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인터뷰

세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인터뷰

최근 세계 곳곳에서 원전 추진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교훈이 정말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2026년 5월 31일

[동아시아]일본후쿠시마 , 원자력발전, 탈핵운동, 일본, 재난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탈원전운동에도 큰 충격을 미친 사건이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는 GX(Green Transformation) 정책이란 이름으로 204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율을 20%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원전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관련 기사 | 후쿠시마 사고 이후 15년, GX 정책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원자력 정책]

일본 사회운동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탈원전운동의 향후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플랫폼c(이하 플씨)는 1975년 설립되어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 실현을 지향하는 비영리 조사연구기관’을 표방하는 시민운동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原子力資料情報室, Citizens' Nuclear Information Center, CNIC)의 공동대표 겸 사무국장 마쓰쿠보 하지메(松久保肇, 이하 마쓰쿠보)에게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탈원전운동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플씨 |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인 2012년에 최대 2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올 정도로, 일본 사회운동에서는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규모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마쓰쿠보 | 2009년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일본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국민들이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에서 결국 권력투쟁이 벌어졌고,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대규모 항의행동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2년 6월 29일 원전 재가동 반대하는 시민들이 총리 관저 앞 도로를 가득 채우는 시위를 열고 있다.
2012년 6월 29일 원전 재가동 반대하는 시민들이 총리 관저 앞 도로를 가득 채우는 시위를 열고 있다.

플씨 | 2012년 당시의 대규모 집회는 규모뿐 아니라 참가자 구성과 조직 방식도 달랐다. 공산당, 사민당 등의 혁신계 정당*이나 노동조합 같은 기존 운동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기존 단체에 속하지 않은 개인들이 많이 참여했고, 사운드 데모(サウンドデモ, 음악·DJ·클럽 문화를 결합한 형태의 거리 시위)라는 형식 역시 과거의 집회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에 와서 2012년 당시의 대규모 집회를 돌아보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 편집자 주: 한국에서는 보통 ‘진보정당’이라 부르는 좌파 경향의 정당을 일본은 ‘혁신계 정당’이라 칭한다.

마쓰쿠보 | 2000년 무렵부터 기존의 노동조합 중심형 사회운동에서 개인·네트워크형 사회운동으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서는 시민단체·노동조합·평화운동 그룹·개인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월드 피스 나우(World Peace Now)’ 같은 사회운동 플랫폼이 등장했다. 여기에 더해 사운드 데모처럼 항의를 즐기는 방식도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이 거의 완성된 형태에 가까운 것이 2012년 무렵의 대규모 집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플씨 | 그때에 비하면 집회 규모가 많이 줄었다.

마쓰쿠보 | 최근 탈원전 집회의 규모는 많아야 1만 명 이내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여 국회 주변에서 수만 명 규모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12년 7월 말 원전 반대 시위
2012년 7월 말 원전 반대 시위

플씨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정책에는 크게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2012년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표방한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난 것이고, 두 번째는 2023년 무렵부터 일본 정부가 GX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 가동 기간을 기존보다 연장하는 등의 본격적으로 원전 확대에 힘을 싣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각각의 변곡점에서 일본의 사회운동이 어떻게 대응했는가?

마쓰쿠보 | 2012년 자민당의 정권 탈환 이후에도 원전 관련해서는 민주당 정권 시절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후쿠이현의 오이 원전에 존재하는 총 4기의 발전소 중 2기만을 가동 중단하고 나머지 2기는 재가동하기도 했다) 한편 2023년 무렵부터 나타난 움직임은 꽤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을 계기로, 전력업계가 원전을 재가동하면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다고 캠페인을 벌였고, 그 영향을 받아 국민 여론이 “원전 이용도 어쩔 수 없다”라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전 재가동으로 전기요금이 싸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씨 | 지난 15년 동안 일본의 탈원전 운동 역시 여러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쉬운 점 혹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 있나?

마쓰쿠보 큰 분기점은 민주당 정권 시절에 장기적인 탈원전 방침을 굳히지 못했던 점이다. 운동 진영은 강하게 즉각적인 원전 제로를 요구했지만, 그 에너지를 장기적인 탈원전으로 전환하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쉽다고 생각한다.

플씨 |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원전 정책도 기존GX 정책의 연장선에 있으며, 그 직전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 2025년 2월 발표한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원자력 발전 비율 20%”를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본의 사회운동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 편집자 주 :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재생에너지 및 비화석연료 중심 전환’, ‘탈탄소 발전 확대’, ‘차세대 에너지원 확보’, ‘화석연료의 안정적 공급 체제’ 등을 골자로 하는 일본 정부의 새로운 중장기 에너지 정책이다. 또한 탄소 감축을 이유로 신규 원전의 건설과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동 중지 중인 원전의 재가동이 포함되어 있다. https://www.enecho.meti.go.jp/category/others/basic_plan/

마쓰쿠보 | 2040년까지 원전 비율 20%를 실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러려면 원전을 35기 정도 가동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재가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원전 추진 세력은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재가동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같은 논리를 펼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씨 | 앞서 말한 두 가지 외에, 원전과 관련해 일본 사회운동이 주력하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

마쓰쿠보 | 원전 재가동뿐만 아니라 원전 신규 건설 계획도 진행 중이다. 다만 원자력 사업자들은 이제 원전 건설 비용을 자력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됐기에 국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며, 몇 가지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국민 부담으로 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 편집자 주 : 일본 정부는 2011년 9월 대규모 원자력 사고 발생 시 원자력 사업자에게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원자력손해배상·폐로지원기구(原子力損害賠償・廃炉等支援機構, Nuclear Damage Compensation and Decommissioning Facilitation Corporation, NDF, 설립 당시 명칭은 원자력손해배상지원기구)를 설립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원자력·수소·암모니아·재생에너지·대형축전지 등 탈탄소 전원(電源,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에 대한 신규 투자를 촉진하는 장기 수익보장 제도인 장기탈탄소전원옥션(長期脱炭素電源オークション)을 도입했다. 사업자가 신규 발전설비 계획을 입찰해 낙찰될 경우 최대 20년 동안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플씨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 왜 일본의 탈원전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지 한 말씀 부탁드린다.

마쓰쿠보 |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사고가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이 원전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서는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환경 중으로 방출되었고, 일부는 한국에도 도달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원전 추진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교훈이 정말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원전 반대 운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

'여성들은 원자력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 1988년 4월 체르노빌 참사 2주기 시위 (사진: 이마이 아키라)
'여성들은 원자력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 1988년 4월 체르노빌 참사 2주기 시위 (사진: 이마이 아키라)

글 : 김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