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운동, 고립에서 연대로 | 동아시아 노동운동 교류회 ②

플랫폼 노동운동, 고립에서 연대로 | 동아시아 노동운동 교류회 ②

동아시아 플랫폼노동의 현실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 별개로 작동하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공통점을 공유한 채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하고 있다.

2025년 12월 3일

[동아시아]일본동아시아 노동운동 교류회, 동아시아, 일본, 홍콩, 중국, 플랫폼노동, 국제연대

지난 2025년 10월 초, 일본 도쿄에서 2025 동아시아 노동 페스트가 열렸다. 이 자리엔 동아시아 각국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이 함께 했다. 플랫폼c 회원들도 이 일정에 함께 했다. 이때 보고 듣고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 공유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플랫폼노동은 노동의 주요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각국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권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고, 알고리즘 통제 아래 고립된 채 경쟁하도록 설계된 환경에 놓여 있다. 배달·운송·돌봄, 심지어 의료까지 플랫폼화되면서 노동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통적 노동조합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각국은 어떤 조직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을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제약되는가?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운동은 서로 어떤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올해 10월 초 일본 도쿄 소피아대학에서 열린 동아시아 노동운동 교류회(East Asia Labor Fest)는 이러한 질문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를 대표해 일정에 참석해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의 경험을 발표했다. 한국·일본·대만·중국·홍콩의 노동조합과 연구자, 사회운동단체들이 참여해 각국 플랫폼 노동의 현실과 조직화 시도가 공유됐다. 각국이 처한 공통의 구조적 문제와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이 교차하며 논의됐다.

이 글은 10월 4일 열린 '모두가 플랫폼 노동자가 될 수 있는가'(Everyone Could Be a Platform Worker) 세션에서의 동아시아 각국 활동가들의 발표와 10월 6일에 진행된 '조직화를 위한 토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운동의 현재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 사례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일본·중국·대만의 경험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운동이 직면한 공통의 과제, 각국이 모색 중인 조직화 전략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 | 플랫폼 노동운동의 출발, 우버이츠유니온

일본의 플랫폼 배달 노동자 조직화는 2019년 후반부터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직전에서 초기 시기에 빠르게 확산됐다. 이 무렵 일본 전역에서 우버이츠 가방을 멘 라이더들이 급증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노동 문제가 처음으로 사회 쟁점으로 떠올랐다. 우버이츠유니온은 이 시기에 등장한 동아시아 최초의 플랫폼 배달노조 중 하나다.

초기 조직화의 기반은 트위터(X), LINE 오픈채팅, 페이스북 그룹 등 소셜미디어였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플랫폼 배달이 확산된 일본의 상황에서 라이더들은 별도의 조직이나 노동조합의 안내 없이 스스로 서로를 찾아 연결했고, 이러한 느슨한 네트워크는 첫 파업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우버이츠유니온 위원장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기반 조직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여러 도시에서 동시 행동이 가능할 만큼 초기 에너지가 강했지만 일본의 법과 제도가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단체교섭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구조적 벽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실제 플랫폼 기업들은 일관되게 라이더를 "직원"이 아닌 "파트너"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틈을 활용해 배차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보복성 계정정지, 일방적인 거리·요율 변경 등을 강화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셜미디어 중심 조직화는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다.

미디어의 관심이 사라지자 약점이 드러났다. 조직이 유지되기 위한 지속적 결속 기반, 즉 현장 중심의 관계망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버이츠유니온의 전 위원장은 현장 기반의 관계와 결속이 없다면 소셜미디어를 통한 조직화는 오래가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일본 우버이츠유니온 및 연구자들과 함께
일본 우버이츠유니온 및 연구자들과 함께

우버이츠유니온의 경험은 일본이 플랫폼노동 조직화를 가장 먼저 시도한 선구적 사례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일본의 노동법과 사회보험 제도 공백이 플랫폼 기업의 우위 구조를 그대로 두고 있고, 이 때문에 노조가 제도적 제약과 억제를 경험한 사례이기도 하다.

즉, 우버이츠유니온이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활동가 역량 부족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길을 가장 먼저 선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하게 제도적 견제를 받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례는 오늘날 동아시아 전체가 직면한 플랫폼노동의 핵심 과제들, 즉 위장고용과 알고리즘 통제, 사회보험 회피, 노동자의 단절이 얼마나 일찍부터 구조적으로 작동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구조적으로 작동해왔는지 보여주는 첫 신호라 할 수 있다.

중국·홍콩 | 플랫폼 노동자들의 법률·투쟁 연계 조직화

중국에서 플랫폼 노동은 배달과 운송을 넘어 제조와 의료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고도화된 통제 모델로 자리 잡았다. 발제자로 참여한 법률가 V는 현장 변화를 '공장 안의 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는 기존 관리자 역할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산 속도와 이동 경로, 휴식 시간 등이 데이터로 수집되고 평가되면서 노동자는 실시간 감시와 통제에 놓이게 됐다.

플랫폼 기업과 다단계 하청업체는 고용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누구에게 교섭해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구조에 놓였다. 공개적인 노조 결성이나 대규모 집단행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법률가·활동가가 결합한 비공식 자조 네트워크가 여러 지역에서 형성됐고, 이는 산재·체불 문제 대응, 노동법 교육, 현장 단위의 제한적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직 방식은 억압적 환경에서 노동운동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홍콩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보인다. 홍콩 푸드판다(Foodpanda) 노동자들은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도시물류거점을 기반으로 지역 배달노동자 커뮤니티와 이주노동자 국적별 네트워크를 활용해 조직 기반과 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는 중국 본토와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역시 제도적 노조 구조 밖에서 이루어진 자발적 결속의 형태였다. [참고: 홍콩 | 음식배달 플랫폼 푸드판다 노동자들이 불합리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다]

이 같은 구조는 중국·홍콩 플랫폼 노동운동의 중요한 맥락을 드러낸다. 강한 정책 통제와 감시 속에서 활동가들은 심각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일부 활동가들은 해외 도피를 선택하고, 일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참고: 동아시아 뉴스레터 | 중국 음식배송 라이더들의 상징적 인물이 구속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역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해온 활동가들은 높은 위험 속에서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움직여 왔다. 이러한 사례는 강한 억압 아래에서도 사적 위험을 감수하며 투쟁을 이어가는 플랫폼 노동운동가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과의 비교다. 라이더유니온은 초기부터 중국·홍콩 플랫폼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활용한 소셜미디어를 통한 조직화 방식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배송 방식과 일상을 공유하는 배달 유튜버, 틱톡 라이브 방송, 사용 후기 콘텐츠 등이 플랫폼 노동자 사이의 소통과 조직의 기반이 됐다. 한국에서도 이 방식이 차용되어 라이더TV 같은 자체 미디어와 배달유튜버 사이 연대가 빠르게 확장되는 데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다. [참고: 중국 음식배송 플랫폼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어떻게 노동강도를 강화시켰나]

그러나 현재 중국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플랫폼 노동 환경에 대한 비판이나 규제 요구를 제기하는 콘텐츠는 공개적으로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알고리즘 구조나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영상과 계정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제약을 받아 사라졌고, 남은 이들은 배달 장비를 홍보하거나 제휴 상품을 판매하는 계정 등으로 한정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플랫폼 자본과 국가 규제가 동시에 작동할 때 노동자의 언론 활동과 온라인 조직화가 얼마나 쉽게 제약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점은 현재 한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유튜브 기반 미디어 운동과 조직화 모델이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중국·홍콩의 사례는 권위주의 정권 속에서 플랫폼화가 산업 전반을 재구성하는 통치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강한 억압 속에서도 현장 단위의 저항과 자조 네트워크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또한 온라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조직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제약될 수 있는 취약한 기반이라는 사실도 드러낸다. 이는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운동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대만 | 플랫폼 노동의 초단기 일용직화와 사회적 조합

대만에서도 플랫폼 배달노동은 팬데믹 이후 빠르게 확산되며 노동시장 전반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푸드판다와 우버이츠의 급성장으로 배달 노동자 규모는 단기간에 크게 증가했으나, 대부분이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사회보험과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대만의 연구자들은 이 현실을 '초단기 일용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노동자가 하루 단위를 넘어 시간, 심지어 분 단위로 거래되는 구조를 의미하며, 플랫폼 노동의 극단적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대만 시민사회운동과 활동가들은 '사회적 조합'이라 불리는 새로운 조직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제도적 틀을 따르지 않으며, 시민단체와 학생, 지역 커뮤니티가 결합해 플랫폼 노동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일부 지역에선 커뮤니티 공간을 기반으로 노동 상담, 교육 프로그램, 캠페인을 운영하며 시민사회가 플랫폼 노동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구조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은 제도권 밖에서 이뤄지는 참여형 네트워크의 성격이 강하다. 세션에서 대만 사례를 발표한 연구자 역시 '노동조합'보다는 '사회적 조합'이나 '사회적 결사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명확한 한계를 안고 있다. 법적 노동조합 지위가 없는 만큼 교섭력 확보나 안정적 조직 운영이 어렵고, 대만 내 플랫폼 노동 특유의 높은 이직률은 결속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단기간에 직종을 이동하거나 이탈하는 흐름이 반복되면서 조직 기반은 약화되고, 사회적 조합이 장기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제도적 기반 역시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제도 밖 조직 방식이 갖는 유연성은 분명하지만, 지속 가능한 동력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그럼에도 대만의 사례는 플랫폼 노동 문제를 특정 직종의 범위를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해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민사회가 플랫폼 노동을 함께 다루는 방식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새로운 조직화 모델을 제시하며, 노동조합의 경계를 넘어서는 결사 형태가 플랫폼 시대에 어떤 가능성을 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실험이 현실적 제약 속에서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호 장치와 사회적 인프라의 보완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 플랫폼 노동의 생활 기반 조직화와 유튜브·현장의 결합

한국의 플랫폼 배달노동은 높은 사고 위험과 불안정한 계약 구조, 알고리즘 통제 등 여러 구조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비교적 체계적인 조직화 모델이 형성되었고, 이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배달시장이 빠르게 확대된 2020년 이후 노동자 규모가 3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지만, 대다수가 법적 보호 밖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조직화 전략을 마련하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2025년 4월 19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한 배달앱 항의행동 투쟁 [출처: 라이더유니온]
2025년 4월 19일 유튜브 라이브를 통한 배달앱 항의행동 투쟁 [출처: 라이더유니온]

이러한 조건에서 라이더유니온은 생활 기반 중심의 조직화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그 출발점에는 홍콩 사례가 있었다. 홍콩 푸드판다 노동자들은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도시물류거점을 기반으로 지역 배달노동자 커뮤니티와 이주노동자 국적별 네트워크를 활용해 조직 기반과 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참고: 홍콩 | 푸드판다 배달노동자 파업 끝에 거둔 작은 승리]

한국 라이더유니온은 이를 응용해 도시 물류거점인 B마트를 현장 조직의 거점으로 삼았고, 라이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기에 노조의 기초 단위 조직과 공제사업·안전지킴이·라눔 봉사단 등 일상 활동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지속성과 현장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생활 기반 조직화는 파편화된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보완하며 결속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플랫폼 노동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행동을 결합한 투쟁 방식이다. 라이더유니온이 한국 내에서 주도한 대표적 사례로 '배달앱 OFF 행동'과 '콜 흘리기 행동'을 들 수 있다. 배달앱 OFF 행동은 특정 시간대에 라이더들이 동시에 배달앱 접속을 중단해 플랫폼 운영에 집단적 압박을 가하는 전술이다. 반면 '콜 흘리기'는 라이더에게 배차된 콜을 수락하지 않고 제한시간까지 그대로 두어 넘기는 방식으로, 알고리즘 통제에 대한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콜 거부'나 '강제 차단'이 아니라 시간을 흘려 넘기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용약관 해석의 범위 안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항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두 행동 모두 유튜브 방송 및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여 방법과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고, 실시간으로 투쟁 실황을 중계함으로써 대규모 참여를 이끌어냈다.

법·제도에도 일부 진척이 있었다. 산재보험 전속성 기준 폐지는 배달노동자가 업무 중 사고를 당했을 때 산재보험 적용을 제한하던 구조를 완화한 조치다. 유상보험 의무화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배달업무용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한 제도다. 그동안 많은 라이더가 무보험-가정용 보험을 든 채 일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때 플랫폼 기업은 보험 가입 여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사실상 이를 방치해 왔다. 이러한 변화 조치가 구조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노란봉투법 개정은 플랫폼 본사와의 직접 교섭 가능성을 열어 제도적 보완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그러나 알고리즘 통제 구조는 여전히 강력하고, 복잡한 하청·도급 체계는 교섭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배달 플랫폼 노동운동 내부에서 드러난 노조 위원장의 배달 하청사 직접 운영 사건(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배달플랫폼노동조합) 역시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플랫폼 노동운동 전반이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제기하고 있다.

한국 사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플랫폼 노동운동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완성된 모델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실험 중인 시도로 봐야 한다. 플랫폼 기업의 구조적 우위, 높은 이직률, 불안정한 노동 환경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생활 기반 조직활동이 계속 이어지려면 제도적 뒷받침과 현장 활동이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권위주의 정권의 영향으로 플랫폼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동아시아 상황에서, 한국의 경험은 노동자들이 서로 고립되고 경쟁하도록 설계된 환경 속에서도 결속하고 집단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라이더유니온의 지역 밀착 활동, 생활 기반 조직, 온라인 투쟁 방식이 결합된 모델은 동아시아 여러 국가의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가능성의 신호'로 주목받았고, 참고할 만한 조직화 사례로 평가받았다.

일본 | 의료까지 침투한 플랫폼 ‘패스트닥터’가 던진 질문

플랫폼 자본의 확장은 배달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의료 서비스마저 플랫폼 모델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노동권과 공공성이 동시에 위협받는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일본의 의료 플랫폼 '패스트닥터'는 방문진료 서비스를 표방하며 의사와 약품을 차량을 통해 옮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겉으로는 비도심 지역의 의료 공백을 보완하는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실제 노동구조를 들여다보면 공공영역과 노동권이 동시에 취약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패스트닥터에서 운전·동행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스마트폰 앱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며, 배차와 업무 지시 대부분이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법적 고용주는 플랫폼 본사가 아니라 지역 클리닉으로 설정되어 있어 책임 구조가 불분명하다. 이는 사실상 플랫폼 기업이 통제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권뿐 아니라 의료 안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야간 시간대에 약사나 의료 안전 인력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반복됐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업무 리스크가 명확히 관리되지 않아 의료·노동·안전의 사각지대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방문진료라는 특성상 환자 상태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노동자들은 충분한 훈련과 장비를 제공받지 못한 채 플랫폼의 시간 압박과 배차 알고리즘에 의존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조직화의 가능성은 더욱 제한적이다. 노동자들이 명목상 지역 클리닉 소속으로 분류되면서, 실질적 사용자와 법적 사용자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단체교섭 상대가 불명확하고, 플랫폼 본사는 자신들이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며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 분야의 특성상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를 공개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점도 조직화의 제약 요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안정적 조직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고, 업무 특성상 높은 이직률이 유지되면서 지속적 결속을 형성하기 힘든 구조가 이어진다.

패스트닥터 사례는 일본에서 의료 플랫폼화가 공공성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보여준다. 또, 플랫폼 기업의 통제 방식이 의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동자 보호와 환자 안전을 모두 후순위로 두는 구조 속에서 플랫폼화가 공공서비스 전반의 질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의료서비스 영역이 시장 기반 플랫폼 모델에 편입될 경우, 책임 회피 구조가 제도적으로 고착되고 노동권과 의료 안전이 동시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동아시아 모두 주목해야 할 문제다.

패스트닥터 사례는 플랫폼 자본이 산업 영역을 가리지 않고 노동과 서비스 구조를 재편하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공공서비스 영역에서조차 플랫폼화가 무분별하게 확장될 경우 노동권과 공공성 모두가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로 읽힌다.

플랫폼 시대, 조직화의 원칙을 돌아보다

10월 6일에 진행된 비공개 교류세션과 공개토론 「성공적인 조직화란 무엇인가」는 앞서 각국의 사례가 보여준 현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논의는 플랫폼 노동이라는 특정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불안정 노동과 지역 운동, 시민사회 의제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각국의 조건과 경험은 달랐지만, 조직화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질문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공개 세션에서 제시된 조직가의 네 가지 원칙은 그 흐름을 정리해준다. 권력 관계를 이해하고, 흩어진 현장에서 집단을 형성하고, 민주적 합의를 통해 공동 목표를 만들고,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플랫폼 노동뿐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누구나 조직가가 될 수 있다. 특별한 재능보다 타인과 대화할 용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날의 논의를 압축하는 메시지로 남았다.

2025년 4월, 한국의 조직된 플랫폼 노동자들 [출처: 라이더유니온]
2025년 4월, 한국의 조직된 플랫폼 노동자들 [출처: 라이더유니온]

이 원칙들은 각국 플랫폼 노동운동이 직면해온 어려움—고립, 높은 이직률, 책임 회피 구조, 알고리즘 통제—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선 더 넓은 질문을 던졌다. 조직화란 결국 제도 외부에서 시작되는 일상적 관계의 축적이며, 변화는 거창한 전략보다 작은 접점과 대화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 동아시아 노동운동 교류회를 통해 확인된 것은,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의 현실이 서로 다른 국가에서 별개로 작동하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공통점을 공유한 채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0월 6일의 논의는 그 구조를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조직하고 이어갈 수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었다. 플랫폼이 노동을 통제하는 방식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노동자와 시민이 서로의 경험을 교차해 이해하고 새로운 실천을 만들어가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보고는 그 흐름을 기록한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현실을 함께 바라보고 서로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 시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동아시아 플랫폼 노동운동가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조직화는 완성된 해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시도하는 과정이다. 도쿄에서 나눈 대화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함께 걸어갈 방향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지수 | 플랫폼C 회원,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