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의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을 읽고

칼 맑스의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을 읽고

어느 곳에서나 나의 노동, 나의 관계, 나의 삶을 감각하고, 나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6년 4월 25일

[활동]세미나마르크스주의, 역사, 서평, 국제주의, 노동운동

이 서평은 플랫폼c에서 진행 중인 '활동가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세미나'에서 함께 읽은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칼 마르크스)을 중심에 두고 작성됐다. 작성 과정에서 『공중보건학』(윤병준·장창곡)과 『혁명의 봄』(크리스토퍼 클라크)을 참고했다.

발전과 빈곤

당시, 영국 정부는 영국의 총수출입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며 이를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었다. 반면 민중은 빈곤에 시달렸다. 이때 정부는 의사에게 임무를 줬는데, 바로 질병을 피할 만큼의 최소한의 음식량을 조사하라는(딱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량을 알아 오라는) 임무였다. 이 부분에서 추측을 해봤다. 이 시기부터 노동의 소외는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중간계급에도 확산 되지 않았을까?

개인의 머리에서는 결코 질병을 피할 만큼의 최소한의 음식량을 조사해야 한다는 기이한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을 착취할 조건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해 낸 공무원과 환자를 대변하는 일과 정반대되는 임무를 맡게 된 의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 이러한 임무가 필요하다고 여겼을까? 수긍? 포기? 나는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공중보건

궁금증을 해소해야 했다. 왜 이러한 ‘임무’가 내려졌을까? 먼저, 정부가 민중의 건강을 매우 협소하게나마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책 <공중보건학>에 따르면 ‘공중보건’이라는 사상은 1850년대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그 옛날 고대기 사람들은 질병이 사람과 환경의 부조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중세기 사람들은 선악설에 의존하는 종교적 사상으로 인해 질병을 벌로 여겼다. 근대사회로 넘어가면서 산업혁명 등으로 노동자들은 빈곤에 시달렸고,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 되니 정부는 공중보건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불황, 실업, 빈곤, 질병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때 독일에서는 사회보험이 만들어졌다. 이는 복지임과 동시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까 두려워 만든 제도였다(이 부분은 책에 나오지는 않는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정부가 노동자의 혁명을 막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또한, 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보고서

다시 발기문으로 돌아와서, ‘임무’를 맡은 의사가 보고서를 냈다. <공중 보건 상태에 관한 제6차 보고서>인데, 요약하면 이러하다. 1) 노동자들은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들을 간신히 피하기에 족한 양만큼도 얻지 못하고 있다. 2) 그중 하나의 계급으로서 도공들은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퇴화 되었고, 건강하지 못함이 세습되면서 점진적 열등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3) 음식물의 결핍은 견디어 내기 어렵고 음식물 부족은 모든 종류의 결핍이 선행된 뒤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의사는 보고서에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한 나라의 공중보건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대중의 건강을 의미하는 것인데 만일 최하위계층에 이르기까지 보건이 최소한이라도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그 대중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그 의사는 왜?

이 의사가 왜 이런 정의로운 말을 한 거지? 때마침 인간성이 뛰어난 진보적인 의사가 걸린 것인가? 답을 찾기 위해 책 <혁명의 봄>을 참고 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르포 형식의 연구 방식을 채택했는데, 사회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회문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표면을 깨고, 깊은 하부층까지 들어가 골목 구석구석을, 노동자 계급의 일상 하나하나를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르포 형식의 연구는 정확한 묘사를 기반으로 한다. 예를들면, 의사 앙주 게팽과 외젠 보나미(의사이자 공중보건전문가)는 1936년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거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동굴만큼이나 공기가 습하고 차가운 지하 통로에 발을 들여놓으라. 지저분한 지면에 발이 미끄러질 테고, 진창에 빠질까 두려울 것이다. 지나가는 동안 사방으로 어둡고 냉랭한 방들, 벽에서 구정물이 흘러내리고 빛이라고는 너무 형편없이 만들어서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자그마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햇살이 전부인 방들이 보일 것이다. 진동하는 악취에 꽁무니를 빼지 않았다면, 조잡한 문을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라. 하지만 조심하라. 더럽고 고르지 않은 바닥이 배설물로 뒤덮여 있거니와 미장도 되어 있지 않고 타일도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을 테니까. 방 안에는 곰팡이가 피고 곧 부서질 듯한 침대 서너 개가 끈으로 묶여 있고, 그 위에는 여간해서는 세탁하지 않는, 올이 다 드러난 누더기가 덮여 있다. 그렇다면 찬장은? 필요 없다. 세간이라곤 물레 하나와 베틀 하나가 전부다.’

그리고 숫자를 이용했는데, 이러한 내용이다.

‘사회의 이 궁핍한 부문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든 간에, 지출 내역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내역은 다음과 같다.’

집세 25프랑
세탁 12프랑
연료 35프랑
조명 15프랑
부서진 가구 수리 3프랑
주소지 변경 2프랑
신발 12프랑
의복 0
의사 0
약사 0 (자선단체 여성들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가져다준다)

1830년대와 1840년대 동안 이런 숫자와 표, 정확한 묘사를 담은 보고서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사회문제에는 공중보건, 사회적 결속력의 상실, 산업화, 실업, 경제적 경쟁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다. 그래서 연구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졌다. 이를테면 엥겔스는 이런 르포 형식의 연구를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의 착취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낳고, 그들은 착취자들과 대립하여 장차 혁명적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 믿었다.

반면 게팽과 보나미는 “새로운 자크리의 난이나 83년 사태를 겪을 필요 없이 미래에 도달할 수 있도록 (...)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조사의 목표라고 밝혔다. 또 엥겔스는 도시 부르주아지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은 반면, 오노레 프레지에와 같은 연구자는 대다수 범죄의 근원은 ‘악덕과 게으름으로 스스로의 처지를 망치는 극빈자’들의 성향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운동

현실에 기반한 정의로운 보고서는 소중하며 혁명의 근거가 될 수는 있으나, 혁명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온 당시에도 토지 소유는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매년 3천 명이 잉글랜드와 웨일즈 전체 농업 노동자 대중에게 분배되는 총수입보다 많은 양의 수입을 해마다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발기문에는 국가가 하고 있는 ‘온갖 새로운 발전’에도 빈곤은 제거하지 못하며, 현재와 같은 잘못된 토대 위에서는 사회적 대립을 심화시키고 적대를 격화시키는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나와 있다.

발기문을 읽어보니 이 글이 쓰이기 이전에도 혁명이 있었고, 그 혁명은 실패했나 보다. 혁명 실패 후, 산업주의에 대한 열광, 도덕적 노쇠, 정치적 반동이 퍼졌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더 많은 일자리와 순간적인 임금 인상이라는 미끼에 매수되어 “현실적 처지를 고려”해 사회변혁을 그만둔 사람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패배의 공유가 일어난 것이다.

희망

그러나 밝은 면이 있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은 30년에 걸친 투쟁으로 10시간 법을 관철시켰다. 이때 중간계급은 중간계급의 관점을 설명해 줄 전문가를 구해 10시간 법이 영국 공업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노동자계급은 물러서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 경제학을 만들어 중간계급의 논리에 맞섰다. 자본의 정치 경제학에 대한 노동의 정치 경제학의 위대한 승리인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중 가장 어려운 일은, 절망을 극복할 계기와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패배를 극복할 명분을 자신들의 운동 속에서 찾아내다니, 밝음을 찾아 운동을 이어가려는 시도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안녕한 상태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이 빈곤과 묘사의 정치로 시작됐듯, 나 또한 안녕하지 못한 상태로부터 해방구를 찾아보려 한다. 발기문이 쓰일 당시 사람들의 건강 상태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건강 개념에 비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분명 건강하지 못하다.

<공중보건학>에 따르면 19세기의 신체개념의 건강은 신체적 질병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들어서며 건강의 개념은 변화했다.

현재 건강의 정의는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의 완전한 상태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 '사회적 안녕'은 자신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에 무리 없이 적응해 나가고, 자신의 잠재력을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상태를 포함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잠재력을 표현하기는커녕, 나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어느 곳에서나 나의 노동, 나의 관계, 나의 삶을 감각하고, 나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갑자기 생각나는 말.

만국의 안녕하지 못한 자들이어 단결하라!

끝.

글 : 박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