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정권의 퇴행과 평화를 외치는 일본 청년들
2026년 7월 31일
압박과 불만의 악순환
최초의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는 일본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최대 69%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최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1%로 급락했다. 20~30대 지지율도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의 존재감, 패션 감각, 외교적 수완 등 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듯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조장하고 안보 강화에만 치중하는 등 구태 정치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다카이치 내각은 출범 당시 생활비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하며, 식품 소비세 유예와 전기·가스 요금 보조금을 포함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존 8%였던 식품 소비세를 2년간 1%로 내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당초 '세율 0%'를 내걸었던 공약에서 후퇴한 안이다.
전기 및 가스 보조금 지급으로 7~9월 3개월간 가구당 약 5천 엔(약 4만 7천 원)의 부담 경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밝혔고,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5천억 엔(약 4조 7천억 원)이다. 반면 추경 예산 3조 엔(약 28조 5천억 원) 중 2조 5천억 엔(약 23조 8천억 원)은 정유사 등 대기업 보조금 지급에 충당하기로 했다. 가구당 4만 7천 원 수준의 지원은 치솟는 물가와 경제 위기를 버텨내기엔 턱없이 미미한 금액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경제 위기를 일본에 전가하기 위해 엔화 가치를 강제로 절상시켰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저금리 거품이 꺼지며 불황이 촉발되었다는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제2의 플라자 합의’와 같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한·미·일 혈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자유주의 시장 질서에 반하는 정책을 타국에 강요하곤 한다. 국제 질서 속 자유주의 시장 메커니즘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만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대개 힘의 논리에 기반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정부는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미국의 우방만을 자처하며 이윤 중심의 경쟁과 성장 논리를 답습하고, 안보 강화에만 매달리고 있다. 다카이치는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일본의 잠재적 ‘존립 위기’로 규정하고,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려 한다. 아울러 무기 수출 규제 완화 및 국방비 증액도 강행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 국기 모독죄 신설, 제2수도 설립 법안 등 논란이 큰 주요 법안들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에 실망한 일본 시민 중 일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다시 평화를 외치다
1968~1969년 전학공투회의(전공투) 학생 운동이 절정에 달한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약 40년 동안 시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지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시위대를 바라보는 여론은 냉담한 편이다. 하지만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반핵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2015년에는 학생 단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EALDs)*’이 안보 관련 법안 반대 시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젊은 세대가 이끄는 시위가 조금씩 늘어났다.
- SEALDs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 일본의 자발적 학생 모임으로, 시위 국면 이후 선거 지원 등 제도 정치의 벽에 부딪혀 1년 3개월 만에 해산했으나, 시민의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광장의 정치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2026년 4월 8일 밤, 도쿄 치요다구 국회의사당 앞은 전쟁 종식과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중심에는 20대부터 40대까지의 자원활동가로 구성된 ‘우리는 미래를 원한다(We want our future)’가 있었다. 이들은 시민단체 ‘헌법 제9조를 파괴하지 마라! 실행위원회’와 함께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긴급 행동” 시위를 공동 주최했다.
2월 27일 열린 첫 집회에는 약 3,600명이 참여했으나, 4월 8일 네 번째 시위가 열렸을 때는 전국적으로 3만 여 명의 시민이 결집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전국 137곳에서 동시 시위가 개최되었으며, 오사카역에 2,000여 명, 삿포로역 앞에 1,400여 명이 모였다. 7월 10일, 19일, 25일 밤에도 도쿄 시부야 등지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트렌디한 클럽 음악에 다카이치 총리와 정부를 비판하는 랩 가사를 만들어 부르고, 한국 탄핵 집회의 영향을 받은 응원봉이 등장하기도 했다.
시위를 주최한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 몰랐다며 “100명만 와도 많이 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2월 첫 집회에 3,600명이 모인 것을 보고 놀랐다”라며 “3,600명에서 8,000명, 12,000명을 거쳐 30,000명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그 힘이 피부로 느껴진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런 집회를 통해 서로 만날 수 있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희망을 느낀다고 덧붙였 다. 시위 참가자들은 ‘세금은 국방이 아니라 복지에 써라’, ‘일본 헌법을 지키자’, ‘비핵 3원칙을 반드시 준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2022년부터 ‘우리는 미래를 원한다’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온 이 단체는 사회 문제와 정치에 관한 시위 및 대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사회운동 경험이 있는 회원들은 경찰 협의 등에서 조직적 노하우를 발휘하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유연한 원칙 아래 처음 참여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함께하고 있다. 각 행사마다 12명 안팎의 핵심 인원이 기획을 주도하고 수십 명이 운영을 돕는데, 4월 8일 시위 당시에도 약 50~60명의 자원봉사자가 행사 진행을 도왔다.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자영업자 치바 하나코 씨는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라며 직접 쓴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들에게 시위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정부와 권력자들에게 의견을 직접 전달하는 정당한 통로다. 치바 씨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민당이 제9조를 개정하도록 방치한다면, 일본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넘어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미래를 원한다’ 운영진 중 한 명인 타시로 씨는 “다카이치 정권이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시위 역시 엄연한 여론의 한 형태”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며, 일차원적인 여론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2월부터 시작 된 시위를 두고 “다카이치 총리가 '헌법은 권력자를 구속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에 분노를 느꼈다.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제9조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으며, 아시아 전역을 향한 평화의 약속으로 기능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전쟁의 광풍 속에서 무기 수출과 군사력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으로 동아시아의 군사적 위기 역시 심화하는 모양새다.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 위기를 전쟁 산업으로 돌파하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미해 보일지라도 억압과 차별이 있는 곳에는 늘 저항하는 시민들이 존재한다. 누군가 시위를 기획하고 조직하지 않았다면 3,600명이 30,000명이 되고 전국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윤석열의 계엄령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응원봉을 들었고, 다시 남태령에서 평등과 연대를 외쳤듯, 그리고 이런 대중 투쟁이 현재 일본에서 반전평화를 위한 행동에 자극과 영감을 주었듯, 일본 청년들의 자생적인 시위는 다시 우리에게 위안과 연대감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곳곳에 존재하며, 여전히 다수이고, 더 널리 확장될 수 있다. 함께 평화를, 평등을, 더 많은 사회공공성과 연대를 외치자.

📚 참고 자료
- Many people protest defense spending plan in Tokyo, Sakae Kato, The Mainichi, 2026. 07. 16
- 'Protests are also public opinion': Japan's 'beginner' women driven by alarm over arms buildup, Mineichiro Yamakoshi, The Mainichi, 2026. 04. 26
- Japan opposition seizes momentum as PM Takaichi's approval rating plummets, Nozomi Gemma, Saori Moriguchi and Ryoma Hara, The Mainichi, 2026. 07. 24
- Is Sanae Takaichi Japan’s Margaret Thatcher – or its next Liz Truss?, Yuichi Yamazaki, The Conversation, 2025. 10. 06
- 日 '식품 소비세 2년간 면제' 다카이치 공약 후퇴할 듯, 조성미, 연합뉴스, 2026. 06. 03
- 日, 중동 사태에 28조 원 추경 편성…전기·가스 보조금 지급, 이도연, 연합뉴스, 2026. 05. 25
- ‘日 첫 여성총리가 여왕 승계 막다니’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 출범 후 최저, 황인찬, 동아일보, 2026. 07. 21
글 : 김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