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우산운동 9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침묵시위를 벌이다

홍콩 | 우산운동 9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침묵시위를 벌이다

우산운동 9주년, 홍콩침례대학 학생들이 노란 리본을 들고 서서 침묵시위를 벌이다가 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2023년 9월 28일

[동아시아]홍콩홍콩, 홍콩항쟁, 우산운동, 학생운동, 동아시아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의 발효 이후 홍콩 사회운동에 대한 국가권력의 탄압 공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2019-20년 홍콩 항쟁을 이끌었던 주요 활동가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고, 직공맹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은 해산했다. 20여 만 명의 홍콩인들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상당수는 대만에 체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홍콩에 남아 이곳을 지키고, 미래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사회운동의 역량을 보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산운동 9주년

홍콩 현지의 독립언론 『집지사(集誌社)』 보도와 소셜미디어상 전언에 따르면, 지난 9월 28일 홍콩침회대학(HKBU; Hong Kong Baptist University)에서 일군의 학생들이 우산운동 9주년을 기억하는 침묵 행동을 벌였다. 현지 언론들도 이 행동을 줄지어 보도했다.

전말은 이렇다. 이 대학에서 총학생회를 통해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여러 학생들은 빈 총학생회실에 모였다. 이들은 노란 리본과 함께 우산운동을 기억하는 메시지를 A4 용지에 적어 옷에 부착했다. 노란 리본은 2014년 우산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학생들은 광동어 혹은 영어로 이런 메시지를 적었다.

"학교는 이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낙담해야 할까?(學校畀派,你願意冷嗎?)"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람들은 희생했고, 대가를 치렀다(Freedom is NOT Free. People sacrifice & paid.)"

그리고 어떤 시위자의 옷에는 한국어로 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산운동 9주년, 국제적인 연대로 홍콩 민주주의 쟁취하자"

침묵 시위에 함께 한 학생들은 이 행동이 불과 10분만에 해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 수 있다. 이들은 캠퍼스 내에 행인이 많은 구름다리로 향했고, 이곳에서 노란리본을 그대로 둔 채, 서있었다. 이것은 당국의 제재를 피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시위를 펼치기 위한 최대한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 최근 홍콩에서는 아주 사소한 시위에 대해서조차 '불법'의 딱지가 붙는다.

침묵 시위 중인 학생들
침묵 시위 중인 학생들

과잉 대응

몇 분 가량 진행된 침묵 시위 직후, 학교당국이 나타나 "학생 활동을 위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면서 "불법적으로 노란 리본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어떤 장소로 데려갔다.

학생들은 당국에 "우리는 학생 활동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서있던 것 뿐"이라고 답했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억류한 학교당국 책임자는 "회의 중"이라며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감옥에 있는 친구를 면회하러 가야 한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고, "시간을 바꾸라"는 말만 반복했다.

오랜 시간 후 나타난 홍콩침회대학 학생처 책임자는 "법무팀과 이야기하느라 늦었다"면서,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끄고 비밀유지 서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부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학교당국의 강압적인 요구 때문에 학생들은 비밀유지 서약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진 못했지만, 학생처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학생들을 불쾌하게 압박했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학생처 관계자들이 핸드폰을 끄라고 요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지난 5월에 있었던 논란 때문이다. 당시 학생처장은 총학생회 간부들과의 대화 도중 "계속 저항할거면 해봐. 나를 건드리면 너네를 모두 때려버릴거야"라고 말했고, 이를 녹음한 내용이 완전히 공개된 것이다.

이 협박은 2021년 7월 홍콩대학 학생회가 직면한 일련의 탄압과 연관되어 있다. 당시 홍콩대학 학생회 등 4명이 기소됐고, 이런 영향에 침회대학의 학생운동가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는 경찰을 공격한 후 자결한 어느 시민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는데, 곧바로 정치권으로부터 "테러리스트를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학생운동에 대한 거센 공격을 감수해야 했다. 이에 더해 올해 봄 홍콩침회대학 당국은 올해 학생회 임원들 중 4명이 이 사건에 대해 정부에 비판적인 견해를 발언했다는 불만을 접수한 후, 이들의 학생회 집행위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이 사건 이후 학생처장에게는 "침회대 싸움꾼"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최근 논란으로 기소된 학생운동가들
최근 논란으로 기소된 학생운동가들

“여기는 홍콩이야”

침묵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입장에서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 취조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사회에서건, 일상에서건 이는 마찬가지다. 홍콩 시민사회의 발언 공간이 얼마나 강하게 위축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학생 활동에 '신고'와 '허가'가 필요하다는 전제조차 납득해선 안 되는 문제다.

언론에 따르면 한 한국인 유학생은 학생처 직원에게 "한국에서 이런 일은 말이 안된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생처 측은 "하지만 여긴 홍콩이야"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2020년 항쟁 이후 시민사회 죽이기로 일관하는 정부 당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옷에 부착하는 행위도 불허한다는 것은 가히 "홍콩의 신장화"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학교당국 스스로 대학 본연의 책임과 위치를 망가뜨리고 있는 셈이다.

중추절 연휴 이후 홍콩침회대학 당국은 다시 한 번 학생들을 소환해 개별 면담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징계 절차가 뒤따를 위험이 남아있는 것이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던 우산운동이 벌써 9년이 지났다.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도입하려했던 범죄인 송환조례로 촉발된 2019년 시위도 4년이 지났다. 권력은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강도 높은 탄압으로 억누르려 했고, 시민사회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시도하고 있다. 여러 활동가들을 터무니 없는 혐의로 구속했고, 노동운동을 대표하던 직공맹(홍콩노총)은 해산됐다.

홍콩 사회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일각에선 '홍콩민족주의'라는 좁은 문을 지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숨 쉬는', 반권위주의적이고 반신자유주의적인 평등하고 민주적인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마도 2019년 많은 시민들은 이런 지향 속에서 도시파업을 벌이고, 50여 개의 업종별 노동조합을 새롭게 건설했을 것이다.

시민사회는 엄혹한 탄압 국면에 놓여 있고, 할 수 있는 게 매우 제한되고 있지만, 홍콩에는 사회운동의 중요한 가치를 기억하고, 미약하게나마 행동과 사유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재판을 앞두고 있어 몇 년 후면 감옥행이 예정된 학생운동가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홍콩 사회운동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탄압은 엄혹하지만 역사는 길고, 전환의 계기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국제연대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19년 범죄인 송환조례 반대운동 때부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 학생 활동가에게 "한국 사람들에게 덧붙여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이런 말을 전해왔다.

"역사는 권력자들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절대 잊지 말고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History should not be interpreted solely by those in power. That’s why we are here today. Never forgot never forgive.)"

글 : pigonada