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대만에서 바라본 밀크티 동맹 … 그리고 서평에 대한 비판
2026년 6월 30일
[역자의 말] 이 글은 대만 매체 보도자(The Reporter)에 실린 허밍슈(何明修) 교수의 서평 “奶茶聯盟的台灣觀點(대만에서 바라본 밀크티 동맹)”[원문 링크]를 옮긴 것이다. 대만 시민사회의 위치에서 밀크 티 동맹의 가치와 의미를 상기하고 있다. 무형의 네트워크인 ‘밀크티 동맹’은 억압적인 권력에 투쟁하는 동아시아 민중이 연결되길 희망했고, 여기 함께 한 사람들은 우연한 연대의 시작을 범아시아 연대로 확산하고 지속시키고자 노력했다. 밀크티 동맹은 스스로를 유일한 연대체로 내세우지 않으며, 여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공식-비공식적 조직이 그 지향을 내포한 상태로 활동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밀크티 동맹이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 실천이 과소했던 최근 동아시아에서 유의미한 실천으로 남겨졌다는 점을 기억하더라도, 동시에 우리는 그 한계 역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 사회운동으로, ‘활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했기 때문에, 특정한 사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 해시태그 사용 역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불명확했다는 점도 한계로 남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불평등과 불안정 노동에 맞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는 전 세계 민중의 해방과 억압적 권력 체계 전체에 대한 반대를 지향한다. 그러나 아래 서평 속 ‘밀크티 동맹’은 국가 권력이나 제국주의 일반이 아닌, '중국 당국'이라는 특정 권위주의 국가에만 전적으로 전선을 집중하는 한계를 보였다. 또, 서평에 등장하는 활동가들이 미국 지식계(UC 버클리, 워싱턴 등)를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서구 리버럴 매체의 찬사를 받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권역을 군사화하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역할에 대해서는 비판적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볼 때, 중국의 권위주의 수출에 저항한다는 명분이 미국 중심의 신냉전적 대결 구도(자유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에 그대로 포섭될 수 있다.
태국, 미얀마, 홍콩, 대만의 민중들이 겪는 실질적인 고통의 근저에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와 자본주의적 수탈 체제가 있다. 밀크티 동맹의 서사는 이를 '민주 대 전제', '자유 대 억압'이라는 추상적인 정치적 프레임으로만 환원한다. 투쟁의 불길이 지나간 후 활동가들이 선택한 경로는 운동의 체제 친화적 전문가주의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서평에서 소개된 일부 해바라기 운동 출신 인사들이 민방위(국가안보 프레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사회운동이 국가 체제를 수호하고 관리하는 '국가 장치의 보조자'로 포섭되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해라바기 운동이나 밀크티 동맹에 함께 한 많은 활동가들 중에는 이런 주류적인 노선이 아닌, 기층에서 대중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활동에 매진하는 이름 없는 활동가들이 더 많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친미냐 친중이냐’의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 비판적으로 두 강국의 개입을 감시하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재건하기 위한 그들의 ‘조직화(organizing)’ 활동에 있다.
아시아 각지의 정치 상황은 매우 다르다. 미얀마는 계속해서 내전 상태에 처해 있고, 태국은 '왕실모독죄'를 시행하는 군주제 국가이며, 홍콩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정치범이 없던 곳에서 수많은 정치범을 가두는 구금의 도시로 변모했다. 이러한 수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정치적 저항가들, 젊은 학생운동 참여자들과 망명 인사들은 시시각각 서로의 저항 활동이 사실상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든 실제 활동 현장이든, 그들은 스스로를 '밀크티 동맹'에 속한다고 일컫는다. ‘밀크티 동맹’이라는 명칭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권위주의적인 중국 정부의 억압에 반대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대표하는 전통 음료에 모두 ‘유제품(밀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중국의 전통차와는 구별된다는 점을 은유하기도 한다. [역주: 실제 중국 한족 문화에서 ‘차’란, 잎차의 맛을 맑게 우려내어 마시는 음료로, 유제품을 첨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몽골족이나 티베트족, 위구르족 전통에서는 말젖이나 야크젖을 섞은 밀크티가 존재한다.]
저자는 자신의 저작을 이렇게 소개한다.
“(밀크티 동맹을 통해 우리는) 마치 전제 통치에 반대하는 이어달리기를 목격하는 것 같다. 바통은 홍콩의 청년들에게서 태국의 청년들 손으로 전해졌고, 다시 미얀마의 저항자[시민불복종운동]들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청년운동 간의 연결을 살피고, 바통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달된 궤적을 추적하고자 한다. (…) 『밀크티 동맹』은 이러한 이어달리기 운동이 거둔 소규모 승리들을 소개하면서도, 더 많은 분량을 주자들이 중대한 좌절과 도전을 마주하 며 버텨낸 이야기들에 할애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절망을 퍼뜨리려는 책이 아니다. 책 속에는 불굴의 끈기와 동지애의 이야기가 가득하며,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심지어 안도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C 어바인)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역사학자인 제프리 와서스트롬은 홍콩, 태국, 미얀마의 젊은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인터뷰해 저서 『밀크티 동맹: 아시아 민주주의 운동은 어떻게 서로를 돕고 반중 네트워크를 조직하는가』에 담았다.
2024년 4월 12일, 대만사범대학에서는 '해바라기 운동 및 우산 운동 10주년 기념 포럼'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 초정된 『밀크티 동맹』의 저자 제프리 와서스트롬 교수가 포럼 기조연설을 맡았었다. 당시 그는 량치차오(梁啓超)와 홍콩의 민주화운동가 네이선 로(Nathan Law, 羅冠聰)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와서스트롬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청년 시절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고국을 떠나야 했지만, 해외에서 활동을 지속하며 고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더 큰 힘을 집결하고자 노력했다. 이어서 그는, 태국의 청년 활동가 네티윗 초티파트파이살(Netiwit Chotiphatphaisal)과 홍콩의 조슈아 웡(Joshua Wong, 黃之鋒)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 사람이 똑같이 국제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국경을 넘는 지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0년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港區國安法)》을 강제로 시행한 후, 홍콩은 30년 연속으로 개최해 오던 6·4 천안문 사태 기념 촛불 집회의 공간을 잃었다. 집회의 자유를 금지당한 홍콩인들은 중국 대륙의 민중에 연대하기 위해, 태국 청년들은 방콕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군정이 무력으로 항의자들을 진압하자 태국과 미얀마 양 지역의 민주화 활동가들은 영화 《헝거 게임》의 세 손가락 경례로 한마음의 뜻을 나타내며 자유를 추구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본래 와서스트롬은 중국 학생운동사를 전공했다. 최근 사회운동 속에서 홍콩, 태국, 미얀마의 청년들이 서로 배우고 지원하는 경험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타이베이(台北)에서의 이 강연이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1991년, 와서스트롬은 자신의 박사논문을 『Student Protests in Twentieth-Century China: The View from Shanghai』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20세기 중국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하이 학생운동의 역사를 사회사 및 문화사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학생 시위를 정치적 사건을 넘어 일종의 '무협적 쟁투'이자 상징적인 ‘정치 극장’으로 규정하며, 학생들이 어떻게 자생적 조직력을 갖추고 대중 정서를 움직여 체제의 정당성에 도전했는지 추적한다.]
동아시아의 ‘밀크티 동맹’은 2020년에 시작됐다. 당시 태국의 한 인플루언서가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가 중국의 맹목적인 애국주의 집단인 소분홍(小粉紅)들로부터 모욕을 당한 사건이 계기였다. 처음에 이 단어는 홍콩, 대만, 태국이 각자 자랑스러워하는 밀크티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인터넷 밈에 불과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서로 연대하면서, 이 용어는 점차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청년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중국의 권위주의 수출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기호로 발전했다. 밀크티 자체가 다양한 문화적 충돌 속에서 자라난 융합 음료인 것처럼, 이를 이름으로 내건 국가 간의 연결 역시 청 년 민주화 운동가들의 다원적인 면모를 짚어낸 것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에 발을 딛고 선구자들의 못다 이룬 정치적 유업을 계승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 세계 각지의 저항 동향에 늘 관심을 기울이면서 타국의 운동 사례에서 영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성원에 동참하고 있다.
[보충하자면, 태국에서 밀크티 동맹은 2020년 2월 미래전진당 강제 해산 사건과 연관돼 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고, 청년들은 특히 왕실과 군부의 친중국 성향을 문제 삼았다. 그러던 와중 그해 4월, 동남아시아와 중국 대륙에서 많은 팬들이 있는 태국 배우 브라이트 와치라윗(Bright Vachirawit)과 한 사진작가가 홍콩이 포함된 4개 도시의 사진에 “이 4장의 사진은 다른 네 나라의 모습이다”라고 쓴 트윗에 ‘좋아요’클릭하자, 중국인 팬들이 크게 분노한 일이 벌어졌다. 태국인-중국인 팬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전이 벌어졌고, 홍콩과 대만의 트위터 유저들도 동참하게 되면서 갑자기 국제적인 온라인 논쟁으로 불거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쉽게 ‘밀크티 동맹’이란 기획으로 이어졌다.]
밀크티 동맹 ‘릴레이’에서 대만 시민사회의 역할
18세기 말 영미권에서 시작된 노예제 반대 운동 이후, 사회운동은 이미 한 국가 내부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자주 국경을 넘어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으고 권력에 맞서 공동으로 저항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초국적 옹호 네트워크(transnational advocacy network)’, ‘글로벌화된 운동(globalized movement)’, ‘디아스포라 공동체 운동(diaspora movement)’ 등 다양한 분석 틀을 제시해왔다. 이러한 이론들은 각기 다른 측면을 강조하지만, 국가 간의 연대가 흔히 약소 집단이 권위주의에 도전하고 작은 힘으로 큰 상대를 상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는 점, 그리고 외부로부터 연대를 구하는 것은 기존의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에 반해 이 책에서 역사학자 와서스트롬은 고도로 이론화된 틀을 구체적 상황에 직접 대입하는 것을 지양한다. 대신 그는 홍콩, 태국, 미얀마 청년 운동가들의 삶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를 시도한다. 이들의 성장 배경과 행동 서사를 통해 동아시아의 청년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정리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현실에 더 근접할 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만의 활동가들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대만이 밀크티 동맹의 국가 간 연대에서 배제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만 청년들은 홍콩의 범죄인 송환 조례 반대 운동(反送中運動)에 연대하거나, 태국 청년들의 저항을 지지했고, 미얀마의 군부 통치에 반대했다. 대만에서 일련의 투쟁들은 모두 연이어 등장하며 높은 관심을 받는 사건이 됐다.
2019년 6월, 홍콩 정부는 타이베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빌미로 범죄인 송환 조례(逃犯條例) 개정을 강행하려 했다. 그리고 홍콩에서 이는 대규모 저항을 촉발했다. 그 직후 대만 총통부(행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 추구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대만 입법원 역시 여야 공동 성명을 채택하여 홍콩 당국의 군중 시위 진압을 규탄하고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그해 6월부터 1년반 정도 후인 2021년 1월까지 대만 전역에서 시민단체, 학생, 정당, 교회 등 서로 다른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조직한 크고 작은 집회가 총 95차례 열렸다. 폭력적인 진압 영상이 대만 사회의 눈앞에 직접 생생하게 드러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허구성이 낱낱이 가려짐 없이 폭로됐고, 이에 따라 '망국감(亡國感·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급속도로 퍼지며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높은 득표율로 연임하는 데 일조했다.
2020년 초, 태국 정부가 젊은이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던 미래전진당을 해산하고 코로나19 방역 조치까지 미흡하게 처리하자 국민들의 원성이 촉발됐다. 같은 해 여름 방콕에서는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청년과 학생 중심의 대규모 저항 물결이 일어났다. 대만 내 태국인 유학생들과 현지 시민단체들은 이에 호응해 '대만 태국 민주주의 추진 동맹(台灣推動泰國民主聯盟)'을 결성하고, 타이베이역, 시먼딩, 주대만 태국 무역경제사무소 등지에서 여러 차례 연대 집회를 개최했다.
이어 2021년 미얀마 군부가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반대파를 잔혹하게 진압하자 대만의 '미얀마 연대 동맹(聲援緬甸聯盟)'은 3월 타이베이 자유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미얀마의 시위 방식을 모방하여 함께 냄비와 접시를 두드리며 일제히 울리는 소리를 냈고, 이와 동시에 불교 승려들을 초청해 희생자들을 위해 경전을 읽고 천도재를 지냈다. 신베이시 중허구에 위치한 화신(華新) 거리는 미얀마 화인(華人)들이 모여사는 가장 큰 집성촌 중 하나다. 그들 역시 자주 자선 바자회를 개최하여 그 수익금을 미얀마 군정 세력에 맞서 싸운다는 민족통합정부에 기부하고 있다.
비록 위의 연대 활동들이 '밀크티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대만의 시민사회와 대만 내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한 활동가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중국의 권위주의 수출에 저항하는 이 국제 연대 운동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민간 각계에 스며든 밀크티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해바라기 운동 및 우산 운동 10주년 기념 포럼'으로 돌아가 보자. 와서스트롬의 강연이 끝난 후, 또 다른 4명의 토론자들이 각자의 활동 경험을 공유했다.
알렉스 초우 윙 홍(Alex Chow Wing Hong, 周永康)은 홍콩 우산운동의 학생 리더였다. 당시 그는 행정장관이었던 캐리 람(林鄭月娥)과 행정장관 직선제 문제를 두고 공개 변론을 벌인 바 있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에서 지리학 공부를 해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워싱턴의 홍콩민주위원회(香港民主委員會)에서 홍콩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바이위(曾柏瑜)와 위양(魏揚)은 과거 '흑색도국청년진선(黑色島國青年陣線)'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아주 일찍부터 양안 서비스 무역 협정(兩岸服務貿易協議) 반대 운동에 투신했으며, 해바라기 운동(太陽花運動)의 핵심 활동가가 됐다. 입법원 점거 행동이 끝난 후 정바이위는 대만민주실험실(台灣民主實驗室·Doublethink Lab)에 합류해 가짜 뉴스 타파를 위한 연구와 옹호 활동에 집중했고, 위양은 환경 단체에 투신하여 기후 정의의 추구가 더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다.
리우원(劉文)은 당시 대만중앙연구원 민족학연구소의 보조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교편을 잡는 동안 아시아계 차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만으로 돌아온 후에는 퀴어 정치운동과 민방위 관련 활동에 뛰어들어 관련 의제를 추진하는 주역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밀크티 동맹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청년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갈망을 상징하지만, 그 발현 형식은 결코 거리 시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참가자들은 여전히 최초의 신념을 유지한 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통로를 새롭게 탐색하고 있다. 즉, 국제연대와 디지털 민주주의, 기후정의운동, 대만 민방위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한 투입을 통해 민주주의 심화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밀크티 동맹은 단지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며, 그 결말은 여전히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허밍슈(何明修) | 대만대학 사회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