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0개국 노동절의 역사와 현재

아시아 10개국 노동절의 역사와 현재

아시아에서 메이데이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는 노동자계급 운동의 운명을 반영하는, 길고 고단한 역사를 갖고 있다.

2023년 5월 5일

[읽을거리]노동노동조합, 노동운동, 중국, 일본, 대만,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노동절

ALR 편집자 : 아시아에서 메이데이(노동절)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는 아시아 노동자계급 운동의 운명을 반영하는, 길고 고단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그것은 식민주의와 내전, 반식민주의 혁명운동, 반혁명과 쿠데타, (국가)사회주의와 개발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탄생했고, 동원되거나 대항했어며, 혹은 중단됐다. 이 모든 시기에 메이데이는 노동-자본-국가 간, 노동운동과 정세의 다양한 흐름들 간, 미래 사회에 대한 대조적인 비전들 간 투쟁의 현장이었다. 수백만 명이 참여하기도 하고, 전면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국가 공식 이벤트로 축소되기도 했다. 오늘날 메이데이는 아시아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메이데이는 그 역사가 기억되는 동시에,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와 공식 부문 밖의 노동자를 통합하고, 노동운동의 전투력을 다시 활성화함으로써, 더 많은 노동자들과 연결하는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거듭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번(2023년) 메이데이에는 그것의 풍부한 역사와 오늘날 노동운동의 열망들을 담은 단편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플랫폼C : ALR의 동의하에 ALR에 게재된 Asia’s May Day: Tradition and Renewal 글을 번역 소개한다.

한국

1923년,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절을 기념했다. 이날 계획된 총파업은 일본 식민지 정부에 의해 진압됐지만,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은 전국에서 공개 집회와 시위를 개최했다. 억압적이었던 1930년대 내내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은 "메이데이를 정치적 총파업으로 기념하자!"고 선언하며 메이데이 투쟁을 계속 지켜나갔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는 1946년 5월 1일 메이데이 60주년을 기념하며 집회를 열었다.

미군정 기간(1945~48년) 동안 미군정은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조직이나 단체는 그 명칭에 관계없이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좌파 경향의 노조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대신 친정부 우익 성향의 대한노총을 지원했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기리며 이 날을 '노동절'로 선포했다. 박정희 쿠데타 이후 ‘노동절’의 이름은 ‘근로자의 날’이 됐다.

1970~80년대 군사 독재 하에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착취를 경험했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메이데이를 다시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1990년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최루탄을 뚫고 싸웠고, 전노협 운동의 절정을 구가했다. 1995년에 설립된 민주노총은 매년 노동절에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노동절에서 한국 노동자운동, 특히 민주노총은 서울 등 16개 도시에서 노동절 집회를 개최해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목소리를 외쳤다. 윤석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민적 반대에 부딪히고 있고, 국정수행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더구나 최근 동아시아 평화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의한 군사연습과 대만해협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군사훈련,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 동아시아가 군사력 증강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번 메이데이를 계기로 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 노동계급의 연대가 구축되길 희망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1924년 4월 15일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1924년 4월 15일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일본

일본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는 1920년에 열렸다. 사회적 격변 속에서 정부는 1936년 이후 10년간 메이데이 집회를 불법화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3대 노동조합 연맹들이 매년 집회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의 노동조합은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Z세대 중 한 명이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나는 메이데이에 항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최근 일본 노동운동은 고임금 정규직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들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주로 여성, 학생, 이주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나를 비롯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거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을 '하우스와이프 파트타이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일본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혼 여성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하우스와이프 파트타이머’는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고 가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었고, 따라서 기업들이 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정당화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상황은 바뀌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가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한다. 비정규직 고용 확대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업에서 핵심적이고 책임도가 높은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역시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이 적고 사회복지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 렌고)는 이번 메이데이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노동자의 평등한 대우와 성별 격차 해소”를 내세웠다.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매우 중요할 것이다.

후루세 나나코(古瀬 菜々子), 일본 연구자 겸 POSSE 활동가

1920년 일본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
1920년 일본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

중국

1908년 5월 14일(러시아 달력으로는 5월 1일), 당시 차르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던 중국 북동부 도시 하얼빈의 수천 명의 러시아와 중국 노동자들이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원에 모였다. 공식적으로 이날이 중국에서 메이데이 실천이 일어난 첫 해일 것이다.

메이데이에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실천의 씨앗은 이미 한 해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1907년 초, 하얼빈에 있는 동방철도회사의 철도 노동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노동자 학살 사건인 '피의 일요일' 2주기를 맞아 파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러시아인 노동자들 중 일부는 차르 정부의 경찰에게 체포됐다. 중국인 철도 노동자들은 러시아인 노동자들과 함께 행동을 조직했다. 1월 22일, 수천 명의 중국인 및 러시아인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 체포된 러시아인 노동자들의 석방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러시아에 이어 중국에서도 혁명의 열기가 고조되었고, 동북지방(만주 일대)의 중국인 및 러시아인 노동자들은 수십 차례 더 파업을 벌였다.

1920년에는 동북지방을 넘어 중국 전역의 여러 도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20세기 초 노동자계급 조직화의 중심지였던 상하이에서는 노동자들이 '세계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해 도심의 스포츠 경기장에 모였다. 이들은 "오늘부터 깨어난 중국 노동자들의 단결된 정신은 압제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상하이 노동자 선언문’을 발표했다.

1921년 중국공산당이 결성되기 전인 초기 공산주의운동 지도자 천두슈, 리다자오 등은 저술과 연설, 잡지 출판을 통해 산업 노동자를 동원하고 노동자계급 운동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선포했다. 연례 기념행사가 열렸고 '모범 노동자'를 선정해 영예를 부여했다. 그러나 메이데이는 더 이상 노동계급 운동에 관한 날이 아니었다. 개혁개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메이데이는 더욱 변형되고 탈급진화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오늘날 중국에서 메이데이는 주로 관광을 위한 긴 연휴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쇼핑과 소비의 날로 여겨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메이데이 집회를 주최했던 홍콩에서는 집회 주최 측의 경찰 신고가 압력에 의해 철회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에는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이로 인해 메이데이에 열리는 모든 집회는 불법이 됐다. 이는 지난 2년 사이에 홍콩의 노동조합연맹인 직공맹(HKCTU)과 다수의 노동조합들이 해산된 결과다.

올해 메이데이를 앞두고 중국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중 하나인 메이퇀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배달 노동자들이 4월 말 일주일 동안 열악한 근무 환경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였다. 비록 메이데이에 맞춰 파업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행동은 메이데이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리고 대변했다.

케빈 린(Kevin Lin), ALR 편집장

1907년 하얼빈 러시아인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되자 연대 ��파업에 돌입한 중국인 철도노동자들
1907년 하얼빈 러시아인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되자 연대 파업에 돌입한 중국인 철도노동자들


대만

대만의 메이데이 집회는 1980~90년대 노동조합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국민당(KMT)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많은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과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1998년 노동당은 메이데이 집회를 열어 노동조합의 독립과 노동조합 조직에 대한 정부의 제한 해제를 촉구했다. 이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이틀간의 공휴일 실시를 요구했다. 그 후로 매년 5월 1일에는 노동조합과 노동단체가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고 그 해의 주요 노동 이슈를 제기해 왔다. 최근 메이데이 요구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의 감축(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자 퇴직연금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만의 노동조합 조직은 주로 기업별 노동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소위 '업종별' 노동조합도 많지만, 이러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주로 고용보험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들 노조 대부분은 실제 노동조합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재 대만의 노조 조직률(직종별 노조 제외)은 약 8%에 불과하며, 전국 단위의 일반노조가 지역 풀뿌리 노조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조를 통한 정책 추진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데이 집회는 다양한 지역과 업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공통의 요구를 외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고,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 집회를 통해 서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확인한다. 이는 여전히 노조 간의 소통에 도움이 된다.

2023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의 주제는 정부에게 노동 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정책을 요구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현재까지 8년 가까이 집권당인 민주진보당(DPP)은 스스로 약속했던 많은 노동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2024년 1월에 대통령 선거와 입법원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에 메이데이 집회에 모인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임금 인상”이나 “공휴일 복원”을 요구하고, “청년은 희망을 원한다, 노인은 존엄성을 원한다”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호가 필요하다, 보건의료 노동자는 노동권을 원한다”, “노동조합은 힘을 가져야 한다, 노동 3권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등 구호를 외쳤다.

대만의 노조 활동가 카타 초우(Catta Chou)

2023년 5월 1일 타이베이 도심에서의 노동절 집회
2023년 5월 1일 타이베이 도심에서의 노동절 집회

필리핀

필리핀에서 메이데이는 1903년 필리핀 최초의 노동조합인 필리핀민주노동조합(UODF)이 조직한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마닐라 거리를 점거하면서 처음 기념됐다. UODF는 이전에 노동자 상호부조단체와는 달리, 노동권 옹호 행동과 무료 교육을 통해 필리핀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이사벨로 데 로스 레이예스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각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많은 활동가들에게 5월 1일 세계노동절은 “붉은 글씨의 날”로 간주된다. 달력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이 날을 노동자들이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쉴 수 있는 날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필리핀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불안만을 강요한다. 따라서 이 ‘붉은 날’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더 나은 임금과 살기 좋은 노동 조건, 고용 안정, 그밖에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는 것이다. 마닐라의 멘디올라로 향하는 거리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연대의 색깔(붉은색) 옷을 입은 시위자들에 의해 빨간색으로 칠해진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된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 정권은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기면서 필리핀 경제와 생산 산업을 혼란에 빠뜨렸다. 두테르테 대통령 임기 말부터 물가가 치솟아 올해(2023년) 초에는 물가인상률이 8.6%까지 치솟았다. 필리핀 노동자들은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더구나 비정규직화는 수백만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다.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과 진보적 사회단체들의 도전은 국가가 용인하고 조장한 폭력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부당한 상황은 오랫동안 필리핀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왔으며, 지속적인 조직화와 실천 동원에 있어 토대를 만들어왔다.

올해 메이데이에는 수천 명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sahod itaas, presyo ibaba”(임금 인상, 물가 인하), 비정규직 양산 중단, 활동가와 노동조합 탄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

세계노동절 집회에 산업 노동자들만 참석하진 않았다. 대학생과 원주민, 도시빈민 공동체,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나와 같은 교사들도 경제적 구제와 정당한 노동 조건을 촉구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호세 몬프레드 사이(Jose Monfred C. Sy) 필리핀교사노조 조합원

1971년 필리핀 노동절 집회
1971년 필리핀 노동절 집회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반식민지 운동이 한창이던 1918년에 첫 메이데이를 기념했다. 독립 후 수카르노 치하의 인도네시아는 1948년부터 1965년까지 세계노동절을 기념했다. 노동절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의 결속과 사회운동의 단결,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위한 순간으로 열정과 축제의 분위기로 기념됐다.

한데 메이데이는 수하르토가 이끄는 권위주의적 신질서 정권(1966~1998년) 시기에 금지됐고,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기억에서 사라졌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2월 20일을 ‘노동자의 날’로 지정하여 메이데이를 대체했다. 이날은 국가가 후원하는 노동조합인 인도네시아 노동총연맹(FBSI)이 설립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좌파 활동가들은 계속해서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했다. FBSI는 1985년 노동운동이 자본에 유리한 국가 정책을 묵인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설립된 노동조합인 전인도네시아노동조합(SPSI, Serikat Pekerja Seluruh Indonesia)으로 발전했다. 수하르토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벌이는 모든 시위가 공산주의자들의 시위로 분류되어 체포될 위험이 높았다.

1998년 리포르마시(개혁) 이후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메이데이의 대규모 시위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노동절 기념행사의 강력한 강도와 규모로 인해 노동절 시위는 가장 크고 대중적인 시위로 자리 잡았다. 공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집회에 동원됐으며, 특히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노동운동의 강력한 요구로 메이데이는 다시 공휴일로 인정받게 됐다. 정부는 2013년에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그 이후 노동절 시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는 감소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정치적 열망을 표출할 동력을 얻기보다는 회사가 조직하는 다른 활동들(각종 문화 행사 등)로 노동자들의 관심을 돌리고 있다.

탕거랑(Tangerang)시 정부와 같은 지방정부들도 종교 활동 대회를 개최해 메이데이를 방해하는 시도를 펼쳤다. 탕그랑시는 저임금, 성폭력, 괴롭힘, 노동조합 탄압이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산업 도시다.

법제도상에서의 ‘결사의 자유’를 회복한 지 25년이 되는 올해 2023년, 인도네시아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자보다 기업을 우대하는 옴니버스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세계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대중 항의와 사법부의 검토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기간 중 위헌으로 제정된 옴니버스법은 국민들의 뜻에 반해 계속 시행되고 있다.

올해 노동절 기념식에서는 활동가들이 조작된 사건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되는 등 시민 공간이 침식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릴 예정이다.

샤리프 아리핀(Syarif Arifin) 인도네시아 세데인 노동자원센터(LIPS, the Sedane Labor Resource Center) 연구원

202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202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태국

태국은 1946년에 처음으로 메이데이를 기념했다. 방콕의 노동자협회와 세발자전거협회가 주최한 메이데이는 이듬해 수천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몇 달 후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금지했다.

태국은 현대사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쿠데타를 경험했다. 메이데이 기념 집회는 몇 번이고 중단됐다. 1956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태국 정부 당국은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협상해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는 조건으로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허용했다. 1974년 메이데이는 민간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휴일로 발표됐다.

매년 메이데이가 되면 노동부와 노동인권단체들은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표명하는 활동을 벌인다. 올해 방콕에서는 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네트워크가 도심 거리로 나와 정부 청사까지 행진했다. 새로 설립된 ‘태국 창조노동조합’은 연례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태국 내 최대 산업단지이자 항구 도시인 촌부리에서는 동부노동자연합이 주최하는 연설회, 문화제가 열리는데 참가자들은 이 집회에서 구운 닭고기와 파파야 샐러드 등을 즐길 수 있다. 행사 이후 참가자들은 캐러밴을 만들어 방콕으로 이동해 집회에 참여하였다.

나와 같은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메이데이는 9시에 출근해 17시까지 일하는 노동자와 달리 다른 근무일과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다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태국 총선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8년간의 군사 정부 이후 태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후 새 정부는 노동권을 어떻게 다룰까? 사람들이 외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별개로, 경제 불평등을 개선할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지난 수십 년 동안 군부는 번갈아 가며 정부 자리를 차지해 왔으며, 노동운동의 조직화를 억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약화시켜 왔다.

태국은 ILO 창립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민간 부문의 노동자와 공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만 노조를 결성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소규모로 흩어져 있다. 반면 미얀마 등 인근 국가들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희망이 매우 요원하다. 직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는 긱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니차 왓파니치(Nicha Wachpanich), 저널리스트 겸 활동가

2022년 방콕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Prachatai
2022년 방콕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Prachatai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는 1960년대부터 국가가 통제하는 전국노동조합회의(NTUC)가 메이데이를 기념하고 있다. 싱가포르 총리와 NTUC 위원장, 사무총장 등이 참석해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과 NTUC의 공생 관계, 노동자를 위한 경제적 환경의 조성, NTUC와 PAP가 노동자를 위해 해온 일 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다.

이 집회는 초청된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으며, NTUC 조합원과 PAP 당원으로 제한된다. 몇 년 동안 싱가포르 국민과 영주권자가 체포되지 않고 집회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공장소인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에서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시위는 주로 정부의 이민 정책에 저항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올해 내가 소속된 단체인 ‘노동자들이 가능성을 만든다’(Workers Make Possible)는 5월 1일에 스피커스 코너에서 노동절 집회를 주최했다. "인민에게 힘을"(Power to the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올해 집회에는 노동자계급 연사 6명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의료노동자, 음식배달부, 운수 노동자, 식음료 서비스 분야의 조직자와 노동자, 저소득층 주택 커뮤니티에 거주하는 여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3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생활임금과 안전한 노동조건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커녕 독립적으로 단체를 결성하는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많은 연사들이 생애 처음으로 공개 연설을 했다. 이들은 지난 1년간의 커뮤니티 조직화와 타운홀 미팅을 통해 수집한 '15가지 인민 요구사항'을 제기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민이 더 이상 홍림공원(스피커스 코너가 위치한 도심 공원)에 들어올 수 없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는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거의 40%가 집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개 요구안’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연사들은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며 우리의 투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노동자계급으로서 우리의 단결이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이번 집회에는 힙합, 펑크, 메탈, 록 공연도 준비됐다.

메이데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를 얻기 위해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이 희생한 것을 기억하는 날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점차 잃어가고 있는 권리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날이다. 여기에는 주말, 휴식 시간, 유급 병가 등이 포함된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싱가포르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석할 기회는 없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노동조합이 가장 강력했던 1950년대 이후 진보적인 노동 혁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메이데이에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이 나라에 깊이 뿌리내린 노동자들의 영혼을 재점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수렌더 쿠마르(Suraendher Kumarr), 싱가포르의 커뮤니티 조직가이자 ‘노동자들이 가능성을 만든다(Workers Make Possible)’ 회원

2023년 5월 1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서 열리 노동절 집회
2023년 5월 1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서 열리 노동절 집회

미얀마

미얀마에서는 독립 이전인 1938년 중부 도시인 예난차웅(ရေနံချောင်း )에서 영국 소유의 버마 석유 회사(Burmah Oil Company)의 제국주의 통치와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최초의 메이데이 행동이 시작됐다. 그보다 앞선 1938년 1월 8일, 차우크(Chauk)에서 석유 노동자들이 시작한 파업은 식민지 정부의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 미얀마 달력의 이름을 딴 '1300년 혁명'으로 알려진 대규모 운동으로 이어졌다. 독립 이후 이 날은 '국경일'로 지정됐다.

2021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정부는 노동부, 재계 지도자, 국제기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거행했다. 다양한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공단에서 집회를 열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행진했다.

그러나 쿠데타 이후 메이데이에 거리는 조용해졌다. 노조 활동가들이 지하로 쫓겨나거나 국외로 망명하면서 더 이상 집회와 행진이 열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공단의 의류공장 노동자들은 경찰과 군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나섰다. 또, 푸드판다 배달 라이더들은 스스로 조직을 구성해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미얀마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저항은 엄혹한 군부 탄압에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 내에서 공개 행사를 개최할 수 없는 노동조합, 활동가 그룹, 민족통합정부(NUG, 민주파와 소수민족들의 연합) 산하 노동부는 온라인 집회를 통해 메이데이를 기념했다. 이 온라인 집회는 "노동자의 단결된 목소리, 연방의 미래를 위한 투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은 미얀마 바깥에서 행동의 공간을 찾고 있다. 적지 않은 미얀마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했다.

마 체리아(Ma Cheria) 미얀마 활동가

1938년 버마석유회사 버마족 노동자들의 파업
1938년 버마석유회사 버마족 노동자들의 파업

인도

인도의 메이데이 기념행사는 1923년 타밀나두(Tamil Nadu)주 첸나이(Chennai)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으로 시작됐다. 인도공산당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말라야푸람 싱가라벨루 체티아르(Malayapuram Singaravelu Chettiar)가 설립한 힌두스탄 노동키산당(1923-25)이 메이데이의 첫 기념행사를 주도했다. 그러나 1942년 총독부 노동위원이 된 후 인도 노동회의 7차 회의에서 하루 8시간 근무제를 확립한 장본인은 B.R.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그는 노동계급의 권리를 위해 독립노동당 창립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광산 노동자들의 출산 수당, 여성노동자들의 복지기금,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유급 출산휴가 등 여성 노동자를 위한 여러 법률을 제정했다.

매년 메이데이에는 인도 전역에서 노동자, 활동가, 연구자, 노동조합원들이 붉은 깃발을 들고 연대 행진을 벌이며 열광적인 축하 집회를 진행한다. 대학생들도 대학 캠퍼스와 서점, 극장 등에서 혁명적인 문학 작품과 시, 노래를 읽으며 이 날을 축하한다.

내가 처음 메이데이 집회에 참여한 것은 학교 안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였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뒤에 숨겨진 혁명적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기념집회 참가를 통해 노동의 존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활동 공간과 대학에서의 실천들을 통해서 비로소 그 뒤에 숨겨진 역사적 맥락에 대해 알게 됐다.

인도 정부는 반노동자적인 정치 구조와 구조적인 불공정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현 인도 정부는 노동자들을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가기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기존의 이니셔티브와 복지 조치를 후퇴시키기만 했다. 메이데이를 맞아, 우리가 도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무관심일 것이다!

담니 카인(Damni Kain), 인도의 노동연구자

1923년 첸나이 투쟁 기념상
1923년 첸나이 투쟁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