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그만 | ① 대만이 전쟁터가 된다면 오키나와도 안전하지 않다
2022년 12월 31일
오키나와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다
지난 달 12월 5일, 한겨레와 연합뉴스, 한국경제, 중앙일보 등 유수의 언론들은 일본의 오키나와 자위대 증강에 대해 보도했다. [참고: 일 공명당 간부 “한반도 유사시 미국 요청 있으면 (한반도) 공격 가능”] 일주일 후인 13일엔 일본의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가 어떤 의미이며, 일본 안 보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상세히 해설하는 보도들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는 요미우리신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칠 뿐, 오키나와 지역에 자위대를 증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아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진 않는다. 이 소식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이렇다 할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2월 16일 일본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국가방위전략(国家防衛戦略)』에는 예상대로 “반격 능력”이 명시되었다. 여기서 “반격 능력”이란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명백한 위험이 임박할 때 자위대가 미사일 등으로 적국의 군사 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가리킨다. 평화헌법상 일본 자위대는 명목상 군대가 아닌 방어 조직으로 타국을 공격해선 안 되는데, 방어를 명분으로 공격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적국의 일본 공격 착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해 사실상 선제공격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부는 방위비를 GDP 대비 2%(현재 1%)로 증액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함과 동시에 증세안을 논의했다. 통일교 문제 등으로 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위험한 상황에 쳐해있음에도 이러한 모험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 내에서도 의문의 목소리는 높다. 주로 “이 거대한 재원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문제 제기, 즉 “왜 군비를 증강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일본은 전쟁을 하기로 합의가 끝났다는 듯 ‘군비 증강의 필요성’은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얼마나 증강해야 할 지 몰두하고 있다. 지난 가을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뒤, 헌법 개정의 위험성은 더욱 커졌다. 진보와 좌파 진영에선 끊임없이 평화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사실 최근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집권 시기부터 평화 헌법은 점점 무력화되어왔다.
2014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이 평화 헌법 아래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며 평화 헌법의 해석을 자의적으로 변경했다. 동시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존립위기사태’라는 전에는 없던 안보 상태의 유형을 추가했다. 일본 정부는 ‘존립위기사태’를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무력 공격이 발생해, 그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사태’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 정의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이 담겨 있다. 정부가 존립위기사태를 선언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은 그 기준을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고 정책 결정자가 국민적 합의를 얻어 신중하게 결정하는 대신, 동맹을 강화하고 적을 분명히 설정한 다음 전쟁위기를 부추기는 쪽을 택했다. 12월 16일에 국무회의를 통해 일본 정부가 개정한 안보문서를 보면 북한을 ‘더욱 중대하고 절박한 위협’, 중국을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북한, 러시아가 일본을 새롭게 위험 국가로 지정하거나 만일의 경우 선제공격의 필요성이 있는 나라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가?
중국은 내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 한 거론 그 자체를 "내정간섭"으로 간주해왔다. 미국도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국이 경제, 과학기술면에서 급속히 성장했고, 이에 대해 미국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중국을 남중국해 구단선(九段線) 안으로 봉쇄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일본 역시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이 약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대만해협 위기를 과장하고 자초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 영해 역시 1930년대 중화민국 국민당 정권 이래 국민당-중국공산당이 일방적으로 주장해온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플랫폼C의 글 「남중국해 분쟁, 바다 건너 불구경 해도 되나?」를 참고]
그들 중 일본 내 진보 진영, 특히 또 다시 전쟁 위협이 높아진 오키나와에서는 전쟁을 막자는 모임을 결성했다. "No more 오키나와 전쟁, 금은보화보다 생명 모임"이 2022년 1월 31일에 발족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2021년 12월 23일 교도통신이 ‘난세이 제도를 주일미군이 임시 군사 공격 거점으로 삼기로 했다’고 기사를 발표한 것이었다. 바로 다음 날 오키나와평화운동센터(沖縄平和運動センター)의 고문이던 야마시로 히로지(安倍晋三)를 비롯한 여러 시민이 이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 금은보화보다 생명(命どぅ宝; 누치도타카라) : 태평양 전쟁의 오키나와 전투 당시, 누군가가 외쳤다고 전해지는 오키나와어 문장이다. 오늘날 오키나와 반전 운동의 대표적 슬로건이다.
- 난세이 제도(南西諸島) : 일본 규슈 아래의 약 200여개의 섬들이 위치한 구역. 오키나와가 해당 구역에 포함되어 있으며, 대만과의 국경 지대이기도 하다.
오키나와는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인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전쟁의 모순을 해소하지 못했다. 비록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평화공원이 세워지고 전사자를 기리는 다크 투어도 해마다 진행되지만, 그 사이 주일미군기지는 더 늘었으며 기지로 인한 문제 역시 끊이지 않는다. 지난 1995년, 오키나와 도심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기지에서 발생한 주일미군의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미군기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2009년 당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이러한 기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삭하여 미군기지를 도심 외곽의 헤노코(辺野古)로 이전하도록 결정했지만, 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도중 헤노코의 지반이 약해 기지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이 드러나자 2015년 오키나와현은 기지 건설에 있어 필수적인 매립 승인을 취소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의 승인 취소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며 기지 거설을 계속 강행하고 있다.
헤노코 기지를 반대하는 농성투쟁은 12월 27일부로 3,095일을 맞이 한다. 오랜 시간 계속 되는 주일미군기지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또 코 앞의 전쟁위기를 맞이한 'No more 모임'의 운동가들이 지난 10월 21일 국제 반전의 날을 맞아 2018년 제작되어 2020년부터 일본 전국 각지 에서 상영회가 진행 중인 다큐멘터리 <오키나와 스파이 전사>(沖縄スパイ戦史)의 재시사회 및 간담회를 도쿄 로프트 빌딩에서 개최했다.
'No more 모임'의 공동 대표로 활동하는 야마시로 히로지는 주일미군과 자위대가 계획하고 있다는 전쟁 시나리오(낙도탈환작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31:56~32:12, 01:21:01:~01:21:34) “자위대와 미군은 중국군을 난세이 제도의 낙도에 끌어들여 일부러 섬을 점령시킨 후 다른 섬에서 미사일을 쏘아 빼앗긴 섬을 되찾을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은 77년 전처럼 일본군의 총탄에 죽을 것이다. 이런 허망한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죽어야하는가.”
외국에게 자국의 영토를 일부러 점령시켜 자국민이 죽을 수도 있는 전쟁 계획을 짠다는 것이 21세기 민주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야마시로 히로지의 지나친 망상이 아닐까. 실제 오키나와 사람들의 투쟁이 일본 국민 모두에게 환영 받아온 것도 아니며, 늘 활기있고 생동감 넘치는 것도 아니다. 긴 투쟁의 역사를 상징하는 ‘오키나와 농성 3∆∆∆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은 그간 네 번이나 바뀔 만큼 수난을 겪었다. 오키나와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반 이상은 나이가 지긋하다. 헤노코 반대를 힘차게 외치던 오나가 다케시(翁 長雄志) 전 오키나와현 지사가 사망한 후 뒤를 이어 취임한 다마키 데니(玉城デニー) 지사가 그 뜻을 이어받겠다고 공언하고 올해 열린 재선도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노코의 투쟁이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않는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실제 오키나와 선거를 주도하는 올 오키나와 All Okinawa에선 조금씩 운동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헤노코 반대"만 외치는 것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로 70세를 맞이한 오키나와 평화 운동가 야마시로 히로지는 2016년 기지 반대 시위 도중 일본 방위성에서 오키나와 미군 기지 업무를 담당하는 오키나와 방위국 소속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명목으로 5개월 간의 구금을 당한 뒤 림프종이 발생하는 등 건강이 악화된지 오래임에도, 그는 아직 선두에서 투쟁한다.
허나 이런 운동가들을 비웃는 이들이 있다. 잠시 농성장을 비운 사이에 농성 현장을 찾아와 왜 사람이 없냐며 간판에 걸린 투쟁일자를 ‘0일’로 바꾸라거나, 그 앞에서 나라도 대신 앉아주겠다며 사진을 찍어 놀리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악명도 높은 온라인 커뮤니티 5ch의 창립자 ‘히로유키’(ひろゆき)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어쩌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 정부에 보상을 바라고 생떼를 쓰는 것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영상의 35분 35초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기지 앞에서) 활개를 친다"고 기지 반대 주민들을 공격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나온다.
그러나 야마시로 히로지가 말한 ‘낙도탈환작전’은 결코 망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교도통신 기사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에 의하면”이라는 수식과 함께 “일본 자위대와 미군은 대만에 만일의 사태(유사사태, 有事の事態)가 발생할 경우 일본 남서쪽에 있는 난세이 제도를 따라 공격 기지를 설치할 수 있는 합동 작전 계획 초안을 작성했으며 조만간 미국과 일본의 외교, 국방장관이 2+2로 만나 협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국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으며 공격 기지의 주민이 무고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문장이 담겨 있다.
이 발표가 나온 후 1년이 지난 지금, 불행히도 전쟁 준비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쟁 관련 법안이 제정되고(57:23~59:30), 방공호 설치 준비가 시작되었다. 기지를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사이에 점차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
태평양 전쟁 시기 오키나와에서는 약 20만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군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방치된 채 말라리아에 걸려 죽고, 연합군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죽고, 미군과 자위대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의 위기를 맞았다. 야마시로는 “너무 분합니다. 우리가 그 지옥을 또 견뎌야 하는지요?” 라고 울분을 토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대만에 ‘유사사태’를 만들고 오키나와가 그 전쟁터가 되고 만다면, 그 전쟁은 과연 오키나와에만 머무를까? <오키나와 스파이 사태>를 공동 연출한 도쿄 출신의 미카미 치에(三上智恵) 감독 은 전쟁은 결코 오키나와에서 끝날 수 없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오키나와 사람이 겪은 차별과 참상은 사실이지만, 전쟁은 본토로 확전 될 수 있었습니다. 본토에서는 소녀들까지 징집 대상이었어요.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의 미사일은 오히려 오키나와가 아닌 도쿄 쪽(일본 관동 지방)을 향할 겁니다.”(36:40)
오키나와 전투 당시 일본군은 전쟁에 질 것을 알고도 본토 침공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일부러 연합군(미군)에 늦게 항복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참전이 더 늦었다면,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더 늦게 항복했을지도 모른다. 전투는 오키나와에서 본토로 퍼져나가 일본 전역의 희생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지 모른다. 희생의 아픔은 군인, 민간인, 식민지 (대만, 조선 등) 사람들 그리고 그 친척과 자손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전쟁위험을 ‘우리의 일처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므로’ 함께 싸우자”는 말로 미카미 감독은 간담회 발언을 마쳤다.
‘적기지 공격=선제 타격’과 ‘무리한 방위비 증액’이란 단어는 낯설지 않다. 주어를 말하지 않으면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만큼 두 나라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폭 넓은 외교가 실종되고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으며 동맹국과의 군사훈련에만 몰두하는 모습도 똑같다. 그러므로 오키 나와의 전쟁 위기는 우리의 일처럼이 아니고 우리 일이다 라는 말은 그대로 한국에도 적용된다. (이전기사 동아시아 군비 증강 참조)
지금 일본의 상황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고 손 놓고만 있을 수 없다. 시종일관 괴로운 표정을 짓던 야마시로는 “전쟁을 막아야하기에 전쟁을 막는 법을 이야기하겠다”며 “민주 시민이 국회를 움직여 정부가 바른 길을 가도록 제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3단계의 ‘국가비상사태(일본 정부는 국가비상사태의 등급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1단계 중요영향사태, 2단계 존립위기사태, 3단계 무력공격사태)를 인정’하려면 국회 비준이라는 절차가 필요하기에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면 이론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거대 연립 여당(자민당, 공명당)을 막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힘을 믿고 싸우자고 강조했다. (20:38~20:57, 01:40:04~01:41:51)
한국의 경우는 일본보다 상황이 더 나을까, 아니면 더 어려울까? 미·중 갈등과 중국과 대만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직 미국 장군과 관료들이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나아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남한의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기에 미군이 전쟁에 돌입하면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전시작전권 수행의 전단계인 ‘전시’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먼저 합의하여 데프콘3을 발령해야한다. 한국 대통령이 전쟁 회피 의지가 강하다면 미군과 타국의 ‘전투’가 벌어져도 ‘전시’가 아닐 수 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더욱 강력한 한미동맹’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밝혀왔기에 미국 대통령이 전시를 선포할 때 거부 의사를 나타낼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우리가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웃나라의 민중들이 평화에 대한 권리를 올바로 행사하도록 응원하고,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군사훈련을 반대하며, 한반도를 시작으로 전세계의 모든 재래식 무기와 핵이 사라지도록 끈질기게, 꺾이지 않고, 평화를 외치는 것이다.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한다. 작은 행동들로부터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에서도 실천들을 기획해나갈 예정이다. 📌
글 : 박근영
교열 : 성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