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과 집단 학살이 시작되자 전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평화와 식민지배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중 시위가 불붙었다. 중동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엄 청난 규모의 대중 시위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맞선 저항에 가장 든든한 힘이 됐을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도 7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 팔레스타인 상황의 원죄를 안고 있는 영국 정부를 규탄하고, 이스라엘 점령군의 학살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에서는 유대계 시민들의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규탄 기습행동 등 시위와 도시 곳곳에서의 대중 시위가 이어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나 유럽 등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과는 꽤나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왔던 동아시아에서는 어떨까? 중동이나 유럽에서 일어난 대중 시위만큼은 아니지만, 아시아 각국에서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학살 중단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크고 작은 연대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일본 사회운동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연대하고 있다. 특히 도쿄에서는 거의 매일 같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렸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빈번하게 집회가 열렸다. 첫 대응은 아마 10월 14일 주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소규모 집회였을 것이다. 30여 명의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지금 당장 학살을 중단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5일에는 신주쿠역 동남쪽 광장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BDS(Boycott,Divestment, Sanction :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불매, 투자철회, 경제제재) 도쿄 주최로 집회가 열렸다.
10월 19일, 일본공산당은 도쿄 신주쿠에서 긴급 집회를 열어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군사 침공을 규탄했다. "가자지 구 침공을 중단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실시하라"고 호소했다. 고이케 아키라 사무총장은 참가자들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조직 하마스의 충돌로 희생자가 수백 명을 넘어섰다. 어제는 가자지구의 병원이 폭발해 희생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는 대규모 공습으로 물도 식량도 연료도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대규모 침공하면 유엔기구는 '전례 없는 인도주의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양측이 휴전에 응해야 한다.” 고쿠다 에이지 국제연대위원장은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철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포함한 민족자결권 실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의 상호 인정”을 위해 일본 정부가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의 좌파 포퓰리즘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는 10월 14일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습과 지상 침공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의 국제법 위반”임을 분명히 했다. 며칠 후 레이와 신센구미는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고 이스라엘 폭격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일본의 일부 네티즌들은 레이와 신센구미가 일본공산당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보다 확고한 연대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 당의 중의원 오오이시 아키코(大石あきこ) 는 11월 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은 범죄”라고 규정하고, “일본 정부는 미국에 '노예'가 되어 가자지구의 학살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서방 국가들은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매우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후쿠오카에서 두드러진 연대 행동은 10월 22일 시작됐다. 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아랍 출신 이주민들과 함께 모여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10월 16일 오사카에서도 주오사카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40여 명 규모의 작은 집회가 열렸다. 이날 낮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시민들을 향해 팔레스타인 해방에 연대해달라고 호소했다.
11월 들어 도쿄에선 매우 활발하게 팔레스타인 연대가 이어졌다. 1일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이스라엘 대사관 앞 연좌 농성이 진행됐고, 5일에도 약 1600명이 참가한 가운데 히비야공원에서 도쿄역까지 40분 이상 행진했다. 11월 16일 외무성 앞에서는 무기거래반대네트워크(NAJAT)와 BDS 도쿄 공동주최로 약 150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가 열렸고, 바로 다음날인 17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도 약 900명이 모여 '팔레스타인 침략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대사관 측에 전달하려 시도했다.
11월 19일에도 약 1,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스라엘 점령군의 즉각적인 철수와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을 요구하 는 긴급 행동이 개최됐다. 반전과 헌법 9조 수호를 위해 활동하는 여러 시민단체가 기획한 이 집회의 참가자들은 신주쿠역 동쪽에서 1시간 가까이 행진하며 “지금 당장 휴전하라!”, “가자지구에 평화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 중에선 팔레스타인 출신 이주민도 있었으며, 가자지구에서 온 한 여성은 “얼마나 더 죽어야 세상이 바뀔 것인가요?”라고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만
11월 18일 타이베이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다. 6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네이후(內湖)역에서 재대만미국협회(美國在台協會) 사무실까지 행진하며 학살 중단을 외치고 미국에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좌익연합(左翼聯盟), 사회운동단체인 평행정부(平行政府), 댜오위타이 교육협회(釣魚台教育協會)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진의 참가자들은 집단학살 폭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가 '어린이들의 무덤'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유엔의 경고를 강조했다. 우용이(吳永義) 평행정부 사무국장은 이 전쟁의 책임자로 “미국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등 이스라엘의 후원자 역할을 해왔 을 뿐만 아니라, 유엔 안보리가 이스라엘에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려 했을 때 미국이 반대표를 던져 초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만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하젬 씨는 “가자지구의 실제 상황은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이스라엘의 장기간 봉쇄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물, 전기, 식량 부족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 행진의 도착지점인 재대만미국협회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가 '어린이 공동묘지'가 되고 있다는 유엔의 경고를 반영하듯, 어린이 장난감들을 이곳에 두었다.
21일에도 타이베이의 이스라엘 경제문화사무소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대만 내의 아랍인 유학생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했고, 타이베이 모스크에 기반한 무슬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위를 주최한 유학생 라라 씨는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10월 7일부터 가자지구에 보복 폭격을 가하고 있으며 병원, 학교, 대피소 등을 가리지 않아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며 심각한 전쟁 범죄”라고 규탄했다.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참석한 대만인 무슬림 청년 정핑은 “무슬림을 반유대주의 극단주의자 집단으로 묘사하고 자신들을 괴롭힘의 피해자로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는 이스라엘에 의해 똑같이 억압받는 기독교인도 많고, 유대인조차도 팔레스타인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의해 탄압받을 수 있다”며,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종교가 없는 사람이든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잔학 행위를 규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25일에도 수백여 명이 다안 삼림공원에 모였다. 이 집회는 11월 들어 네번째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였다. 주최 측은 지난 한 달 동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이라크, 레바논, 모로코, 예멘, 영국, 미국, 캐나다,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터키, 그리스 등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과의 휴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대만에서도 계속해서 함께 모이고 외치자고 호소했다.
홍콩
홍콩섬 어드미럴티(金鐘)의 하이푸센터(海富中心)에 위치한 주홍콩 이스라엘 총영사관 사무실 아래층 로비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에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기 위해 흰색 종이에 구호를 쓰고, 침묵 시위를 진행했다. 10명 남짓의 참가자들은 하마스의 무분별한 민간인 테러에 반대하면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체계적인 식민지화 및 팔레스타인 박해가 테러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스라엘 정부가 먼저 팔레스타인 대량학살을 종식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미국의 군사개입도 반대한다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를 더 빠르게 악화시켜 더 많은 인명피해와 증오를 키운다고 주장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의 엄혹한 정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집회는 매우 이례적이다.
필리핀
필리핀에서는 주로 남부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집중되고 있다. 10월 14일 남라나오주 마라위에서는 필리핀공산당 계열의 좌파단체 ‘새로운 애국동맹(Bagong Alynsang Makabayan)’ 등 사회운동단체 회원 수백여 명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학살을 규탄하는 집회와 행진을 개최했다. 16일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 수도 코타바토시티(Cotabato City)에선 1만2천 명 규모의 무슬림 공동체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방사모로 집회’를 개최하고, 대규모 행동에 참여했다. 최소 4시간 동안 진행된 집회의 일환으로 기도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고 참가자들의 감정이 고조됐다. 10월 31일에는 수도 마닐라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백여 명 규모의 규탄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이스라엘의 학살 중단을 요구했다. 11월 25일에도 종교를 막론하고 수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했다. 주최자인 드리자 A. 리닌딩은 “우리는 국제법과 인도주의를 존중하고 준수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발언했고, 재생산을 위한 글로벌 여성 네트워크 활동가 빙 파르콘(Bing Parcon)은 “우리가 단결하지 않으면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자지구 주민들과 연대한다”고 말했다.
11월 12일 민다나오섬 최대도시 다바오의 록사스 자유 공원에서도 ‘팔레스타인의 휴전, 평화, 정의를 위한 연대 집회’가 열렸다. 민다나오 지역 인구 중 4분의1은 무슬림이며, 수백년 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저항해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인상적인 대규모 집회가 열린 것은 10월 22일이었다. 현지 NGO인 VPM(Viva Palestina Malaysia)과 NGO인 마이케어(MyCare)가 쿠알라룸푸르 독립광장에서 주최한 이 집회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으며, 미국 대사관 앞에선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있기도 했다. 인구의 약 60%가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두 국가의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것과 상반되게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하마스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동아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연대 행동들이 벌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다. 10월 11일부터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수천 명 규모의 집회들이 열렸다. 인도네시아의 좌파정당 노동당과 인도네시아노총(KSPI)은 수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자카르타 메르데카 셀라탄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10월 21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반둥에서는 수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팔레스타인을 위한 서부 자바 행동’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아룰 디마스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지키기 위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이스라엘은 너무 멀리 나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