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활동가’로 부르게 됐을 때

2021년 11월 12일

활동가, 인터뷰, 학생운동

‘활동가를 만나다’시리즈의 세 번째 인터뷰는 신지영 활동가이다. 신지영 활동가는 학생운동을 거쳐 현재 직장갑질119에서 1년째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신지영 활동가 인터뷰의 두번째 편이다. 지난 인터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인터뷰어 : 보리, 현창 (플랫폼C 활동가)
만난 사람 : 신지영 (직장갑질119 활동가, 플랫폼c 회원)

지난 인터뷰

“나의 첫 활동”

플씨 : 저희가 키워드를 뽑아봤는데요. ‘나의 첫 집회 사회’, ‘나의 첫 발언’, ‘나의 첫 성명’, ‘나의 첫 활동비’ 등인데요. 이 중에서 키워드를 뽑아서 에피소드 하나만 이야기 해주세요.

지영 : 처음으로 사회를 봤던 집회는 제가 직접 기획한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였어요. 반성폭력반성매매모임 ‘반’에서 한 마지막 사업이기도 해요. ‘반’은 학교에서 지금까지 안 해왔던 강도높은 사업들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활동했어요. 졸업 전 마지막 사업으로 “집회를 하자, 집회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마침 그때 총학생회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라고 페미니즘 성평등위원회 사업이 있었는데, 당시 총학생회가 그 사업 명칭에 ‘페미니즘’이 이름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폐기시키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총학생회를 규탄하는 내용으로 “중앙대에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집회를 기획한 거죠.

처음으로 집회를 기획하다보니, 장비 구하는 것에서부터 힘들었는데 한 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수요집회 무대설치하시는 분들께도 도움을 받아서 무대설치도 쉽게 하고 집회도 잘 됐어요. 긴장해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저는 사회를 봤고요. 나중에 친구 한 명이 집회를 검색하다 네이버에 누군가가 블로그 후기를 쓴 것을 보여줬는데 사회자가 완전 유쾌하고 구호도 재미있었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캡쳐도 해놨어요. 그때 저희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마지막에는 집회장소도 꽉 찼어요.

졸업하기 전에 페미니즘 의제로 학내 집회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재밌었고 뿌듯했어요.

학생운동 되짚어보기

플씨 : 다니던 학과의 사회과학학회부터, 페미니즘 학회, 헬로조선프로젝트, 민중총궐기 네트워크, 이내창기념사업회, 백남기 농민 추모 재학생 모임, 반성폭력반성매매모임 ‘반’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거나 직접 조직해서 활동했죠? 처음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무엇이 본인으로 하여금 6년 동안 활동할 수 있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영 : 와… 6년! 말도 안 돼요! 그렇게 말하니 정말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것 같네요. (웃음)

일단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선배가 꼬셔서 하게 됐죠.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렇게 유명하다는 <나는 꼼수다>도 모를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대학 입시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 입시를 위해서 중앙일보 사설을 읽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안철수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치를 잘 몰랐죠. 그런데 그때 논술 선생님이 조금 ‘빨간 분’이었어요. 그 선생님이 소위 ‘대학생의 본분’,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같은 것들을 은근히 이야기해주었죠. 그래서 저도 대학생이 되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간 뒤 그런 생각은 자연스레 잊고 있었어요.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열심히 놀다가, 2학기 때 사회과학반 ‘포헤’라는 학회에 들어갔어요. 포헤에 들어갔는데 제가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나봐요. 이쪽저쪽에서 선배들이 절 데려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한 조직에서 활동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저는 “오! 운동하자는 제안을 해주다니 신기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선뜻 같이 하기로 한 거죠.

근데 원래 단체를 한 번 들어가면 나가기 어렵잖아요. 처음에는 열정과 세상을 바꾸겠다는 대의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직을 나오고나서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맸어요. 지금은 다시 저의 열정이나 소소한 즐거움 그런 것들로 활동하고 있어요. 무엇이 6년을 운동하게 했냐고요? 후배들 때문에 계속했죠. 후배들을 버리고 갈 수 없으니까요. 그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플씨 : 그렇게 많은 활동을 경험했는데 학생운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지영 :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다 너무 소중한 단위들이고 다 다른 이유들로 소중하거든요. 포헤는 저한테 고향 같은 곳이에요. 제가 그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활동에 대해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곳이죠. 헬로조선프로젝트는 사실 진짜 힘들었어요. 원래 제가 담당하는 단위가 아니었는데 선배들이 갑자기 모두 활동을 그만두면서, 제가 떠맡았거든요. 그런데 그만큼 공력을 투여했죠. 그래서 마지막에 헬프 정리할 때는 많이 슬펐어요. 포헤는 엄마 아빠가 사는 고향 같은 곳이고, 헬프는 제가 자취하며 맞이한 첫 집 같은 곳이죠.

‘반’은 활동하던 조직에서 나온 후에 만든 단체에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던 곳이어서 두 번째 자취집 같은 거죠. 두 번째니까 좀 더 잘 했고, 더 안정적이었으니까 원하는 것들을 더 해볼 수 있었어요. 운영에 있어서 헬프는 전세 같은 곳이고 ‘반’은 자가 같은 곳이었달까요? (웃음)

플씨 : 이내창열사기념사업회 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것 같던데 소개해주세요.

지영 : 지금 거기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어요. 사업회 선배들은 제가 태어날 때 쯤, 학생운동의 전성기에 활동을 했던 분들이죠. 그래서 저하고 세대 차이도 많이 나는 분들이에요.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서라던가 말이에요. 그런데 이분들은 달라요. 대개 선배한테 후배가 배운다고 얘기하는데 이분들은 후배한테 선배들이 배운다는 마인드를 갖고 계셔요. 그래서 “이런 선배들도 있을 수 있구나”를 알게 됐어요. 학생운동을 하다가 의문사한 선배분을 추모하고 기억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그런데 졸업하고 상근을 시작하면서 바빠져서 일을 많이 못하게 된 점 때문에 죄송한 마음도 있죠.

운동의 분절점

플씨 : 학생운동조직에서 4년 활동하고 탈퇴했다고 했는데, 그 후 본인의 운동에 있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지영 : 탈퇴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갈등 끝에 나오게 된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덕분에 정신을 차리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조직한테 먹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거죠. 탈퇴 전에는 후배들이 남아 있으니까 제가 먼저 그만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안에, 조직 안에만 갇혀 있다보면 시야가 많이 좁아지죠. 그래서 나가면 활동을 다시 못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 공포나 두려움이 있었는데 오히려 다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활동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개입 방식이 있구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활동할 수 있겠구나’, ‘난 내가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굳이 내가 아무 재미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데 그렇게 활동할 필요는 없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플씨 : 이후에는 학내 미투운동 연대부터 시작해서 반성폭력, 반성매매 등의 페미니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존 조직에서의 학생운동 시기와 어떤 점에서 달랐나요?

지영 : 제가 여전히 활동가라는 믿음이 필요했던 시기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제가 활동가임을 인식시켜주고, 목적의식을 갖게 하는 게 ‘조직’이었거든요. 조직이 정세를 판단하고 판단한 정세에 따라서 활동의 방향을 정하고 지침을 내리면, 그걸 따르는 것이 제가 활동가로서 사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그게 다 사라진 거죠. 그럼 ‘나는 무엇으로 활동가일 수 있는가?’ 스스로 목표를 정해야 하고 세상을 인식해야 되고, 활동 내용을 정해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제 자신부터 설득해야 되는 거잖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존에 겪었던 운동과 명백하게 달라진 지점인 것 같아요. 조직이 나를 활동가로 호명하는 것과 내가 나를 활동가로 호명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 운동은 사람이다’

플씨 : ‘학생운동의 퇴조기’라 불리는 시기에 대학 내에서 운동을 했으니 활동하면서 오는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들이 더 많았을 것 같아요. 이런 시간을 운동의 에너지로 어떻게 바꿀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요.

지영 : 일단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은 운동의 에너지로 바뀌지 않습니다.(강조) 그건 그냥 힘든 일이에요. 그런 순간은 필요하지 않아요. 없어도 충분히 배울 수 있고, 충분히 운동의 에너지가 생길 수 있어요. 운동의 에너지라는 건 즐거워야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좌절의 순간에는 그냥 탈탈 털리는 탈곡기 같은 거죠. 다 털린 순간은 아무 의미가 없어서 그 순간들이 운동의 에너지로 바뀌지 않았어요. 오히려 운동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남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보고 버텼던 것 같아요. 저는 운동이 내가 던진 돌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던지는 돌이 누군가한테 맞아서 그 사람이 같이 돌 던지게 되는… 그러니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운동의 에너지가 된 것 같아요. 2016년도에 선배들이 한 번에 다 그만두면서 캠퍼스에서 제가 제일 높은 선배가 됐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후배들이 많이 생기고 다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극복했던 것 같아요. “역시 운동은 사람이다”라는 어떤 교훈이 남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플씨 : 사람들이 그냥 모이지 않잖아요?

지영 : 제가 열심히 했으니까 모였죠! 어떻게 사람들이 모이겠어요. 학생운동에 있어서 매 순간이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으는 경험,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잘 안 모이면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데 연차가 쌓인 제가 그런 걸로 우울해하면 안 되잖아요. 제가 후배들의 긍정회로를 돌려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는 ‘이 사업에 투여한 노력이나 우리들 사이에서 논의한 과정이 유의미한 것이지, 수량적으로 결과가 어떻고 말고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뭔가 운동의 무거움을 놓을 수 있게 된 거죠. ‘내가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무거움을 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운동을 후배들 때문에 못 떠났던 건데요. 그게 저한테 대의라면 대의였고, 조직이라면 조직이었죠. 근데 어느 순간에는 ‘내가 떠나서 망할 운동이었으면 진작에 망했어야 하는 거다. 나는 여기서 즐거웠고, 이게 나한테 유의미한 시간이었으니, 내가 떠나야 한다면 떠나야겠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때부터 대의보다 제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플씨 : 이 시기를 거치고 나서 본인에게 남은 게 “그만둬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요?

지영 : 학생운동을 한참 열심히 할 때는 제 개인의 어떤 행복이나 즐거움보다 대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대의’한테 먹혔던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반’에서 활동하면서 많이 회복된 것 같아요. 대의와 나의 즐거움이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단위를 유지하려고 내 생명력을 갈아넣는 짓 같은 건 이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플씨 : 계속 운동해도 되겠다고 확신한 시점이 언젠가요?

지영 : 어떤 확신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제 일상이 좋아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활동비도 받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 행복하고 만족하고 있어요. 적어도 저 자신이 운동에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운동에 플러스가 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사람이라면 계속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제 건강만 좀 챙기면 될 것 같아요.

플씨 : 활동가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을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자질이 있다면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지영 : 후배들한테 하는 농담인데, “활동가의 기본은 조직이다”라고 항상 말해요. 활동가한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매력이 없는 사람은 좋은 활동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제 편견일수도 있겠죠. 그런데 활동한다는 것은 자기가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어떤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같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서 사람을 설득할 수 없고 사람을 조직할 수 없다면, 좋은 활동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고 자기 혼자 상상하는 무언가를 향해서 독단적으로 하면 독재자죠.

워라밸로 스트레스 관리하기

플씨 : 활동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루틴(routine)이 있는지, 또는 스트레스를 잘 푸는 팁이라던지 있으면 공유 부탁드려요.

지영 : 요즘에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요. 워라벨이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에요. 웹소설 보고 데이트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직장갑질 사람들도 같이 시간을 보내면 재미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평일에 출근 안 하면 심심해요. 출근하려면 한 시간이 걸려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힘들지만 출근하고 나면 즐거워요.

자랑하고 싶은 소비

플씨 : 최근에 뜻깊은 이사를 마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의 자취생활에는 만족하고 있나요?

지영 : 5년 넘게 자취생활을 했지만 제대로 된 자취는 지금이 처음이에요. 그 전에는 제가 고른 집이 아니었으니까요. 꾸미지도 못했고, 제가 집을 고른 것도 아니니까 애정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발품을 팔아서 집을 구하고 가구들도 제가 샀고, 꾸미는 것도 제가 했으니까 좀 더 애정이 있죠. 이게 진짜 첫 저의 집 같은 느낌이죠.

플씨 : 제일 잘 산 가구는 뭐가 있나요?

지영 : 침대 매트리스요. 제가 원래 가성비를 기준으로 사려고 했어요. 근데 “네가 돈을 벌게 됐으니까 이제 돈을 투자하거나 돈을 아껴야 할 대상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매트리스는 돈을 써야 하는 곳이다.”라고, 할부를 해서라도 구매하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돈 아꼈다가는 나중에 허리 수술비가 더 든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니 큰 마음 먹고 에이스 침대 가서 좋은 것을 샀어요. 좋은 매트리스가 역시 삶의 질을 올립니다.

플씨 : 역시 침대는 과학이네요.

지영 : 과학입니다. 최근에는 온수 매트를 샀는데 행복해요. 전기매트에서는 전자파가 나와가지고 아침에 일어날 때 좀 찌뿌둥한 게 있는데, 온수매트는 전자파가 안 나오고 물침대 같은 느낌이 나요. 좀 딱딱하다는 점만 빼면 찌뿌둥한 것도 없고 좋아요. 잠을 잘 때 행복합니다.

플씨 : <스트릿우먼파이터> 즐겨 보신다고 들었는데 누구를 제일 좋아하나요?

지영 : 저는 모니카하고 립제이 좋아합니다. 특히 립제이를 제일 좋아합니다. 춤을 잘 추니까, 저는 최근에 프라우드먼의 메가크루 미션이 제일 멋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춤 잘 추고 인성이 훌륭한 것 같아요. 멋있는 사람들인 게 느껴져요. 왠지 그분도 페미니스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