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선 이탈리아 총파업 투쟁에 대한 고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선 이탈리아 총파업 투쟁에 대한 고찰

‘모든 것을 가로막자’ 운동은 이탈리아 역사에서 실로 정치적·사회적 단절을 보여주었다.

2025년 11월 10일

[읽을거리]반전평화이탈리아,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국제연대, 파업, 대중시위, 대중운동, 노동운동

[역주] 나크바로부터 78년째, 23년의 총체적 집단학살 시작으로부터 3년째로 접어드는 지금, 이스라엘은 가자에서의 휴전을 공식적으로 깨고 폭격을 지속하고 있다. 수만 명을 학살하고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면서도 이스라엘은 아무런 제재도 겪고 있지 않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집단학살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고 있을 정도다. 초국적 자본이 기여하는 집단학살 범죄 속에서 전 세계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확산됐지만, 아직까지 학살을 완전히 멈출 수 있을 정도의 압박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러나 9월 22일 이탈리아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 총파업은 희망을 보여준다. 2001년 G8 정상회의를 맞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투쟁한 제노바에서 항만 노동자들은 그레타 툰베리가 참가한 “글로벌 수무드 선단(이하 ‘수무드 선단’)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자”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수무드 선단에 이스라엘이 해를 끼친다면 항구를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호응해 '아래로부터의노조연맹(Unione Sindacale di Base)'과 여러 투쟁적인 노조들(CUB, S.I. Cobas 등)은 ‘가자지구를 위한 9월 22일 총파업’을 선언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진로를 바꾸자(Cambiare Rotta)’, ‘학생청년연합(UGS)’, ‘대학생연합(UDU)’, ‘피렌체 학생연합(ColFi)’ 등 학생 조직들은 곧바로 각 캠퍼스에서의 홍보와 조직에 들어갔다. ‘봉기하자!(Insorgiamo)’라는 구호로 유명한 피렌체 GKN공장 투쟁조합 등 활발한 사회운동 단위들 역시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구호는 “모든 것을 가로막자(Blocchiamo tutto!)”였다. 고속도로, 항구, 기차역 등 이탈리아 내 물류망을 가로막아 자본과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이스라엘로 향하는 물자를 직접적으로 막는 것이 목표였다.

9월 22일 당일,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탈리아 전역 80여 개 도시에서 1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베네치아·살레르노·트리에스테·제노바·안코나·리보르노 등 주요 항구가 봉쇄됐다. 피렌체·로마·제노바·밀라노·볼로냐 등 대도시에서는 주요 간선 고속도로가 가로 막혔고, 토리노·나폴리·브레시아 등에선 기차역을 점거했다. 로마 사피엔자대학, 바리대학, 볼로냐대학, 토리노대학, 밀라노대학, 피렌체대학 등 주요 국립대 캠퍼스들도 점거됐다. 파시스트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는 멜로니 정부마저 글로벌 수무드 선단에 대한 보호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선단 호위를 위해 군함을 파견했다.

총파업 성공으로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산별노조 조직들 간의 성향 차이로 갈등을 겪던 이탈리아노총 CGIL(조합원 500만 규모)의 공식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9월 26일 이스라엘의 ‘수무드 선단’ 나포로 “가자를 위한 100개의 광장” 운동이 선포됐다. 각 도시의 광장에서 항구적 부스가 설치됐다. 로마 도심의 ‘500인 광장’은 ‘가자 광장’으로 개명됐다. 나폴리 중앙역 점거, 로마 총리관저 행진, 제노바에 정박한 이스라엘의 ‘짐 뉴질랜드(ZIM New Zealand)호’에 대한 봉쇄,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이탈리아 방산기업 ‘레오나르도’(Leonardo S.p.A.) 각 지사 앞에서의 시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의 화물 봉쇄 등이 단 이틀만에 이루어졌다.

이탈리아노총은 이런 대중적 투쟁에 호응하여 이탈리아 좌파당 등 진보정당, 민주당 및 오성운동 등 중도 정당과 함께 10월 3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총파업을 통해 시위대는 로마의 주요 간선도로를 봉쇄했고, 로마사피엔자대학(Sapienza Università di Roma)의 법대 캠퍼스 건물을 점거했다. 이탈리아 내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소집한 10월 4일 로마 전국 행진에는 2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지난 수십년 사이 최대 규모의 집회가 이뤄졌다.

10월 25일 이탈리아노총은 “재무장 반대·긴축 반대·전쟁경제 반대”를 내세우며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동력을 반전평화를 위한 전선으로 옮기려는 전국 집회를 열었다. 이탈리아노총 조합원만으로 거의 10만이 모였다. 그리고 여러 학생 단위들은 집회·워크샵·토론회·상영회 등을 통해 투쟁 동력을 지속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11월 14일에는 전국 학생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사회운동 단체와 시민사회의 의제에서 벗어나, 총파업 등 대중운동으로 나아갔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을 호위하는 군함 파견, 이스라엘행 선박의 물자 선적 및 하역 봉쇄 등 실질적 성과도 이루어냈다. 이런 대중 동원의 물결은 옆나라 스페인에도 번져 바르셀로나·마드리드 등 대도시 항만 봉쇄 및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스페인 산체스 정부는 겉으로라도 이스라엘과의 모든 상업 및 군사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한데 사실 이탈리아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 영속과 함께 지속적으로 쇠퇴하는 추세에 있었고, 2023년~4년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도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학생 조직들의 대학 캠퍼스 내 텐트 농성(acampada)이 그나마 유의미한 동원이었다. 따라서 이번 총파업의 성공은 사회운동 조직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이번 운동의 성격과 원인, 전망의 분석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중도좌파 언론 <일 마니페스토>(il manifesto)부터 재건공산당(Partito della Rifondazione Comunista), 그밖의 독립 언론과 아나키스트들까지 좌파 영역의 분석과 고민들이 매일같이 게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래 번역한 독립좌파 언론 <인포아우트>(Infoaut)의 아래 글 Alcune riflessioni a caldo su “Blocchiamo tutto”은 현장 활동가들의 인식과 대중 투쟁의 성공 원인을 이탈리아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은 이번 총파업이 이탈리아 사회운동에게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자, “새로운 국제주의의 잠재적 형태”라고 분석한다.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HD현대·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석유공사 등의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막아내고, 고조되는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대한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탈리아 총파업의 경험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운동의 참고가 되길 바란다.

이 엄청난 날들에 대한 유기적 평가를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가로막자’ 운동은 이탈리아 역사에서 실로 정치적·사회적 단절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일주일 만에 두 차례의 효과적인 총파업과 자발적 행진들이 있었고,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봉쇄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투쟁들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운 이질적이고 포괄적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모든 것을 가로막자’ 운동은 며칠 만에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모든 영역―일부 수감자들이 파업한 교도소에서부터, 전 세계 이탈리아 대사관에 이르기까지―을 가로질렀다. 특정 조건 하에서는, 추가적인 보편화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 운동은 제도 정치와 운동 정치 모두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과 부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 활동가들의 관대함, 항만노동자자율정치연대(CALP, Collettivo Autonomo Lavoratori Portuali,) 노동자들의 결단력, 전투적 노조주의의 막판 스퍼트 덕분에 활성화된 이 동역학은 이탈리아와 유럽의 전체 정치 구도를 조건 짓고 있다. 아마 전 세계적인 구도까지 말이다. 너무 많은 기대감을 갖지 않더라도, 트럼프 계획의 타이밍은 팔레스타인 민중 집단학살에 대한 대중의 분노 물결이 결코 부차적이지 않은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다른 한편, 우리처럼 노동자주의[operaismo, 1960-70년대 노동자 투쟁 중심 맑스주의 경향 -역주]의 교훈을 계속해서 성찰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그 제도적 형태들은 사회운동의 추동력 위에서도 재구조화된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행하는 신비화가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때조차 그렇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례 없는 가속화를 마주하고 있다. 이는 대중적이고 초당파적이지만, 사회운동 전통에서 성문화된 특징을 가졌던 다른 조직화의 주기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끝까지 파고 들어야한다. 역사적 단절을 인정하고, 비록 운동 구조가 이 연금술이 일어나는 데 결코 부차적이지 않은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장이 기존 운동 구조들의 조직 능력을 뛰어넘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우리를 직접적으로 관련시키고 우리를 관통하는 의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미리 준비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할, 비-유기적이고 잠정적인 몇 가지 테제를 표현해보고자 한다.

1. 완전히 다른 무언가.

2008년 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매우 다른 세 가지 사회 동원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 이 주기에는 사회적 구성, 조직적 차원, 정치적 표현 등 특징들이 있다.

그것의 첫 번째 성격은 ‘저항성’이었다. 젤미니 개혁[la riforma Gelmini, 2010년 우파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실시한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악 -역주]에 반대하는 투쟁, 베를루스코니 정부와 몬티 정부에 맞선 투쟁, 긴축 반대 광장 시위와 이탈리아풍 양념을 첨가한 ‘점거’(2010년대 초 유로존 위기에서 비롯된 오큐파이 운동) 시위는 본질적으로 빈곤화, 프롤레타리아화,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의 종말이라는 전망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 시절, 대학에서는 부모 세대의 복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첫 세대가 자라고 있었다. 당시 운동들의 정치적·조직적 형태는 이러한 긴장을 반영했다. 텐트 농성과 같이 다른 나라에서 빌려온 몇 가지 새로운 요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원은 ‘장기 1968년’과 ‘90년대’를 특징지었던 것들과 꽤 유사하게 남아 있었다. 이는 그 투쟁들의 힘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단계의 종말을 고한 주기였다. 그 이후 우리가 선거 혹은 광장 차원에서 ‘새로운 포퓰리즘적 동원’으로 정의했던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이때 ‘오성운동’의 부상과 몰락은, 몇 가지 상수를 제시했던 불명확하고 양가적인 사회 현상들을 동반했다. 한편으로는 빈곤화 단계에 있는 중산층에 의한 동원의 ‘정치적’ 지도,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공통의 변화의 이름 아래, 광장 주최자들의 요구에 서로 자신의 요구를 병렬시키는, 극도로 이질적인 구성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이 경향은 포르코니[Forconi, 2013년 극우 반엘리트 대중운동, 좌파 일각의 노조와 조직들도 참여했다 -역주]에서부터 농민 동원, ‘그린패스’ 반대 운동[펜데믹 시기 도입된 백신증명서 강제 지참 제도 -역주]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상을 특징지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기대들이 융합되어, 현 상태에 대한 거부를 드러냈다. 이 거부는 선동의 차원에서는 보편적 논의에 기대고 있었고, 처음에는 광장에서의 추진력 있는 강령들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들이 이해관계가 명확해지는 구체적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노란조끼 운동’에서 목격했었다. 이런 특성으로 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로막자' 운동이 이탈리아판 ‘노란조끼 운동’이라 볼 수 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사회적 구성, 투쟁 실천, 제도를 조건 짓는 역량 등에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아니’라면 왜 그런가? 어떤 면에서 '모든 것을 가로막자'가 주체성의 더 발전된 성숙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조직된 사회 세력의 역할 외에도, 전반적인 정치 국면을 고려해야 한다. 초기 ‘전쟁 체제’, 전 세계적인 내셔널리즘 우파 권력의 부상, 사회·경제 위기의 심화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새로운 무언가 앞에 서 있는 셈이다.

2. 팔레스타인 깃발

많은 이들은 최근 몇 주간 이 놀라운 동원을 그 명백한 원인과 분리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광장의 감정적 기폭제였다. 그것은 거의 2년 동안 공유된 고통과 무력감의 경험이었다. 가자 지구에서 온 이미지들은 우리를 반복적으로 여러 딜레마 앞에 세웠다. 지중해 건너편에서 인종청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계속할 수 있는가? 우리를 통치하는 기관들이 이 모든 것을 아무런 반대 없이 허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2년 동안 매일, 이 질문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대학에서, 술집에서, 우리 집의 침묵 속에서 우리를 괴롭혔다. 텔레비전, 신문, 정치인들이 시오니스트 정권의 최악의 서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는 이가 우리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끊임없는 전쟁 선전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민중을 지지하던 흐름은 젊은이들이나 이탈리아의 아랍 공동체처럼 전통적으로 이 주제에 더 적극적이었던 사회 부문을 넘어 확산되었다. 집회와 구상, 행진 속에서 오랫동안 직접 활동하지 않았던 사회 부문들의 주도권과 참여가 커졌다.

이스라엘과의 타성과 공모를 끊으라는 사회의 요구가 제도로부터 계속 응답받지 못하자, 광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언론의 서사는 점차 변했고, 점점 더 많은 공인들이 좋든 싫든 입장을 밝혀야 했으며, 대학들은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글로벌 수무드 선단(Global Sumud Flotilla)’은 전환점을 상징했다.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이가 품었던 또 다른 질문—‘우리 정부와 더 나아가 세계의 기관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황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답은 명확했다. 주도권을 잡고, 위임을 멈추는 것이다. 선단의 용감한 행동은 불신을 깨뜨렸다. 그것은 어떤 정부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사회의 일부가 집단학살의 타성을 깨기 위해 스스로 조직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감정적 역학은 운동의 탄생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첫째는 ‘이해’다. 대학의 텐트 농성 때부터 놀라웠던 점은, 이 동원이 아래로부터의 집단적 학습 형태와 함께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광장 밖에서도,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의 원인·역사·비전에 대한 결코 피상적이지 않은 이해가 직접적으로 광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발견하고 여러 번 놀랐다. 이 투쟁들 주변에는 일반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초당파적이면서도 뿌리 깊은, 복잡하고 정교한 이해가 구축됐다. 필연적으로 이 이해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 대학의 기능, 전쟁 물류, 이탈리아 국가와 다국적 기업의 전략적 역할, 미디어의 작동 방식, 국제법, 식민주의의 역사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 모든 것은 개신교 전도사처럼 집집마다 다니며 설득하지 않아도 일어났으며, 대규모 동원 속에서 형성된 집단지성의 결실이었다.

소셜미디어의 역할과 ‘주머니 속에 백과사전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겠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연대 투쟁이 자본이 만들어내는 신비화의 장막에 가려진 세계의 여러 작동 원리를 드러내는 사실상의 학습 과정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필연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가 집단학살에 참여하는 구조적 역할을 인식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복잡성과 역사적 깊이는 운동 발전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수준을 확장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운동은 글로벌 사회관계에 대한 지식의 획득이라는 해방의 과정이었다. 이는 중요한 교훈이다. 물질적 필요와 정치적 영역 사이에 결정론적으로 벽을 세우는 것은 피상적이며, 때로는 계급적 태도이기도 하다.

1968년 밀라노, “베트남은 공장 안에 있다”라고 적힌 벽
1968년 밀라노, “베트남은 공장 안에 있다”라고 적힌 벽

오래된 슬로건 “베트남은 공장에 있다”(Il Vietnam è in fabbrica)를 다시 꺼내는 것은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처한 물질적 조건이 이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 판단이 아니다. 재무장과 전쟁경제의 논리는 이미 여러 경우에서 광범위하고 초당파적 거부에 부딪쳐 왔다. 더 나아가,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지 못한 사회적 요구들이 불공정하고 점점 더 억압적인 체제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으로서 ‘가자지구를 위한 광장’으로 쏟아져왔다는 평가는 타당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삶의 조건 개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자유의 공간이 줄어드는 사회적 경험을 이 투쟁 속에 투사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 이야기했듯, 이는 새로운 국제주의의 잠재적 형태다.

  • 💬“베트남은 공장 안에 있다” :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봉기 '뜨거운 가을(autunno caldo)' 시기 이 구호는 단순한 반전 구호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신좌파 운동의 세계관을 집약한 모종의 선언으로, 일터와 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연결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구호였다.

이것이 이 운동의 참가자들이 곧바로 재무장 반대나 사회적 필요의 다른 영역에서 즉시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동원은 여러 측면에서 가능성의 공간을 열었다. 첫째, 광장에 나서는 것이 국가적·국제적 정치 현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미국 주도의 서구 자본주의 질서에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잠재적 사회 다수가 존재함을 드러냈다.

3. 추가 시간

이 역학의 가장 놀라운 측면은, 아마도 그것이 제도권 좌파 정당들과 노동조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분출됐다는 점일 것이다. 이탈리아노총이 9월 22일 며칠 전에 파업을 선제적으로 시작했지만, 그 움직임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고, 이 노조가 더 이상 사회의 심층적 변화를 읽어낼 능력이 없음을 드러냈다.

10월 3일 총파업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은 란디니(Maurizio Landini, 이탈리아노총 위원장)을 다시 관심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이 결정은 한편으로 노조 내부 조합원들의 압력 속에서 성숙했고, 정부의 과잉 반응(히스테리) 덕분에 참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위를 다시 제도권의 틀 안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비슷한 양상은 몇 주 만에, 적어도 말로는 점점 더 급진적인 입장으로 이동한 여러 정당들에서도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향후 몇 달간 이어질 지방선거를 위한 단순한 선거 전략으로 보았다. 물론 그 해석은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더 미묘하고 장기적인 전략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노동과 시민권에 관한 국민투표’[이탈리아노총, 민주당, 오성운동, USB, 이탈리아 좌파당 등이 주도. 부당해고 이후 복직 의무화 등 개혁을 주제로 실시했으나, 투표율은 저조했음 —역주]를 통해, 제도권 좌파 정당들은 기권과 무투표의 상당 부분이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경제·사회 정의에 대한 좌절된 요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 중도 진영은 거의 전적으로 중도우파로 이동하며 사실상 소진되었다. 그러나 제도권 정당에 대한 불신이 너무 깊기 때문에, 공허한 의도 선언이나 형식적인 선거운동만으로는 사람들을 다시 투표장으로 이끌기 어렵다. 따라서 중도좌파는, 그 여러 분파와 변형된 형태를 통해서라도, 사회적 움직임을 추격하며 제도적 공간에서 개입하려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향은 양가적인 국면을 낳는다. 한편으로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목소리들이 주류 정치의 통로에 도달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이 체제에 흡수될 위험도 현실적이다. 이 양가성 속에서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운동 현실—가장 구조화된 형태조차도—은 광장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자발성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도구, 역량, 인적 기반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가속의 국면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빠르게 구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사회적 주도권과 집단 지성의 자율적 조직화를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한다. 이 운동은 자체적인 대항 조직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최근의 열기 속에서 다소 뒤로 밀렸지만, 운동에 지속성과 깊이를 부여하고, 그것이 제도적 역학에 다시 흡수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4. 훈육 장치와 힘의 관계

‘모든 것을 가로막자’ 운동은 불과 2주 만에, 이 정부와 이전 정부들이 사회적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 구축해온 수많은 훈육(disciplinamento) 장치들을 문제 삼았다. 동원의 규모와 힘 앞에서, 악명 높은 ‘안보 법령’은 햇볕 아래 눈처럼 녹아내렸다.

“안보 법령은 무슨, 우리가 30만 명이면 외곽순환도로는 우리가 차지한다. 고발하라지!” — 9월 22일, 로마 행진에 참여한 USB(일반노조연맹)의 원로 활동가, 팔레스타인 연대 총파업 발언 중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항구·고속도로·철도·공항을 봉쇄하고 점거했다. 경찰은 이 정도 규모의 저항에 대비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운동을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개입을 자제했다.

10월 3일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그 효과를 최대한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규범과 절차 속에 묶여 있었다. 이런 권리 제거 작업은 파업이 이탈리아 경제 전체가 아니라 물류와 같은 단일 공급망의 이윤 구조를 겨냥할 때조차 계속됐다. 종종 주요 노총들 역시 이러한 점진적 제한에 있어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10월 3일 보증인 제도[파업 합법성을 보증위원회에 사전 신고해 확인받아야 하는 절차 — 역주], 강제 업무 복귀 명령의 위협[살비니 내무장관은 이날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복귀 명령을 예고함 — 역주], 살비니의 분노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파업은 여전히 정당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2주 만에 이 운동은 강력한 새로운 힘의 관계를 구축했다. 물론 정부의 정신분열적인 수사 속에서는 이것이 마치 ‘양보’로 포장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더 넓은 정치적 활동 가능성의 재정복은 바로 여기서부터 — 즉, 이러한 힘의 관계의 뿌리내림과 실행으로부터 시작된다.

라벤나에서의 시위
라벤나에서의 시위

5. 객관적인 구도

10월 4일 아침, [가자지구의 집권세력이었던] 하마스는 트럼프 계획의 첫 부분, 즉 이스라엘 인질 석방과 휴전에 관한 조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IDF)의 철수,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비무장화, 그리고 가자지구에 대한 미국의 ‘보호령’ 설치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네타냐후는 귀국 후에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에 계속 주둔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으며, 정부 내 극단주의 장관들은 평화 협정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그날 오후, 트럼프는 “비비(네타냐후)가 너무 멀리 나갔다”며 이스라엘이 국제적 고립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는 국제 여론의 동원이 협상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이후 며칠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전쟁은 포로 석방 직후 재개될 수도 있고, 일시적인 냉각기에 들어설 수도 있었다. 현재로서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기반으로 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의 전망은 거의 없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탈식민화 과정과 유사한 이스라엘 사회의 전환 가능성도 극히 낮다.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근본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지속적 평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휴전의 전망은 결국 이스라엘에 가해지는 정치적 압력의 강도에 달려 있다. 휴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가 대중 동원에 일시적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이 지난 2년간 저질러온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여러 정부—이탈리아 정부를 포함해—는 이 틈을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불처벌 학살의 덮기에 활용하려 한다. 우리는 이런 행태를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

더불어, 최근 몇 주간 동쪽에서 불어오는 전쟁의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론의 시선이 가자지구에 집중된 사이, 군사적 격화의 위험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군사화는 사실상 강제적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갈등 완화의 전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글로벌 불안정의 추가적 가속화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포장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이 진행 중이며, 이는 매우 불길한 징조다.

결론

10월 4일, 우리는 이탈리아의 팔레스타인 단체들의 소집 약속에 응했다. 이는 22일 파업에서 3일 파업까지 이어진 이전 2주의 정점으로서 유리한 시점에 위치했다.

첫 번째로 평가해야 할 데이터는 엄청난 [시위]참여다. 행진의 경로 자체가 참여한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담을 수 없었다. 이 요소는 우리가 광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가능성에 대해 추론할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킬로미터 단위의 뱀 같은 행렬은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로마의 대로를 따라 구불구불 나아갔고, 행렬의 끝에서 청년들은 도시의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해 옆길로 들어섰다. 그 시도는 물대포와 최루탄 분사 후 두 개의 포위망으로 수백 명을 가둔 경찰의 신속한 대응과 충돌했으며, 체포된 청년들은 신원 확인 후 석방됐다.

한편으로 도시의 다른 위치에서는 짙은 연기를 흩뿌리는 최루탄 발사와 함께 돌격이 있었고, 경찰차 한 대가 불탔으며, 늦은 저녁까지 여러 지역에서 충돌이 이어졌다. 현재로서는 12명의 연행자 중 2명의 체포가 확인됐다. 언론들은 "선과 악"의 진부한 서사를 재탕하며, 운동을 범죄화하고 분열시키려 시도했다. 전날 일어난 일의 현실과, 초당파적으로 총파업일의 모든 광장을 특징지었던 강한 갈등적 성격을 명백히 생략했다.

"가로막자"는 구호는 우리가 북쪽에서 남쪽까지 입을 모아 선언했듯, 최근 몇 주간 효과적인 가치를 띠었다. 제노바에서 리보르노, 트리에스테 등지의 항만 노동자들이 가르쳐주었듯, ‘가로막는다’는 것은 전쟁경제와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에 대한 자금과 물자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하나의 전례가 깨졌다. 이 순간 거리로 나온 모든 사람들의 태도 덕분이다. 자신, 자신의 삶, 자신의 시간을 실제로 내어놓는 것, 효과를 내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와 그를 지지하는 서방 정부들과 공범이 되지 않으려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말이다.

상기했듯, 조직된 부문 안팎에서 운동이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라는 차원에서나 전반적인 변혁이라는 차원에서나 ‘연속성’이라는 화두가 제기된다.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획에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한다. 2주에 걸친 투쟁의 성공과 지속, 확산에 공헌한 [정치사회적] 지형, 운동의 구성을 대중적으로 만든 언론의 역할, 이번 운동의 정치적 의미에 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의 생성과 더불어, 효과적인 블록을 지속적으로 구성해나갈 필요성을 고려해야한다.

눈부신 창문이 정상성을 찢었다. 이 순간의 예외성을 정상성으로 만드는 것은,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도박이다.

밀라노 도심 한복판에서의 가두 시위
밀라노 도심 한복판에서의 가두 시위

글 : 독립좌파 매체 '인포아우트' 편집위원회

번역 : 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