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판다는 초국적 플랫폼기업 딜리버리 히어로가 대주주로 있는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으로, 중국과 한국,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아시아 시장 전반에서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대만, 태국, 미얀마 등에서는 시장을 지배하는 1~2위 기업이다. 2021년 가을, 홍콩에서는 푸드판다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다. 이 글 은 ‘홍콩 음식배달 노동자 권리찾기팀(外賣員權益關注組, Hong Kong Riders’ Rider Concern Group)’이 2022년 8월 24일 작성한 글로, 이 파업이 어떻게 조직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공히 활용한 조직화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을 번역해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홍콩 푸드판다 파업
2021년 11월, 대부분 비조합원이었던 푸드판다 홍콩의 배달 노동자들은 도시 전역에 걸쳐 이틀 간 파업을 전개했다. 이들은 푸드판다 홍콩법인에 노동자 대표들과 협상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15개의 요구안을 제시했고, 사측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기로 합의했다. 노동자들은 집단 행동과 이후의 협상을 거치며 홍콩의 지역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특히 최근의 정치사회적 변화속에서도 잠잠했던 노동운동의 침묵을 깨웠다. 하지만 많은 언론 보도와 해외 노조들의 지지, 활동가들 간 일상적 소통이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밖에서는 푸드판다 파업에 관한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 투쟁은 국가마다 고유한 상황속에서 서로 다른 양태를 띠며 다양한 역학 관계 하에서 발생한다. 어떤 방식이 실제로 성공적이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양태를 살펴봄으로써 여러 전략을 비교하고 견주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 세계의 노동 운동가들이 홍콩에서 일어난 투쟁에서 (노동운동의) 청사진과 생각할 거리를 얻기를 바라며, 초국가적 연대를 진전시키는 가운데 서로의 전략을 공유하고, 전술을 다양화하기위해 더 노력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번 파업에서 ‘홍콩기독교산업위원회(Hond Kong Christian Industrial Committee: HKCIC)’ 산하 ‘홍콩 음식배달노동자 권리찾기팀(賣員權益關注組, Rider’s Rights Concern Group, 이하 ‘권리찾기팀’)’은 조직화와 협상을 지원했다. 권리찾기팀은 ‘조직화 프로세스’를 파악하기 위해 파업을 주도했던 여러 인사들과 활발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리찾기팀은 크게 네 개의 질문을 꼽을 수 있었는데, 이를 기준으로 우리는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점증하는 음식배달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 가늠할 수 있다.
- 파업의 전말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 파업이 동원되고 조직된 방식은 어떠했나?
- 동원 과정과 관련해 어떤 논점에 주목해야 하는가?
- 파업의 교훈과, 현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방법은 무엇인가? 홍콩 배달 노동자들의 결집력을 장기적으로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파업
몇 년 동안 푸드판다 배달 노동자들은 많은 문제를 겪느라 고통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임금 삭감과 (정직 혹은 계약해지라 명명된)부당해고, 배달기사들이 받는 엄격한 통제와 규율, 납품 거리 과소 산정, 회사의 비효율적인 지원과 불충분한 합의와 같은 문제가 시급했다. 2020년 말부터 소규모 사무실에서 파업과 탄원이 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회사 측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2021년 여러 요인으로 임금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였다. 6월경부터 주문 당 배달 수수료가 매주 하락하면서, 6월부터 11월까지 라이더의 주문 당 평균 기본급은 48.5홍콩달러에서 42.6홍콩달러(10.1%), 노동자의 경우는 38.3홍콩달러에서 33.7홍콩달러(12.2%)로 낮아졌다. 한편, 주문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받는 보너스도 9월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쌓인 주문’을 받는 서비스 요금도 20%가 줄어들었다. 감봉 등의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자 11월에 이르러서는 택배기사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파업은 왓츠앱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파업 소식은 왓츠앱, 텔레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택배회사 모임에도 빠르게 퍼졌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라이더, 자전거 배달기사, 도보 배달기사 및 운전자들이 정보를 전파했으며, 사람들은 일하는 동안 온라인이나 대면 접촉으로, 때로는 기존 네트워크 속에서 파업을 참가하도록 장려했다. 노동자들은 시위를 선전하기 위해 동 영상을 만들었고, 포스터를 인쇄하여 배포했으며, 온라인에서 파업 전략을 제시했다. 몇몇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현지 언론에 연락해 보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파업이 예정대로 시작되면서 11월 13일 밤부터 14일 하루동안, 한족과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상당수의 푸드판다 배달기사들이 교대 근무에 나타나지 않거나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고, 주문을 미루고 거부하는 등 일을 중단했다. 또 푸드판다가 영업하는 구역 중 열 두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모여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판다마트’나 대형 쇼핑몰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몇몇 구역에서는 비공식 피케팅이 있었다. 파업에 참가한 정확한 인원 수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노동자들이 단결하자 홍콩의 모든 판다마트가 이틀 이상 문을 닫았고, 여러 식당은 플랫폼 배달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에서 벌어진 이 같은 파업의 영향으로 사측과 파업 노동자의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11월 16일과 18일 회사 사무실에서 협상회의가 열렸고, 각 회의마다 7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16일에는 수십 명의 인부들이 건물 밖에 모여 언론과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교섭 과정에서 8명으로 구성된 노사협상팀은 택배기사들이 단체 채팅으로 모은 의견과 구글 문서를 편집용으로 공개해 15건의 요구를 제기했다. 요구 사항은 급여, 통제 및 징계, 해고 및 주문 앱에서의 권한 박탈, 거리 계산, 대기 시간, 지원 및 커뮤니케이션 등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되었다.
협상결과에 만족하기는 일렀으나 의미는 있었다. 회사는 가장 중요한 첫번째 요구인 임금요구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신 (방치했다면 계속 줄어들었을) 기본급을 현 상태로 동결하는 새로운 정기 상여금 제도를 제안했고, 협상팀에서는 이를 조금 수정하여 받아들였다. 나머지 14개 요구에 대해서는 사항에 따라 수정하거나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파업 결과에 대한 노동자들의 견해는 제각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데다 파업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일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자 몇몇 택배기사들은 낙담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반적인 작업 조건이 조금 더 나아지고, 좀 더 많은 수입을 얻었으며 플랫폼 앱 이용도 개선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회사가 지도, 대기시간, 택배 지원 등과 관련하여 제공해야 할 해결책을 다 제시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12월 20일 사측과 파업협상팀 간 후속협의가 열렸으나 노동자들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거의 없었다.
이제 파업의 기세는 크게 꺾였고 노동자들은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지속적으로 노동 환경 개선에 관한 책임을 물을 방안과 규제되지 않은 플랫폼 노동에 대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장기 투쟁을 진전시킬 방안을 제시할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과정과 노력은 매우 고무적이었고, 어쩌면 이들이 향후 투쟁의 씨앗을 배달업계에 심었을 지도 모른다.
온라인에서의 조직화
외견상 직원들은 주로 인터넷 상으로 즉시 메시지 교환이 가 능한 메신저 앱과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모임을 통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오프라인을 통한 택배기사들의 자체 조직화도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원을 완전히 구분하는 것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조직화의 전체 과정에는 각기 다른 채널이 지닌 형식의 다양성과 더불어 지속적인 상호 작용과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활동이 포함되었다.
2021년 11월 9일 즈음 한 파키스탄 노동자 와카스(Waqas)가, 파키스탄과 인도 출신 배달 노동자가 중심으로 구성된 왓츠앱 모임을 파업에 동원했다. 초대 링크와 관련 정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푸드판다 노동자들의 참여도 증가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텔레그램 모임이 만들어졌고, 가상 공간의 모임방이 파업을 논의하는 주요 모임장소로 활용되었다. 하루 이틀 만에 주요 모임의 회원 수는 서로 다른 배송 지역에서 일하는 남아시아와 한족 노동자를 포함, 약 1,500명으로 증가했다.
파업 전 며칠간 파업 관련 단체와 기존 택배기사의 단체들은 매우 활발히 움직였다. 배달노동자들은 일상에서 느낀 불만을 공유하고 요구안을 내놓았으며, 효과적인 전략을 제안했다. 대화는 지역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다양한 유형의 노동자(오토바이, 도보, 자전거, 차량 등)들 간에 결속력과 단결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화를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은 회사의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파업의 발기인 와카스는 포스터, 음성 메시지, 비디오를 사용해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회사에 대항하는 집단 투쟁에 능했다. 작업 상황에 대한 호소나 행 동 계획을 발표하는 내용이 담긴, 간단한 문장으로 만든 와카스의 포스터는 계속하여 공유되어 퍼졌다. 와카스가 우르두어와 영어로 동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를 표하며 댓글을 달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글의 일부는 자발적으로 중국어/광둥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주체적으로 일을 주도하고 헌신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느정도 인정과 인지도를 얻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파업에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와카스(및 다른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집단 구성원 사이에 공식적인 위계구조가 없었고, 그래서 일부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나, 행동을 요구하는 일부 메시지를 무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점은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논의를 이끌어내고, 단체로서 결정을 내리고, 많은 이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몇몇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중국어, 영어, 우르두어/힌디어를 번역했다. 중요한 정보는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단체 채팅에 표시되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툴들도 유용하게 쓰였다. 예를 들어 파업의 기본 전술, 즉 배달을 하지 않고 판다 마트에서 시위하는 전술은 ‘주요 모임’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됐고, ‘주요 모임’과 구글 문서를 공유해 반복적으로 논의하면서 요구안 초안을 만들었고, 누구나 의견을 내고 의견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을 이용한 파업동원 및 논의 과정은 파키스탄 노동자 무자히드(가명)가 묘사한 것처럼 일견 매우 개인화되고 ‘분권화된’ 것처럼 보인다. 무자히드에 따르면, 2019-2020 반송환법 운동(홍콩민주화운동)에서의 경험이 그가 ‘분권화된’ 파업에 참여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아마도 많은 중국 민족의 청년 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되었을 것이다. 텔레그램 모임에서 와카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익명으로 활동했으며, 누구나 동등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고, 스스로 행동에 나섰다.
공동행동에 대한 지침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참여 여부와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게다가 파업의 방법도 결정할 수 있었다. 교대로 근무하지만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고, 온라인에 접속하지만 주문은 거절하고, 주문은 받지만 배송은 하지 않는 등 파업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노동자들, 심지어 ‘지도자’들도 3월 13일 홍콩 전역의 수많은 구역에서 한꺼번에 모임이 열리고, 온라인에 떠돌았던 포스터가 라이더들의 오토바이를 통해 도처에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파업 노동자가 열심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전체 모임방’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개별적으로 운동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분권화된’ 듯 보이는 온라인 상의 동원에서 누구보다 더 큰 역할을 한 이들이 있었다. 노조원에게서 영감과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중국 자전거 배달기사 KK(가명)는 서로 다른 구역에서 일하는 ‘지도자’와 ‘대표자’를 위한 텔레그램 모임을 만들어 전략을 논의하고 행동을 조율했다. KK는 개인적으로 ‘지도자’들을 알지 못했고, ‘지도자’들끼리도 서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KK는 ‘전체 모임방’이나 지인을 통해서만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지역에서 약 10명의 한족 또는 남아시아인 ‘지도자’들이 ‘지도자 모임방’에 합류했다. ‘지도자’들은 각자 지역별 파업 예상 규모를 공유했고, 쿤통이 가장 눈길을 끄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KK가 3월 13일 쿤통에서 보도를 위해 여러 지역 주류 언론을 초청한 것은 이러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협상을 제안한 이후, 주로 ‘지도자 모임’ 출신으로 구성된 협상 대표들은 후에 본격적으로 ‘협상팀’에 합류했다.
온라인 상의 동원 과정을 요약하면, ‘전체 모임방’은 원자화된 다수의 노동자가 공통의 문제점을 찾아 단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고, ‘지도자 모임방’은 파업 핵심인물이 해야 할 일을 논의하고 계획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온라인 파업동원 과정에서 ‘온라인 공간’이, 개별화되고 원자화된 노동자들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차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프라인에서 조직하기
온라인에서만 파업을 관찰하게 되면, 인터넷으로 동원된 ‘분권화된’ 운동이었다고 판단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 규모 의 파업과 시위가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발단에는 특정 지역 내의 노동자의 오프라인과 대면 네트워킹, 조직화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파업 전에도 라이더 네트워크가 존재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여러 지역의 파업에서는 ‘지도자’의 역할을 한 라이더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역 노동자들을 조직하거나 최소한 운동을 지지하도록 격려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조직 화방법과 노동자 간 네트워크의 성격은 지역마다 달랐다.
카오룽베이에서는 캄룽(Kam-lung)이라는 별명이 붙은 파키스탄 라이더가 노동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했다. 캄룽은 택배기사들이 주문을 기다리는 쇼핑몰과 같은 주요 근무지에서 포스터를 나눠주며 노동자들을 설득해 파업에 힘을 더했다. 그는 특히 카오룽베이의 텔레그램 모임을 만들었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려고 노력했다. 모임이 필요할 때마다 캄룽은 모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캄룽은 라이더이기도 한 소수의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 소수민족 라이더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모르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은 얼굴을 보고 서로를 알아보곤 했지만, 거리에서 인사나 짧은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는 소수민족으로서 남아시아 노동자들 사이의 특별한 심리적 유대감이 그들을 기꺼이 이민(俾民: 광동어로 ‘얼굴을 주다’, 즉 존경의 표시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 운동에 동참하게 했다고 파악했다. 파업 전 그가 지역 내에서 특별한 평판이나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틀 저녁 연속 30-50 명의 남아시아인 라이더들을 동원해 카오룽베이 팬다마트 밖에서 시위를 벌일 수 있었다.
카오룽베이의 인근 지역인 쿤통에서는 상황이 다소 달랐다. 파업 이전, 한족 배달기사들과 소수민족 배달기사들은 각각 네트워크와 왓츠앱 모임에 이미 속해 있었다. 남아시아 소수민족 가운데는 파키스탄인 배달기사인 나딤(Nadim)이 단체장을 맡았다. 타인의 문제 해결을 돕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지역사회에서 유명인이었으며 몇몇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었다. 한족 노동자들 간의 네트워크는 더욱 강력해서 그들이 속한 왓츠앱 모임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고, 몇몇 라이더들은 정기적인으로 식사를 하거나 스포츠와 같은 여가 활동을 함께 했다.
또한 그들은 누군가가 배달 도중 긴급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도움을 제공하곤 했다. 한족 라이더인 타트(Tat: 별명)는 네트워크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는 멤버 중 하나였다. 누군가가 파업을 요구한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들은 타트와 나딤은 각자 자신이 속한 한족 노동자 모임과 파키스탄인 노동자 모임에 동참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개인적 영향력(혹은 어떤 형태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파업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쿤통 판다마트 근처로 택배 기사들을 불러모았다. 한족과 남아시아인 두 집단의 배달기사들은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다. 그 후, 나딤과 타트는 각자의 공동체에서, 노동자 조직에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인, 민족의 경계를 가로지른 조직화를 성취했다. 민족 내 네트워크와 두 공동체 사이의 협력은 쿤통에서 대규모 시위를 이 끌어 냈으며, 남아시아와 중국 택배원들이 공동 참석하는 희귀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카오룽시티/산포콩에서는 주요 주최자가 일반 택배기사가 아니라 ‘라이더들의권리찾기팀’의 노동 민간단체에서 일하는 풀타임 직원이었고, 여느 투쟁에서 보이듯 기존의 네트워크와 개인 간 설득에 의존하여 파업참가자를 조직했다. ‘라이더들의권리찾기팀’의 노력에 일부 힘입어 소수민족 택배기사들 사이에 느슨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한편 배달기사들 중 일부는 기존에도 가까운 관계였으며, 한족 자전거 배달기사들 사이에도 약한 연대의 고리가 존재했다. 캄룽이 그랬던 것처럼 ‘권리찾기팀’는 길거리에서 마주친 모든 근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참여를 독려하는 데 이틀 남짓을 보냈다. 그들은 느슨한 네트워크를 활용하려고 특별히 신경을 썼고, 이것이 실제 파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작업 현장에서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필수적이었으며, 기존의 오프라인 유대관계나 네트워크는 강하거나 약하거나 상관없이 구역 내 조직화의 주요 기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지역간 기존에 확립된 네트워크는 종류와 연대수준이 다르고, 이는 다시 동원의 형태와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 파업 이전에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느꼈던 라이더들은 더욱 쉽게 동참하며 조직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따라서 카오룽베이와 카오룽시티의 배달기사들은 즉석에서 그리고 직접 만나서 파업을 설득해야 할 경우가 많았기에 ‘지도자’의 강력한 네트워크와 동원 능력으로 파업을 조직한 쿤통과는 달랐다. 쿤통에서의 시위는 좀 더 ‘준비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밖의 많은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기존 모임을 파업에 동원하고 노동자를 조직했는지 완벽히 알지 못하기에 (이 기사는) 아직 예비적 견해에 불과하다.
온라인 프로세스와 오프라인 프로세스 간의 상호 작용
이제 오프라인과 온라인 소통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가 왔다. 지금까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개별적으로 소통했고, 둘의 역할도 구분했지만 이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합하여 파업을 동원하고 조직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첫째, 위의 3개 구역에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구역의 경우 대면 회의와 토론에 의존해 파업을 조직한 반면, 라이더들은 온라인 메신저 모임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전송한 링크도 일부 역할을 했지만) 파업 행동을 공유했다. 예를 들어 카오룽 시티 팬다마트에서의 시위는 라이더들의 왓츠앱 모임 소속 남아시아 택배기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메시지를 본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둘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서로 다른 구역에 흩어진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조직화하려는 노력은 ‘전체모임방’과 ‘지도자 모임방’의 온라인 소통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노동자들이 오프라인 조직화를 시작하게 된 것도 온라인에 퍼진 파업 정보가 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온라인 동원과 오프라인 조직화는 서로 대응하면서 상승 효과를 나타냈다. 파업 참여자가 의외로 많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덕분이었다. 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따로 나눠서 효과를 살펴볼 수는 없다. [2부에서 계속]
글 : 外賣員權益關注組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