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철도 노동자들과의 국제연대 20년이 남긴 성과와 과제

일본 철도 노동자들과의 국제연대 20년이 남긴 성과와 과제

한‧일 노동자 국제연대로 전쟁을 막아내자! 민영화! 노동탄압에 맞서 함께 투쟁하자!

2024년 1월 10일

[동아시아]일본국제주의, 노동조합, 일본, 노동운동, 반전평화, 민영화

지난 2023년 11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일본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이하 '도로치바')의 국제연대 사업이 한·일 양국에서 연달아 진행됐다. 1979년 국철노조 동노본부로부터 분리독립한 도로치바는 1998년부터 매년 11월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동조합의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 전국금속기계노동조합 미나토 합동과 함께 ‘투쟁하는 노동조합운동을 되살리자’라는 기조로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를 진행해왔다.

두 조직의 국제 교류는 20년 전 이라크 전쟁과 파병 반대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도로치바가 이 대회에 미국의 IWLU(샌프란시스코 노동자 평의회의 핵심노조인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과 한국의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초청하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자 국제연대 사업을 강화했던 것이 발단이 됐다. 도로치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3년 2월, 전쟁 반대를 위한 72시간 파업을 조직한 바 있으며, 전쟁 반대와 평화헌법 9조 개정 반대 등을 내걸고 꾸준히 반전운동을 전개했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2023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지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연대 활동이 더욱 의미심장해진 해였다. 또한 일·한 양국 공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민영화 공세가 이어져, 사회공공성과 민중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저항세력인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노조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 우리는 전쟁 반대, 민영화와 신자유주의 공세 저지, 노동탄압 저지라는 공동과제를 중심으로 이어진 한·일 국제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도로치바와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전국철도노조가 만나 민영화 저지 투쟁과제를 공유했다. 2023.11.10.
도로치바와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전국철도노조가 만나 민영화 저지 투쟁과제를 공유했다. 2023.11.10.

민영화 막아내는 한-일 철도노동자 연대

11월 10일 도로치바 방문단의 첫 일정은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방문 간담회였다. 당시 철도노조는 KTX 분할매각 민영화 중단과 KTX-SRT 통합을 주요 요구로 한 9월 1차 파업 이후, 철도산업안전법 개악안 추진에 대응하기 위한 2차 파업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날의 간담회와 뒤풀이에서는 투쟁을 결의하며 삭발한 철도노조 대표자들을 바라보는 도로치바 동지들의 눈시울이 종종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공공부문 민영화가 본격화됐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2002년 발전, 가스, 철도 공동투쟁)과 민중적 저항(2001년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 및 해외매각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 이러한 흐름을 일정하게 저지한 힘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 역시 철도 민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저항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의 국철 분할, 민영화 추진과정은 1983년 본격화되어 1987년 4월 1일 7개 JR 각사가 발족해 분할매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로치바는 굽히지 않는 민영화 저지 투쟁을 이어왔다. 1985년, 1986년에 걸쳐 분할 민영화 반대를 위한 두 차례의 파업투쟁을 전개하였고, 1988년 히가시나카노역 탈선 전복사고를 계기로 반합리화·운전안전 투쟁을 강화했다.

민영화가 이뤄지던 1990년에는 1047명 국철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도로치바는 이들 해고자 투쟁을 지속해오는 데 역할을 해왔으며, 이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은 민영화와 노동탄압의 쟁점을 드러내는 불씨로서 이어지고 있다. 도로치바는 적자노선 폐선, 외주화에 대한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등 끝나지 않은 민영화 저지 싸움을 헌신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2023년 도로치바의 세키 미치토시 위원장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2023년 도로치바의 세키 미치토시 위원장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자 국제연대

최근 한국 사회에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에 대한 규탄행동 등 반전 운동은 2003년 이라크 전쟁반대 운동에 비해 아직은 널리 확산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전쟁반대 행동에 아직까지 나서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11월 12일 도로치바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교류 20주년 대회에서 전쟁반대를 결의하는 한일 노동자 공동성명(아래 첨부)이 발표된 점은 매우 뜻 깊다. 그에 합당한 실천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산별 대표자와 도로치바 집행위원이 한일노동자 공동성명을 낭독하며, ��전쟁반대, 민영화 노동탄압 저지 투쟁의 결의를 높였다. 2023.11.12.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산별 대표자와 도로치바 집행위원이 한일노동자 공동성명을 낭독하며, 전쟁반대, 민영화 노동탄압 저지 투쟁의 결의를 높였다. 2023.11.12.

11월 18일 일본 치바시 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노동자국제연대집회와 11월 19일 도쿄 히비야음악당에서 개최된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에서 도로치바의 세키 미치토시 위원장은 전쟁반대와 민영화 저지 투쟁을 강하게 호소했다. 도로치바는 '무기거래 중단을 요구하라'는 10월 16일 팔레스타인 노동조합의 전세계 노동조합에 대한 긴급요청에 화답해,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활동을 전개중이다. 가령 미국 서부항만노조(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 10지부 현장인 오클랜드 항구에서는 이스라엘 무기를 운송하는 선박의 출항 저지 투쟁이 전개됐는데, 이런 투쟁이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2022년에 비해 600명 정도 참가자가 늘어 2800명 가량의 참가자가 모인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전쟁반대 운동이 전국적인 조직화 강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23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에서는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 중단! 전쟁반대를 위한 노동자국제연대가 강조되었다. 2023.11.19.
2023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에서는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 중단! 전쟁반대를 위한 노동자국제연대가 강조되었다. 2023.11.19.

한편, 개항한 지 46년이 된 나리타 공항 한편에는 여전히 토지 강제수용과 공항의 군사적 이용에 저항하며 투쟁 중인 농민이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리즈카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3년 11월에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집회에서 산리즈카 농민 시토 타카오는 기시다 정권의 재무장화를 위해 나리타공항 등 민간공항의 군사이용을 공언한 사실을 규탄하며 투쟁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수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도로치바 노동자들은 전쟁 반대를 위한 실천을 놓지 않고, 민영화와 노동탄압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왔다. 도로치바 노동자들의 진심 어린 연대 의지와 우애가 한일 노동자 국제연대를 20년간 이어오게 한 힘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파병에 반대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노동자 국제연대의 기치를 함께 들었고,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투쟁하는 깃발을 놓지 않았던 우리의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방일단은 첫 일정으로 나리타 공항 토지 강제수용에 저항하는 산리즈카 농민 시토 타카오의 집을 방문했다 2023.11.18.
민주노총 서울본부 방일단은 첫 일정으로 나리타 공항 토지 강제수용에 저항하는 산리즈카 농민 시토 타카오의 집을 방문했다 2023.11.18.

💾2023년 11월 12일에 열린 한일국제교류 20주년 기념식 자료집

참고 | 한‧일 노동자 공동성명

우리 한‧일 노동자는 국제연대 2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 직면한 중대한 정세 속에서 아래와 같이 호소합니다.

일본 기시다 정권은 미 국가안전보장전략의 일익을 담당하고 방위비 ‘5년간 43조엔’ 규모의 군사력 강화, 여러 반동 법안 통과 강행, 오키나와-남서제도 군사거점화 등 ‘전쟁가능국가’로 치닫고 있습니다. 원전 재가동‧핵무장을 위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강행했습니다. 이러한 전쟁정책과 함께 민영화 공세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간사이 레미콘지부에 대한 사상 초유의 탄압 사태와 JR의 ‘노조 없는 사회’ 만들기 공세 등 노동조합 탄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윤석열 정권은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긴장을 고조시키며 전쟁위협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또한 윤석열 정권은 노골적으로 가진 자의 이해를 대변하며 노동자민중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비롯한 민주노총 탄압과 노조 혐오, 노동시간제도 및 임금체계 개악, 철도, 연금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개악을 시도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일 노동자는 소중한 연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한‧일 노동자 연대야말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전쟁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는 한‧일 반동정권에 맞서 함께 투쟁하고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을 반드시 저지할 것을 결의합니다. 또한, 우리는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물리치고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지키는 투쟁하는 노동운동의 연대를 더욱 진전시켜나갈 것입니다.

한‧일 노동자 국제연대로 전쟁을 막아내자!
민영화! 노동탄압에 맞서 함께 투쟁하자!

2023년 11월 1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지역본부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

전국노동자대회 행진을 함께 한 도로치바 방일단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2023.11.11
전국노동자대회 행진을 함께 한 도로치바 방일단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2023.11.11

글 : 최예륜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