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힘으로 일궈온 탈핵운동의 궤적 | 반핵아시아포럼 참가기

민중의 힘으로 일궈온 탈핵운동의 궤적 | 반핵아시아포럼 참가기

존재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당장 모두 멈춰도 언제 폐기물 처리가 완료될 지 예측도 못할 만큼 제대로 운용되고 있지 않다. 노후 원자로 폐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도박이며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다.

2023년 10월 20일

탈핵운동, 동아시아, 일본, 울진, 경주, 삼척, 기후정의운동

2023년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반핵아시아포럼(Nonukes Asia Forum)은 서울에서 시작하여 부산,울산, 경주, 울진, 삼척을 거쳐 다시 서울 시청 앞 기후행진에서 끝나는 긴 여정이었다. 매해 개최되던 반핵아시아포럼이 코로나19로 4년이나 건너뛰고 열린데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로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에 여러 언론에서 주목했다. 나는 개인참가자로 19일 수요일부터 참가했는데, 18일 서울에서의 포럼 내용은 생략했다. 이날 행사에 대한 내용은 이 기사에 소개돼 있다.

18일 서울 반핵포럼세미나에 참가했던 참가자들은 19일 오전 부산 초량역 정발장군 동상 앞에 모여 오후 1시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가 오기 직전의 찌뿌드드한 날씨에 실제 빗방울이 조금 내리기도 했다. 이영훈 신부의 연대발언에 이어 오염수투기반대 정운용대표, 스게나미(일본),에밀리(필리핀)순으로 오염수 투기를 자행하고 용인한 일본과 한국정부를 규탄했다. 오염수 투기를 반대하는 커다란 선전물과 세 줄로 정열한 각국의 참가자들, 기자와 카메라등이 사거리를 오가는 차량과 보행자의 눈길을 끌었다. 첫 실외 기자회견이었기에 동상 앞에 모인 후 기자회견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통역을 일부 생략한 채 예정된 회의장소로 서둘러 이동했다.

성미산학교 학생들
성미산학교 학생들

두번째 일정은 YWCA건물 2층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세미나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1부는 ‘핵에너지와 국가폭력 밀양’, 2부는 ‘핵발전소 수면연장’에 관한 강연과 토론이 진행됐고, 중간에 공연이 있었다. ‘밀양에서의 국가 폭력’ 세미나에서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온 마을 주민과 전국의 활동가들이 연대하여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어떻게 싸우고 이를 기록해왔는지 발표했다. 특히 강연에서 보여준 슬라이드 사진(분신한 주민의 영정, 끌려나가는 주민 등)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었고, 직후 토론시간에는 밀양에서 온 주민 한 분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일본에서 온 참가자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정부는 처음부터 폭력 대신 ‘돈’으로 회유하여 결국 같은 주민끼리 (찬반 문제로 반목하다) 인사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라고 덧붙이며 국가폭력(물리적 폭력과 보상금 회유)으로 공동체가 깨져 상처입은 밀양 주민의 고통에 공감하였다.

밀양 활동가와 밀양 주민
밀양 활동가와 밀양 주민

두번째 세미나는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에 대한 강연과 토론이었는데 특히 최근 핵폐기장 후보로 거론된 쓰시마 섬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는 모로마츠씨의 발표(관련 기사: 대마도 핵폐기물 처분장 추진에 "현지 주민 찬반 엇갈려")가 인상적이었다. 발표자는 섬 주민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인구소멸과 지방경제 쇠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백하고 쉬운 언어로 이야기했다. ‘옳음’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지 주민의 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후 쓰시마섬은 핵폐기장 후보에서 제외됐다.

그밖에도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오하라), 센다이원전 20년 연장 찬반을 묻는 현민투표모임(소마타니) 등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지역민과 함께 어떻게 핵발전소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몰라보게 달라진 풍경을 담은 사진작가 도요다씨의 짧은 강의가 이어졌다. 어떤 말보다 이러한 사진이 사고 전에도 후에도 후쿠시마를 살아가는 지워져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후쿠시마 마을의 사진을 설명하는 도요다 나오미
후쿠시마 마을의 사진을 설명하는 도요다 나오미

다음날 20일은 흐린데다 바람까지 예고되어 야외 일정은 취소하고 버스 안에서 발전소를 보고 카페에서 발전소 반대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청취했다. 마을과 떨어진 곳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고리 핵발전소는 마을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월내초등학교와 고리원자력본부는 인터넷 지도상으로 도보 2분거리이며, 원전 주변지역 거주 제한구역은 경수로에서 700미터 안쪽에 불과하다.

버스 안에서 고리 발전소를 둘러본 다음 길천 마을 방파제로 이동했다. 방파제 근처에서 핵발전소가 보이는 카페 2층 공간에 자리잡고 정수희 활동가의 발표를 들었다. 1969년 처음 고리핵발전소가 지어질 당시 마을을 떠나야했던 주민들은 신고리 3~6호기가 하나씩 지어지면서 두세번씩 이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고 원전을 찬성하고 또 다른 주민은 격렬히 저항하면서 마을이 갈라졌다. 지금도 마을의 수입원인 해조류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따뜻한 폐수)때문에 해양환경이 바뀌어 물고기가 잡히지 않거나, 핵발전소의 취수구(물이 드나드는 파이프)에 해조류가 걸리지 않도록 뿌려둔 독한 화학약품 때문에 미역의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등의 피해를 입고 있지만 보상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튀르키에 참가자 피니르씨는 이러한 문제사례가 튀르키예의 주민에게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며 큰 관심을 보였다.

정수희 활동가의 투쟁 이야기
정수희 활동가의 투쟁 이야기

부산의 일정을 마치고 울산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가장 부자라는 도시 울산, 그 중심인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원래는 비가 오지 않으면 바깥에서 진행하려했으나 인도와 태국에서 온 활동가들에게는 ‘정부 기관에서 하는 기자회견’이 특별한 체험을 될 것 같아 일부러 청사 내부 기자회견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주최한 기자회견이었지만 주목받은 것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팀 토치 활동가였는데 그는 작정하고 준비한 3분짜리 연설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1994년 한국에서 2회 ‘반핵아시아포럼’이 개최되었을 때 저는 오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한국의 식민역사를 알게 된 후 도저히 한국에 갈 자신이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듬해 1995년 고베대지진이 일어나고 한국에서 초콜렛 원조품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이 초콜렛을 한국에 가는 ‘비자’라고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버리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중략) 일본은 식민지배에 이어 오염수 해양투기마저 저질렀습니다. 핵발전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와 비용문제로 반드시 중단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각 정부가 끝내기 전에 우리 민중들의 힘으로 핵발전을 끝장내고 싶습니다.
함께 끝냅시다. NO NU~~~~~~~~~KE!!!!!”

길고 우렁차 숨이 넘어갈 정도로 토치의 "노뉴크"(반핵) 구호는 계속됐다. 그가 발언을 마쳤을때 몇 몇은 눈가를 훔치고 몇 몇은 박수를 보냈다.

조금 흥분한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의례적인 절차로 시청 마당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몸집 좋은 경찰이 나타나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사진 촬영을 방해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무시하려다가 말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경찰이 제지하는 모습 그대로를 사진에 담기로하고 울산 활동가가 즉흥적으로 외친 ‘탈핵!’을 30번쯤 함께 외치고서야 사진촬영 및 시청방문이 끝났다.

열일하는(?) 경찰과 투지가 불타오른 참가자들 (사진: 김윤삼)
열일하는(?) 경찰과 투지가 불타오른 참가자들 (사진: 김윤삼)

울산노동자종합복지관으로 갔다. 1부에선 한국과 일본의 고준위 핵폐기물 현황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일본·인도·태국·호주·튀르키예에서 온 활동가들이 각국 상황에 대해 소개했다.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는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 (사진: 김윤삼)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 (사진: 김윤삼)

저녁 시간에는 각국에서 온 발표자와 참가자, 봉사자들이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하루 일정이 어느 때보다 빠듯했음에도 다들 에너지가 남았는지 흥에 넘쳤다.

반핵포럼 셋째날인 21일은 이전의 이틀과는 달리 날이 맑았다. 참가자들은 천년의 고도를 향해 모처럼 맑은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대부분은 쿨쿨 잤지만) 이주대책농성장과 월성원자력홍보관이 있는 경주 나아리로 이동했다.

이곳 농성장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민주노총 작은 강당에서 ‘월성원전 건강조사 결과’와 ‘핵발전소 인근 갑상선암 소송’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이 발표는 다른 강의보다 훨씬 전문적인 내용이었으나 청중의 집중도는 어느 강연보다도 높았고(공간이 작아서이기도 했으나) 지역방송 취재기자도 모든 강연 내용을 꼼꼼히 녹화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국장은 ‘월성원전 건강조사’ 발표에서 정부가 여론조사 데이터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부가 작년 월성원전 인근 3개 읍·면 주민의 건강실태 조사 결과, 원전 주변의 모든 암발생률이 남성은 12%, 여성은 18% 타 지역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원전 거리별(5, 10, 20km)로 비교하지 않고 20km내의 주민을 뭉뚱그려 통계를 낸 까닭에 원전 주변에 살면 암발생률이 낮아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발한 환경연합에서는 지난 15년간의 건강보험센터자료를 분석해 반경 10km내의 주민이 20km내의 주민보다 전체적인 암발생률이 44%나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부는 이 데이터 분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갑상선암 소송을 설명하는 변호사 (사진: 장영식)
갑상선암 소송을 설명하는 변호사 (사진: 장영식)

다음 발표 ‘갑상선암 소송 현황’에서도 체내에서 확인된 삼중수소 농도와 갑상선암 발병률의 연관성이 증명된다는 점이 공유됐다. 한데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갑상선암 발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태도를 취해왔다고 한다.

발표가 끝난 후 유아사 히로시마 시립대교수는 강연자와 개별 만남을 가졌다. 원자력 업계에서 흔히 저선량이라고 주장하는 피폭 100mSv 수치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직후에 계산된 것이지만 이미 일본을 비롯 전세계에서 이 수치가 유해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100mSv 이하는 유해하지 않다는 통설의 허구성)이 드러났기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미 한국에서도 이 통설을 부정하는 유럽 연구자가 직접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으나 항소심에서 패소하였다고 한다. 갑상선암 소송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므로 이길 때까지 한일간의 교류와 연대를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고)

열띤 강연후에는 농성장에 들러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경주 주민의 말씀을 듣고 농성장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바로 뒤에는 깨끗하고 화려한 ‘원자력 기념관’이, 건너편에는 예쁜 바다가 있어 이질감을 더했다.

이주대책 농성장 앞에서 (사진: 장영식)
이주대책 농성장 앞에서 (사진: 장영식)

점심 식사 후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함께 핵발전소를 확인 한 후 울진으로 이동했다. 바닷가와 50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울진은 행정구역상으로 가장 많은 핵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이다. 문재인 정부때 신한울 3~4호기 백지화를 약속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재개됐다. 마을은 보수적이고 핵발전소에 우호적인 분위기라 싸움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한 핵발전소 반대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울진핵발전소가 보이는 바다 앞에서 (사진: 장영식)
울진핵발전소가 보이는 바다 앞에서 (사진: 장영식)

마지막 방문지는 삼척이었다. 삼척 시민들은 수십 년간의 싸움으로 핵발전소를 막아냈다. 마을에 내려서 처음 방문한 거대한 ‘삼척비’가 그동안의 싸움을 말해줬다. 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을 싸워왔던 분들이고, 반핵아시아포럼의 멤버들과도 이미 십년 이상의 인연이 있는 분들이라 마치 먼 친척을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듯했다. 다섯 명 정도의 주민이 발언을 했는데 힘차고 내용도 길었다. 함께 참가한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엘름댄스(느릅나무 춤: 체르노빌 희생자를 기억하는 춤)를 배우고 함께 췄다.

비석 뒤 계단에 모여앉아 삼척의 원전 건설 시도를 막아온 투쟁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었다. 질의 시간에 일본에서 온 나가세 씨가 질문했다.

"굳이 삼척에 발전소를 지으려고 몇번이나 시도한 이유가 뭐랍니까?”
“주민 수가 적고 바닷가니까요. 그 이유가 다예요."

핵발전소는 물이 필요하니 바닷가여야하고, 주민이 많으면 회유하기 어려우니 인구가 적은 곳을 고르는 것이다. 발전소 부지에 쓰나미가 와도 활성 단층이 있고 경관이 망가져도 상관없는 것이다. 1983년 5월, 일본 지진 직후 속초시 묵호항에 200cm가 넘는 지진해일이 덮쳤다.

몇 번이나 핵발전소를 지으려다 실패한 정부는 이제는 원전 대신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모자라 석탄발전소 건설현장까지는 못 보았으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 풍경만 보아도 오로지 대도시가 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마을의 환경을 파괴하는 발전소는 필요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삼척주민의 승리 원전백지화기념탑 (사진: 장영식)
삼척주민의 승리 원전백지화기념탑 (사진: 장영식)

마지막날인 9월 23일 아침, 일찌감치 기차를 타고 ‘기후정의행진’ 집회가 열리는 서울로 이동했다. 서울역에서 일행 중 일부는 다른 일정으로 떠나고, 각지역에서 온 반핵운동가, 시민들이 새로 합류했다. 날이 쨍쨍하여 머리는 뜨겁고 엉덩이는 아프고 목도 말랐지만 엄청난 수의 깃발과 우렁찬 앰프와 무지막지하게 크고 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이 반가웠다. 우리는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 사토다이스케의 반핵 연설을 비롯하여 위기를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 리더들을 깨우치기 위해 싸우는 여러 시민활동가들의 발언과 노래를 듣고, 용산까지 행진했다.

반핵아시아포럼에 참가하면서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정부가 ‘핵발전’을 미화하려해도 에너지원으로써 조금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탈탄소’라는 명분은 우라늄을 채굴하는 순간 이산화탄소를 내뿜기에 타당성을 잃으며 오염수 해양투기의 가장 큰 이유가 비용절감인 것만 보아도 원전은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2011년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폐로 비용에 대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2016년 22조엔으로 추정 발표했으나 이듬해 일본경제연구센터가 계산한 비용은 50~70조엔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당장 모두 멈춰도 언제 폐기물 처리가 완료될 지 예측도 못할 만큼 제대로 운용되고 있지 않다. 노후 원자로 폐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도박이며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다. 핵무기의 보유와 위협이 그러하듯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하고 증설하겠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시민들에 대한 도발이다. 원전 마피아라고도 불리는 핵발전업계는 모든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 수단을 활용해 강력한 핵무기가 전쟁도발을 억제하며(핵우산 논리), 핵발전소가 경제를 번영시키는 마법의 도구인 것 처럼 거짓말하고 있지만 아시아의 민중들은 목숨을 걸고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건립을 저지해왔고 핵 없는 세상을 외쳐왔다.(홈페이지 반핵아시아포럼의 역사 참조)

원전 건설과 핵폐기장 건설이 시도되었던 아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정부와 기업에 맞서 싸워온 모든 마을 주민들, 활동가들, 봉사자들, 그리고 반핵아시아포럼을 지켜온 스탭들에게 감사하다. 마지막 날 새벽, 삼척 숙소 앞에서 한국,일본,대만의 활동가들과 함께 부른 민중가요들, 특히 ‘그날이 오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다음 반핵아시아포럼은 2025년 대만에서 열린다고 한다. 대만은 일본 자본이 건설한 신베이(新北) 4기 원전 가동문제로 오래 갈등하다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올해 결정했다. 대만에서 온 린쉐유엔씨는 2025년엔 원전 투어가 아니라 새로운 투어 루트를 제공할테니 기대하라는 말을 남겼다. 남은 2년동안 다른 지역의 원전도 대만처럼 폐기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설사 계획이 뒤집혀 재가동이 선포되고 윤석열 정권처럼 원전만능을 외치는 정권이 아시아의 어디에서라도 나타난다면 반핵아시아포럼 활동가와 시민들은 언제라도 또 다시 모여 다음 구호를 외치며 투쟁하러 갈 것이다.

반핵! NO NUKE! 反核! ปฏิกริยานิวเคลียร์! nükleer karşıtı! anti-nuklir! कोई नाभिकीय नहीं! Không hạt nhân!

글 :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