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양안 통일도, 팔레스타인 해방도 지지하는 ‘망각세대’의 투쟁 미학
2024년 6월 30일
몇 주 전 중국 대륙 전역 곳곳에서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항의하고, 연대를 표하는 산발적인 행동들이 나타났다. 이런 행동들은 주로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소년들이 주도했는데, 대학 입학 시험이라는 보편적이지만 독특한 시공간에서 이뤄진 것이기에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에 도는 여러 영상들에 따르면 이 청소년들은 ‘가오카오(高考)’라 불리는 대입시험 직전 혹은 직후에 준비해둔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고등학교 기숙사 한복판을 뛰어다녔고, 때로는 침묵 시위를 벌였다.
한 영상에서는 고등학생 A와 B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게양했는데, 곧바로 경찰에 의해 압수되는 모습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구술시험 중인 한 시험 면접관이 학생 C에게 “이 시험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지시하자, 구술시험에 응시한 학생 C가 “강에서 평원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从河流到平原,巴勒斯坦终将获得解放)”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본래 이 구호는 ‘강에서 바다까지’(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이지만, 이 학생이 잘못 말한 것으로 보인다. 6월 9일 장쑤성 쿤산(昆山)의 한 시험장 앞에서는 여학생 D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 같은날 장쑤성의 또 다른 시험장 앞에서도 2명의 수험생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행진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헤이룽장성 다칭(大庆)에서는 수험생 E가 대입시험을 마치기 무섭게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후난성 후난대학 캠퍼스 안에서는 한 외국인 남성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단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데 얼마되지 않아 이 영상들은 ‘더우인(틱톡)’ 등 중국 내의 여러 숏폼 소셜미디어상에서 삭제됐다. 중국 내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다른 시위 사진이나 영상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한때 ‘더우인’ 플랫폼상에는 등산객들이 태산 정상에 올라 오성홍기와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영상이 올라왔었는데 짧은 시간만에 57만 개의 ‘좋아요’를 받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또 다른 등산객은 화산과 황산 꼭대기에 올라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현재 이 영상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표하는 메시지들은 중국의 소셜미디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령 한 시민 F는 음식배달용 자전거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걸고 일하는 모습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고, 또 다른 다수의 시민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 사진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게시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FREE PALESTINE” 글자가 적힌 티셔츠나 스티커, 뱃지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팔레스타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 통제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중국 내 상황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 학살 문제에 명쾌하게 자기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서방의 책임을 훨씬 많이 상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안이 자국의 통치권력을 겨누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안에 대한 보도나 분석에 대해서는 다른 국제 이슈들보다는 언론 통제를 가하지 않았다. 물론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이스라엘 점령당국에 대한 반대를 넘어, 모든 피억압자들의 보편적 해방과 연결된다면 중국의 통치권력에게도 ‘민감한’ 주제로 번질 수 있다. 일부 청소년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자, 곧바로 삭제된 것만 봐도 이런 양가적 측면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안에 대한 대중 인식의 공백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허베이성 스자좡에 사는 학생 D는 <스자좡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팔레스타인도 하루빨리 평화를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온라인에서 제재받지 않았는데, ‘양안(대륙-대만) 통일’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등치시키는 이런 언술은 중국 대륙의 대중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굴절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한 평론가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중국 국민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행동이 실천 양식으로 등장한 것은 당국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일 것이다. 가령 한 청년은 오성홍기와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산 정상에 오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홍슈’에 게시했는데, 이는 홍콩 항쟁이 한창이던 2019년과 2020년 중추절 시기 사자바위에 올라 ‘광복홍콩’이라고 적힌 깃발을 게양했던 행동들을 연상시킨다. 소셜미디어에서 팔레스타인에 지지하는 제스처를 퍼뜨린다던지,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대한 보이콧 캠페인을 제안하는 실천들 역시 홍콩 반송중 운동에서의 ‘황색경제권 캠페인’을 연상시킨다. 실천의 형식부터 미학까지 홍콩 항쟁이 남긴 유산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두 사람은 홍콩 항쟁과 최근 중국 청년들의 행동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한 모양이다. 2012~17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을 역임한 렁춘잉(梁振英)은 미국 전역의 대학들에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중단을 촉구하는 대학생 점거 시위가 불붙은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조롱 섞인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했다.
“미국 캠퍼스에 있는 시위자들에게.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신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네이선 로(羅冠聪)를 캠퍼스 시위에 참여하도록 초청할 것 을 건의합니다. 이 사람은 과거 홍콩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낸시 펠로시 등 미국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가 합류하면 반드시 날개를 달아줄 것입니다.”
247만 명의 팔로워를 지니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상당히 우경화된 포퓰리즘 선동을 펼치는 ‘상제지응(上帝之鹰)’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미국 대학생과 경찰의 충돌 영상을 게재했다. 그러자 팔로워들은 홍콩 항쟁의 대표적 구호를 전유해 “시대혁명, 광복미국(时代革命,光复美国)”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는 반미 감정에 기댄 조롱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전유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맞선 미국 대학생들의 투쟁을 홍콩 반송중 운동과 연결시킨다.
중국 민족주의 경향성이 강한 대표적인 인터넷언론 ‘관찰자망(观察者网)’에서 네티즌들은 팔레스타인 사안에 대해 대체로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테러는 없고, 점령에 맞서 저항할 뿐이다”라고 댓글들을 남겼는데, 이는 홍콩 항쟁 시기 시위 참여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내몬 당국에 대해 시위 지지자들이 한 말과 일치한다. 당시 홍콩 정부 당국이 반송중 운동 참가 시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자 사람들은 “테러는 없으며, 부당한 폭력에 맞서 저항할 뿐이다”라고 항변한 바 있다. 또, 1990년대 이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시위에 나선 위구르족 사람들은 쉽사리 ‘테러분자’로 몰리곤 했다. 이들 위구르족 사람들은 대부분 ‘테러’와는 거리가 멀지만, 국가권력은 정치적 반대 목소리를 ‘테러’로 치부함으로써 손 쉽게 반정부 흐름을 일소하고자 시도해왔다. 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공히 공유했던 이러한 흐름은 군사화된 축적체제의 중요한 면모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신장지역의 위구르족 단체들을 탄압했는데, 이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부시 정부가 내세운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불과 몇 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민중은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역사적·담론적 단절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동시대 청년들의 역사적 ‘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의 ‘왜가리’는 혼돈과 폭력, 억압으로 점철된 다른 한 세계에서의 일을 모두 “잊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이 ‘왜가리’의 말대로 시시각각 어느 한쪽으로 이동해 다른 한쪽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에 의한 집단학살과 인구절멸 상황에 직면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 단절을 극복하고, 우리의 해방을 보편의 언어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대륙 내 애국주의 실천은 “ 팔레스타인 해방”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굴절된 외침이 역사와 국경을 넘어 연결되어야 식민주의에 맞선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