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규정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재개되다
2024년 7월 29일
안전운임제 유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이 진행되던 2022년 11월 28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태원 참사로부터 불과 1개월, 사퇴 요구를 받던 장관이 ‘국가핵심기반 마비는 코로나19나 이태원 참사와 똑같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말한 데 당혹스러움과 분노가 모였다. 재난 대응에 무능했으면서, 노동자의 파업을 재난으로 규 정해 대응하다니!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시도의 의미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2024년 3월 15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시행령 입법예고를 계기로 이 사안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가 재난유형별 주관기관을 명확히 하겠다면서, 재난주관기관을 분류한 별표 1-3에 ‘국가핵심기반의 마비(「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쟁의행위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로 인한 마비를 포함한다)로 인한 피해’라는 문구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3월 15일 입법예고의 주요 제안사항은 일련번호 ‘가’에서 ‘너’까지 16개에 이르고, 이 중 위 문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재난 유형별 재난관리주관기관 규정 중 26번째인 ‘터’까지 꼼꼼히 봐야만 한다. 여러 개정사항에 슬그머니 쟁점 사항을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매일노동뉴스가 4월 14일 이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면서 관련 내용이 알려졌다. 4월 24일 민주노총은 이에 반대하는 공식의견서를 제출했으나, 정부는 7월 9일 입법예고대로 이 조항을 통과시켰다. 개정 시행령은 7월 1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가핵심기반을 보호하라’
‘국가핵심기반’은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국가 경제, 국민의 안전/건강 및 정부의 핵심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 정보기술시스템 및 자산”을 가리킨다.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핵심기반 마비는 시민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기보다, ‘국가 경제’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전통적으로 ‘재난’으로 규정된 유형이 아니다.
국가핵심기반보호Critical Infrastructure Protection: CIP는 군사전략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2차대전 시기 적국의 핵심 경제 거점을 타격해야 한다는 폭격 전술이 고안되었는데, 전후 미국에서 이는 국가핵심기반을 적국의 폭격으로부터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는 방위책으로 바뀌게 되었다. 국가핵심기반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원인은 적국의 폭격 외에도 다양하므로 (지진으로 인해 철도교통이 마비되거나, 화재로 인해 통신망이 마비될 수도 있다) 국가핵심기반보호는 안보 분야를 뛰어넘어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높았다. 7~80년대 미국에서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보고서들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국가핵심기반보호의 중요성은 냉전 종료 후 안보의 범위를 사회 위기관리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포괄적 안보’ 흐름과 맞물리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96년 클린턴 행정부가 국가핵심기반보호를 중요한 국가의 의무로 명시적으로 제기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보고서는 국가핵심기반을 위협하는 재난은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며, 적국의 폭격만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나 반체제 인사들로부터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국가핵심기반보호의 중요성은 더 높아져, 재난 관리의 한 분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가핵심기반보호 개념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도입된 계기는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이었다. 2003년 5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 기간 동안 부산항과 광양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평소의 30% 수준으로 떨어졌을 만큼 파업의 파괴력은 매우 강했고, 이는 막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노무현은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화를 많이 내며, 단호한 대응을 지시하고 군 대체인력 투입도 적극 검토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파업은 2주일 만에 정부와의 협상 타결로 종료되었는데, 노무현은 파업 종료 직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서 ‘안보‧재난분야의 위기관리체계에 비해 파업 등과 같은 사회적 갈등에서 야기된 사회적 위기에 대한 관리체계가 아주 미흡하다’며 NSC 위기관리센터에 관련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앞서 설명한 국가핵심기반보호라는 포스트냉전적 안보 담론, 재난의 예방 관리로 안보의 대상을 확대하는 ‘포괄적 안보’ 개념이 이 조치를 정당화했다.
NSC는 이듬해인 2004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유형별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을 만들었다. 이 지침과 매뉴얼은 국가핵심기반을 위협하는 원인행위로 “테러, 대규모 시위‧파업, 폭동, 재난 등”을 들었고, 구체적으로는 “금융전산 및 운용요원의 파업, 태업, 시설점거 등의 인적 재난”, “특정산업 트럭 분야 종사자들의 집단 운송거부에 따라 관련화물의 운송 마비”,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인한 대규모 병원 서비스 중단” 등을 꼽았다.
화물연대, 금융노조 등 해당 산업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차원의 규탄집회도 이어졌다. 노동조합의 비판에 정부는 “지침과 매뉴얼은 기존 법질서에 우선할 수 없으므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해명했지만, 2005년 11월 국가핵심기반을 행정부의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재난안전법 일부개정안을 제안했다. 법의 하위에 있는 지침과 매뉴얼을 먼저 바꾼 후, 법을 그에 맞춰 변경하려는 변칙을 쓴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비판에도 이 법은 제정되어 2007년 1월 26일 공포되었다. 정부는 단서조항을 삽입하라는 민주노총의 계속된 요구를 법이 아닌 시행령에 반영했다. ‘재난사태의 선포대상 재난’을 규정하는 시행령 제44조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장에 따른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기반시설의 일시 정지를 제외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이다. 이는 2007년부터 2024년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회재난 규정으로 가능해지는 조치
이번 개정으로 이제 「재난안전법 시행령」에는 ‘쟁의행위’라는 단어가 두 번 언급된다. 제44조 1항에서는 재난사태 선포대상 재난에서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 마비의 경우는 ‘제외한다.’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정한 별표 1-3에서는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 마비도 ‘포함한다.’ 이런 조항의 충돌은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가? 재난사태 선포는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선포되며, 인력‧장비‧물자의 동원, 위험구역 설정 등의 긴급 조치가 뒤따른다. 「재난안전법」 제정 후 약 20년간 재난사태 선포는 네 번뿐이었다. 정부는 재난사태는 매우 드물게 선포되는 것이라며, 시행령 44조의 제외 규정보다 별표 1-3의 포함 규정을 우선하려고 할 것이다.
법 규정은 특정한 행정조치를 수반한다.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 마비를 사회재난으로 명시한다는 것은 두 가지 조치를 법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첫째, 파업시 대체인력으로 군 인력 투입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사회재난은 자연재난과 달리 원인제공자에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 비용의 전부‧또는 일부를 청구할 수 있다. 즉, 원인제공자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재난안전법을 파업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데 사용해왔다. 철도파업에 대비한 조치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국가핵심기반보호를 이유로 국방부에서 대체기관사를 양성하고, 2013년, 2016년, 2019년 철도노조의 파업 때마다 군인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했다. 군 인력 투입은 「재난안전법」 제39조 동원명령을 근거로 한 것이었는데, 정권을 가리지 않고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군 인력 지원이 불법이라는 소송을 제기해, 필수유지업무 규정을 준수하는 쟁의행위를 사회재난으로 보고 대체인력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노조법의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2019년 서울중앙지법 판결). 이번 시행령이 바뀐 것 만으로 이 판결이 쉽게 뒤집히긴 어렵겠지만, 합법 파업에도 계속해서 대체인력을 투입해왔던 그간의 역사는 정부가 이번 시행령 ‘정비’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회재난 원인제공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2017년에 신설된 조항이기 때문에 아직 별다른 사례가 없다. 다만 세월호 참사 시 청해진해운 및 실소유주 일가에 대한 구상권 청구 재판에서 수색과 구조를 위한 유류비, 민간잠수사 인건비 및 피해자 배상금과 장례비 등을 구상권 청구 범위로 인정한 점,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경찰이 파업을 진압하면서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했었다는 점을 참고해 이후 정부의 대응을 예측할 수 있겠다. 국가핵심기반 마비를 이유로 쟁의행위를 진압하거나, 이외 다른 수습비용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한 비용을 노동조합에 청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정에서 다툼이 있겠지만 쟁의행위에 대해 고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동조합을 압박했듯이 재난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같은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정부가 대비해야 할 재난은 무엇인가
9‧11 이후 테러로부터 국가핵심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화된 미국에서는 최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노스다코타의 송유관 건설에 맞서 싸운 스탠딩 락 천막시위가 일어나자 미국의 각 주에서는 국가핵심기반을 보호해야 한다며 파이프라인과 고속도로 봉쇄를 범죄화하는 시도가 급증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24개 주 의회에서 국가핵심기반 주변에서 벌이는 시위를 범죄화하는 법안이 최소 42건 발의되었고, 16건이 통과되었다. 국가핵심기반 보호 논리가 사회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 논리가 주로 인종 차별과 급진적 환경운동 탄압과 맞물렸다면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을 향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노동조합에 우호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에는 태프트‧하틀리법을 통해 파업이 국가경제 또는 안보를 위협하면 강제로 복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탄압의 우회로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한국은 2004~2007년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해 개입하려는 시도를 계속했으나, 2007년 단서조항이 시행령에 삽입된 이후에는 재난안전법이나 시행령을 우회로 삼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법‧제도가 진전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면서 탄압의 우회로로 ‘재난’ 혹은 ‘안전’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노골화되기 어려웠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멈춰있던, 재난 규정을 둘러싼 계급투쟁을 다시 시작했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신, 연쇄살인범 검거에 전경을 동 원해달라는 송강호의 요청에 ‘전경은 모두 시위를 진압하러 갔다’는 답이 돌아온다. 행정력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잦은 재난을 맞닥뜨리고 있다. 노동 탄압의 우회로로 재난안전법을 구상하고 적용하면서 정작 필요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자원을 배치하지 못할 때, 우리가 잃게 될 것이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거리를 걷다가, 출근을 하다가, 일터에 머물다가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정부가 대비해야 할 재난은 무엇인가.
참고 자료
- 신수정, 「필수공익사업과 대체근로. 철도노조 파업시 군인력 투입의 문제점」, 『법학연구』, 인하대학교, 2023.
- 장진범, 「“노동자의 단체행동은 재난이 아니다.”」, 민주노동연구원 워킹페이퍼, 2024.
- Bosworth, K., Chua, C., 「The Countersovereignty of Critical Infrastructure Security. Settler: State Anxiety versus the the Pipeline Blockade」, Antipode 55(5)., 2021.
- Collier, S., Lakoff, A., 「The vulnerability of vital systems: How ‘critical infrastructure’ became a security problem, Securing 'the Homeland': Critical infrastructure, risk and (in)security」, Routledge, 2008.
글 :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 재난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