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파업과 정권퇴진 시위에 나선 이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파업과 정권퇴진 시위에 나선 이유

방글라데시가 최저임금 인상과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요동치고 있다.

2023년 12월 4일

[읽을거리]국제방글라데시, 최저임금, 노동운동, 대중시위, 글로벌 공급사슬

방글라데시가 최저임금 인상과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요동치고 있다. 초국적 의류브랜드 하청공장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파업이 동력이 됐고, 야당들의 정권 퇴진 요구가 보태졌다.

방글라데시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 국민당(BNP)과 방글라데시 자마트-이슬라미, 그밖의 군소정당들 역시 지난 2022년 12월부터 현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정부의 퇴진과 1월 총선을 위한 중립 정부 구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퇴진 요구의 근거는 현 정부의 지난 선거 조작 의혹이다. 지난 2022년 실시된 12대 총선에서 쓰인 전자투표기의 오작동과 결함 등으로 다수 선거구에서 선거 중단과 지연이 발생한 바 있다. 2014년과 2018년 총선에서도 기술적 결함에 더해 부정투표와 조작 의혹이 제기된 적 있다. 현 정부는 투표 조작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야권은 중립내각이 들어서지 않으면 총선을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10월 28일부터 총선을 앞두고 중립정부 구성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다. 방글라데시 국민당(Bangladesh National Party; 이하 '국민당')은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총파업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방글라데시 당국은 국민당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국민당 사무실을 범죄 현장으로 규정했다.

국민당에 따르면 시위와 파업 참가자, 야당 지도자, 활동가를 포함해 지금까지 2만8,3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최소 16명이 죽었으며, 5,500명 이상이 다쳤다.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 대원 및 경찰 부대가 배치되어 최루탄, 고무탄을 발사하며 강제해산을 시도하는 등 시위 참가자들을 탄압했다. 고막 파열과 균형 상실, 난청을 포함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음향 수류탄이 사용되기도 했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민당 당원 500만 명의 절반이 기소될 위협에 직면해 있다. 국민당 사무총장 미르자 파흐룰 이슬람 알람기르, 공동 사무총장 카이룰 카비르 호콘을 비롯해 부의장, 상임위원 등 수많은 지도부들은 뚜렷한 혐의도 없이 체포되었다. 교도소는 이미 수용인원의 2배 이상 수감으로 포화상태며, 방글라데시 경찰과 군은 무력사용, 임의체포, 고문, 살해 등을 자행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대한 서구 자본의 복잡한 속내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자 식민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완수한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장녀인 현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1996년부터 5년간 총리를 지냈고, 2009년부터 3연임에 성공했다. 군사 쿠데타가 계속되었던 정치상황에서 2004년에는 야당 대표로 암살 표적이 되기도 했으며, 과거 군사정권 소속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당 정권의 탄압으로 구속된 적도 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하시나 정부가 정권을 잡았고, 국민당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국민당도 하시나를 억압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현재 국민당이 주장하는 정부 탄압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시나 총리는 집권 기간 동안 경제 성장으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철권통치로 야권과 인권단체, 노동자를 탄압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하시나 총리의 아와미 동맹이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 를 통해 수출 중심 의류산업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방글라데시가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방글라데시에 60억 달러(한화 약 7조 6,020억 원) 이상을 지원한 바 있다. 2021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대미 수출액은 83억 달러(약 10조원 5000억)인데 반해, 대미 수입은 23억 달러(약 2조9000억)로 큰 대미 무역흑자를 누려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필수원자재 가격 급등과 사상 최고 실업률 기록 등 경제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고, 방글라데시의 대중들의 삶은 점점 더 열악해졌다.

한편 2013년 제 1야당인 국민당의 한 인사가 실종되었는데, 최근 미국 대사가 실종 피해자의 집을 방문하면서 여당인 아와이연맹이 수세에 몰리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아와미연맹은 국민당 집권 하에서 발생한 실종과 살해 혐의도 조사하라며 미국 대사를 협박해 대사의 방문 일정이 단축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미국 대사는 방글라데시의 모든 의혹을 심각하게 다루겠다며 방글라데시 인권단체들과 회합을 갖고 있다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 집권당 아와미 동맹과 미국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 시위와 파업으로 미국의 수많은 패션브랜드들의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현 여당 아와이연맹과 국민당 사이의 오랜 기간 동안의 싸움과 군부 개입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있으며, 현 총리인 하시나가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영향을 준 것 같다. 미국은 UN감독 하에 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공장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공장 노동자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의 국가임금위원회는 월 8,000타카(95달러)에서 56% 올린 12,500타카(113달러)로 정부안을 확정해 오는 12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지난 5년간 임금 인상이 전혀 없었고, 올해 들어서만 9%가 인상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정부안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인상된 임금 12,500타카(113달러)은 ILO데이터 상의 베트남 275달러, 캄보디아 250달러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여성으로 월급이 8,300타카(75달러)인 노동자도 있다.

노동자들은 월 최저임금을 현재의 약 세 배인 2만3000타카(약 27만원)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1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공장과 고속도로를 따라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도로를 봉쇄하고 공장에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노동단체들이 반발하고 시위와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공장들이 문을 닫고 정부와 경찰의 탄압이 심해졌는데, 최저임금 인상파업으로 300여 개 공장이 문을 닫고 3,000명 이상의 군중과 경찰이 충돌했다.

이미 최저임금 인상전에도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노동자 2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인 기업 대표와 노조 대표, 임금 전문가가 모두 정부에 의해 임명돼 공정한 결정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거리로 나선 의류공장 노동자들
거리로 나선 의류공장 노동자들

상황이 악화되자 1,000여 브랜드를 거느린 미국 의류신발협회(AAFA)가 방글라데시 정부에 의류 수입 단가를 5~6% 인상해 줄 테니 최저임금 인상안을 재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또 5년 단위로 최저임금을 검토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며 매년 최저임금을 점검토록 권고했다. H&M을 비롯해 갭(Gap), 리바이스, 푸마(Puma), 아베크롬비앤 피치 등 18개 브랜드 역시 새로운 최저 임금 수용 요구 서한을 총리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하시나 총리는 11월 27일에 열린 여당 아와미연맹(AL)행사에서 “나는 사대주의 정치를 하지 않고, 외부에서 간섭하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해 미국 등 서방 측에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투쟁에 압력을 느낀 미국 등 글로벌 의류브랜드 자본이 늦게나마 최저임금 인상을 주문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미국은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핵심적인 책임이 있다. 글로벌 의류브랜드들과 미국 정부가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의 이런 열악한 조건을 몰랐을리가 없다. 납품 단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원청인 패션 브랜드들이고, 국가 간의 무역을 관장하는 것은 미국과 방글라데시 정부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방글라데시는 중국에 이어 2위의 의류수출국으로,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연간 수출액 550억달러(약 72조원)의 약 85%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초착취가 가능한 구조 속에 4000개가 넘는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여기 고용된 노동자가 400만 명이 넘는다. 2013년에는 의류공장 ‘라나 플라자’가 붕괴되어 1,12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노동조건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서구 ‘패스트패션’의 산업구조에 맞춰 움직여야 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쉴새없는 물량 맞추기의 틀 속에서 자신을 갈아넣어야 했다.

패션브랜드 기업들은 여태껏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착취한 당사자다. 그런데 파업이 길어질수록 상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방글라데시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며 급한 불을 끄려고 임금 인상 요구를 한 것이다. 글로벌 노동인권단체 ‘깨끗한옷 캠페인’(CCC)은 방글라데시에 의류제품 하청을 준 국제 브랜드 업체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서구 자본에게는 방글라데시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후퇴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국 자본가 및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는 부패와 독재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민중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과 선거조작 의혹 등으로 총체적 난국임에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방글라데시의 대중에게는 미국 정부와 글로벌 패션기업, 자국의 하청기업과 지배계급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 장병창, 「방글라데시 최저임금 인상 갈등, 글로벌 이슈 부상」, 어페럴뉴스, 2023. 11. 14.
  • 박용하, 「최저임금 56% 인상에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 시위 확산...피격 사망까지」, 경향신문, 2023. 11. 09.
  • 유창협, 「방글라 정치불안 악화…주요야당 자마트, 내년총선 참여도 막혀」, 연합뉴스, 2023. 11. 20.
  • 유창엽, 「총선 앞둔 방글라 총리 "외부세력 배격" 강조…美 등 겨냥한 듯」, 연합뉴스, 2023. 11. 27.
  • 「방글라데시, 선거 조작 두고 여야 갈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3. 11. 24.
  • 「방글라데시, 세이크 하시나 정권 개발 독재의 명과 암… 경제 성장 성과에도 민주주의는 위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2. 12. 30.
  • Wave of arrests in government response to opposition strike in Bangladesh, Anadolu Ajansi, Sm Najmus Sakib, 2023.11.19Sm
  • Bangladesh: Violent Autocratic Crackdown Ahead of Elections, Human Rights Watch, 2023. 11.26
  • Bangladesh arrests thousands in 'violent' crackdown: HRW
  • Bangladesh police clash with protesting garment workers, aljazeera, 2023.11.10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