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나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활동가를 만나다’ 시리즈의 세 번째 인터뷰는 신지영 활동가다. 신지영은 우리 주위의 흔하고 평범한 20대 여성이기도 하고, 학생운동을 거쳐 현재 ‘직장갑질119’라는 비영리단체에서 1년째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 보리, 현창(플랫폼C 활동가)
만난사람 : 신지영(직장갑질119)

※ 직장갑질119 : 직장갑질 119는 2017년 11월 출범해 올해로 출범 4주년을 맞는 사회운동단체다. 노조 밖 노동자들을 카카오톡 오픈채팅, 네이버 밴드, 이메일 등으로 만나며 직장갑질과 같은 노동문제에 관한 상담 활동을 펼치며, 이를 바탕으로 직접적인 문제해결과 이슈파이팅에 주력한다.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 등 140여명의 인원이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다. 각종 노동문제들을 공론화했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등의 사회적 변화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온라인 노조 설립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기획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라는 활동 현장

플씨 : 직장갑질119가 어떤 단체인지,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지영 : 저는 직장갑질 119라는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하고 있는 신지영입니다.

직장갑질119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직장갑질, 그 중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시민단체에요. 직장 내 ‘갑질’을 겪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찾아와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창구죠. 저는 뚜렷하게 역할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이것저것 다 하고 있어요. 이메일 통계 분류도 하고, 보고서를 쓰기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요즘은 상담도 해요. 

직장갑질119는 카톡 상담과 이메일 상담 두 가지 상담 창구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활동한지 1년 정도 됐을 때부터 상담에 투입됐어요. 카톡상담을 주로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왜냐하면 상담 한 타임이 한 시간 반인데, 그 한 시간 반 동안 100건 정도의 상담이 들어올 때도 있거든요. 통계는 이메일만 내고 있어요. 꾸준히 상담 유형 통계를 만들고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상담량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까 통계가 굉장히 유의미해요. 이를테면 노동시간, 임금, 근로계약, 징계해고, 괴롭힘과 같은 1차적인 노동문제로 유형을 내거든요. 그중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좀 더 세분화하죠. 왜냐하면 직장 내 괴롭힘 건수 비중이 항상 제일 많거든요.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은 노동부보다 저희 직장갑질119가 먼저 만들었어요.

다른 문제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상담 창구가 많긴 해요. 그런데 노동 문제 상담 창구가 있어도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많이 안 찾는거죠. 직장갑질119의 오픈채팅방 상담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상담 시간에 바로바로 답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더 쉽게 찾아오는 것 같아요. 단체 오픈채팅방에 입장해서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이런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이런 식으로 질문하죠. 

대면 상담이나 일대일 상담은 따로 하지 않아요. 물론 소통할 필요성이 있으면 할 때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아직 해 본 적이 없어요. 저희 단체 사무국장님이 직접 상담을 많이 하는 편이고, 저는 채팅 상담과 이메일 상담만 맡고 있어요.

활동가로서 상담하기

플씨 : 직장갑질 상담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뭐에요? 내담자를 대할 때 특별히 유의하는 사항들이 있나요?

지영 : 저희가 노동 문제 전반에 대한 상담을 하잖아요. 도움을 주려면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아내야 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은 질문할 때 본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이를테면 상담받는 분이 생각하는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만 있는데, 우리가 상담하면 근로계약서 미작성, 노동시간 위반, 임금체불까지 다 있죠. 그러다가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인 경우 법 적용이 잘 안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직장 내 괴롭힘이냐 아니냐’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가 되죠. 이게 ‘정도가 심각한 수준인가’, ‘언론에 공론화해야 할 정도인지’ 등 판단하면서 접근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피해자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얼굴 보고 상담하면 더 많은 사정을 파악하기 쉽겠지만 채팅 상담이다 보니 본인의 상황을 설명할 때 가장 적합한 도움을 받기 위한 사항이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노동상담에서는 ‘몇 인(人) 사업장인지’, ‘어떤 고용 형태인지’ 등이 가장 중요한데, 보통 본인들의 느낌과 감상, 고통을 위주로 얘기하죠. 그럴 때 저는 초짜이기 때문에 무엇이 이 사람한테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인지 파악하는 게 어려워요. 직장 내 괴롭힘 말고 노동 문제 전반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해야 하죠.

가장 조심하는 건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말을 고르는 거예요. 다들 이미 피해자인 사람들이고 예민한 상태잖아요. 심지어 상담 채팅방 안에서 사람들끼리 서로 싸울 때도 있어요. 게다가 상담을 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경우에도 일단 용기를 주려고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힘내시라’, 아니면 ‘일단 증거를 모아보자’ 같은 식으로 조언하려고 노력해요. 

플씨 : 활동가로서 직장갑질 문제를 상담하는 것은 변호사, 노무사와 무엇이 다른가요?

지영 : 직장갑질119는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들로 스태프가 구성돼 있어요. 처음 답변하는 것을 공부할 때는 노무사, 변호사님들의 답변을 보고 많이 공부했어요. 그런데 저희 집행위원장님이 “왜 자꾸 법적인 조언을 하려고 하냐, 그건 활동가의 답이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법적으로 되냐 안 되냐’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변호사와 노무사의 영역이고, 활동가는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돌파할 것인가’, ‘이 사람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가’ 같은 문제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셔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사이에서 계속 조율하려고 노력해요. 채팅상담에 들어갔을 때 10명 이상이 동시에 질문하면 빨리빨리 답변하게 되니까, 법적인 여부만 자꾸 답하게 되거든요. 우선 최대한 공감하려 하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답변을 드리려고 하죠.

직장갑질119의 운동

플씨 : 직장갑질 신고가 개인 차원의 문제해결을 넘어 노동조합 가입이나, 노동조합 설립 등의 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나요?

지영 : 정말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 설립사례(관련 기사 읽기)인 거 같아요. 한림대 성심병원 장기자랑 갑질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간호사 분들이 채팅방에 들어와서 상담도 받고, 밴드도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문제를 공론화 하면서 노조가 생겼어요. 

상담할 때도 “노조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냐”는 질문도 종종 들어와요. 그러면 저희가 어떤 사업장인지 알아보고, 관련 노동조합이랑 연결해 주기도 해요. 

플씨 : 직장갑질119는 온라인 노조 조직 시도 등 기존의 노동운동 경로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한다고 알고 있어요. 관련해서 단체 내의 고민은 어떤 건가요?

지영 :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서 익명의 사람들과 상담하고, 그걸 기반으로 활동을 한다는 게 새롭잖아요. ‘노동운동하는 활동가들의 입장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들의 관점에서 직장을 바꾸는 운동을 해보자’, ‘현장에 있는 개개인의 사람들이 자기 직장의 문제를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운동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단체 출범 때 했었대요. 저도 처음에는 듣고 엄청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 보면 제가 학생운동을 할 때에는 노동현장의 구체성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대학에서 활동할 땐 ‘무조건 대안은 노동조합이고 무조건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야 문제가 해결되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상담하다보니까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법의 바깥에서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하게 매일매일 고통을 겪는지 보이더라고요. 법의 틀 안에 있어도 고통스럽고 다양한 문제들이 현장에 있는데, 이 사람들이 선뜻 노동조합을 택하지 못한 이유들이 있는 거죠. 막연한 편견 때문일 수도 있고, 실제로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기도 해요. 결국 ‘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무기를 쥐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들이 생기죠. 여기서 기존 노동조합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노동조합이어야 그게 가능할지 고민을 계속 하게 돼요. 

그래서 저희 활동가들이 고민한 결과, ‘온라인 노조라는 대안적인 형태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어요.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 온라인상으로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는 노조이죠. 기존의 노동조합에 들어가는 게 어렵거나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노조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기존 노조는 한 명이 시작하면 주변의 같은 직장 동료들이 따라 들어오고 그게 조직력으로 이어지는 모델이죠. 그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직장을 중심으로 한 모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같은 업종 내에서 직장 이직을 많이하거든요. 예를 들면 어린이집 교사, 사회복지사, 콜센터, 미용사같이 작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있는 업종들이 많잖아요. 업종마다 공통의 노동 문제가 있는데, 노동조합을 5인미만 사업장 하나하나에서 만들기는 너무 어렵죠. 그런 사람들한테 업종별 온라인 노조라는 게 새로운 울타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당연히 금방 만들어 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없는 걸 새로 만드는 거니까 잘 만들어보고 싶어요. 활동가들끼리는 서로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 같은 문제에서 시작해서 ‘가입비는 얼마’ 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까지 고민을 나누고 있어요.

플씨 : 최근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트럭시위 등 요즘 직장인들의 집단행동은 블라인드를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거죠?

지영 : 그렇죠. 저는 온라인 노조에 대해 고민할 때 ‘블라인드’(직장인 대나무숲 형태의 모바일앱)의 사례를 참고하려고 했어요. 보통 직장인 대상 앱들에서 어떻게 업종 분류를 하는지 참고했어요. 그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업종 분류 방식이니까요. 또 ‘블라인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익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블라인드’ 안에서 어떤 업종, 어떤 게시판들이 있는지 보고, 어떤 게시판이 제일 인기가 많은지 확인하기도 했어요.

직장갑질119 상근자 동료들과 함께

“왜 직장갑질119였나요?”

플씨 : 얼마 전에 근무한 지 만 1년이 넘으셨던데요. 어떻게 해서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게 됐나요? 개인적인 목표가 뭐에요?

지영 :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앞으로 뭘 할 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제가 활동에 대해 고민하는 걸 알고 있던 지인이 시민사회단체 일자리 지원사업을 알려줬어요. 노동의제와 관련된 두 단체에 지원했었는데, 그 중 직장갑질119에서 일하게 됐죠.

목표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한 번 경험해 보자는 것였어요. 해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직장을 구하려는 생각도 있었죠. 처음에는 직장갑질119에 오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일단은 6개월간 활동 해보고, 활동가로서의 삶이 괜찮으면 그때 생각해보자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그땐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막 하던 때여서, 노동단체보다 여성단체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요.

플씨 : 그런데 1년 넘게 일하고 계시네요.

지영 : 네. (웃음) 생각보다 너무 좋더라고요. 학생운동 시기에 활동하던 조직을 탈퇴한 후 몇 년 동안은 노동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을 안뒀어요. 그러면서 ‘내가 노동 문제에 진짜 관심이 있었던 걸까’, ‘노동 문제에 억지로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아니더라구요. 6개월 됐을 때는 생각보다 ‘괜찮다’, ‘재밌다’, ‘학생 때 내가 노동 문제에 대해 열의가 높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집을 구하기 위한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 직장이라는 것도 있었죠. 그래도 저는 맘에 안 드는 곳에 억지로 있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에요. 직장갑질119 일을 하면서 ‘난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아요. 

저는 활동가는 ‘마이너스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는 활동가가 이제 좀 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담을 하게 되면서 자아 성취감이 MAX를 찍게 된 것 같아요.

플씨 :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지금 단체에서 활동할 건지, 아니면 향후 진로에 대한 다른 고민이 혹시 있으세요?

지영 : 큰 문제가 없으면 계속 활동할 것 같아요. 처음 구한 직장이 직장갑질119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단 같이하는 사람들이 좋고, 개인적으로 어떠한 조직에 속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는데, 직장갑질119에 들어와서 소속감을 통한 안정감을 느낄 수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건강하고 좋은 조직이에요.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상근 활동가들끼리 밥 먹으러 분당까지 가요.

고민은 딱히 없어요. 좀 부끄럽지만 현재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만족하고 있어요.

학생운동 경험

플씨 : 직장갑질119에 오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활동해 온 경험이 업무능력이나 심리적인 자기보살핌의 측면에서 본인의 직장생활에 자산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지영 : 학생운동에서 학생회 빼고는 모든 형태를 다 해 본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보도자료, 발언, 성명서 같은 문서작업, 아니면 현수막이나 포스터, 카드뉴스 같은 선전 작업, 그밖에 광장사업이나 집회 등 다양한 사업들을 다 해봤죠. 일단 다 해보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자산이긴 해요.

근데 학교에서 활동할 때와 실제로 직업 활동가로 일하는 건 정말 다르긴 해요. 학생과 직장인의 차이랄까요. 일단 보도자료도 학생운동할 때는 선배들한테 받은 메일링리스트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엄청 양이 적고, 보도자료도 ‘와주세요’의 요청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직장갑질119은 일단 메일링리스트가 따로 있고, 보도자료도 자체 자료로 발표하는 보고서나 토론회들에 대한 내용들을 담아서 보도자료를 보내요. 기자들이 이것만 보고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이런 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는 제가 활동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측면에서 연습과 본선의 차이 같아요. 학교에서 활동할 때는 현장이 노동현장이 아니라 학교잖아요. 물론 광장사업이나 거리선전전도 하지만, 같은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많이 하니까요. 기본적으로는 설정된 대중이 ‘학생-대중’이기 때문에 의제 설정 자체가 현실을 알리려는 목적에선 같더라도, 일단 본인부터 현장을 아느냐 모르냐 차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활동할 때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 ‘노동자’, ‘노동조합’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고, 그걸 이야기한다는 게 ‘참 현실을 알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현실을 알라는 얘기를 했구나’ 싶어서 웃기기도 해요.

일하면서 노동 현실을 알려면 노동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징계 및 해고 관련 상담을 할 때 제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제일 신나요. 근데 5인 미만 사업장은 정말 법이 보호해주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법이 보호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징계 및 해고에 관해서는 법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는 등 현실에 대해 좀 더 알게 됐어요. 

가장 큰 차이는 대학생 때는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활동가의 개인시간이라는 게 보호되지 못했죠. 돈도 못 받았고… 지금은 노동시간도 정해져 있고, 개인의 일상 영역이 있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활동비를 받으며 할 수 있죠.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가 잘 통하는지 고민하는 것, 설득이란 건 기업으로 따지면 마케팅과 같으니까 그런 부분은 학생 때나 지금이나 같아요. 상담이 주요 활동이긴 하지만, 그걸 기반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다른 사업도 하잖아요. 학생 때부터 했던 ‘어떻게 해야 이 사회가 바뀔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잘 들어줄까’하는 고민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 같고, 지금 그런 것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됐죠.

이건 다른 얘기인데, 학생운동을 한 6년 동안 같이하던 사람들이 많이 운동을 그만뒀어요. 그 당시엔 원망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을 잘 한다는 건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것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운동이 나를 잡아먹으면 안 된다, 운동은 즐거워야한다…. 학생운동을 마칠 즈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후배들이 운동 힘들다고 하면, 그냥 관두라고 해요(웃음). 힘들어? 그럼 관둬. 너가 그만둔다고 운동 망하면 그건 원래 망했어야 해. 이렇게 말해요. 너가 행복해야 운동도 오래 한다고요. 

직장갑질119 카톡상담 과정 일부

플씨 : 학생운동 때 학내 성폭력 문제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있죠. 그런 경험이 지금의 상담 활동에도 도움이 되나요?

지영 : 실제로 피해자와 상담하고, 가해자와 이야기하고, 사건을 조정하는 역할을 했던 것은 정말 중요한 경험이에요.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조사가 성희롱 조사나 비슷한 점이 엄청 많아요. 직장 내 괴롭힘법 자체가 직장 내 성희롱법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이를테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신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하면 어떤 게 불이익인지에 대한 예시들이, 법이 생긴 지 별로 안 됐기 때문에, 아직 많이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불이익이고, 그걸 어떻게 처벌해야 되고, 뭐가 문제고, 이런 것들이 지금 많이 없어요. 

그런 점들은 이미 수많은 사례들이 쌓인 직장 내 성희롱법에 기대고 있죠. 직장 내 성희롱 법(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2조)에도 불이익 조항이 있고, 어떤 게 불이익이고, 왜 문제인가에 대한 많은 토론과 사례가 있기 때문에 자주 참조해요.

성폭력 피해자 친구들을 상담하고 도움을 줬던 어떤 경험들, 제가 피해를 받았을 때의 경험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야 되나 이런 거 얘기할 때 중요하긴 하죠. 적어도 피해자가 어떤 상태인지는 안다는 거니까요. 저희한테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도 많이 오기도 하구요.

 

SNS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플씨 : 직장갑질119 뉴스레터를 담당하고 있는데, 어떤 걸 중시해서 만드나요? 독자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게 뭔가요?

지영 : 직장갑질119는 후원회원 대상 사업이 별로 없어요. 후원은 후원대로 받고, 사업은 노동상담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회원 중심으로 활동을 꾸리는 단체들과는 다르죠. 후원회원들한테 최소한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도에서 뉴스레터를 만들었어요. 제가 제안하고 처음 기획안을 써서 시작했죠. 분기마다 뉴스레터가 나가는데, 한 분기 동안 펼친 사업들을 최대한 많이 알려요. 후원회원들이 후원의 효용성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한 목표죠. ‘여러분의 후원으로 저희가 이렇게 활동들을 잘 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잘 전달하고 싶어요. 

저희 사업을 다룬 기사 등을 모아서 보내는데, 아직은 더 알리고 싶은 점이 많아요. 저희 언론담당 스탭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보도자료를 잘 쓰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보도자료 원형을 불특정 다수인 회원들에게까지 다 공개할 수 없으니까 기사들만 첨부하거든요. 그 점이 아까워요.

플씨 :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직장갑질에 관한 웹툰(인스타그램 @today_call, 트위터 @callToon)이 올라온 걸 봤습니다. 신선한 시도 같던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지영 : 어떡해야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업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하게 됐어요. 요즘 인스타툰이 유행이니 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림은 작가인 제 친구가 그려줬고요. 노동운동에서는 인스타툰 사업을 완전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이시더라구요. 트위터에서 1000개 넘게 리트윗 될 정도로 흥행했어요. 특히 복장 단속 관련 사례는 노출수가 12만을 찍기도 했고요. 

트위터에 콜센터 노동자들이 많으니까 잘 되겠다고 생각한 점도 있어요. 트위터는 본인의 직업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계정도 많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되게 중요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트위터에서는 잘 될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잘 됐어요.

비슷하게 최근에 직장 갑질 뿌‘수기’ 공모전을 인스타그램(@gabjil119)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본인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을 모아서 시상하고 문집을 내는 사업이죠. 그렇게 SNS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하려고 노력해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

플씨 : 학생운동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에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이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활동에서 페미니즘은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나요?

지영 : 저한테 페미니스트로서의 인식은 문제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힘이에요. 불편함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불편함을 느꼈을 때 말할까 말까 하게 되잖아요. 말하면 분명 불편한 상황이 올 걸 알지만, 그것보다는 참는 것이 더 불편하기에, 불편함을 생각하고 말해요. 

이를테면 누가 부적절한 말을 했다고 하면 저는 이제 참지 않아요. 농담의 방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실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색하고 말하기도 하면서, 맞는 형식으로 뜻을 전달하죠. 직장에서나 상담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직장갑질119에도 상근 활동가들끼리 세대나 성별의 차이가 있잖아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한테 고민 지점이 생길 수도 있죠. 예전부터도 제가 문제제기를 잘 하는 편이긴 했는데, 그래도 그 땐 자기 확신이 살짝 없는 상태에서 말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내가 불편하면 말하는 게 맞지’라는 생각으로 좀 더 자기 확신을 갖고 말해요. 그리고 ‘내가 여기서 그냥 넘어가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좋은 게 좋은 거다’가 아니라, ‘좋지 않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게 더 문제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불편하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플씨 : 직장갑질119 활동과는 별개로 성매매 집결지 아웃리치 활동에 자주 참여하고 후기도 공유하는 걸 봤는데요. 어떤 활동인지 소개해주세요.

지영 : 성매매는 저한테 여러 의미가 있는 키워드에요. 여성인권센터 보다에서 크랙이라는 모임의 소속원으로 아웃리치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아웃리치’는 현장에 가서 상담한다는 개념이에요. 크랙이 처음 생길 때도 참여했는데, 당시 활동하던 학생운동 조직에서는 성매매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었죠. 

조직활동을 그만둘 즈음에 그동안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핵심적인 영역이 성매매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좀 더 싸울 수 있는 언어를 얻고 싶었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반성매매 반성폭력 모임 ‘반’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공부했고요. 이후 ‘반’ 활동을 정리하면서 성매매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잠시 없다가, 2020년 말부터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쌤이 크랙 모임을 알려주셔서 다시 활동하게 됐어요.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 때문에 곧 철거되거든요. 그 전에 성매매 현장을 기록해야 된다는 목표를 갖고 올해 아웃리치를 하고 있어요. 언니들은 아웃리치를 하는 사람들을 궁금해해요. 근데 보통 나까이 이모들(성매매업소 입구에서 호객 일을 하는 여성)이 대화를 못하게 막죠. 그래서 저희를 안내하는 자료를 넣은 선물을 업소마다 돌리는 활동을 해요. 필요한 상담이 있으면 현장에서 바로 진행하기도 하고요. 

여성문제에서 성매매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집결지로 들어가면 저는 성 구매 남성들이 저를 보는 시선에 움츠려들게 되거든요. 사실 여기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성을 구매하는 남성이잖아요. 근데 제가 괜히 소극적이게 되고, 그 공간에서 절대적 약자라는 걸 느끼게 되죠. 

그러면 성매매집결지 밖에서는 다르냐고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제가 사는 신림역 바로 앞에도 도우미 상시대기 노래방이 엄청 많아요. 리얼돌을 판다고 홍보하는 성인용품점도 있고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어떻게 보이는지의 문제가 가장 응축돼 있는 게 성매매 집결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매매는 몇몇 소수의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죠. 한국 사회에서 나는 여성으로서 ‘팔리는 존재’라는 걸 항상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성매매 문제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성매매 문제가 여성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직장갑질119에서 엄청 만족하고 있고 계속 일하고 싶지만, 언젠가 성매매 관련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항상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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