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사회,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 네트워크 구축 호소

일본 시민사회,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 네트워크 구축 호소

2022년 9월 4일

[동아시아]오키나와동아시아, 일본, 오키나와, 대만해협, 반전평화

8월 7일 오키나와(沖縄)현 주요 도시 나하(那覇)시에서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포럼 참가인원은 온라인 90여 명, 오프라인 30여 명으로, 꽤 많은 인사들이 참가했다. 발제자는 포럼을 제안한 정치철학자 하바 구미코(羽場久美子) 아오야마학원대학 명예교수, 동아시아공동체(東アジア共同体研究所)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 양보장(杨伯江) 소장, 한국산업기술대 박상철 교수 등이었다.

  • 📑하토야마 유키오 : 2009년,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단독정당으로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실현해 제93대 내각 총리를 역임했다. 하지만 9개월만에 물러났다. 민주당은 혼돈과 갈등을 겪으면서 몰락하기 시작했고, 2013년 민주당을 탈당한 후 정계를 떠나있다가 2019년 공화당 창당과 함께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그밖에도 야라 토모히루(입헌민주당 전 중의원. 오키나와타임스 편집부장 역임), 하나타니 시로 이사가키시 시의원 같은 정치인들과 류큐대학 교수, 전 주일 외교관, 오키나와 국제대학 학생 등이 발언했다. 양보장 소장과 박상철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가하였으며, 국제심포지엄에 걸맞게 중국어와 한국어 동시통역이 이뤄졌다. 애초 이 포럼은 오후 1시에 시작해 3시반에 끝날 예정하였으나, 참가자들의 발언이 길어지면서 4시가 넘어서야 폐회했다.

이번 심포지움을 주최한 ‘자주·평화·민주를 위한 광범위한 국민연합(自主・平和・民主のための広範な国民連合)’의 야마모토 사무국장은 “6월에 시작된 해상자위대 훈련은 중국을 겨냥한 사상 최대 훈련이다. 중국을 자극할 게 아니라, 중국과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아시아 평화를 만들어내는 운동의 주체다”라는 말로 포럼의 문을 열었다. 관련기사: 日해상자위대, 인도·태평양에 1천명 규모 파견…中 견제

하토야마 전 총리(동아시아공동체 이사장)는 발언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세계 각국의 군비 증강, 빈부격차 심화, 제국주의 재등장, 민족 분쟁 등 오늘날 세계에 닥친 위기를 열거하고, “방위비 증가로는 분쟁을 억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외교”라면서, 최근 일본 사회에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대만의 비상사태는 곧 일본의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전쟁이나 그에 상응하는 위기 등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이나 사건을 ‘有事유사’로 표기한다.)

국제관계와 국제정치, 이민자·난민 문제 등을 연구해왔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하바 구미코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오히려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이 확장하고, 셰일가스 매출이 증가하는 등 미국에게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미국 정부가 “(글로벌)패권을 빼앗길 위기에 맞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전보장협력동맹)라는 ‘앵글로색슨 3국’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대화)에 한국, 베트남, 대만을 추가해 ‘동아시아판 NATO’를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열도의 총길이가 3천 킬로미터이고, 오키나와를 포함한 난세이 제도의 길이만 해도 1,300킬로미터인데, “이를 방파제 삼아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로 아버지가 사망했던 가족사를 공개하면서,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해국가 일본이 미국을 위해 싸울 게 아니라, 20억 아시아인과 함께 오키나와를 평화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냉전 시기 유럽에서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CSCE(유럽안보협력회의)라는 기구를 세웠듯, 동아시아에서도 시민단체와 청년들이 이러한 기구를 만들어 연대하자고 강력히 제안한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양보장 소장은 “규슈에서 중국 푸젠성에 이르는 긴 영토였던 류큐(오키나와의 옛 이름)가 1879년 일본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전쟁 후 미군에 점령되었다가 일본에 반환된 후 류큐는 아직 평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최근 일본 개헌 세력(자민당 등 집권 우파)이 국회의 2/3를 넘어 더욱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류큐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는 것”과 “오키나와의 정치 지도자와 섬 주민의 강력한 평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발제자인 박상철 교수는 미·중 갈등에 내재된 경제적 배경을 분석했다. 반도체, 배터리, 원자재, 의약품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이 IPEF(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 를 출범하면서 중국이 참가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과 경쟁 구도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그의 발언은 다분히 국가 간 무역협정틀에 국한되기에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기조 발제의 취지와는 매우 동떨어진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으로 오키나와 정치인의 감상과 대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환경운동단체 제로에미션(ゼロエミッション)의 공동대표 카미야 미유키(神谷美由希)는 오키나와 문제로 한국 포럼에 참가했을 때 ‘연대하겠다’는 한국인의 응원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아르바이트 중 일터에서 매우 예의바른 중국인을 알게되면서 일본 미디어가 ‘중국인은 원래 예의가 없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심포지엄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중요성을 깊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은 국제정치학자 하바 구미코가 제안했고, 동동 편집위원회는 최근 더욱 심각해진 대만해협 위기 정세와 맞물려 시의성있는 주제라고 판단했다. 그런 점에서 오키나와 출신 정치인과 오키나와의 대학생들이 연이어서 “본토 일본인(오키나와에 살지 않는 모든 일본인)”을 향해, “함께 평화를 만들자”고 호소 발언을 했던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난 5월 23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두 정상은 대만해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로 일본 언론들은 ‘대만의 비상사태는 곧 일본의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퍼트려왔다. 이런 인식은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는 논리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번 국제심포지움 현장에서만큼은 소위 ‘대만 비상사태’를 곧바로 일본 비상사태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들이 여러 차례 나왔다. 오히려 전쟁 위기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1992년 중국과 대만 정부는 이른바 ‘9.2공식(九二共識)’**을 도출했고, 이 컨센서스는 오늘날까지 양안관계(중국대륙-대만 관계)를 규정짓는 틀로 존재해왔다.

  • 📑9.2공식 : 1992년 11월 중국공산당(중국대륙)과 중국국민당(대만)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를 매개로 삼아 홍콩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합의했다.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의 두 기구가 양안관계 발전을 위해 도출한 셈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를 양안문제에 있어서 기본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대만 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독립 반대 입장과 함께 ’92공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교류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여야가 다른 입장을 취한다. 2000년에 처음 집권한 민진당은 이 공식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고, 국민당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낸시 펠로시 등 미국의 반중 강경파가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 방문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바 명예교수는 “미국이 중국에게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넘겨주게 될까 두려워하면서도 본토(자국)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때문에 미국이 “일본을 방파제 삼아 ‘희생’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만 내 범람(泛蓝; 국민당과 친화적인 색채) 언론들은 낸시 팰로시가 미국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와는 다소 동떨어진 태도로, “개인의 레거시(유산)를 추구하는 것만 견지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퇴임을 준비하고 있는 팰로시가 무책임한 태도로 대만 방문을 강행해 대만해협의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군비 규모는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증강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이전 정부보다 훨씬 높은 국방비 상승율(연평균7.5%)로 5년간 270조원을 사용하게 된다. (내년도 국방예산 전년보다 4.5% 오른 55조2277억원 – 한겨레) 일본은 2021년 10월 중의원선거,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대승하였는데, 자민당의 당내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부터 5년간 국방비 두 배 증가(연 10조 엔대)를 달성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기시다 총리는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일본의 국방비 증가를 통지했고, 바이든으로부터 ‘지지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 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 126페이지 재인용)

이를 견제하는 것은 결국 양국 시민의 감시와 국제연대다. 그 점에서 이번 국제심포지움은 시도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실제 사회운동 단체들과 진보정당의 참여가 미미했다는 점은 아쉽다. 또, 대학생들의 발언이 짧은 즉흥 발언뿐이었고, 순서가 뒷부분이었던 점 역시 아쉬웠다. 국제연대를 지향하면서도 홍보와 조직화가 적었던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포럼의 주제와 내용이 다소 엇갈렸는데, 가령 오키나와를 허브로 만드는 기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 이런 아쉬움들은 지속적인 심포지움이나 실천적인 연대, 다양한 교류 등을 통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의 토대는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이번 심포지움에 함께 한 여러 인사들과 단체들이 존재하고, 시민사회운동 전반 역시 나름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일본 제조산업노조 JAM의 야스코치 마사히로 위원장은 “전쟁억지력이란 말이 결코 반박해선 안 될 정의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다며, “군확장이 군확장을 부르는 억지력 신화는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정부 외교에만 의존하지 말고”, 노동조합이나 야당들 간 교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한국의 사회운동에는 부재하다. 달라진 국제정세에 대응해 민간 영역에서 어떻게 국제연대를 구축할 것이냐에 대한 주장이나 실천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번 심포지움은 일본의 본토 국민들을 향한 주최자의 절박한 호소와 함께 끝났다. 이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이 넘어서야 할 벽을 잘 드러낸다.

“일본 본토의 (시민) 여러분, 오키나와와 함께 평화를 만듭시다”

글 :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