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거리 아웃리치 ① | 맥도날드 난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4년 2월 19일
이 글은 홈리스의 현실과 밀접한 기사들을 통해 홈리스 당사자들의 소통과 여론 조성의 창구가 되고자 하는 월간지 '홈리스뉴스' 제120호에서 타국 홈리스 소식을 한국 현실과 비교해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인 [세계의 홈리스] 코너에 실렸다. 편집부의 동의 하에 공동 게재한다. 필자는 현재 홍 콩에서 체류하고 있다.
지난 여름, 한국은 특히 더웠다. 폭염과 폭우 등 기후재난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했다. 한국(북위 33°~43°)보다 남쪽에 위치한 홍콩(북위 22°9′~22°37′)은 여름에 27도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을만큼 덥고, 열대 기후 지역에 위치해 있어 매우 습하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홍콩 폭우 최고 기준인 ‘흑색 경보’가 여러 번 발령됐고, 태풍 ‘사올라’로 인해 지하철 몇 개 역이 침수되기도 했다.
여름이 너무 덥다고 여겨지는 한국에서 왔음에도 홍콩의 습도와 더위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9월부터 현지 사회운동단체 SoCO(Society for Community Organization, 香港社區組織協會, 이하 '소코')와 아웃리치를 함께 나가게 됐다. 소코는 새장집 등 쪽방 주민, 노인, 이주민, 여성, 어린이, 홈리스, 저임금 노동자, 난민, 소수민족 중 홍콩의 소외된 계층이 복지 정책을 수혜받을 수 있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을 직접 만나며 조직하는 단체다. 홍콩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삼수이포(深水埗)’에 있는 소코의 한 지부는 여러 의제 중 홈리스 의제에 중점을 두고 대응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하는 홈리스 아웃리치는 2대의 벤에 나눠 타 삼수이포 소코 사무실에서 출발한다. 가장 먼저 향한 홍콩 컨벤션 앤 익스히비션 센터(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는 구룡반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침사추이’에 위치해있다. 홍콩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페리피어(Ferry Pier) 바로 옆에 있어 야경을 보려고 모인 관광객들로 가득하며, 매일 각종 전시와 공연, 박람회가 진행되어 북적북적하다.
10시가 넘으면 홈리스들은 공공 건물인 이곳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한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이곳에서 진행하는 공연이나 전시가 빨리 끝나 밤 9시에도 홈리스들이 잠자리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시 반은 되어야 한다. 만약 공연이 늦게 끝나면 더 늦게 자리를 깔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비원들이 그들을 내쫓는다. 센터는 홍콩의 문화체육관광국 소속 공공 건물로 시민이라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경비원들은 ‘도시 미관’을 운운하며 사람이 오가지 않을 때만 홈리스들을 허락한다. 센터 한 가운데에는 멋진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비싸 이 곳에 가장 자주 오래 머무는 홈리스들은 이용하기 힘들다.
홍콩의 중심가에 위치한 이 센터 주변에는 1박에 몇십만원이나 하는 5성급 호텔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은 홍콩에서 가장 많은 홈리스들이 머무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의 한강같은 빅토리아 하버 바로 앞에 있어 밤 야경이 멋있기로 유명하기도 한 이 곳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홍콩의 모순을 드러내는 공간 이다. 통조림 콘지(한국의 흰죽과 비슷하며 홍콩 사람들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주로 먹는다), 팩 레몬차, 그리고 소코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소개하는 소코 리플렛을 나눠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익스히비션 센터는 홍콩에서 홈리스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도 따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이 있다. 우리는 육교 아래, 공원, 지하철역, 24시간 맥도날드 등 다양한 곳을 찾아다녔다. 토카완 공원(土瓜灣海濱公園)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처럼 벤치에 누울 수 없게 팔걸이를 만들어놓은 것을 보았다. 그래서 홈리스들은 벤치 밑에 자리를 깔고 잔다. 홍콩은 덥고 습해서 거리에 바퀴벌레와 쥐들이 많다. 하루는 그곳에서 미스터 야우를 만났다. 한동안 보이지 않으셨다가 다시 만났는데, 폭우를 피해 공공병원 복도 벤치에 머무르셨다고 했다. ‘잘 지내시죠?’와 같은 의례적인 인사 후에 별안간 핸드폰을 보여시며 거리에서 주웠는데, 쓸 수 있는건지 물어보셨다. 홍콩은 홈리스들 중 50% 정도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때 당국의 방역 정책으로 인해 QR코드를 찍어야만 모든 곳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고, 핸드폰이 있어야 직업을 구하거나 복지 제도에 접근하기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 지하철역 대부분은 밤에 바깥과 통하는 철문을 닫기 때문에 지하철역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몽콕역을 포함한 몇 개의 지하철역은 바깥 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 연결된 공간에 홈리스들이 많이 머문다. 또, 공공 축구 경기장의 관중석 위에 커버가 덮이면 그 밑에서 자기도 한다. 바깥 문을 닫지 않는 지하철 역 중 하나인 오스틴 역에 방문했던 날에는 그곳에 4명 정도가 있었다. 출구와 출구를 연결하는 지하도의 역할이기도 해서 밤새 불이 켜져있다. 환한 형광등에 푹자기 힘든 그곳에 더위와 벌레를 피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여름 홍콩은 태풍과 폭우가 잦다. 폭우 후의 어느 날, 야외 육교 위에서 만난 마오웡 씨는 폭우 때 매트리스가 물에 떠내려가서 어딨는지 찾을 수 없다고 하셨다.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자 전에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며 반가워했던 마오웡 씨는 그래도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다며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매트리스 대신 요가매트와 상자로 만든 집 안에는 가전과 책들, 요리 도구까지 있었다. 보통 육교 위 상자집에서 낮에도 시간을 보내지만 근처 지하철역 직원이나 경찰이 옮겨 달라고 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근처 공원에 가있어야 한다.
홈리스들이 많이 머무는 또다른 공간은 맥도날드가 있다.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인 홍콩은 그만큼 홈리스들도 많은데 24시간 맥도날드는 그들을 위한 집이 되었다. 맥도날드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맥난민(McRefugee)’, ‘맥슬리퍼(McSleeper)’ 등 신조어도 생겼다. 코로나 시기 24시간 맥도날드가 많이 줄어들며 맥난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홈리스 상태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다른 잘 곳을 찾아 맥도날드를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코 활동가도 오랜만에 만났다고 한 몽콕 24시간 맥도날드의 한 홈리스는 코로나 때 맥도날드가 일찍 문을 닫는 바람에 다른 푸드코트에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대니웡 감독의 2019년 영화 『맥로인(麥路人)』은 맥도날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쫓기고 위험에 노출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맥로인>의 영문 제목은 "I’m Living It"이다. 맥도날드의 광고문구 ‘I’m Loving It’에서 따온 이 제목처럼 아름다운 야경이 화려하지만 비정한 도시 홍콩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혹은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하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24시간 맥도날드가 줄어들어서 맥난민이 줄어든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모두가 ‘살아갈 권리’를 위해서는 홈리스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며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 변화는 한국에서 홍콩까지 국경을 가르지 않고 더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금융도시 홍콩의 거리 아웃리치 이야기 ②편에서 계속]
글 : 이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