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0개국 노동절의 역사와 현재
2023년 5월 5일
ALR 편집자 : 아시아에서 메이데이(노동절)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는 아시아 노동자계급 운동의 운명을 반영하는, 길고 고단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그것은 식민주의와 내전, 반식민주의 혁명운동, 반혁명과 쿠데타, (국가)사회주의와 개발주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탄생했고, 동원되거나 대항했어며, 혹은 중단됐다. 이 모든 시기에 메이데이는 노동-자본-국가 간, 노동운동과 정세의 다양한 흐름들 간, 미래 사회에 대한 대조적인 비전들 간 투쟁의 현장이었다. 수백만 명이 참여하기도 하고, 전면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국가 공식 이벤트로 축소되기도 했다. 오늘날 메이데이는 아시아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메이데이는 그 역사가 기억되는 동시에,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와 공식 부문 밖의 노동자를 통합하고, 노동운동의 전투력을 다시 활성화함으로써, 더 많은 노동자들과 연결하는 운동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거듭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번(2023년) 메이데이에는 그것의 풍부한 역사와 오늘날 노동운동의 열망들을 담은 단편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플랫폼C : ALR의 동의하에 ALR에 게재된 Asia’s May Day: Tradition and Renewal 글을 번역 소개한다.
한국
1923년,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절을 기념했다. 이날 계획된 총파업은 일본 식민지 정부에 의해 진압됐지만,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은 전국에서 공개 집회와 시위를 개최했다. 억압적이었던 1930년대 내내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은 "메이데이를 정치적 총파업으로 기념하자!"고 선언하며 메이데이 투쟁을 계속 지켜나갔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는 1946년 5월 1일 메이데이 60주년을 기념하며 집회를 열었다.
미군정 기간(1945~48년) 동안 미군정은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조직이나 단체는 그 명칭에 관계없이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좌파 경향의 노조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대신 친정부 우익 성향의 대한노총을 지원했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기리며 이 날을 '노동절'로 선포했다. 박정희 쿠데타 이후 ‘노동절’의 이름은 ‘근로자의 날’이 됐다.
1970~80년대 군사 독재 하에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착취를 경험했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은 메이데이를 다시 한국 사회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만들었다. 1990년에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최루탄을 뚫고 싸웠고, 전노협 운동의 절정을 구가했다. 1995년에 설립된 민주노총은 매년 노동절에 전국 주요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노동절에서 한국 노동자운동, 특히 민주노총은 서울 등 16개 도시에서 노동절 집회를 개최해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는 목소리를 외쳤다. 윤석열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민적 반대에 부딪히고 있고, 국정수행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더구나 최근 동아시아 평화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의한 군사연습과 대만해협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군사훈련,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 동아시아가 군사력 증강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번 메이데이를 계기로 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 노동계급의 연대가 구축되길 희망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일본
일본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는 1920년에 열렸다. 사회적 격변 속에서 정부는 1936년 이후 10년간 메이데이 집회를 불법화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3대 노동조합 연맹들이 매년 집회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의 노동조합은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Z세대 중 한 명이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인 나는 메이데이에 항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최근 일본 노동운동은 고임금 정규직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들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주로 여성, 학생, 이주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나를 비롯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거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을 '하우스와이프 파트타이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일본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혼 여성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하우스와이프 파트타이머’는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고 가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었고, 따라서 기업들이 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정당화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상황은 바뀌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가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한다. 비정규직 고용 확대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업에서 핵심적이고 책임도가 높은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역시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금이 적고 사회복지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 렌고)는 이번 메이데이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노동자의 평등한 대우와 성별 격차 해소”를 내세웠다.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매우 중요할 것이다.
후루세 나나코(古瀬 菜々子), 일본 연구자 겸 POSSE 활동가
중국
1908년 5월 14일(러시아 달력으로는 5월 1일), 당시 차르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던 중국 북동부 도시 하얼빈의 수천 명의 러시아와 중국 노동자들이 메이데이를 기 념하기 위해 공원에 모였다. 공식적으로 이날이 중국에서 메이데이 실천이 일어난 첫 해일 것이다.
메이데이에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실천의 씨앗은 이미 한 해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1907년 초, 하얼빈에 있는 동방철도회사의 철도 노동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노동자 학살 사건인 '피의 일요일' 2주기를 맞아 파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러시아인 노동자들 중 일부는 차르 정부의 경찰에게 체포됐다. 중국인 철도 노동자들은 러시아인 노동자들과 함께 행동을 조직했다. 1월 22일, 수천 명의 중국인 및 러시아인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 체포된 러시아인 노동자들의 석방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러시아에 이어 중국에서도 혁명의 열기가 고조되었고, 동북지방(만주 일대)의 중국인 및 러시아인 노동자들은 수십 차례 더 파업을 벌였다.
1920년에는 동북지방을 넘어 중국 전역의 여러 도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20세기 초 노동자계급 조직화의 중심지였던 상하이에서는 노동자들이 '세계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해 도심의 스포츠 경기장에 모였다. 이들은 "오늘부터 깨어난 중국 노동자들의 단결된 정신은 압제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상하이 노동자 선언문’을 발표했다.
1921년 중국공산당이 결성되기 전인 초기 공산주의운동 지도자 천두슈, 리다자오 등은 저술과 연설, 잡지 출판을 통해 산업 노동자를 동원하고 노동자계급 운 동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선포했다. 연례 기념행사가 열렸고 '모범 노동자'를 선정해 영예를 부여했다. 그러나 메이데이는 더 이상 노동계급 운동에 관한 날이 아니었다. 개혁개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메이데이는 더욱 변형되고 탈급진화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오늘날 중국에서 메이데이는 주로 관광을 위한 긴 연휴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쇼핑과 소비의 날로 여겨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메이데이 집회를 주최했던 홍콩에서는 집회 주최 측의 경찰 신고가 압력에 의해 철회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에는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이로 인해 메이데이에 열리는 모든 집회는 불법이 됐다. 이는 지난 2년 사이에 홍콩의 노동조합연맹인 직공맹(HKCTU)과 다수의 노동조합들이 해산된 결과다.
올해 메이데이를 앞두고 중국 최대 음식배달 플랫폼 중 하나인 메이퇀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배달 노동자들이 4월 말 일주일 동안 열악한 근무 환경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였다. 비록 메이데이에 맞춰 파업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행동은 메이데이의 진정한 정신을 되살리고 대변했다.
케빈 린(Kevin Lin), AL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