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파견된 북조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다
2024년 4월 3일
지난 1월 중순, 중국 지린(吉林)성의 15개 공장에 파견된 약 2,000~2,500명의 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글에서는 편의상 '북조선'으로 통칭하고자 한다]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의 조선족 집거지역 허룽(和龍)시의 의류 제조공장과 해산물가공 공장에서 벌어진 이번 파업은 북조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 체불이 그 원인이다.
이처럼 북조선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해 중국 일대로 인력을 송출하는 것은 노동자 1인당 약 2500~2800위안(약 46만~52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이뤄진다. 이 중 숙박 및 식사비용(월 800위안), 무역회사 몫(1000위안)을 제외하고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고작 700~1000위안(약 13만~19만원) 정도다. 이는 동북3성의 법정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몇 년 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 조치로 중국-북조선 국경이 폐쇄됐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임금을 체불하던 기업 간부와 북조선 지도층은 전쟁 자금 명목으로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돈을 본국으로 송금해왔다.
정확히 어떤 사건이 트리거가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분노한 노동자들은 1월 11일 공장을 점거했다. 이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관리/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북조선 요원을 인질로 잡고,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북조선 당국은 중국 주재 영사관과 비밀 경찰, 국가보위성 요원을 총동원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노동자들은 이들의 공장 출입을 막아나섰다. 시위는 14일까지 계속됐고, 인질로 잡힌 관리직 대표가 숨지기도 했다.
이번 시위를 두고 북조선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줘 달래는 한편, 시위를 주도한 100여 명을 북조선으로 송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중순에는 접경도시 단둥에서도 북조선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팬데믹 시기 국경이 봉쇄된 후로 중국에 고립된 채 살아왔다. 최대 7년까지 장기 체류하게 되면서, 임금 체불과 강제 초과근무가 이어졌고, 신체적, 정신적 한계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죽더라도 북조선에 가서 죽겠다"고 했지만, 북조선 당국은 외화벌이 때문에 이들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아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해외파견 북조선 노동자의 현실
현재 북조선 정부는 중국, 러시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 등으로 수만~십수만 명의 해외노동자 파견을 통해 연간 수억 달러의 자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문제는 북조선 정부 당국이 해외파견 기회를 제공했다는 명목으로 국가를 위한 상납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식비, 여비, 김정은 생일, 국가난을 명목으로 임금의 거의 90%를 떼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10%로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은 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외 파견을 지원한다. 그러면 당국은 출신성분(계급, 계층. 부모의 출신성분이 세습됨)에 따라 누구를 파견할지 결정한다. 해외파견 노동자와의 인터뷰 자료를 통해 본 북조선 해외파견의 동기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폐쇄적 사회에서 벗어나 자유 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싶은 열망' 등이다. 당사자의 자원과 희망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돈과 연줄 없이는 선발되기 어렵다.
또한 파견 노동자의 출신성분이 좋지 않을 경우, 러시아 벌목장 등 위험한 노동 현장에 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출신성분에 따라 차등적 배치가 이뤄지는 것이다. 북조선 정권으로부터 탈주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 불법 행위 경험자를 배제하고, 기혼자와 아이가 있는 이들을 우선 선발한다. 혹시 모를 북조선 기밀 사안의 유출 가능성 때문에 초고위층 인사들의 출국 역시 제한된다.
파견이 결정된 후에는 입출국시 보통 기차나 항공기를 타고 단체 출국한다. 이렇게 해서 출국하게 된 노동자들의 여권은 파견국 도착 후 이탈을 막기 위해 당국에 의해 회수된다. 대부분의 해외파견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없이 노동현장에 보내진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나름 체계적 급여체계가 규정되기 시작했다. 급여는 해당국 통화로 지급받고, 이를 달러로 교환해 은행에 입금해 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
그렇다면 이 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은 어떨까? 해외 노동현장은 매우 열악하고 위험하지만, 안전시설이 없기에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사망사고와 신체상해 사고가 빈발하지만, 적극적인 보상과 지원책은 전무하다.
노동시간은 보통 10~12시간의 근무, 4~6시간의 초과근무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과근무에 대한 추가임금은 없으며 공식휴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거주지 선택의 자유는 없다. 거주지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관리자와 파견기관에서 고르는데, 일정 지역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북조선은 해외파견 북조선 노동자들에 대한 사상교육과 감시체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이를 형식적으로만 진행하거나, 거의 실시되지 않는 사업소도 많다.
북조선 노동자들에 따르면, 북조선 경내에서의 일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지배인, 당비서, 세포비서, 보위부원 등의 관리자들이 나누어 감시업무를 맡는다. 싱가폴, 말레이시아는 한국드라마 시청을 허용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지역에서는 북조선, 러시아 방송 외의 외부통신접촉은 허용되지 않는다.
파견지에서 탈출할 경우 다리에 일부러 깁스를 해 도망을 못가게 구금한다. 그후 북조선에 이송되어 취조를 받고 노동교화를 받거나 무보수노동을 한다. 가족들이 처벌받는 경우도 있다.
집단행동의 힘을 보여준 북조선 노동자 시위
통일연구원의 탁민지 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이번 북조선 노동자 시위를 그간 해외노동자들의 ‘일탈행위’와는 다르다고 평가한다.
우선, 집 회 및 결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어려운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집단을 형성해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예전에는 부당함을 알아도 그냥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부업을 해서 수익을 더 올리겠다는 개인적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방식, 즉, 집단적 행동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개인적인 자력구제에서 벗어나 "북조선 당국이 손해에 대해 직접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받지만 정작 자신들을 배신한 기업과 국가에 분노해 불만을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셋째, 파업 참여자들이 ‘숙련노동자’로서 가진 힘 역시 인상적이다. 북조선 노동자들은 해외의 건설업, 벌채, 식당, 봉제업 등에서 일하고 있다. 지린성파업 장소인 의류제조업 종사 노동자들은 숙련도가 높고 중국 기업들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탁 연구원은 2,000명의 파업참가자 중 주동자인 5%, 약 100명 가량만 송환한 것을 두고 북조선의 필요에 의한 노동자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조선에게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 해외 파견 노동자를 통한 지속적 외화벌이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외회수익의 유지를 위해 현지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북조선 당국이 대다수 노동자에게 양보하며 물러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정부와의 자극을 피하려는 북조선의 외교적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인식해야 한다. 북조선과 중국은 전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중북관계를 발전시킬 의지를 피력했다. 북조선 당국은 2023년부터 러북이 국방협력 등 밀착하면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을 피하기위해 신중하게 대응하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 정부 협조하에 대북 제재를 우회해 노동자를 대규모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북조선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2017년에도 북조선 출신 노동자 해외파견에 대해 제재 조치가 취해졌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만 명 규모의 파견이 유지되고 있다. 북조선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도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되기에 다른 국가들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파견하는 북조선 당국과 파견되는 국가 양 측의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파견은 암암리에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대규모 저항에서 보듯, 당국의 통제력은 약화되고 있다. 위기 의식을 느낀 북조선은 최근 남한과 관계단절을 선언하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등 3대악법을 제정하고 헌법개정을 예고하며 통제를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기존 통제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내부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할 수 있다.
북조선 해외파견 노동자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정권의 통제가 가장 늦게, 가장 약화된 형태로 도달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자신감이나 집단의식이 확대될 수 있다. 더구나 대중매체의 발달로 북조선 해외파견 노동자 공동체에 미디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을 가능성도 높다.
투쟁의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다. 선례가 발생했고, 완전한 단속이란 불가능 하다. 따라서 북조선으로, 혹은 다른 나라에 파견된 노동자들에게도 이 소식은 전해질 것이다. 이번 투쟁은 이후 있을 또 다른 북조선의 대중 시위가 만들 변화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경제 제재는 대안이 아니다
서방과 한국 정부는 자국의 주류 언론과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조선의 인권 침해를 비난하기만 바쁘다. 그러나 북조선에 경제 제재를 취해 주민들이 더 심각한 불평등에 고통받게 만든 것은 미국 등 서방이었다. 경제 제재가 이뤄지면 엘리트들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당장 김정은의 후계자로 비춰지는 딸 김주은은 ICBM 화성 17형 시험발사 현장에 3천달러 상당의 명품 외투를 입고 등장했다. 같은 시기 김정은도 스위스 명품시계를 착용했다. 이처럼 통치엘리트들은 경제 제재 속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한다. 남한의 김건희 명품백 논란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양국 지배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주적'으로 두고 비난하기 바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유리된 삶을 산다.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로 호화로운 삶을 사는 남과 북의 지배자들은 데칼코마니다.
반면 북조선 주민들은 체제 유지를 위한 군비경쟁과 경제 제재 속에 오랫동안 고통받아왔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면서도 해외파견을 지원하는 것이 더 나은 임금과 자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있다면, 미국 등 서방은 오히려 해외파견 노동자와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고 구호를 확대해 북조선주민들의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하지만 서방과 남북 정부는 이들의 고통에는 진정한 관심이 없다. 게다가 한국, 미국 유럽 기업들이 외주화한 중국, 동남아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역시 심각하다.
서방은 자국 기업의 이익과 연관될 때는 자국기업이 타국에서 벌이는 노동자 탄압과 인권침해를 방조 및 침묵한다. 그리고 자신의 패권을 거스르거나 그 이용 가치에 따라 손쉽게 타국의 정권을 비난하며 ‘민주주의’를 들먹이고 무력으로 공격해왔다. 지난 수십년 사이 미국은 베트남과 이라크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부도덕한 전쟁과 무력 개입을 펼쳤다.
지금도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집단 학살하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며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군사훈련을 확장하는 등 서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제국주의 국가임은 분명하다.
경계를 넘는 연대
하지만 북조선을 비롯한 어떤 국가의 민중의 해방은 그 지역의 민중 스스로가 이루어야 한다. 수많은 민중의 피칠갑으로 범벅된 역사를 가진 서방 국가들은 북조선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노동자들의 인권과 처우개선은 언제나 자본의 이익에 희생되거나 뒷전이었다. 남과 북, 미국과 중국, 유럽을 막론하고 각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이익과 권력유지가 최우선순위다. 국가의 이익은 언제나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방식이었음이 이번 북조선 노동자 투쟁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대안은 남북 민중의 연대, 나아가 국제적인 연대다. 북조선 노동자 시위는 이주노동이 일상화되는 한국 노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북조선 해외파견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언제나 국경과 국가, 민족과 문화를 패싱할 수 있지만, 노동자 민중은 언제나 온갖 규제와 차별 속에 통제당한다. 다른 사상과 문화, 피부색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제재와 통제, 무력을 행사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한다.
우리는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일본과 중국을 너무 쉽게 비난하지만, 북조선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도 악마화하거나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민족을 떠나 노동자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사실 생 각보다 비슷하다.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기에 서로를 더 알아갈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북조선 노동자들의 집단투쟁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투쟁과 대중적 지지가 함께한다면, 지금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구조와는 다른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럴 때에만 북조선 주민들이 빈곤과 착취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우리 모두와 함께 누릴 수 있다.
참고 자료
- 윤여상·이승주, 『북한 해외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북한인권정보센터, 2022. 12. 26.
- 홍승욱, “‘중국 내 북 노동자 시위’에도 파견은 계속”, RFA(radio Free Asia), 2024. 2.22
- 김현아, 「파업에 참가한 북한노동자들의 운명은?」, RFA(radio Free Asia), 2024.2.19
- 탁민지, 「중국 지린성 북한 해외노동자 집단 파업사태의 함의: 해외 파견 노예노동의 위기」, 통일연구원, 2024.02.20
- 김예진, 「‘中 외화벌이’ 노동자 연쇄 소요사태… 北 체제 위기의 전조?」, 세계일보, 2024.3.13
- 오수진, 「"단둥서도 北노동자 수십명 출근 거부…영사파견에도 수습 난항”」, 연합뉴스, 2024.02.29
- Taejun Kang, 「Enraged N Korean workers in China beat factory manager to death: report」, RFA(radio Free Asia), 2024.02.19
- Junichi Toyoura, 「North Korean Workers in China Riot over Unpaid Wages; 2,000 Occupy Factory, Kill Plant Manager」, Yomiuri, 2024.02.17
글 : 김지혜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