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반빈곤운동 공간 아랫마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반빈곤·이주노동자 운동을 연결하는 흔치 않은 자리가 열렸다. 이번 집담회는 오사카의 노동·반빈곤운동가들의 방한을 맞이해 마련m됐다. 서울과 오사카의 사회운동간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오후 1시에 시 작된 행사는 홈리스행동 및 플랫폼C에서 활동하는 국내 활동가들과 일본 활동가들 간 언어의 벽을 넘은 연대와 교류로 약 3시간 가량 진행됐다.
먼저 홈리스행동 활동가서 국내 홈리스 운동 현황 및 외국인 홈리스들과의 연대 사례를 공유했고, 이후 이어진 오사카의 반빈곤 활동가 우메오 씨의 발제는 크게 가마가사키 센터 개방행동(釜ヶ崎センター開放行動)을 중심으로 한 노동복지센터 철거 반대 운동의 이야기, 그리고 2020년대 현재 오사카의 이주노동자 운동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마가사키 | 홈리스 일용직의 삶을 지키는 투쟁
가마가사키(釜ヶ崎)는 오사카부 니시나리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정부에서 부르는 이 지역의 공식적인 이름은 '사랑하는 이웃'이라는 뜻의 아이린 지구(あいりん地区)지만, 이곳에 거주하거나 이 곳을 잘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 이름으로 이 곳을 부르지 않는다. 이 지역은 오사카에서 가장 큰 빈민 및 홈리스 밀집지역이며, 바로 옆에는 일본 최대의 성매매 집결지인 토비타신치(飛田新地)가 위치해 있다.
과거 가마가사키에는 일본 3대 인력시장(요세바; 寄せ場) 중 하나로 꼽히는 오사카 최대의 일용직 인력시장이 위치해 있었다. 전후 일본의 경제 부흥과 함께 건설 붐이 일며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수요가 폭증했을 때 이 곳에는 수만 명의 일용직 노동 자들이 거리와 쉼터, 일자리 센터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고, 건설업의 몰락으로 일용직을 찾는 곳이 줄어들자 가마가사키도 쇠락하기 시작한다.
일자리는 사라져도 사람은 여전히 남는다. 매일매일의 일터를 찾아 도야(ドヤ)라는 간이숙소[한국의 고시원과 유사하다]를 전전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생계를 위한 일조차 거의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들이 몸을 뉘인 곳은 과거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일자리 대부분을 알선하던 아이린 노동복지센터(あいりん労働福祉センター)였다. 오랫동안 홈리스들의 공동거주공간으로 사용되어 온 이 곳은 2019년 3월 갑작스레 시 당국으로부터 폐쇄 및 철거 처분을 받았다. 표면적인 사유는 건물이 낡아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그 실상은 2025년 오사카 엑스포를 대비해 가마가사키의 전면적인 재개발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자본의 사고에서 비롯된 빈곤과 노동에 대한 혐오였다.
오사카시는 간이숙소를 비롯해 지역 일자리센터 등 대체 공간이 있다는 핑계를 대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당장 하루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버거운 홈리스 노동자들에게는 사치일 따름이다. 노동복지센터의 주거자들과 우메오 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2019년 당시부터 가마가사키 센터 개방행동(이하 개방행동)을 조직하여 센터의 철거를 막고자 투쟁해 왔다. 2019년 4월 강제 퇴거가 집행되어 현재까지 건물은 폐쇄된 상태이지만, 이들은 센터 처마 아래에서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큰 가마솥에 나누어먹을 국을 끓이고, 함께 일상을 나누며, 경찰의 강제집행 시도에 함께 맞서고 세상에 가마가사키의 사정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 오사카 지방법원은 시정부에서 낸 철거 강제집행 가처분을 기각했다. 끝까지 빈곤 혐오와 노동 혐오에 맞서 온 이들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던 판결일 것이다. 여전히 센터를 지킬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고 운동을 함께하던 홈리스 노동자들도 이제는 고령화로 많이 사라졌지만, 우메오 씨는 그럼에도 가마가사키의 마지막 노동자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센터를 지키겠다고 한다. 가마가사키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아이린 지구'라는 국가의 공식 이름을 거부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 스스로가 '사랑하는 이웃' 따위 시혜적 호명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갔다.
오사카 이주노동자 운동의 현재
이어진 두 번째 발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억압과 인권 유린, 그리고 그에 맞서는 운동에 대한 소개였다. 과거 일본 사회의 불안정 노동이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노동으로 대표되었다면, 현 시기의 불안정 노동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대표되고 있다고 우메오 씨는 설 명했다.
2021년 3월, 나고야의 불법체류자 수용 시설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33살이었던 스리랑카 출신의 위슈마 산다마리 씨는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시설에 갇혀 삶을 마감했다. 열악한 수용시설의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가 불가능하고, 시설 내 의료시설에서도 역시 명목상의 진료만 이뤄진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그간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9년에는 화성보호소에 구금된 이란인 노동자가 열악한 처우를 받다 급성신부전증으로 숨졌고, 2021년에는 동일한 곳에서 모로코 난민에 대한 '새우꺾기' 고문이 자행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21세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미등록 외국인들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수용시설에 감금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외국인이 출국을 거부할 경우 무기한으로 수용당하는, 사실상의 외국인 교도소나 다름없는 제도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설 내 수용자들을 관리할 수 없었던 정부는 결국 보호라는 위선적인 명목도 내팽개치고 수용자들을 밖으로 내보냈고, 안정적인 생활 기반이 없는 이들이 정부로부터의 책임도, 지원도 없이 거리로 나옴으로써 외국인 홈리스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팬데믹이 진정된 현재 정부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다시 수용하는 중이라고 한다.)
우메오 씨와 오사카 활동가들은 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동체와 공간을 만들고 이들의 생활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더욱이 일본 법제도에서 미등록 외국인는 단지 일자리를 제공 혹은 소개하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된다. 이미 미등록 외국인 내지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자립 역시 현재로써는 요원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팬데믹 같은 재해 상황, 혹은 혐오와 차별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비국민'들과 함께하는 이들의 운동은 지금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운동이다.
발제가 모두 마무리되고 참석자들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일본과 한국의 홈리스 운동의 차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운동 사회 내부의 시선, 노동운동을 비롯한 기존의 사회운동과 어떤 연대가 있는지, 재정적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등 양국 사회운동의 맥락과 현황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들이 있었다. 특히 일본의 홈리스 운동이 부라쿠민(部落民) 운동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점, 일본 정부가 홈리스 '구제'에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현재 홈리스 운동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보다 그들 스스로가 삶의 주체여야만 한다는 측면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사회운동을 동일한 선상에서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역사와 맥락 속에서도 서로 시사하는 점과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리를 마치며 우메오 씨는 오사카에 올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꼭 찾아와 주면 좋겠다는 부탁과 함께 가마가사키에서 동 지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 및 홈리스들의 공동체 토비타(飛田)를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소개했다. 행사가 진행된 아랫마을을 비롯해 쉽지 않은 상황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사회운동 공동체들이 떠올랐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질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양국의 사회운동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의 더 많은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11월 3일 낮에 가진 만남은 그것을 미리 상상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글 | 이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