은 규모나 성장 속도, 기술 등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다보니 노동의 플랫폼화 추세 역시 빠르다. 칭샨캐피털(靑山資本)의 2023년 7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수는 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를 포함해 최소 2억명에 달한다. 그 중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은 메이투안(美团)과 어러머(饿了么) 두 기업에 의해 양분돼 있는데, 2020년 3월 메이투안 사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메이투안 등록 음식배달 노동자는 399만 명이었고, 경쟁사인 어러머의 경우 약 300만 명이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낮은 이윤의 거래와 낮은 노동조건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위험과 보수가 불공정하게 배분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2019년 7월 홍콩 ‘직공맹’이 중국대륙의 음식배달 플랫폼노동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6만5천 명의 배달 노동자 중 75% 이상이 5천 위안(85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았고, 대부분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중화인민공화국 노동법’ 제41조에 따르면 노사 간 합의가 있을 경우 노동시간 연장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는 1시간만 연장할 수 있으며, 특별한 사유로 노동시간을 연장해야 경우 최대 3시간 연장할 수 있고, 매월 합쳐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지키는 음식배달 노동자는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이 음식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을까?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90퍼센트 이상이 남성이고, 전체 노동자의 82퍼센트 가량은 80~90년대생이다. 이들 상당수는 중학교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는 농민공이며, 비혼 비중도 높은 편이다. 수년 동안 어러머의 라이더로 일해온 천궈장 역시 그런 평범한 노동자들 중 하나였다. 다만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불의에 맞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줄 알았고, 어려움을 겪는 동료 라이더들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료들을 경쟁자로 인식하지도, 미친듯이 일해 연봉 1등이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2019년 7월, 천궈장은 중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위챗상에 ‘음식배달부 오픈채팅방(外賣騎手交流群)’을 개설하고 동료 노동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딱히 어떤 조직적인 고민이 있었던 것도, 혁명가로서의 이상을 꿈꿨던 것도 아니다. 단지 동료들을 돕고 단결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그해 말, 그는 ‘비리비리’에 음식배달업계라이더연맹(外送江湖骑士联盟)이란 채널을 개설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픈채팅방으로, 혹은 채널 구독자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베이징 시내 라이더연맹 회원들의 회합
라이더연맹의 ‘맹주’를 자처하고 나선 그는 일종의 해결사로 일했다. 교통사고나 계약 관련한 분쟁, 정부기관 혹은 회사와의 협상, 저렴한 숙소를 구하거나 오토바이를 살 때 등 농민공 라이더들이 겪을 수 있는 제반의 사안들에 대해 조언하고 직접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았다. 직책이나 자원은 없었지만,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을 위해 몸으로 헌신한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관심과 참가가 크게 늘어 2020년 가을까지 천궈장이 만든 위챗 채팅방이 16개로 늘었고, 총 1만4천명의 노동자들이 가입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팬데믹 상황이 중첩되면서 중국의 내수 역시 크게 위축됐고, 이로 인해 라이더들의 수당을 깎는 일들이 심화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당이 깎이던 노동자들의 불만은 높아졌고, 중국의 도시 곳곳에서 음식배달 라이더들의 파업이 이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폭발하기 이전 1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최소한 47건의 배달 노동자 파업이 발생했는데, 특히 장쑤성과 저장성, 산둥성 등 동부 연안지대의 도시들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 2017년에 10건에 불과했던 음식 배달 노동자 파업 발생건수는 2019년에는 45건을 넘어선 상태였다. 천궈장과 라이더연맹은 이렇게 곳곳에서 발발하던 계급투쟁을 응집된 힘으로 모으려는 중요한 시도였던 셈이다.
중국의 통치엘리트들이 이것이 미칠 정치적 위험성을 모르지 않을리 없다. 상기한 바와 같이 2021년 봄, 천궈장이 체포되자, 그의 동료들과 가족, 중국 내 활동가들은 그의 행방을 파악하고 구출하기 위해 활동했다. 3월 15일, 그의 아버지는 위챗에 모금을 호소하는 편지를 올렸다. 5만 위안(한화 864만 원) 가량의 변호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글은 1시간만에 삭제됐지만, 10시간이 지났을 때 편지에서 그는 아직까지 아들의 체포 이유에 대한 어떤 통지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천궈장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이듬해 1월이다. 10개월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던 천궈장이 드디어 풀려났다. 그는 위챗상에 “저는 괜찮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시죠? 형제들, 나중에 다시 강호에서 만나요!(我还好,你们好吗?各位兄弟,后会有期,江湖再见)”라고 인사하는 34초짜리 영상이 게시됐다. 그러나 이 영상을 업로드한 라이더연맹 계정은 이틀 후 폐쇄됐다.
이후 천궈장에 관한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음식배달 라이더들의 파업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친 이후에는 급격하게 감소됐다. 중국 내수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음식배달 플랫폼 매출 역시 크게 줄어든 탓으로 보인다.
중국의 유명 월간지 <인물>은 2020년 3월부터 반년간 수십명의 배달 노동자에 대한 심층 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들은 갈수록 더 심하게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최저 32분에 처리하던 배송을 이제 30분 안에 완수하기 위해 일한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배달시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이다. 메이투안에서 3년간 일한 다른 노동자 역시 2016년 1시간이었던 배송 간격이 이듬해 45분, 다음해 38분으로, 급기야 지난해에는 28분으로 줄었다.
상하이에서 몇년째 배달노동을 하는 한 라이더는 건마다 한 번씩은 역주행한다. 그래야 배달시간을 단축해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다. 속도와 신호를 엄수하는 등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킬 경우 배달 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현실에서 이는 먼 미래다. 배송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매번 평점과 소득이 감소하고, 점수가 더 깎일 경우 잘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중국사회과학연구원의 쑨핑(孙萍) 연구원은 “라이더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오랜 기간 통제받으며 체득된 결과”라고 말한다. 알고리즘이 정한 시간 내에 배달하기 위해 더 빠르고 위험하게 달리게 되고, 이런 데이터를 수집한 알고리즘은 더 짧은 배송시간을 지시한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2017년 상반기 상하이 공안국 교통경찰총대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에서는 2.5일에 1명꼴로 라이더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청두시 교통경찰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교통법규 위반 건수가 1만건에 달하고 사고는 196건, 사망은 155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라이더들이 시스템에 의한 통제로 죽어갈 때, 플랫폼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메이퇀의 주문량은 25억건에 달했고, 1인당 수입은 전년 대비 0.04원 늘었으며, 원가는 0.12원이 절감됐다. 이는 해당 분기 한화 700억원의 이익을 늘리게 했다. 각각 ‘초뇌(超腦)’, ‘방주(方舟)’라 명명된 알고리즘들은 자본가들에겐 첨단 AI 기술을 과시하는 자랑거리지만, 1000만 라이더에겐 죽음을 독촉하는 쳇바퀴일 뿐이다.
최근 중국 음식배달 플랫폼시장의 독점은 심화되고 있다. 메이투안의 경쟁 기업들은 크게 위축됐고, 각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기 메이투안의 경우 플랫폼 자체 직접고용(直营), 가맹점 또는 아웃소싱을 통한 고용(外包), 클라우드소싱(众包), 대형 체인점 직접고용(自营)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만들고 3종 혼합 고용체계를 구축하여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노동권이 보장되는 모델은 없었다. 2018년 4월 이후 메이투안은 모든 고용모델을 가맹 또는 아웃소싱으로 전환했고, 클라우드소싱 60%, 가맹점·대리점 40% 수준으로 변화했다. 이런 고용형태는 노동자들을 훨씬 더 유연하게 고용하면서, 언제든 인원을 늘리거나 줄이고, 동시에 노동자 내 경쟁을 강화하는데 있어 유리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라이더연맹 같은 자생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자조직은 탄압하고, 대신 이런 플랫폼 노동자들을 중화전국총공회(中华全国总工会, ACFTU) 가입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받는 총공회 조직이 라이더 권리 향상을 위해 단체교섭을 하거나 투쟁을 조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로의 편입이라는 방식만으로 제도 바깥에서 권리 침해를 겪는 농민공 라이더들의 고통이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투쟁은 유보되고 있지만, 곳곳에서 자생적인 싸움은 지속되고 있고, 천궈장과 같은 이들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글 : 홍명교 (뉴스레터 동동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