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일 넘게 이어지는 한·일 노동자들의 연대
2022년 2월 18일
2월 17일 KBS에서 한국산켄 노동자들과 일본의 연대자들의 5년이 넘는 한일연대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가 방영되었다. 일본 전자부품 회사 ‘산켄전기サンケン電気’의 한국 지사인 ‘한국산연’의 위장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선 한일 연대투쟁이 60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산켄전기는 1973년 마산자유무역지역에 한국산연 공장을 개설했다. 하지만 2016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의 35명의 조합원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한국산연 노동자의 대부분은 20년 이상 근속해 온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에 맞선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본의 산켄전기 본사로 원정을 가고,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는 투쟁이 이어졌다. 그 결과 회사의 노조파괴 공작을 무산시키고 전원이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 한국산연은 다시 한번 50억원의 적자를 이유로 ‘회사폐쇄ㆍ폐업’을 결정하고 노동자 전원에게 해고 통보를 내린다. 2016년의 정리해고 시도가 노조의 투쟁으로 실패하자, 3년간 적자를 낼 수 밖에 없는 부품을 생산하게 한 뒤, 적자를 이유로 회사를 폐쇄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일 양국의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없게 된 시점을 노린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켄전기는 여전히 서울에 영업법인 ‘산켄코리아’를 두고 있다. 천안에 ‘(주)EK(옛 지흥)’라는 생산공장을 사모펀드를 통해 설립하는 등 한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전략에서 철수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산켄전기가 노동조합이 없는 공장을 이용하기 위해 한국산연을 위장폐업시키고 천안공장으로 물량을 이전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지난 600일여간 마산의 공장을 점거하고 창원 시가지, 부산 일본총영사관 등을 오고가며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과 집회를 이어왔다. 그러나 2021년 12월 2일 한국산연은 청산등기를 완료했다. 결국 2022년 2월 노동자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국회 앞과 서울 마곡지구 산켄코리아 영업소 앞에서 투쟁을 벌이기 위함이다. 이들은 한국산연의 청산ㆍ폐업 철회, 전원 복직과 함께, 외국투자 자본의 ‘먹튀 청산’을 막을 수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연대도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시민과 노동자들은 ‘한국산연노조를지원하는모임’을 만들어서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직접 원정투쟁을 오게 되지 못한 한국산연의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이들은 매주 목요일 사이타마현 니자시에 위치한 산켄전기 본사 앞에서 산켄전기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에 오지 못한 한국 노동자들 대신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나온 팻말을 들고 있는 것은 물론, 매 선전전 마다 온라인 화상통화와 통역을 통해 한국 노동자가 발언하게끔 하고 있다.
이러한 한일 양국에서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산켄전기는 묵묵부답이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요청하는 ‘교섭협조 요청공문’에 대해서는 끝끝내 수령을 거부하며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의 탄압은 더욱 극심하다. 2021년 5월 10일에는 일본 지원모임 사무차장 오자와 다카시(尾澤孝司)씨가 산켄전기 본사 앞 선전전을 진행하던 도중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7개월 가량 구류를 산 후에 12월 27일에야 보석될 수 있었다. 다른 회원들도 가택 압수수색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에 한국의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즉각적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ㆍ영사관 앞에서 규탄시위를 진행했고, 한국 국회의원 41명이 오자와 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사이타마지방경찰청에 보내기도 했다.
한편, 산켄전기는 한국의 LG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한국산연이 생산한 전자부품은 LG에 납품된다. 역대 한국산연 사장은 모두 LG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산켄전기가 새로 생산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천안 EK 공장은 LG 부회장을 지낸 뒤, 현재 LX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구본준씨로부터 160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전자산업의 생산사슬로 긴밀히 연결된 한일 양국의 자본이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에 있어서도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맞추어 산연지회는 여의도 LG 본사 앞에서도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의 탄압에 맞서 한일 노동자 연대의 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한국산연지회와 일본의 노동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