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타테칸’, 학생자치에서 피어난 캠퍼스 내 입간판 문화

일본 | ‘타테칸’, 학생자치에서 피어난 캠퍼스 내 입간판 문화

타테칸(立て看)이라 불리는 입간판은 나무판자에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거나 인쇄물을 붙여 학내외에 전시하는 일본 학생사회의 문화다.

2025년 2월 28일

[동아시아]일본학생운동, 대학, 일본, 도쿄, 문화예술, 프로파간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에 대해 일단 익숙해지면 익숙해진 것에 대해 비판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회의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도, 새롭게 접한 사회도, 각자의 사회에서 간과하고 넘어갔던 것들을 다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번에 소개할 일본 학생사회의 타테칸(입간판)은 종이에 입장을 써서 붙이는 한국 대학들의 대자보 문화에 익숙하던 내가 가격과 규모가 있는 목재를 사용하는 일본 대학들의 타테칸 문화를 탐문한 결과다.

타테칸(立て看)이라 불리는 입간판은 나무판자에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거나 인쇄물을 붙여 학내외에 전시하는 일본 학생사회의 문화다. 일본의 대학들은 대체로 전단지 배포에서부터 자체적인 학생자치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도쿄대와 같은 국립대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유연하기도하지만, 사립대의 경우엔 공인된 동아리를 제외한 학생들의 모임은 금지되기도 한다. 심지어 캠퍼스 내에서 전단지 배포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등의 사건도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반해 타테칸이 즐비한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학생자치가 살아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앞으로 이 글에서 소개할 학생자치문화로서의 입간판은 ‘타테칸’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2024년 도쿄대학을 뜨겁게 달군 수업료 인상의 현장에서 인상 저지를 외친 학생들에 대해 대학 당국은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 내에 ‘침입’했다고 발표했다. 학교당국의 ‘학생들의 캠퍼스 침입’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 정문 쪽을 화살표로 표시한 “오늘도 속속 학생 침입중!”이라고 적혀 있는 타테칸이, 재치있게 학생자치를 살려내고 있는 모습이다.
2024년 도쿄대학을 뜨겁게 달군 수업료 인상의 현장에서 인상 저지를 외친 학생들에 대해 대학 당국은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 내에 ‘침입’했다고 발표했다. 학교당국의 ‘학생들의 캠퍼스 침입’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 정문 쪽을 화살표로 표시한 “오늘도 속속 학생 침입중!”이라고 적혀 있는 타테칸이, 재치있게 학생자치를 살려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 글을 읽으며, 일본 학생자치 현장인 타테칸 문화로 함께 침입하도록 하자.

자! 침입~!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의 타테칸 문화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로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어마어마하게 많은 타테칸들을 볼 수 있다. 가지각색의 타테칸들이 버티고 있는 모습은 실로 ‘이 곳은 학생들의 해방구’라고 외치는듯하다. 타테칸은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 생활의 중요한 일부다. 팔레스타인, 미얀마, 콩고, 한국, 중국, 시리아 민중에 대한 지지뿐 아니라, 일상적인 동아리 홍보, 공연 홍보 등 정치적 색채가 옅은 내용도 있다. 또,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극우주의 성향의 타테칸마저 볼 수 있다.

코마바 캠퍼스 내의 타테칸들이 나열된 모습. ‘미스 도쿄대 콘테스트’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마바 축제 전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트위터 @tatekan_UT 제공
코마바 캠퍼스 내의 타테칸들이 나열된 모습. ‘미스 도쿄대 콘테스트’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마바 축제 전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트위터 @tatekan_UT 제공
코마바 캠퍼스 내부의 타테칸 행렬. 왼쪽부터 메이지대학 당국의 타테칸 탄압에 대한 항의,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 미얀마 민중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코마바 캠퍼스 내부의 타테칸 행렬. 왼쪽부터 메이지대학 당국의 타테칸 탄압에 대한 항의,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 미얀마 민중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도 도쿄대 타테칸동호회의 타테칸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에서 벌어진 위헌적 비상계엄 직후, 도쿄대 타테칸동호회에서는 그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서둘러 한글 쓰기를 연습했고, 만 하루가 지났을 12월 4일 자정녘 긴급하게 모여 한국 민중에 연대하는 타테칸을 제작했다.

‘윤석열은 퇴진하라, 한국민중에 연대한다!’ 급하게 한글을 연습하여 제작했지만 제법 잘 만들어졌다.
‘윤석열은 퇴진하라, 한국민중에 연대한다!’ 급하게 한글을 연습하여 제작했지만 제법 잘 만들어졌다.

2024년 도쿄대학을 뜨겁게 달군 학비인상 반대의 타테칸보다도 더 잘 보이는 입구 정면에 배치되어있다.
2024년 도쿄대학을 뜨겁게 달군 학비인상 반대의 타테칸보다도 더 잘 보이는 입구 정면에 배치되어있다.

한국 민중에 연대하는 타테칸이 제작된 직후 도쿄대 대학원의 입학 지원 사이트에 천안문 코드가 작성되어 중국인 학생들의 접속을 제한했던 것이 드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천안문 사건’처럼 중국 사회에서 금기가 된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는 페이지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 내 접속을 차단하는데, 이를 일부러 HTML 코드 내에 입력하여 의도적으로 중국인 학생들의 접속을 차단했던 것이다. 한국 계엄령 때와 마찬가지로 도쿄대 타테칸동호회에서 발빠르게 아래의 타테칸을 만들었다. HTML 코드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인터넷에 대한 비민주적인 통제방식에 편승하여 국적을 차별한 도쿄대에 대한 비판을 재치있게 표현하였다.

도쿄대 대학원 입학지원 페이지의 HTML코드에 천안문항쟁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는 키워드를 입력하여 중국인 학생들의 지원을 막았던 것이 들통났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비민주적 정보통제를 고발하고 있는 타테칸이다.
도쿄대 대학원 입학지원 페이지의 HTML코드에 천안문항쟁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는 키워드를 입력하여 중국인 학생들의 지원을 막았던 것이 들통났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비민주적 정보통제를 고발하고 있는 타테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들처럼 다소 정치적인 의의가 있는 타테칸들이 인상에 많이 남게 된다. 그러나 모든 타테칸이 정치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동아리 모집이나 행사를 안내하는 내용의 타테칸이 존재하는 등 도쿄대 코마바 캠퍼스에서 타테칸은 일상 속에 녹아있다. 또한 코마바 캠퍼스의 학생자치회에서는 자체적인 타테칸 규칙과 간판 제작과 설치에 대한 규정과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난 타테칸들도 제법 접할 수 있다.

공연을 소개하는 타테칸. 마치 설치 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공연을 소개하는 타테칸. 마치 설치 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모습을 더 이상 타테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단 타테칸이 놓이는 자리에 설치된 공연 ‘레 미제라블’의 소개 전시물이다.
이런 모습을 더 이상 타테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단 타테칸이 놓이는 자리에 설치된 공연 ‘레 미제라블’의 소개 전시물이다.
캠퍼스를 방문한 고교생들이 학생활동 체험을 하면서 만든 타테칸들이다. 각종 캐릭터나 유명인을 그렸다.
캠퍼스를 방문한 고교생들이 학생활동 체험을 하면서 만든 타테칸들이다. 각종 캐릭터나 유명인을 그렸다.
설치 주체가 불분명한 미니 타테칸. 뜬금없이 이런 내용의 타테칸도 종종 설치되는 모양이다. 해당 타테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졌다.
설치 주체가 불분명한 미니 타테칸. 뜬금없이 이런 내용의 타테칸도 종종 설치되는 모양이다. 해당 타테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졌다.

이외에도 세미나와 행사의 홍보나 사회적인 이슈의 주장 등 다양한 내용이 담긴 타테칸이 존재한다. 하지만 코마바 캠퍼스의 타테칸은 단순히 다양하다는 것만으로는 그 맛을 설명할 길이 없다. 가지각색의 타테칸들을 하나로 모아내고 있는 모습에서는 다른 대학의 캠퍼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학생자치의 기운을 받게 된다. 게다가 국내외에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 상당히 수준 높은 타테칸을 신속하게 제작하여 설치하고 관리되는 모습에서는 타테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의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앞서 살짝 언급했던 한국 계엄령과 중국인 학생 차별, 사진에서 얼핏얼핏 보였던 전쟁과 학살 반대의 타테칸을 제작했던 도쿄대 타테칸 동호회(@tatekan_UT)를 만날 수 있었다.

모든 대학에 타테칸을!

실제로 타 대학의 타테칸 탄압을 규탄하는 타테칸도 제작하는 등 도쿄대 타테칸동호회는 타 대학의 타테칸동호회 등과 연계하여 전반적인 학생자치를 지지하는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모든 대학에 타테칸을!”이라는 구호의 타테칸
“모든 대학에 타테칸을!”이라는 구호의 타테칸

도쿄대 타테칸동호회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동호회는 2018년 교토대에서 벌어진 타테칸 규제와 그에 맞서는 학생들의 항의행동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교토대에서의 타테칸 규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京都大学の立て看板 항목에도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교토시와 교토대의 타테칸 규제에 맞서 교토대 직원조합이 교토대와 교토시를 상대로 2021년 제기한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25년 2월 20일 결심이 선고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교토대의 학생들과 직원조합 등은 타테칸을 지키기 위해 이후에도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1993년에 결성되어 20년 넘게 활동 중인 유명 록밴드 ‘소울 플라워 유니온’(ソウル・フラワー・ユニオン)의 지지까지 포함되어있는 소개가 인상적이다.) 코마바 캠퍼스의 경우 학교 내에는 자유롭게 설치가 가능한 편이었지만 2016년부터 전철역부터 정문 사이의 길목에 타테칸을 설치하는 것이 금지되었기에 그것에 항의했던 것이 동아리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역부터 코마바 캠퍼스까지 정문 길목에 타테칸 설치를 금지하는 정책에 항의했던 당시의 농성장.
역부터 코마바 캠퍼스까지 정문 길목에 타테칸 설치를 금지하는 정책에 항의했던 당시의 농성장.

위 농성장은 코마바 캠퍼스와 가까운 코마바토다이마에 역으로부터 정문 사이에 있는 길 위에 있다. 결국 이 농성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타테칸 설치를 인정받아내는 성취를 이뤘고, 2024년 코마바 캠퍼스를 방문한 방랑객이 감동받은 타테칸의 행렬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코마바 캠퍼스를 비롯한 다른 대학들은타테칸을 일시에 탄압해왔던 것일까. 타테칸동호회 측에서 생각하는 타테칸과 학생차지의 의미를 질문했더니 상당히 멋진 답변을 받아서 이를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타테칸은 캠퍼스의 토지를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것으로, 대학 당국의 캠퍼스 관리와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타테칸 설치 가능 여부는 그 대학, 캠퍼스의 자유도를 가늠하는 잣대다. 동시에 학생 일반이 가진 자치와 자율, 반란에 대한 상상력의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하부구조인 캠퍼스의 풍경이 그곳을 다니는 학생들의 사상을 규정한다. 따라서 학생자치(회)와의 관계를 말하자면, 자치가 당국으로부터 타테칸을 지키고, 타테칸이 학생들 마음속에 자치를 키운다.

이처럼 타테칸과 자치의 상호관계는 학교 당국과 학생자치의 대립과정에서 성장해왔다. 마침 필자가 방문하던 시기 도쿄대는 단번에 100만엔 이상의 등록금을 인상하겠다는 충격적인 대학 본부의 입장 발표로 인해 등록금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된 농성 장소는 혼고 캠퍼스의 야스다 강당이었음에도 정작 그 농성이 벌어지는 혼고 캠퍼스에서는 2~3개의 타테칸만이 있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타테칸 동호회의 설명에 따르면 코마바에 있는 교양학부는 타 캠퍼스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입시 때에는 일방적인 철거가 일어나는 편이라고 한다. 게다가 도쿄대의 경우 코마바 캠퍼스 이외엔 타테칸이 허가제이며, 목재 등의 자재 조달 장소와 제작소, 동호회 본거지 등의 기반도 코마바에만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째서 코마바는 그런 특수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이는 타테칸동호회의 설명과 별개로 코마바에 있던 하나의 역사적 흔적을 토대로 상상할 여지가 있다.

코마바 캠퍼스의 학생 자치기숙사 정문 유적지
코마바 캠퍼스의 학생 자치기숙사 정문 유적지
자치기숙사 유적 터 근처엔 2024년 한동안 팔레스타인 지지 천막농성장이 세워졌다.
자치기숙사 유적 터 근처엔 2024년 한동안 팔레스타인 지지 천막농성장이 세워졌다.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에서 혼고 캠퍼스의 야스다 강당이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학생들의 일상 출입이나 관람이 엄격하게 금지된 공간으로 남았다면, 코마바의 학생자치기숙사는 2001년 철거될때까지 학생자치운동의 거점으로써 역사를 지속해나갔다는 것을 다수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교토대의 요시다 기숙사와 구마노 기숙사의 경우엔 한국에도 잘 소개되고 있지만, 코마바의 경우엔 2001년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코마바에만 있는 타테칸 제작소의 경우 학생 자치기숙사의 유적지에서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에 어렴풋이 학생자치의 유산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운 좋게도 타테칸동호회의 제작과정을 견학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타테칸의 제작은 학교에서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학생들의 자치공간에서 이뤄진다. 타테칸의 제작소는 타테칸동호회 뿐 아니라 가지각색의 학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타테칸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실제로 필자가 제작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여러 단위의 타테칸이 동시에 작업되고 있었다.

일단 타테칸의 구상과 그 바탕이 되는 그림 등이 결정된다면 대략적인 스케치를 한 다음 테이프로 색이 겹치지 않게 밑작업을 한 뒤 페인트로 색을 한겹 한겹 칠해간다. 간단해보이는 그림조차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업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타테칸을 제작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결코 힘든 일이다. 자재와 도구의 운반부터 채색 등의 타테칸을 제작하는 작업 일체가 구성원이 하나가 되는 공동작업을 필요로 한다. 자재의 준비와 운반, 목공, 밑그림, 색칠, 서예 등 타테칸동호회 구성원들의 작업은 상당히 감탄스러울 정도로 숙련되어 있었다. 타테칸 제작기법이 소실된 캠퍼스의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경우 제작 기법의 전수 등도 맡는다고 하였다.

코마바 캠퍼스의 타테칸 제작 공간
코마바 캠퍼스의 타테칸 제작 공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의 타테칸 제작과정.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밑그림, 테이프 표시, 색을 하나씩 입혀가고, 마지막에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이가 글씨를 새겼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의 타테칸 제작과정.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밑그림, 테이프 표시, 색을 하나씩 입혀가고, 마지막에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이가 글씨를 새겼다.

한국의 대자보 문화가 넓은 전지에 빼곡하게 글을 채우며 저렴하게 양으로 승부한다면, 타테칸은 많은 이들이 함께 제작에 참여하며 공을 들이며 질로 승부한다. 필자자가 본 타테칸들에서는 매우 진한 비용과 노력의 밀도가 느껴졌다. 물론 그에 따른 부담의 차이도 존재한다. 타테칸은 혼자서 제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한 판이라도 학교 당국에 의해 철거당하는 순간 공동의 노력과 돈이 상당히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기에 현실적으로도 타테칸은 구상하고 설치되는 순간부터 반드시 필사적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공동의 결과물로써 존재하게 된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아주 강한 수준으로 억압되는 현재의 일본 대학사회에서 타테칸 문화는 도쿄대 타테칸동호회에서 설명하듯 학생자치의 상징으로써 지켜내고 확장해야 할 공간이자 동시에 자치가 성장할 수 있는 거점이다. “싸우면 동료가 하나둘씩 탈락한다거나, 반대로 싸우지 않으면 동료가 늘어날 수 있다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지 않는다면 싸우는 것이 오히려 동료를 늘리는 것이죠.”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대중성을 위해 싸움의 수위를 낮추느냐 마느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경험했던 본 방랑객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타테칸동호회와 교류를 하면서 한국의 대자보 문화를 궁금해하는 반응을 받기도 하고, 한국의 대학에서 타테칸이 세워질 수 있는지 등을 질문받는 등 호의적인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한국 캠퍼스의 상황에서 ‘대자보의 자유’ 문제에 대해 학생자치라는 관점에서의 관심은 한일간 학생들이 서로 다른 형태와 다른 역사이지만 공통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희망을 작게나마 떠올려볼 수 있었던 행복한 경험이었다.

부록: 타테칸 관람기

타테칸을 견학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타테칸동호회가 추천하는 장소는 다음과 같다.

  • 도쿄대 코마바캠퍼스 : 역과 정문 사이, 정문과 1호관 사이, 식당 앞 등
  • 도쿄대 혼고캠퍼스 : 타테칸이 전혀 없는 날이 더 많다.
  • 교토대 : 구마노 기숙사나 요시다 기숙사 주변에는 항상 입간판이 있다.

이외에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교 캠퍼스에서 타테칸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이하 사진들은 본 방랑자가 이런저런 학교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타테칸들이다.

히토츠바시대학교 교내. 팔레스타인과 학비인상 반대의 조화
히토츠바시대학교 교내. 팔레스타인과 학비인상 반대의 조화
와세다대학의 타테칸은 전반적으로 가로가 얇은 편이다.
와세다대학의 타테칸은 전반적으로 가로가 얇은 편이다.
교토대학 요시다기숙사의 타테칸
교토대학 요시다기숙사의 타테칸
교토대학 쿠마노 기숙사
교토대학 쿠마노 기숙사

쿠마노 기숙사에서 만든 타테칸의 경우는 가로로 넓은 것도 있지만 그림의 채색 등이 화려하다. 늘어선 타테칸의 양도 압도적이지만, 그림의 수준 또한 상당하다. 타 학교에 비교해서도 독자적인 제작기법을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서 쪽에 간다면, 꼭 찾아가볼 가치가 있다.

글 : 돈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